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홍일은 신동을 위아래로 훑어봤다.신동은 태연했다.“너한테 내가 흑심 품을 만한 매력이 뭐가 있어?”“내가 너보다 잘생겼지, 몸도 좋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전화 한 통에 받은 충격이 크긴 했나 보네.”홍일은 바닥에 이불과 베개를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누우며 말했다.“아니면 기본적인 자기 객관화까지 사라졌을 리가 없지.”신동은 홍일을 빤히 바라봤다.‘예전에는 이 자식 입이 이렇게 독한 줄 몰랐는데.’“안 자?”홍일은 신동이 서 있기만 하자 물었다.신동이 홍일 쪽으로 걸어갔다.홍일이 의아한 눈으로 보는 가운데 이불을 잡아당기며 툭 내뱉었다.“네 방에 가서 자.”“난 여기서 잘 건데.”“너무 감동할 필요는 없어.”“그럼 편하게 자.”신동은 이불을 다시 홍일에게 덮어줬다.“난 간다.”말을 마친 신동은 자기 이불과 베개까지 챙겨 들었다.홍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상황을 이해했을 때는 이미 방문이 닫힌 뒤였다.그날 밤 두 사람은 방을 바꿔 썼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홍일이 따라갔지만, 신동은 이미 방문을 잠그고 잠자리에 든 뒤였다.강솔은 두 사람의 소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홍일은 온갖 걱정을 다 했지만 강솔은 오히려 신동을 믿고 기다렸다. 신동은 어떤 일을 만나도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마음 깊은 곳에 남은 감정만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었다.신동이 직접 정리해야 했다.강솔이 해 줄 수 있는 건 무슨 일이 생기든 신동의 편에 서겠다고 알려 주는 것뿐이었다. 마지막 선택은 신동에게 맡겨도 충분했다....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강솔 일행은 아침을 먹은 뒤 JX그룹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신동은 평소처럼 강솔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 JX그룹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까지 차근차근 짚어 줬다.“아가씨 외삼촌들 성격이면 분명 사람을 시켜서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 겁니다.”“괜찮아. 대응할 수 있어.”강솔은 가기로 한 때부터 이미 대비를 마친 상태였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홍일이 적절한 순간에 입을 열었다. 늘 그렇듯 표정 변화는 거의 없었다.“그래도 이 바보야, 지금은 혼자가 아니잖아.”이미 마음을 추스른 신동이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왜 갑자기 욕을 하고 그래?”홍일이 강솔을 바라봤다.“아가씨, 제가 욕했습니까?”“어떤 경우에는 욕처럼 들릴 수도 있지.”홍일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잔뜩 떠오른 듯했다.‘또 내가 말실수라도 했어?’“그 ‘바보’란 말... 욕한 거 아니야.”정작 중요한 때에는 홍일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었다.“내 말은, 친구야, 네 옆에는 나도 있고 아가씨도 있다는 뜻이야.”“응.”강솔도 맞장구쳤다.“돈이 필요하면 아가씨가 해결해 줄 거고, 싸워야 하면 내가 나가.”홍일은 한마디 한마디 또렷하게 말했다.그 말을 듣는 신동의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신동은 눈앞의 강솔과 홍일을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걱정스러운 눈으로 신동을 보고 있었다. 다만 강솔은 신동이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었고, 홍일은 언제든 기댈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정말 큰일은 아닙니다.”신동이 입을 열었다.“예상도 못 한 사람한테 갑자기 전화가 와서 좀 놀랐던 것뿐이에요.”홍일은 전혀 믿지 않았다.‘그저 당황한 정도로 사람이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일 리가 있나?’“아가씨, 제가 정말 도움이 필요해지면 절대 사양 안 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신동이 말을 이었다.“그때 가서 홍일이 멀리 도망가지만 않으면 되죠.”“내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이야.”“아니라고 할 수 있어?”홍일이 강솔을 바라봤다.“아가씨, 얘 좀 보세요.”강솔은 신동의 상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걸 확인한 뒤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는 네 편이야.”반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강솔의 경호원이었다.수많은 일을 함께 겪은 지금은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었다.강솔이 위험에 빠졌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
진무천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아버지 진환식이 그 집에 오래 머물수록 강정숙에 대한 미안함은 더 커질 것이다.그러다 죽음을 앞두기라도 하면 유언장에 강정숙과 강솔 몫으로 막대한 재산을 남길지도 모른다.그 생각만으로도 진무천의 속은 답답해졌다.진환식도 두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인생의 절반을 무능한 두 아들에게 기대하며 살았으니, 남은 세월은 딸과 외손녀에게 갚으며 살고 싶었다.게다가 이곳에서 지내는 생활이 즐거웠다.정숙이 매일 많은 말을 걸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예전처럼 살갑게 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딸이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상 위에 음식이 하나둘 차려지자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평소와 다르지 않게 강정숙은 진환식이 좋아하는 메뉴에는 파를 넣지 말아 달라고 집안일을 돕는 분에게 미리 당부했다.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진환식이 문득 입을 열었다.“솔아.”강솔이 고개를 들었다.“네.”강정숙과, 아직도 뻔뻔하게 눌러앉아 있는 여윤재까지 동시에 시선을 보냈다.“전에 외삼촌들이랑 밥 먹을 때 JX그룹에 가서 업무를 좀 익혀 보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안 갔어?”“내일 가요. 태휘 오빠랑 미팅 시간도 잡아 놨어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조금 미뤄졌어요.”“그래, 잘했어.”진환식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대화를 듣고 있던 신동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으나 결국 삼켰다.그 미묘한 변화는 강솔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저녁을 먹은 뒤 정원을 걷다가 강솔이 물었다.“무슨 고민 있어?”“없습니다. 왜 갑자기 그러십니까?”“아가씨, 얘 고민 있어요.”홍일이 바로 끼어들었다.“언제?”“저녁 먹기 전에 너 전화 한 통 받고 나서 계속 조용했잖아.”홍일은 사소한 변화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평소 같으면 밥을 세 그릇은 먹을 사람이 오늘은 몇 젓가락도 안 먹고.”
“설령 회사에서 우리 쪽 자리를 내놨다고 지분까지 내놓은 건 아니잖아.”진무천은 예전보다 훨씬 걱정이 많아졌다. 여씨 집안에서 온갖 방법을 써도 여태진의 형량을 줄이지 못한 뒤부터는 더 조심스러워졌다.도엽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회사 자리 몇 개와 지분을 비교하면 회사 내에서 실질적인 힘은 지분에 있었다.중현이 마음만 먹으면 대표 자리는 언제든 다시 가져올 수 있었다.“조금 더 보자. 어차피 강솔이 과제를 끝내려면 한 달은 남았잖아.”진무천은 신중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도엽도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결론이 난 뒤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더 이어 가지 않았다.진무천은 며칠 전 들은 일이 떠올라 무심하게 물었다.“네 형은 요즘 뭐 하고 다니냐?”“평소랑 비슷합니다. 왜 그러십니까?”도엽은 형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챙기지는 않았다.“얼마 전에 K시에 다녀왔다고 했지?”“그랬던 것 같습니다.”도엽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보름쯤 전, 태휘가 개인적인 일로 H시를 떠나 K시에 갔다는 얘기를 들은 게 전부였다.“무슨 일 있습니까?”“아니야.”진무천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태휘가 굳이 K시까지 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진행 중인 협업도, 프로젝트도,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직접 둘러볼 이유도 없었다.게다가 태휘는 그 일 때문에 업무 일정까지 뒤로 미뤘다.태휘는 오랫동안 일만큼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맡은 일을 소홀히 한 적도 없었다.그런 태휘가 일을 제쳐 두고 달려갈 만큼 중요한 일이 대체 무엇이었을까?“형이 K시에 간 데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진무천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도엽은 몇 마디만으로 의중을 알아챘다.“그래.”진무천은 부정하지 않았다.“알아볼까요?”진무천은 뜻밖이라는 듯 도엽을 바라봤다.“네가 알아보겠다고?”도엽이 태휘를 얼마나 형으로 존중하는지는 진무천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경쟁해도 태휘는 여전히 도엽에게 형이었다.그런데 지금 먼저 알아보겠다고 나설 줄은
중현이 지안의 양육권을 원한다고 하자, 도엽은 곧바로 더 이야기할 게 없다며 선을 그었다.거기에 강솔의 집에 머무는 내내 어딘가 불편해 보였던 진환식의 태도까지.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중현이 떠오르는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도엽은 진환식이 유산을 강정숙과 강솔에게 남긴다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줄어드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하지만... 대체 얼마나 큰 이익이 걸려 있기에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걸까?“진도엽이랑 무슨 얘기 했어?”레미는 중현의 빈틈없는 사고방식에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내가 여기 온 이유가 지안이 양육권 때문인 척했지.”“축하한다. 솔이한테 제대로 큰 골칫거리 하나 만들어 줬네.”“진도엽 쪽이랑 솔이 사이에 걸린 이해관계가 JX그룹 지분 20%야. 솔이가 그 집안에서 내건 평가 과제만 통과하면 그 지분을 받을 수 있어.”20%... 그 정도면 지분을 손에 넣는 즉시 JX그룹의 대주주가 되면서 의결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단독으로 의사 결정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어도 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전에는 네가 솔이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 진도엽 쪽에서도 뒤에서 손을 쓰는 걸 꺼렸어.”강솔의 안전과 직결된 일이었다. 레미는 아는 내용을 숨기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네가 솔이랑 적대 관계라고 생각하잖아. 이제 거리낄 이유가 없어진 거지.”중현은 생각에 잠겼다.“판을 너무 크게 벌였지?”레미가 빈정거렸다.“그 정도는 아니야.”레미가 혀를 끌끌 찼다. 여기까지 와서도 끝까지 센 척이었다.“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솔이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니, 왜 진도엽 앞에서는 숨겼어?”레미가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다.“남이잖아.”중현은 짧게 대답했다.레미는 잠깐 생각했다.‘그게 무슨 차이지?’“이 일은 내가 정리할게.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뭔데?”“강 비서랑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 좀 해줘. 지금 내 옆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무슨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이 필요했다.강
도엽은 중현이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 대표.”중현이 눈을 들었다. 메시지를 다 보낸 핸드폰 화면은 꺼진 상태였다.“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물어도 될까요?”도엽은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중현을 살폈다.“이틀 동안 저한테 강솔 위치를 계속 알려 달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뭡니까?”기억을 잃기 전과 조금 달라진 부분은 있어도 중현은 여전히 속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었다.도엽은 며칠 전 중현을 만났을 때 기억상실이 사실인지, 강솔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려 했다. 그런데 제대로 확인한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중현의 심부름만 떠맡게 되었다.중현이 되물었다.“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제가 알았으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겠죠.”중현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봤다.도엽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말을 꺼냈다. 이번에는 오빠가 여동생을 걱정하는 듯한 정을 조금 섞었다.“꼭 목적을 캐묻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래도 솔이는 제 동생이니까, 하 대표가 강솔에게 좋은 사람인지 해가 되는 사람인지는 알아야죠.”“이제 와서 그걸 묻는 건 좀 늦지 않았어요?”중현은 말끝을 살짝 올리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투는 가벼웠지만 자연스럽게 사람을 압박하는 기운이 있었다.도엽은 감정을 눌렀다.상대가 중현이 아니었다면 벌써 차에서 내리라고 했을 것이다.사람을 마음대로 부려 먹고도 저렇게 당당하다니, 맞을까 봐 겁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강솔의 동선을 파악하는 건 제 사람들입니다. 하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든 솔이의 안전은 제가 지킬 수 있어요.”도엽이 말했다.“지금이라도 묻는 건 제 진심을 보여 드리려는 겁니다.”중현의 시선은 여전히 도엽에게 있었다.“그래요?”가볍게 떨어진 한마디인데도 도엽의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가 놓인 것처럼 긴장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도엽이 말을 고르는 중에 중현이 먼저 도엽의 속을 꿰뚫었다. 체면을 봐줄 생각도 없었다.“강솔을 진짜 동생으로 생각하든 다른 감정이 있든 저랑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