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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Author: 루에나
“집착이 아니야.”

중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은 누군가는 해야만 해.”

“난 내가 한 약속은, 지킬 수 있다는 걸 그들에게 증명할 거야.”

“그리고?”

레미가 되물었다.

“그 약속 때문에 네 가정을 다 망치잖아.”

중현의 눈빛이 조금씩 짙어졌다.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증명해 보일 필요 없어.”

“애초에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네가 약속을 지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어.”

레미는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융통성 없고, 앞뒤가 꽉 막힌 바보라고 생각할 뿐이야.”

“나도 이번 일은,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평소에 말을 아끼던 시후도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네가 우선순위로 둬야 할 건, 네 가족이야.”

중현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렇게 설교하고 싶으면, 직업을 바꾸는 게 어때?”

레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중현은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들고 한 번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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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7화

    “설령 회사에서 우리 쪽 자리를 내놨다고 지분까지 내놓은 건 아니잖아.”진무천은 예전보다 훨씬 걱정이 많아졌다. 여씨 집안에서 온갖 방법을 써도 여태진의 형량을 줄이지 못한 뒤부터는 더 조심스러워졌다.도엽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회사 자리 몇 개와 지분을 비교하면 회사 내에서 실질적인 힘은 지분에 있었다.중현이 마음만 먹으면 대표 자리는 언제든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조금 더 보자. 어차피 강솔이 과제를 끝내려면 한 달은 남았잖아.”진무천은 신중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도엽도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결론이 난 뒤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더 이어 가지 않았다.진무천은 며칠 전 들은 일이 떠올라 무심하게 물었다.“네 형은 요즘 뭐 하고 다니냐?”“평소랑 비슷합니다. 왜 그러십니까?”도엽은 형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챙기지는 않았다.“얼마 전에 K시에 다녀왔다고 했지?”“그랬던 것 같습니다.”도엽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보름쯤 전, 태휘가 개인적인 일로 H시를 떠나 K시에 갔다는 얘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무슨 일 있습니까?”“아니야.”진무천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태휘가 굳이 K시까지 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진행 중인 협업도, 프로젝트도,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직접 둘러볼 이유도 없었다.게다가 태휘는 그 일 때문에 업무 일정까지 뒤로 미뤘다.태휘는 오랫동안 일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맡은 일을 소홀히 한 적도 없었다.그런 태휘가 일을 제쳐 두고 달려갈 만큼 중요한 일이 대체 무엇이었을까?“형이 K시에 간 데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진무천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도엽은 몇 마디만으로 의중을 알아챘다.“그래.”진무천은 부정하지 않았다.“알아볼까요?”진무천은 뜻밖이라는 듯 도엽을 바라봤다.“네가 알아보겠다고?”도엽이 태휘를 얼마나 형으로 존중하는지는 진무천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경쟁해도 태휘는 여전히 도엽에게 형이었다.그런데 지금 먼저 알아보겠다고 나설 줄은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6화

    중현이 지안의 양육권을 원한다고 하자, 도엽은 곧바로 더 이야기할 게 없다며 선을 그었다.거기에 강솔의 집에 머무는 내내 어딘가 불편해 보였던 진환식의 태도까지.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중현이 떠오르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도엽은 진환식이 유산을 강정숙과 강솔에게 남긴다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하지만... 대체 얼마나 큰 이익이 걸려 있기에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걸까?“진도엽이랑 무슨 얘기 했어?”레미는 중현의 빈틈없는 사고방식에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내가 여기 온 이유가 지안이 양육권 때문인 척했지.”“축하한다. 솔이한테 제대로 큰 골칫거리 하나 만들어 줬네.”“진도엽 쪽이랑 솔이 사이에 걸린 이해관계가 JX그룹 지분 20%야. 솔이가 그 집안에서 내건 평가 과제만 통과하면 그 지분을 받을 수 있어.”20%... 그 정도면 지분을 손에 넣는 즉시 JX그룹의 대주주가 되면서 의결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단독으로 의사 결정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어도 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전에는 네가 솔이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 진도엽 쪽에서도 뒤에서 손을 쓰는 걸 꺼렸어.”강솔의 안전과 직결된 일이었다. 레미는 아는 내용을 숨기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네가 솔이랑 적대 관계라고 생각하잖아. 이제 거리낄 이유가 없어진 거지.”중현은 생각에 잠겼다.“판을 너무 크게 벌였지?”레미가 빈정거렸다.“그 정도는 아니야.”레미가 혀를 끌끌 찼다. 여기까지 와서도 끝까지 센 척이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솔이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니, 왜 진도엽 앞에서는 숨겼어?”레미가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다.“남이잖아.”중현은 짧게 대답했다.레미는 잠깐 생각했다.‘그게 무슨 차이지?’“이 일은 내가 정리할게.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뭔데?”“강 비서랑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 좀 해줘. 지금 내 옆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무슨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이 필요했다.강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5화

    도엽은 중현이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 대표.”중현이 눈을 들었다. 메시지를 다 보낸 핸드폰 화면은 꺼진 상태였다.“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물어도 될까요?”도엽은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중현을 살폈다.“이틀 동안 저한테 강솔 위치를 계속 알려 달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기억을 잃기 전과 조금 달라진 부분은 있어도 중현은 여전히 속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었다.도엽은 며칠 전 중현을 만났을 때 기억상실이 사실인지, 강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려 했다. 그런데 제대로 확인한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중현의 심부름만 떠맡게 되었다.중현이 되물었다.“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제가 알았으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겠죠.”중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봤다.도엽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오빠가 여동생을 걱정하는 듯한 정을 조금 섞었다.“꼭 목적을 캐묻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래도 솔이는 제 동생이니까, 하 대표가 강솔에게 좋은 사람인지 해가 되는 사람인지는 알아야죠.”“이제 와서 그걸 묻는 건 좀 늦지 않았어요?”중현은 말끝을 살짝 올리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투는 가벼웠지만 자연스럽게 사람을 압박하는 기운이 있었다.도엽은 감정을 눌렀다.상대가 중현이 아니었다면 벌써 차에서 내리라고 했을 것이다.사람을 마음대로 부려 먹고도 저렇게 당당하다니, 맞을까 봐 겁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강솔의 동선을 파악하는 건 제 사람들입니다. 하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든 솔이의 안전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도엽이 말했다.“지금이라도 묻는 건 제 진심을 보여 드리려는 겁니다.”중현의 시선은 여전히 도엽에게 있었다.“그래요?”가볍게 떨어진 한마디인데도 도엽의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가 놓인 것처럼 긴장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도엽이 말을 고르는 중에 중현이 먼저 도엽의 속을 꿰뚫었다. 체면을 봐줄 생각도 없었다.“강솔을 진짜 동생으로 생각하든 다른 감정이 있든 저랑 상관없어요.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4화

    강솔이 아이를 달래려 입을 열려던 때였다.오히려 지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불렀다.“엄마.”“응?”“지금 아빠는 원하는 걸 얻으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 같아.”지안은 꽤 진지했다.“엄마가 더 조심해. 또 속으면 안 돼.”강솔은 웃음이 나왔다.“알았어.”“특히 약속 같은 거. 지금 아빠는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아.”강솔은 알겠다고 답했다.하지만 마음에는 그 말이 작게 파문을 만들었다.어떤 면에서는 약속을 무조건 백 퍼센트 지켜야 한다는 고집에서 벗어난 게 좋은 변화일 수도 있었다. 다만 이 변화는 중현이 스스로 깨달아서 생긴 게 아니라 기억을 잃은 결과였다.기억이 돌아오면 예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이어진 주말 이틀 동안 강솔은 지안을 데리고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즐겁게 놀았지만 계속 ‘우연히’ 중현과 마주쳤다. 바닷가에서도, 쇼핑몰에서도, 대형 장난감 매장에서도 중현이 나타났다.강솔과 지안이 가는 곳마다 빠짐없이 중현이 있었다.다만 중현은 일부러 거리를 유지했다. 마주치면 짧게 인사하는 것 말고는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강솔의 시야 안에 오래 머무는 일조차 없었다.강솔이 화를 낼 틈도 생기기 전에 중현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다.그날도 강솔이 지안과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중현이 다시 나타났다.두 사람을 한번 바라본 뒤 자연스럽게 말했다.“진짜 자주 보네. 또 만났어.”강솔과 지안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같이 밥 먹을래?”중현은 예의 바른 태도를 하고 말투도 얌전했다.“이 정도면 우리 인연 같은데.”“싫어.”지안이 먼저 거절했다.“나랑 엄마는 이미 약속 있어.”중현은 낮은 목소리로 아쉬운 듯 웃었다.“그건 좀 아쉽네.”지안은 새침하게 콧소리를 내더니 작은 손으로 강솔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차문이 닫히며 중현의 시선도 차단됐다.곧 신동이 차를 출발시켰다. 어느 정도 멀어진 뒤에야 입을 열었다.“전남편분은 우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3화

    “노력 중이지.”중현이 입에 올리는 말에는 진실이 거의 없었다.도현이 낮게 웃었다.[노력하다가 너 자신까지 강솔한테 갖다 바치려고?]중현은 숨길 생각 없이 인정했다.“그럴 생각도 있어.”도현은 뭐라고 받아쳐야 할지 잠깐 막막해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현은 강솔을 향한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겁내지도 않았고, 가족의 반응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젊을 때라면 반항심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부모님 화내는 건 안 무서워?]도현이 물었다.도현은 직접 강솔을 나쁘게 몰아간 적은 없었다.하지만 부모가 중현에게 어떤 이야기를 계속 주입했는지는 알고 있었다.“화내시면 달래 드리면 되지.”중현은 자연스럽게 말했다.“화내실까 봐 옳지 않은 일을 할 수는 없잖아.”시후와 레미는 예전에 중현과 부모의 사이가 몹시 안 좋았다고 했다. 그래도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기준으로 부모를 대할 생각이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변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옳은 일이었으면 예전에 왜 이혼했는데?]도현은 평소처럼 아픈 데를 느긋하게 찔렀다.“몰라. 기억도 안 나.”[그런데도 너 자신까지 강솔한테 갖다 바칠 거야?]“좋아하니까.”중현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언제나 분명했다.“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어. 지금 내 마음이 강솔한테 간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도현은 핸드폰을 쥔 손을 잠깐 멈췄다.통화하는 양쪽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도현의 눈이 조금 어두워졌다.[만약 네가 지면?]“내가 선택해서 건 거면 지는 것도 내가 받아들여야지.”중현이 답했다.“애도 아닌데 졌다고 떼를 부릴 수는 없잖아.”도현은 자신이라면 중현처럼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자신이 건 선택에서 진다면 도현은 절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판 자체를 뒤엎고 단아까지 끌어내릴 것이다.이미 시작한 이상 단아만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92화

    어떤 방식이든 언젠가는 갈라설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지금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하씨 집안 맏며느리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도 알지?”도현은 단아의 눈을 보며 한마디씩 분명히 말했다.“예전에는 내 처지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잖아.”단아는 마음이 흔들리는 걸 감추려고 아무 이유나 끌어왔다.“그런데 갑자기 왜...”“지금 하씨 집안 모든 일은 내가 결정해.”힘이 없을 때는 주변과 계산하며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도현은 지금 필요한 힘을 손에 쥐고 있었다. 단아가 원한다고 했으니 도현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중현과 강솔의 관계가 부러웠던 걸 수도 있다. 혹은 도현이 처음으로 속을 조금 열고 단아가 원한다던 정식 아내 자리와 안정감을 주면, 단아가 계속 떠나려던 마음을 조금 거둘지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부모님은?”단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내가 처리해.”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너는 전처럼 내 옆에 있으면 돼.”단아는 말이 없었다.“마음에 안 들어?”단아는 용기를 내어 한 가지를 꺼냈다.“예전에는 내 핸드폰까지 감시하지 않았어.”한번 걸어 보기로 했다.성공하면 도현이 더는 핸드폰을 감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훨씬 안전하게 증거를 모을 수 있고 강솔과도 연락할 수 있다. 실패해도 최악은 도현에게 밤새 시달리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도현은 아무 말 없이 단아를 바라봤다.원하는 답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자 단아가 먼저 말을 바꿨다.“그냥 해 본 말이야. 이제 늦었잖아. 임신 준비하려면 씻고 자야지.”“임단아.”도현이 불렀다.“응?”단아가 고개를 들었다. 길고 부드러운 눈매에는 차분함이 배어 있었고 밝은색 옷 때문에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온화해 보였다.도현이 좋아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단아였다.얌전하고, 말을 잘 듣고, 부드러운 여자.“내가 너 믿어도 돼?”도현이 물었다.“무슨 뜻이야?”도현은 단아를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기고 몸을 숙여 거리를 좁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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