Chapter: 18. 번호 교환"아영 씨." "아, 깜짝이야!" 급히 뒤를 돌아보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희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었다. 유니폼을 벗고 깔끔한 캐주얼 차림을 한 그는 또 다른 의미로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겼다. "아…… 희호 선수님이셨네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전화번호 좀 물어보려고요." "……네? 전화번호요?" 예상치 못한 단어에 아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희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으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네. 아영 씨랑 개인적으로 친구 하고 싶어서요." 대한민국을 흔드는 스포츠 영웅이자 수많은 연예인들의 러브콜을 받는 그 강희호가 직접 전화번호를 물어오다니. 아영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굳이 이런 대단한 사람과 날을 세우거나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번호를 휴대폰에 찍어주었다. "문자 한 번 남겨주세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아영은 희호가 번호를 입력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안의 문자를 다시 확인하느라 바쁜 걸음으로 건물 밖을 향해 훌뚱뚱 뛰어가 버렸다. "……?" 남겨진 희호는 덩그러니 복도 한가운데 서서 아영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나 아이돌, 화려한 모델들도 자신과 한마디라도 더 섞어보려고 온갖 애를 쓰는데. 정작 이 조그만 신인 모델은 번호만 홀랑 주고는 미련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 것이다. "하…… 참 나." 희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승부욕과 알 수 없는 설렘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희호는 아영이 남기고 간 번호 위로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입력했다. 그리고 스튜디오 밖, 고급 세단 안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이안의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한 채, 희호의 입꼬리가 짓궂게 올라갔다. ‘송아영…… 생각할수록 진짜 재미있는 여자네.’ . . . "오늘 완
Last Updated: 2026-10-10
Chapter: 17. 커플 촬영에서 벌어진 일(2)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스튜디오 중앙으로 걸어가는 희호를 보며, 아영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조금 전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희호의 미묘한 시선이 잔상처럼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신인 모델이라 마음에 안 드셨나…… 하긴, 저런 대형 슈퍼스타 옆에는 톱스타급 모델이 서야 그림이 나오지." 아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높은 곳에 있는 이안의 곁,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인 강희호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카메라 테스트와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아영은 프로답게 표정을 가다듬고 스튜디오 중앙에 섰다.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시선을 옮기던 바로 그 순간, 아영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크게 흔들렸다. 촬영장 세트 구석, 어두운 조명 그림자 속에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안 씨?’ 아영의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실룩거리더니, 이내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져 나갔다. 가끔 이안은 이렇게 감시 차원이라는 핑계를 대며 불쑥 촬영장에 나타나곤 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보러 와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속에서 퐁퐁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찰칵-! 아영의 갑작스럽고 화사한 표정이 카메라 렌즈에 그대로 담겼다. 그 눈부신 미소에 옆에 서 있던 희호마저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며 멍하니 아영을 바라보았다. "아영 씨, 지금 그 표정 너무 좋아! 대박이다! 희호 선수 보고 다시 한번만 그 느낌으로 가볼게요!" 감독의 들뜬 목소리에 아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귓가를 스치는 것은 과거 이안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던 경고였다. ‘나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그렇게 웃지 마.’ 하지만 여기는 엄연한 일터였다. 아영은 이안이 스튜디오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Last Updated: 2026-10-10
Chapter: 16. 커플 촬영에서 벌어진 일(1)지잉— 고요한 침실 안에 묵직한 진동음이 또 다싶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아영의 눈동자가 갈수록 커졌다. 다름 아닌 촬영 제의. 그것도 이안이 있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콜라보 화보 촬영이었다. 촉이 왔다. 명목상은 기획팀의 러브콜이었지만, 이안이 뒤에서 손을 쓴 게 틀림없었다. [송아영 모델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콜라보 화보 제안을 위해 연락 드립니다. 아영 님도 잘 알고 계실 저희 브랜드 전속 모델, 축구선수 '강희호' 님과 함께하는 커플 화보 촬영인데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저희는 희호 님의 상대 모델로 아영 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강희호?" 아영은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강희호라니. K리그를 씹어먹고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거듭난 그 강희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꼬마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르는 이가 없는 국민적 스포츠 스타였다. "이건…… 이건 무조건 해야 해!" 아영은 활짝 웃으며 침대 위로 훌쩍 몸을 던졌다. 푹신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발놀림을 쳤다. 유명해지고 싶은 이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보육원에 번듯한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1순위라면, 2순위는 오롯이 그 남자, 이안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곁에 당당히 서고 싶다는 열망. 만약 자신이 대중에게 인정받는 유명한 모델이 된다면, 늘 비즈니스적이기만 했던 그와의 관계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동화 속 마지막처럼 진정한 사랑의 키스…… 그리고 결혼까지?’ 가지런히 모은 손가락 사이로 얼굴을 가렸지만, 화끈거리는 볼의 열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우, 송아영 미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 아영은 홧홧해진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호흡을 가다듬고 빠르게 옷을 챙겨 입었다. 가슴속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 . . 촬영 당일, 세트장은
Last Updated: 2026-10-10
Chapter: 15. 지키고 싶은 사람지잉— 고요를 깨는 작은 진동 소리에 아영이 눈을 떴다. 흐릿한 시선으로 확인한 휴대폰 시계는 오후 1시 14분. 예정보다 3시간이나 더 잠에 파묻혀 있었던 셈이다. 집 안에는 온기가 여전했지만, 적막함이 흐르는 것을 보니 이안은 이미 나간 듯했다. "우움... 나가기 싫다." 베개 깊숙이 파고들자 이안의 잔향이 포근하게 감돌았다. 아영은 이불 위에서 푹신한 눈밭에 누운 아이처럼 팔다리를 저으며 천사 놀이를 했다. 몽롱한 기분으로 휴대폰 액션을 슬라이드해 문자를 확인한 순간, 아영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아영아, 잘 지내니? 요즘 통 연락이 없어서... 선생님 조금 서운하려고 해~] 스치는 문장 하나에 잠운이 씻은 듯 달아났다. 매일 밤 '내일은 꼭 전화 드려야지' 다짐만 하고 미뤄왔던 죄책감이 왈칵 밀려왔다. 아영은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여보세요? 아영이니?" "쌤! 죄송해요, 정말요... 요즘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연락도 못 드리고..." "아휴, 아니야, 아영아. TV랑 잡지 나올 때마다 선생님이 얼마나 뿌듯한데. 우리 보육원 아이들도 '아영이 언니가 정말 여기서 살았어요?' 하면서 신기해하고 난리도 아니란다." 선생님의 헐떡이는 듯 따뜻한 음성에 아영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햇빛 보육원. 핏덩이 때 던져져 스무 해를 보낸, 아영에게는 세상의 시작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사실 아영이 험난한 모델 판에 뛰어들어 이 악물고 돈을 벌었던 이유도 오직 하나였다. 낡아 무너져가는 보육원 건물을 비우고 어디론가 쫓겨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대로 가다간 보육원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눈 감을 수 없었다. 아영에게 '엄마'나 다름없던 최유나 선생님의 그 따뜻한 미소가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었다. 거절당할 것을 알기에, 언제나 이름 없는 기부자의 탈을
Last Updated: 2026-10-10
Chapter: 14. 이럴 때 우는 건 허락이야아영은 황급히 이불을 당겨 자신의 알몸을 가렸다. 자신의 민낯을 전부 드러낸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안은 가볍게 이불 한쪽을 잡고 스스럼없이 들춰냈다. "매일 보는 몸인데, 새삼스럽게 왜 가려?" "아니... 일, 일은요? 출근하신 거 아니었어요?" "반차 냈어.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컨디션이 나쁘다는 말에 아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혹시 어디라도 아픈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손을 올려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체온보다 다소 차갑게 느껴졌다. 이상함에 아영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이안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작은 손목을 틀어쥐고는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아뇨! 몸도 안 좋으시다면서 그럴리가요." "아가 먹으면 싹 낫릴 것 같은데." 몸이 안 좋다더니 돌아오는 건 뻔뻔한 요구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안은 그 맹한 표정이 귀엽다는 듯 낮게 픽 웃음을 터뜨렸다. "안 줄 거야?" "아... 주, 주죠. 그런데 몸도 안 좋으신데 또 하시게요?" "내가 2년 전에도 말했을 텐데. 나 성욕 세다고." "그래도 아프다면서요..." 쪽. 걱정과 불만이 섞인 아영의 잔소리는 이안의 다정한 입맞춤에 허공으로 삼켜졌다. 이안은 부드럽게 아영을 침대에 눕히고는,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손길로 탐하기 시작했다. 아영의 살결에 닿는 그의 손길에는 은근한 열기가 실려 있었다. "그럼 만지기만 할게. 오늘 촬영 있어?" "으읏... 아뇨, 없어요..." "잘됐네." 피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애무에 아영의 동공이 점차 풀려갔다. 이안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자지러지는 반응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놓치지 않고 아영이 가장 약한 민감한 곳을 집요하게 건드렸다. 쾌감과 참을 수 없는 생경함에 아영은 결국 그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그... 그만..." "왜. 이제 겨우
Last Updated: 2026-10-09
Chapter: 13. 색다른 아침10분이 지나 15분쯤 되었을 무렵, 정적만이 밀려들던 방 안의 공기를 깨고 자그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륵— 아영의 솔직한 배꼽시계였다. 순식간에 아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좀 전까지 그와의 아슬아슬한 스킨십에 붉게 달아올랐던 볼에서 피기가 싹 가셨다. 창피함과 민망함에 차라리 백지처럼 창백해진 표정이었다. "헉... 저... 그게, 아니에요. 하하..." 아영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안은 눈을 짚으며 낮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그렇게 놀라? 밥 안 먹었어?" "아, 네... 집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갑자기 불러서 못 먹은 거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네? 아니에요, 진짜 괜찮은데... 그냥..." 민망함을 주체하지 못한 아영은 눈동자를 헤매며 이안과 눈도 맞추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가만히 담아두던 이안은 미련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널브러진 협탁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손길로, 아영이 좋아하는 매일 시키던 그 단골 가게를 눌러 샌드위치와 시원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30분 걸린다네." "벌써 시키셨어요...?" "뭘 또 그렇게 놀라. 오늘따라 오버는." 이안은 그 반응이 진심으로 귀엽다는 듯, 살짝 새침해진 아영의 볼살을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아, 아파요..." 아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칭얼거렸지만 이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짓궂은 재미를 느꼈는지 반대쪽 볼까지 조심스레 잡아당기더니, 장난치지 말라고 한 소리 던지려던 아영의 벌려진 입술 위로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고 단단한 세례가 지나간 뒤, 그는 다시 아영의 옆자리에 스르륵 누워 나른한 눈빛을 보냈다. "30분이면 한 번 하고도 시간이 넉넉히 남을 것 같은데. 아가 생각은 어때?" 또 '아가'였다. 평소엔 그저 딱딱하게 '송아영'이라 부르던 그가, 품에 안을 때면 무심하게 던지는 그 애칭. 그 나
Last Updated: 2026-10-09
Chapter: 외전 4(완)문을 열고 들어서며 크게 이름을 부르는 하성의 목소리에 집 안 전체가 온기로 가득 찼다. "지아야, 지수야!"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터트린 지수가 아장아장 걸어 하성에게 향했다. 몇 걸음 못 가 쿵 넘어지며 울음소리가 배로 커졌지만, 지연은 푹 한숨을 쉬면서도 입꼬리를 올린 채 지수를 일으켜 안아주었다. "오빠 왔어?" "응, 많이 기다렸어?" "그치. 혼자 두 애 보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랬어? 휴가라도 좀 낼까?" "휴가는 무슨. 일 열심히 해서 매출이나 올려야지." 지연은 장난스레 씨익 웃으며 하성의 콧등을 톡톡 쳤다. 하성은 그 다정한 손길에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더니, 옷 속에 숨겨두었던 작은 꽃다발 하나를 꺼내 밀어밀었다. "선물." "엥? 뭐야. 오빠 요즘 용돈도 없다며." "그렇긴 하지. 애들 간식 사느라 털렸어. 그래도 길 가다 너 생각나는데 안 살 수가 있어야지." 머쩍게 웃던 하성은 지연의 품으로 쏙 들어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지연은 하성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지만, 이내 그를 살짝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구석에서 또 다른 작은 눈동자가 찌릿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아 또 질투한다. 오빠 삐치는 거 진짜 똑 닮았다니까." "아니거든. 이건 완벽하게 이지연 너 닮은 거야." 티격태격 웃음을 터트린 두 사람은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포근한 이불 위에 눕혔다. 지아와 지수는 아직 더 놀고 싶은지 조그만 발로 이불을 펑펑 찼지만, 이내 집 안을 채우는 지연의 나지막한 자장가 소리에 잔물결처럼 조용해졌다. 긴 속눈썹이 내려앉고 조용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자, 두 사람은 까치발로 방을 빠져나왔다.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들어선 시원한 베란다. 창밖 짙은 밤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과 커다란 둥근 달이 떠 있었다. 환한 달빛이 쏟아져 내려 베란다에 서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려놓았다. "달이 오늘따라 진짜 크네." "그러게... 지
Last Updated: 2026-09-15
Chapter: 외전 3지연의 가쁜 신음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하자, 그녀를 품에 안은 하성의 몸도 붉은 열기로 조금씩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로의 숨결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열기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을 위한 방 안을 가득 채워나갔다. "오빠..." "왜 불러, 강아지?"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싫은 척하면서 얼굴은 왜 이렇게 빨개지는데?" "...몰라, 진짜." 지연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녀의 발버둥이 다정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지연의 두 손목을 가볍게 잡아당겨 아래로 내렸다. 결국 그녀는 하성의 깊은 눈빛을 온전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씁. 이렇게 예쁜 얼굴 가리면 못 쓰지." "우응... 진짜 부끄럽단 말이야..." "내 눈엔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왜." 하성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검지 손가락 끝으로 지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촉촉한 입술 위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입술을 겹쳐 눌렀다. 짙게 이어지는 키스 소리와 함께 몸무게를 실어 흔들리는 침대의 삐걱거림이 두 사람의 체온을 한층 더 뜨겁게 달구었다. 그날 밤은 서로를 향한 갈증으로 가득 찬 밤이었다. . . . "지아야~ 지수야~ 엄마한테 와보세요!" "우브브...! 엄마!"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해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기는 쌍둥이 지아와 지수가 지연이 부르는 소리에 반갑게 달려왔다. 지연은 두 팔을 넓게 벌려 조그만 아이 둘을 한 품에 꽉 안아주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들! 엄마가 그렇게 좋아?" 첫째 지아는 앙증맞은 두 손으로 짝짝이 박수를 치며 헤실헤실 예쁘게 웃었다. 그러나 둘째 지수는 엄마 품에 안겨서도 무언가 아쉬운 듯 연신 현관문 쪽을 두리번거리며 아빠를 찾는 눈치였다. 확실히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도 얼굴만 판박이처럼 닮았을 뿐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지아는 울거나 떼를 쓰면 바로 달래주고 원
Last Updated: 2026-09-11
Chapter: 외전 2하성은 빵집에 들려 딸기 케이크를 사서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 안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 왔어." "오빠 왔어?" 지연은 엉망이 된 머리칼과 풀린 눈을 한 채로 하성을 맞이했다. 고된 육아의 흔적이 역력한 그녀의 모습에 하성은 말없이 다가가 지연을 품에 꼭 안아주었다. "딸기 케이크 사왔어. 일단 이거부터 먹고 조금 자." "진짜? 고마워~ 역시 오빠밖에 없다니깐." 지연은 피곤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케이크 상자를 열어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점심조차 거른 탓이었다. 그 사이, 지수와 지아가 손을 휘적이며 엄마를 찾자 하성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작은 손을 맞잡아주었다. "아빠 왔어~" "아바바... 아바." 지수는 활짝 웃으며 하성을 반겼지만, 지아는 엄마를 찾느라 잠시 뾰족하게 표정을 굳혔다. "이 녀석, 아빠가 아직 어색한 거야? 속상하네. 아빠도 일 끝나자마자 부스스 달려온 건데." "아맞다. 오늘 회사 일은 잘 되고 있는 거야?" "응, 걱정하지 마. 팀원들이 워낙 손발이 잘 맞잖아." "휴, 다행이네."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크를 비운 지연은 하성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에 지친 머리를 살짝 기대었다. 하성은 다정한 손길로 지연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었다. 마침 지연이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치자, 하성은 장난스럽고도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마와 코끝을 거쳐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쓰읍. 오빠, 아시죠? 아직 수술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 한 달 동안은 절대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이래~" 쌍둥이를 낳고 고민 끝에 정관수술을 한 지 이제 막 일주일째였다. 하성에게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만, 다시는 지연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꾹 참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볼 때마다 밀려드는 설렘은 통제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이쁜데 내가 어떻게 참아." "못살아 진짜. 아, 저기 봐. 애들 눈 감기 시작
Last Updated: 2026-09-06
Chapter: 외전 1동시에 울리는 쌍둥이의 울음소리. 일란성 쌍둥이 지아와 지수의 앙증맞은 울음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첫눈에 봐도 엄마인 지연을 꼭 빼닮은 외모였다.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에 오뚝한 코까지, 닮지 않은 구석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록 고집스럽고 달콤한 성격은 아빠인 하성을 더 닮았지만 말이다. 지아와 지수 모두 지연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향하면 서러운 듯 옹알이를 터뜨리곤 했다. 그래서 하성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아 쌍둥이를 다독여 재우는 일이 지연에게는 매일 치르는 사랑스러운 전쟁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육아에 합류한 하성 덕분에, 마침내 두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아… 겨우 재웠네." 지연이 지친 기색으로 숨을 내쉬자, 하성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러게. 지연아, 고생했어.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어. 난 애들 조금만 더 보다가 들어갈게." "정말? 고마워." 지연은 피로가 녹아내리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하성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하성의 단단한 품에 살짝 앵겼다 떨어진 지연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하성은 요즘 밤낮없는 수유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지연이 내심 늘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든 아내의 짐을 덜어주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살뜰히 돌보았다. 아빠의 깊은 애정을 알아챘는지, 첫째 지아는 벌써 엄마보다 아빠 품을 더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든 아가들의 이마에 차례로 밤인사를 건넨 하성이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공주님들 잘 자네… 나도 내 진짜 공주님 곁으로 가야겠다." 하성은 이미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든 지연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누웠다. 지연이 잠결에 온기를 느끼고는 자연스럽게 하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성은 지연의 작은 몸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오랫동안 입술을 묻었다. 은은한 샴푸 향과 아기 냄새가 섞인 달콤한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은 채 아늑한 잠에 빠져들었다.. ..
Last Updated: 2026-09-02
Chapter: 45. 마지막화민정은 결국 하성의 합의를 거부한 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피고인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성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씁쓸함과 지독한 허탈함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단단한 각오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번 충격이 민정에게 진정한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하성은 거실 소파에 앉아 지연을 말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지연은 그의 단단한 품 안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고스란히 느끼며, 그간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과 서늘한 공포를 서서히 내려놓았다. "지연아, 그… 기자에게 제보한 사람 말인데." 조심스럽게 울리는 하성의 목소리에 지연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지?" "어… 알고 있었어?"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어. 오빠, 괜찮아?" "너야말로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도 네 어머니인데." "응. 난 괜찮아.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타격도 별로 없어. 그래서 엄마, 고소한 거야?" "…방금 경찰서 다녀오는 길이야." "잘했어. 오빠가 틀린 일 한 거 아니잖아." 지연은 오히려 하성의 등을 다독이며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성은 지연의 티 없이 밝은 표정을 마주하고서야 겨우 비로소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연의 아직 평온한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우리 기쁨이도 놀라지 않고 잘 있지?" "응, 아기가 아주 튼튼한가 봐. 기분 좋은지 아빠 마음을 아는지 얌전해. 아빠가 멋지게 결단 내린거, 아주 대견해데." "푸흡, 무슨 아기가 그걸 알아. 그래도 다행이다. 고마워, 지연아." "고마운 건 나지. 이렇게 끝까지 내 손 잡아준 사람인데." 지연은 장난스럽게 하성의 콧등을 툭 치며 청량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환한 미소는 그간의 모든 풍파를 씻어내리는 정화제 같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의 삶은 그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처럼 마침내 단단하고 평온한 안정을 찾아가고
Last Updated: 2026-08-28
Chapter: 44. 남남으로차 안에서 터져 나온 눈물을 간신히 닦아내며 하성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지연과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빠였다. 눈가에 남은 온기를 지우고 단단한 표정으로 회사 로비에 들어선 하성의 눈빛에는 서늘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사내 회의실로 직원들을 소집한 하성은 단호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돌고 있는 기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입니다. 지연 씨가 가진 아이는 온전히 저와 지연 씨의 아이입니다." 평소 하성의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성품을 잘 알던 직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말을 믿었다. 평소 두 사람의 깊은 애정을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다. 주영이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대표님... 이 비서님은 지금 괜찮은거에요?"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도움이라니요? 저희가 뭐하면 되는데요?" "인터뷰입니다." . . . 잠시 후, 회사 로비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직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저희 대표님과 실장님 사이가 얼마나 각별한데요. 그게 오히려 눈이 부실 정도죠. 맨날 둘이서 깨가 쏟아지는데 딴 남자의 아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다정해서 손을 잡고 출근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그쵸, 과장님?" "그렇고 말고요." 사실 하성과 지연이 사내에서 손을 잡고 출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대표를 지키고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원들이 완벽한 팀워크로 '착한 거짓말'을 보태며 기자의 펜을 이끌었다. 이어서 하성 측의 공식 입장문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두 사람이 이미 혼인신고를 마치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정식 부부라는 사실과 함께, 아이가 오직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라는 점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여론은 삽
Last Updated: 2026-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