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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eur: 루에나
방 안을 둘러보던 지안의 시선이, 강솔이 손에 쥐고 있는 캐리어에 멈췄다.

작고 맑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엄마, 캐리어는 왜 들고 있어요?”

강솔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순간적으로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빠 출장 짐이야.”

중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지안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시선을 맞췄다.

“아빠, 며칠 출장을 다녀올 거야. 그동안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알겠지?”

지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요.”

“착하네.”

중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저 아줌마는 누구예요?”

지안의 시선이 아연에게 옮겨갔다.

“아빠 비서야.”

중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내뱉었다.

“아빠랑 같이 출장 가야 하거든.”

강솔의 손끝이 캐리어 손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얼굴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중현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강솔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여보, 다녀올게. 보고 싶으면 전화해.”

강솔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

“응.”

“착하지.”

중현은 아내의 귀밑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손끝으로 귀를 훑었다.

귓불을 스칠 때 손길이 잠시 멈칫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어서 가. 비행기 늦겠다.”

강솔은 차갑게 말했다.

더 이상 이 남자의 손길이 닿는 게 역겨웠다.

강솔의 눈빛을 본 중현은, 일부러 자극하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아내의 입술을 스쳤다가 곧바로 떨어졌다.

거부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강솔이 놀라서 올려다봤을 때, 남편은 이미 아연과 함께 집을 나서고 있었다.

손엔 여전히 그녀의 캐리어를 든 채.

“엄마.”

문이 닫히자마자, 지안이 조용히 불렀다.

강솔은 억눌린 감정을 억지로 진정하면서, 최대한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왜, 지안아?”

지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른 말로 바꿨다.

“점심시간 됐어요. 밥 먹으러 가요.”

“그래.”

강솔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

식사 내내, 강솔의 머릿속은 아까 그 장면들로 가득했다.

‘지안 앞에서 거짓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다니...’

‘정말 뻔뻔하기도 하지...’

‘바람난 주제에, 무슨 스킨십이야?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생각이 꼬리를 물던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강현이 가져간 캐리어 안엔 자신의 신분증과 여권이 들어 있었다.

‘젠장, 설마 그걸 일부러 가져간 거 아니겠지?’

강솔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캐리어 돌려줘.]

문자를 보냈다.

중현은 문자를 확인했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난 뒤, 중현의 폰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강솔의 독촉 문자인 줄 알았는데, 지안에게서 온 음성 메시지였다.

[아빠, 오늘 그 아줌마 아빠 비서 아니죠?]

중현은 잠시 멈칫했다.

뜻밖이었다.

‘이 녀석이 눈치챘나...’

답장을 하려다 멈췄다.

출장을 간다고 했으니, 지금은 비행기 안이라는 설정이었다.

‘내가 지금 아들에게 답장하면 안 되지.’

지안은 방 안에서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아빠가 답장하면... 거짓말이었단 뜻이야.’

그는 조용히 기다렸다.

몇 시간 후, 강솔은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자기야, 나 샤워 끝났어]

아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먼저 들어가 있어. 통화 좀 할게.]

중현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온 세상 다정함이 담긴 것처럼.

그 다정한 목소리가, 강솔의 귓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그 목소리.

하지만, 지금...

강솔의 마음은 철저히 짓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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