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희는 더욱 어지러워졌다. '황자마마, 황자마마께서는 참으로 잘생기셨어.'그가 손을 내밀어 다가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지만, 그의 손은 멈추지 않고 뻗어와 머리 장식 위에서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그는 환히 웃으며, 달빛처럼 맑고 빛나는 얼굴로 손에 든 꽃잎을 들어 보였다. '낙화로군요.'심연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 그의 행동은 너무나도 가까웠다.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 초상화를 가져가신 분이 황자마마이십니까?'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네가 한번 맞혀 보아라.''소녀는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정말 황자마마이십니까?' 그녀는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물었다.그러나 그의 미소는 마치 몽환의 향처럼 번져가며, 단정한 얼굴이 점차 희미해졌다.'이천…'심연희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떴다.곁방에서 하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이어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문이 열렸다.“아씨, 괜찮으십니까?”심연희가 등불을 들고 들어와 근심 어린 눈길로 물었다.심연희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정녕 자신이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왜 자꾸만 그를 꿈에서 보는 것일까.“괜찮습니다.”심연희가 짧게 대답했다.심연희는 등불을 내려놓고 찻물을 따라 왔다. “아씨, 차라도 좀 드시겠습니까?”심연희는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들이켰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이천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녀는 잔을 심연희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지금 시각이 몇 시쯤 되었느냐?”심연희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마도 축시쯤 된 것 같습니다.”아직 겨우 축시라니.“너는 가서 쉬거라.”심연희가 말했다.“예, 아씨.”심연희는 등불을 들고 나가면서도, 세 걸음에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심연희를 확인하다가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자 비로소 안심하고 물러났다.심연희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가슴속 어딘가가 따뜻하게 달아올라, 마치 어린 사슴
“아닙니다, 아씨. 소인은 다만 아씨께서 주인어른을 마음에 두고 계시니… 크나큰 정성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뿐입니다. 아씨께서 이토록 총명하시니, 어쩌면 황자마마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심연희가 퉤 하고 소리를 내며 얼굴을 돌렸다. 이 말은 곧 자신이 덕행이 부족하여, 남 앞에서 주책없이 황자를 유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아닌가?“무슨 인연 타령을 하는 거냐. 황자마마를 두 번이나 뵈었지만, 그분께서 나를 다르게 보신 적은 없었다.”초구가 입을 달싹였으나, 오늘 일을 제외하면 딱히 다른 사례를 찾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굴린 초구는 한 발 물러나듯 말했다.“무엇이든 조급히 서두르면 도리어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차라리 아씨의 뜻을 먼저 정하심이 옳을 듯합니다. …대인께서 아씨께 늘 궁에 자주 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침 흠천감에도 들어가실 수 있으시니, 그 길로 황자마마를 뵈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부디 황자마마께서 흠천감을 나오시게 된다면, 그 뒤론 경성의 가문들 중 어느 집이든 기꺼이 규수를 들이려 하겠지요.”'진왕부로 돌아간다…?'초구는 말하지 않았으나, 황자마마와 같은 지위의 인물이 만약 궁을 나선다면 곧 경성 규수들의 꿈속 연인이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중 어느 집 규수가 운 좋게 황자마마의 눈길을 받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일리가 있구나.”하지만… 정말 그녀가 이천의 정인일까?선황과 태후가 평생을 오직 둘만의 인연으로 살았듯, 황자도 장차 아내를 맞는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아씨, 아씨?”초구가 두 번 부르자, 심연희가 멍하니 정신을 돌렸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삼킨 뒤 담담히 말했다.“그럼 폐하께서 마음을 괴로워하시지 않도록, 대인의 행복은 아씨께서 맡으셔야 겠습니다.”심연희의 고운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허나, 황자마마께서 그러한 뜻이 전혀 없으시다면… 내가 흠천감에 가서 괜히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겠느
초구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심연희는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그렇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호심도에서 날아나와, 남녀 단둘이 그대로 흠천감까지 이르렀다.흠천감에서 그는 그녀의 명격이 특별하다 하였다.그녀의 명격이 특별하다니, 대체 무엇이 특별하단 말인가?심연희는 말 못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초구는 비록 하인이지만 오라버니에게 충성스럽고 머리도 잘 돌아가니, 오늘 자신과 이천이 주고받은 모든 자초지종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초구는 다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아닙니다! 소인이 보기엔 황자마마께서 영 수상하십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초구가 고개를 끄덕였다."우선 황자마마께서는 홀로 나가실 수도 있었사온데, 굳이 배를 저어 아씨를 모셔 나가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흠천감까지 데리고 가셔서 아씨의 명격이 남다르다 일러주시고, 또 아씨께서 흠천감을 제 뜻대로 드나드실 수 있다 말씀하셨습니다.""아씨, 이거 도무지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궁중에서 황제가 이천과 심연희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좀 달랐다.심연희가 전해준 이천의 말과 태도, 그 모든 경과를 그대로 들은 뒤에야 초구는 깨달았다. 이천 은 분명 심연희에게 기회를 내어주신 것이리라.심연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황자마마께서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니…. 그분의 인연을 제가 찾아드리라는 뜻이냐?"초구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비볐다."아씨… 황제 폐하께서 소인에게 명하신 바가 바로 이 일입니다. 크다 하면 크고, 작다 하면 작은 일이지요.""아씨, 생신 날을 기억하십니까? 황자마마의 비녀, 그리고 아씨 머리 위의 백옥 비녀 말씀입니다."심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결에 손을 들어 그 비녀를 만졌다.갑자기 웬 비녀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초구가 말을 이었다."황자마마의 비녀는, 흠천감의 전 감정이던 용 대인께서 경성을 떠나시기 전 친히 내리신 것입니다.""그것이 내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
초구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지요.”“뭐라고?”“아씨, 오늘 보내신 그림을 황자마마께서 보셨습니까?”심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셨다.”초구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주인의 청을 받아 상매연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셨으면서, 또 외인들과는 어울리기를 꺼리셨다. 하지만 막상 아씨께서 여러 귀한 집 규수들의 초상화를 보내드리자, 그건 또 기꺼이 받아보셨단 말이지.“아씨, 황자마께서 아씨를 보셨을 때 노하신 기색은 없으셨습니까?”“보기엔…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아씨께서 말씀하시길, 그 그림들을 다 훑어보셨다고요?”“그래, 다 보셨어.”심연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초구의 눈동자가 굴러가며 뭔가 계산하는 기색을 보였다. “만약 정말 아무런 마음이 없으셨다면, 어찌하여 그런 초상화를 보셨겠습니까?”심연희는 말이 막혀 잠시 멍해졌다. “혹시… 그분께서 이 잔치가 자신을 위해 마련된 걸 아셨기 때문에 참석은 하시되, 일부러 규수들과 마주하지 않으신 건 아닐까? 나도 좀 헷갈리는구나.”초구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저 중얼거릴 뿐이었다. “황자마마의 마음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하지만 황제도. 심초운도 이미 중매를 서고 있었다. 아씨가 꽂은 복숭아꽃 비녀와, 황자가 꽂은 비녀가 모두 용강한이 친히 내린 것이라는 사실. 이것만 봐도 아씨와 황자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 천생연분이라는 증거였다.“아씨, 혹시 황자마마께서 다른 규수들의 그림에는 눈길 한 번 더 주신 적 없으셨습니까?”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곧 다시 저었다. 처음에는 슬며시 살폈지만, 그분의 얼굴엔 그 어떤 파문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내 그림은 맨 마지막에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없어졌더구나. 내가 잘못 챙긴 건지, 아니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아씨의 그림이 사라졌다고요?”초구는 눈을 크게 떴다. 혹시 황자마마께서 몰래 챙겨가신 건가? 하지만 그러실 분이 아닌데…
두 사람은 함께 문덕전의 선청으로 향했다.당안은 즉시 사람을 보내어 어전에 전하며, 저녁 수라를 올리라 했다.“형님과 이야기는 잘 되었습니까?” 심초운이 은근히 진척을 걱정하며 물었다.이영은 고개를 저으며 잠시 머뭇거렸다.“얄궂게도 오라버니께서 이번에는 거들어주셨다.” 그런뒤, 다소 불확실한 듯 덧붙였다. “허나 다음번에도 도와주실지는 잘 모르겠구나.”심초운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궁 안의 내관과 궁녀들이 오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아닙니다.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을 것입니다.”“그러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그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선청에 이르려던 순간, 이영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한 가지 일은 내가 초구에게 맡겼다. 허니 그 일은 그 아이에게 묻지 말거라.”초구는 본래 심초운이 거느린 사람이니, 종일 바쁘게 보이지 않으면 심초운이 의당 따져 물을 일이었다.심초운은 곰곰이 생각하다가도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당안도, 송이도, 궁 안에 심부름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초구에게 시켰다면… 그건 다른 까닭이 있겠지.알아도 모른 체하는 게 나았다.마치 예전에도 그랬다.용강한나 부모님, 심지어 초구까지도 그를 위해 계책을 내줄 수는 있었으나, 선황과 태후만큼은 결코 그가 이영을 좇는 일에 손을 보태선 안 되었다.결국 인연이란, 누군가의 손길이 조금 닿는다 하여도 스스로 이어져야 하는 법.그래서 심초운은 도리어 마음이 놓였다.이영이 잠시 그의 눈빛을 살폈다. 아마도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이 사람, 머리는 참 잘 굴러가는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그들이 선청에 앉은 지 한순간쯤 되었을까.어선방의 궁인들이 차례차례 음식을 올려놓기 시작했다.마침 이때, 이천이 정시에 들어왔다.“오라버니.” 이영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맞았다.그러면서도 심초운이 잡은 손은 굳이 뿌리치지 않은 채였다.이천은 이미 그러한 모습을 보아온 터라, 전혀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그들 사이의
적어도 용강한처럼 성정이 차갑고 무정한 외삼촌이라 해도, 소우연과 그 자녀들 앞에서만은 언제나 한없이 온화한 얼굴을 보였다.하지만 그 온화함 속에는 감히 누구도 발붙일 수 없는 차가운 거리감이 숨어 있었다.“이번에 대인께서 상매연을 여셨습니다. 소인에게 연희 아씨를 모시고 배를 타고 호심도로 가서, 황자마마께 초상화를 전해드리라 명하셨는데, 아씨께서는 몹시 긴장하시면서도 끝내 따르셨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황제 폐하께서 혹시 새 후궁을 들이실까 두려워하시며, 대인께 누를 끼칠까 염려하고 계십니다.”이영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들었다.심초운이 심연희를 시켜 초상화를 보내도록 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공을 들인 일이었다.“그런데, 심연희가 본인의 복숭아꽃 비녀와 오라버니의 비녀에 얽힌 사정을 알고 있느냐?”초구가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하다가 이내 저었다. “아마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만약 알고 있었다면, 어찌 기꺼이 이천에게 초상화를 전하려 했겠는가?“그렇다면…”이영이 손짓하며 초구를 불렀다.초구가 무릎으로 기어 나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예, 폐하.”이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호심도의 모임을 통해 그 아이도 머지 않아 곧 알게 될 것이다. 오라버니는 속세의 인연에 마음을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이다. 설령 오라버니께서 어느 규수를 잠시 더 눈여겨보셨다 한들, 그 규수가 어찌 감정으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초구가 고개를 저었다.“허나 심가 연희는 들어올 수 있다. 다른 이에게 희망을 맡기기보다는, 스스로 잡아야 할 것이다.”초구는 순간 입을 열다 말고 말문이 막혔다. 좋다. 심초운과 황제, 이 두 사람은 남매의 혼사를 위해 한마음으로 계책을 짜고 계셨다.허나 이런 계책이라면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무릇 이천과의 혼인을 도모하는 일 아니겠는가.“명, 받들겠습니다.”“일이 성사된다면, 너 또한 상을 적지 않게 받을 것이다.”초구가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은 다만 황제 폐하와 대인의 근심을 덜어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