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다니는 그늘이 있는 파라솔 테이블을 향해 걸었다.뜨거운 플라스틱 라탄 의자를 끌어내어,엉덩이만 걸터앉았다. 은색 가디건을 접어 더 뜨거운 철제 테이블에 놓았다.가지런히 접은 가디건 위에 팔을 얹고는 늘 하던 대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혼자인 시간을 버티기 위해 하던 행동이었다.편안하게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니의 쉬는 시간이었다.‘딱 15분만 쉬자. 정규직 돼야지.”하늘이 너무 파랗고 예쁘다. 멀리 보이는 산도 아름답다.매일 민호에게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시절은 다 지난 꿈같은 날이 되었다.헤어지기 전 두 달 신혼부부처럼 살았고, 대학 시절 2년 반 연애 동안 지켜왔던 순결은 추억이 되었다.‘둘의 사랑을 나눈 첫날이 지나고 현민호가 투덜거렸지.’“너 때문에 이 좋은 걸 이제서야. 나 억울해.”“그래서?”“횟수로 채우겠어.”다니는 그때의 민호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어느 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민호를 불렀다.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있어서 가만히 문을 밀어 보았다.민호는 양쪽 코에서 흐르는 피를 막으려 콧등을 쥐고 있었다.말로만 듣던 쌍코피였다. 그는 창피해하고 자신도 민망했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행복했다.“쌍코피.”다니는 혼잣말을 하며 등을 움직이며 키득거렸다.핸드폰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켜고 다시 테이블에 엎드린 채 하늘을 보았다.유정우가 불러주었고 자신도 좋아하던 노래를 찾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15분만 선배의 노래를 듣기로 했다.‘정우 선배 마음을 아프게 해서 벌 받은 건가.’‘선배는 엄마 아빠 동생도 있잖아.’‘그래도 난 선배에게 거절도 했잖아. 잠적하지 않았잖아.’‘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는 낫네.’ 정우가 직접 녹음해 준 ‘네게 오는 길’을 듣기 시작했다.‘나의 다니엘’은 현민호가 듣지 말라고 화내고, 약속하라고 울기까지 한 노래였다. 다니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실 좀 미안하긴 했다. 현민호는 여자 일로 다니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다.‘이젠
다니는 돌아서자 본인의 차 옆에 서있는 최강현이 보였다.동시에 현민호도 운전석에서 뛰어나와 다니의 앞을 큰 몸으로 가렸다. 긴 팔로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조심히 밀면서 말했다.“타. 차 문 잠근 건 이따가 정강이 한 번 더 차고.”다니가 버티자, 현민호가 가슴에 다니를 안아 안쪽으로 밀었다.“다니야, 제발 타라. 할 말이 있어.”큰 손으로 가볍게 안고 조수석에 앉히자, 그 짧은 순간에도 다니는 그의 품이 좋아서 고개를 숙였다. 늘 그리웠고 기다렸던 그의 따뜻하고 너른 품이었다.다니는 민호가 안전벨트를 매어 주자 익숙한 그의 정수리에 눈이 젖었다.할 말이 있다는 소리에 혹시나 그가 자신과 아이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옆에 탔다. 그리고 질투하던 그의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나 너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거야. 최강현 얼굴 살짝만 봐.”다니는 민호의 어깨 너머로 잠시 최 본부장을 보았다.민호의 차가 움직여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최강현은 미동도 없이 서서 끝까지 주시하고 있었다.현민호도 백미러를 흘깃거리며 보고 있었다.‘본부장 두 사람이 유부녀를 두고 볼썽사납게. 내가 다니 때문에 별짓을 다해 보는구나.’“강현이 형은 우리 엄마한테 아들이나 마찬가지야. 누구 사귄다고 하면 바로 뒷조사 들어 갈거야.엄마 나이 일흔이야. 변하기는커녕 더 답답해졌어.”“너 대신 내가 미움받을 테니 형 피해 다녀. 우리 사이도 내가 귀찮게 한다고.”‘유부녀 따라 다니는 미친 놈 되는 건가. 이미 그런가.’다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던 알아야 하는 이야기였다.좋은 사람인 것은 같았는데 잠시 보았던 최강현의 모습은 생각과는 달랐다.최강현은 연륜이 있어 보였고, 속을 알 수 없는 표정과 매서운 눈빛을 가졌다. 자신을 보며 생글거리던 남자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문득 어린 현민호가 걱정되었다. 다른 남자들과 부딪히는 것을 가끔 보아 왔지만 그가 걱정되는 적은 없었다.덩치며 힘이며 현민
연어 초밥 도시락을 들고 현민호는 본부장실로 들어갔다.사내 메신저로 다니를 호출하고 세팅을 시작했다. 그는 배가 고파 도시락 한 쪽 끝을 열어 연어초밥 한 개를 꺼내 입에 넣었다.식욕이 없어져 점심에도 단백질 음료만 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오호. 맛있네.”연어 초밥을 먹느라 오물오물 씹어대는 귀여운 긴 머리 소녀가 떠올라 가슴이 저릿하게 아렸다.정강이까지 걷어차였으니 서로 형식적인 사과라도 하자고 할 참이었다.20분쯤 전에 호출했는데 다니는 나타나지를 않는다.현민호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찾아보러 일어났다.디자인개발 부서를 둘러보던 중 지갑을 들고 일어서는 김 주임이 눈에 들어왔다.“점심은 신다니씨와 먹습니까?”“인사부에 불려 가서 면담하면서 먹는다는데요. 정규직 발령 때문인 것 같습니다.”“인사부요? 아, 식사 맛있게 하세요.” 현민호는 다니의 전화번호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가던 길을 돌아섰다.“우리 직원 데려갈까 봐 그러는데 전화 좀 해주시겠습니까. 어디 있는지.”“아, 그럴 수 있겠네요. 문자 할게요. 면담 중일 수 있으니.”“아니, 전화하세요. 내가 시켰다고.”“뭐? 스페인 식당?”“어디냐고 물어봐요.”“어디? 근처인데 이름 몰라?”‘아. 어디인지 알았다.’“고마워요. 김 주임.”현 본부장은 바쁘게 돌아서 자신의 사무실로 갔다.근처 스페인 식당은 팔라시오 밖에 없었다. 차 키를 쥐고 바쁘게 움직였다.….다니가 전화를 끊자, 최강현이 다니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직원들하고 잘 지내는 것도 좋네요.”“스페인 음식 좋아해요?”“잘 몰라요.”다니가 최강현의 시선을 피하는 듯 눈을 내리고 미소를 지었다. 긴 눈썹에 옅은 화장을 했는데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얼굴이 관능적으로 보였다.“그럼 피자 시키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시킬까요?”“네.”데스크 일 할 때 보여 주던 접대용 미소인 줄은 알았다. 하지만 환하면서도 쓸쓸한 미소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다.“아들은
“요즘은 동안이 여자들 목표라더니. 하하.”이동민이 한마디를 하면서 신다니를 보며 웃었다. ‘그동안 치워왔던 치한이 다시 등장한 건가.’‘이동민, 너 두고 본다.’현에단 본부장은 순간 굳어버린 표정으로 이동민을 쳐다보았다.싸늘해진 분위기를 눈치챘지만, 이동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 앉았다. ‘본부장, 너도 신다니한테 관심있구나. 가리는 거 없는 새끼.’현 본부장은 다니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 직접 다린 옷을 입으며 그녀가 자신을 욕심 내주길 바랐다.‘네가 알던 네 남자를 가지라고.’다니는 자주 그의 가슴이나 배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었다. 이미 마무리로 들어간 시즌 디자인들이었다. 방향을 틀기에는 늦은 시기였다. 회의는 현 본부장이 직원들 업무를 보고받는 수준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확인하며 정확한 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했다. 상사를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보았던 직원들은 적잖이 당황하는 분위기였다.여러 디자인을 하나씩 살피며 패턴사의 의견까지 확인하던 현에단은 디자인 중 하나를 골랐다. “패턴사와 상의해서 디자인 라펠 폭을 줄이고 허리선 변형을 주어 보면 어떨까요? 이 디자인을 기본으로 두 종류의 젊은 감각의 슈트를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정장이지만, 격식 있는 장소에서도 가벼운 모임에서도 입을 수 있는 슈트 기대하겠습니다.”“네, 할 수 있습니다.”김 주임이 소매와 색상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며 현에단에게 설명했다.“좋습니다.”상사로서의 현에단 본부장은 현민호와 다른 사람 같았다. 일단 무표정하게 업무에 대해 듣고 정확하게 질문했다.‘늘 운동해서일까.‘ 그는 상대가 몇 살이든 기 죽지 않았다.‘음, 그래. 넌 지시하는 쪽이 맞아. 나한테 그렇게 져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구나.’다니는 열심히 일하는 민호를 보니 원하지 않는 미소가 지어졌다. [셔츠 주문 건으로 총괄기획부로 와 주세요]회의 중이지만 다니는 문자를 이태하에게 보여주고 조용히 총괄기획부로 갔다.현에단 본부장
다니는 단골인 세라 헤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원장님.”다니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익숙하게 빈 의자를 찾아 앉으며 다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커트해 주세요. 짧게.”“어깨 닿게?”“아뇨 커트해 주세요. 진짜로.”“말해봐. 왜 울어.”다니에게 휴지를 뽑아 주며 초로의 원장은 걱정스럽게 물었다.“제가 이건 친구들한테도 창피해서 말 못 해요.”휴지를 받아 든 다니가 고개를 숙였다.“그런 건 나한테 해야지. 미용실 삼십 년 상담력이 그냥 쌓인 게 아니지. 근데 커트 말고 짧은 단발하지.그 길이도 나중에 많이 아쉬울 수도 있어.”“저 머리 금방 자라요. 6년을 수절해서 야한 생각도 안 하는데…엉엉.”‘꺽꺽’옆자리 손님도 남자 미용사도 이야기를 들으러 숨을 죽였다. “우리가 들어줄게. 자 말해 봐.”세 사람의 시선이 눈물을 닦는 다니에게 쏠렸다.“남자 친구가 군대 갈 때 임신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23살이었어요.사정상 2년은 연락도 끊고 다시 만나기로 했고 전 이사도 안 했고 현관 비밀번호도 안 바꾸고…”꺼이꺼이 우는 모습에 다들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아 근데 뭐.”다음을 궁금해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아이는 다섯 살이고 혼자 키우느라… 흐으흑”“그런데 아이 아빠가 나타났어요.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고 내가 있는 곳에 일하러 왔어요. 수고했다 사랑했다 그럴 줄 알았는데 회사일 힘들면 말하라고…”“뭐 그런 나쁜 놈이 다 있어..”“아가씨는 아이 아빠니까 미련이 남는 거고, 그 남자는 아이가 중한지 뭔지 모르니까 관심없는 거고. 근데 아가씨처럼 예쁜데 마다해?”“혹시 재벌 뭐 이런거야?”원장의 말에 다니는 깜짝 놀랐다.“아뇨, 그냥 좀 부자예요.”“아직 총각인 거지?”“네.”“혹시 애인있으면 잘 벼르고 있다가 결혼 할 때 즈음 터트려.”“그때 친자소송하고 양육비 받고.”“군대가서 헤어지는 거 많아. 양육비 받을 수 있어 못 받은 거 까지 .”“그럼 한 분씩 다시 말
다니는 마른 침을 삼켰다.변함없이 민호는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문 앞에 서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심호흡했다.현에단 본부장 사무실 앞에서 다니가 떨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임 주임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다가왔다.“떨리지? 나도 그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떨려. 하하. 긴장하지 마. 그래봐야 연하지. 안 그래?”“네, 그 건 그런데 동갑이에요.”다니가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이 더 나이 들어 보이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쾅쾅’임 주임이 장난으로 사무실 문을 세게 두드렸다.긴장했던 다니는 당황해 임 주임을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들어와요.”그의 그리운 저음의 목소리가 문 저편에서 들려왔다.다니가 들어서자, 문 가까이 서 있는 민호가 보였다.그는 사무실 중앙에 보이는 흰 테이블 앞에 그녀를 세워 두었다.그러고는 손에 힘을 주어 문을 조심스레 소리 나지 않게 잠갔다.창의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었다.다니는 침을 삼키며 자신이 알던 민호라면, 사람들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은 할 것 같아 뒷수습을 고민하고 있었다.‘어떻게 진정시키지…’현민호가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손이 닿자 자기 품으로 잡아당겨 부드럽게 안았다.그는 다니의 어깨에 고개를 숙여 기대었다. 깊은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다.“잠시만… 움직이지 마.”다니는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만졌다.민호가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다니는 그의 반응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이제 그가 돌아왔다고 느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민호는 여전히 어깨에 기댄 채 다니를 놓아 주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둘의 숨소리만 작은 공간에 퍼졌다.다니는 어느새 기쁜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그의 거친 숨과 몸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민호는 천천히 다니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팔길이만큼 밀어냈다. 그러고는 블라인드를 걷고 다시 심호흡했다. 다니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며, 엷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6년은 긴 세월이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