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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작가: 주 한잔
“세자 오라버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평춘왕세자가 말하길, 이 사람은 현재 매우 안전한 곳에 있다고 했어요. 평춘왕세자가 평서왕부와 함께 가겠다고 했고요… 다만 이후에 평서왕부의 보호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이민수는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이지윤이 왜 직접 오지 않은 것이냐?”

소우희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마 직접 나서면 지나치게 눈에 띄기 때문이겠지요. 반면 저는... 오라버니와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이였잖아요… 설령 만나더라도 그저 가벼운 소문 정도로 끝날 거예요.”

“가벼운 소문 정도로 끝난다고? 너한테 있어서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란 말이냐?”’

소우희는 씁쓸히 웃었다. 이제 와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평춘왕 이종대는 병상에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두렵지만, 살아남으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죠…”

그녀는 조심스레 이민수를 올려다보았다.

“회남왕께서 용모를 회복하시고 다리도 고치셨다는 것은, 세자 오라버니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이민수는 눈앞에 앉아 있는 연약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과거 그녀의 세상은 본인이 전부였건만, 지금은 스스로를 자연스럽게 평서왕부와 하나로 묶고 있었다.

“세자 저하?”

소우희는 이민수가 아무 말이 없자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제야 이민수는 정신을 차렸다.

“오라버니, 제 말 듣고 계신가요?”

이민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육진이 얼굴을 회복하고 다리까지 고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민수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소우연을 만나 이육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부친께 듣자 하니, 오늘 아침 조정은 이육진의 일로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웠다고 했다.

황제는 격정에 차 즉시 태자 책봉을 위한 교지를 내리라고 했고, 신하 중 아무도 감히 반대 의견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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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는 경성으로 친척을 찾아왔다가 갈 곳이 없어 어쩌다 거둬준 것뿐이다. 그게 우희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소우희는 쓸쓸히 웃었다.“오라버니는… 아직도 언니를 좋아하시는 거지요?”이민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오라버니께서 아직도 언니가 기르던 고양이 배꽃을 소중히 돌보신다고 들었어요.”이민수는 서둘러 부정하려 했지만, 그때 마침 문밖에서 배꽃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소우희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가 미친 듯이 원했고, 온갖 방법을 다해 결혼하려 했던 남자가 결국 가장 사랑하는 건 소우연,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녀는 계속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이 세상에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은 오직 이지윤뿐일지도 몰랐다.“그냥 작은 짐승 하나일 뿐이다. 얌전해서 데리고 있는 것이지.”이민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소우연을 좋아한다고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문서를 다시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비록 소우희는 황족의 방계 자손일 뿐이지만, 장차 혹시 모를 쓸모는 있을지도 몰랐다.소우희는 옅게 미소 지었지만, 가슴속 어딘가가 찢어지는 듯 아팠다.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저려왔다.짧은 대화를 마친 뒤, 자리를 뜨기 전 그녀는 갑자기 이민수의 품으로 뛰어들었다.“나중에 오라버니께서 큰 뜻을 이루시면, 제게 조용히 지낼 작은 공간이라도 마련해 주시면 안 될까요?”이민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다.”소우희는 눈물을 닦고 그에게 조용히 절을 올렸다.“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그녀는 어렵게 발걸음을 떼며, 여러 번 뒤를 돌아본 끝에야 겨우 문 앞에 다다라 방문을 열었다.창가에 서 있던 이민수는 옥처럼 흰 찻잔을 손에 든 채, 소우희의 마차가 거리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상평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물었다.“세자 저하, 이제 돌아가시겠습니까?”이민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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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우연은 고개를 들어 촉촉이 젖은 눈망울로 눈앞의 준수한 사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왕야… 아니, 태자 저하,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절대 쉽게 포기할 자들이 아니에요. 분명 또 저희를 해코지하려 들 거예요.”이육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알고 있다. 걱정 마라. 조심하마.”“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요…”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자, 이육진은 문득 후회가 밀려왔다. 소우연은 늘 그에게 용모와 다리가 나았다는 걸 숨기고 적들을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소우희가 그녀를 납치한 일로 인해, 그는 다급한 나머지 자신이 완전히 나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 버렸다.“연아, 이제 나는 황태자다. 누구도 쉽게 해치지 못할 것이야. 알겠느냐?”그는 연약한 어깨를 붙잡고 그녀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며 부드럽게 달랬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왕야께선 이제 태자 저하이시죠.”그들이 아무리 불만을 품고 또다시 이육진을 해치려 해도, 예전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그래도 더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더구나 상대보다 한 걸음 앞서 움직여야 하건만, 최근 들어 그녀는 점점 책 속에 있었던 원래의 이야기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것을 보고, 이육진은 마음이 아파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의 미간이 천천히 펴졌다.그는 다시 그녀의 오뚝한 콧등과 입술에 입 맞추었다. 그러자 소우연은 조금씩 미소를 지었다.“연아, 오늘 밤에 같이 합방을 하면 어떻겠느냐.”이육진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소우연은 볼이 빨개졌다. 방을 합하자는 말은 그동안에도 몇 번이나 나왔지만, 지금껏 완전히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서로의 몸은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왕야… 아니, 태자 저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이육진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앵두 같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문지르며 물었다.“연아, 네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있느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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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우연은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이육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렇게 태연히 진지한 척하는 것이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연아?”소우연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이육진은 원하는 답을 듣자 만족스러운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정연이 파가 듬뿍 들어간 전병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정연은 소우연과 이육진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느끼고는 살짝 웃음을 참았다.그릇을 상 위에 내려놓으며 정연이 말했다.“왕비마마, 이 전병은 태자 저하께서 하례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이씨 가게에서 일부러 사 오신 것이랍니다. 주방에서 다시 따뜻하게 데워 올렸어요.”정연은 말하다 깜짝 놀라 말을 바꿨다.“아, 아니죠. 이제는 태자빈 마마이시니, 태자 저하께서 태자빈 마마께 사 오신 것이지요.”소우연은 뺨이 붉어진 채 원탁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정말이지 세심도 하셔라.”정연은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당연하지요. 태자 저하께서 마마를 얼마나 아끼시는데요.”정연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예전에 그토록 냉정하고 무심했던 태자가 한 여인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소우연은 파전을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파전의 고소한 향기가 입안에 퍼지자, 어느새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이육진의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어느 순간부터였다. 처음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다음은 복수를 위해 버텨왔는데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이육진만 떠올리고 있었다.“마마, 그럼 준비를 할까요?”“준비라니? 무엇을 말이냐?”소우연이 파전을 삼킨 후 어리둥절하게 묻자 정연이 조심스레 말했다.“방금 태자 저하께서… 오늘 밤 합방 준비를 하라 하셨잖아요.”정연은 일부러 엿들은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 때 하인들을 피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들을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정연은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지금까지 태자 저하와 태자빈 마마의 침실에서 밤마다 사랑을 나누던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던가. 설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6화

    “그건 안 된다.”소우연은 이육진이 조정에서 어떤 상황인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조정의 일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과 이육진에게 불필요한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네, 알겠습니다.”정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던 그때, 명심이 꽃다발 두 개를 들고 들어와 소우연에게 말했다.“마마께서 꽃꽂이를 좋아하시지요? 밖에 꽃을 파는 나그네가 지나가기에 소인이 마마께 드리려고 조금 사왔습니다.”소우연은 명심이 건넨 빨간 장미꽃과 하얀 치자나무 꽃을 보며 기분이 좋아져서 이내 환하게 웃었다.“고맙다.”“마마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명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저번에 태자빈이 아니었으면 명심은 맞아 죽지 않더라도 이 저택에서 쫓겨났을 것이다.“아주 마음에 드는구나.”꽃다발을 받은 소우연이 꽃향기를 맡고 있자 정연은 바로 가위와 꽃병을 가지고 왔다.“이따가 태자 저하께도 가져다 드릴까요?”명심의 물음에 소우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서재에 꽃꽂이를 두면 태자 저하 기분도 좋아지실 것이야.”정연은 그런 소우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태자와 태자빈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부러웠다.6개월도 안 된 사이에 회남왕 저택에 많은 변화가 생겼으며 이제는 회남왕 관저가 아닌 태자부가 되었다.“마마, 지금 가져다 드릴까요?”명심이 꽃병에 꽂은 장미꽃 꽃잎을 어루만지며 물었다.“태자 저하는 아직 바쁘신 것이냐?”어느새 방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아직 바쁘신 것 같습니다.”대답을 하던 정연은 고개를 돌려 명시에게 말했다.“이제 촛불을 밝혀라.”“네.”명심은 이내 성냥개비를 가져와 정연과 함께 본채 안의 촛불들을 하나씩 밝혔다.“마마, 먼저 식사를 하시겠습니까?”정연의 물음에 소우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태자 저하를 기다렸다가 함께 먹겠다.”소우연은 이제 이육진과 함께 밥을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가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47화

    흠칫하던 간석은 이내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마마, 너무 좋은 생각이시지만 태자 저하와 대신들께서 진지하게 논의 중이라 소인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일단 가서 시도는 해보거라. 만약 태자 저하께서 불쾌해 하신다면 내 뜻이라고 전하거라. 그럼 다음부터 방해하지 않겠다.”소우연의 대답에 간석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마마 뜻이라면 태자 저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 바로 다녀오겠습니다.”사실 간석은 진작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태자가 걱정이 되었다.조금 뒤, 간석이 떠나자 정연이 소우연에게 물었다.“마마, 소인이 마마께도 다과를 준비해드릴까요? 마마께서도 허기를 조금 채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다과를 조금 먹은 뒤, 장미꽃 꽃잎으로 목욕을 마친 소우연은 이육진도 기다릴 겸, 의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그렇게 해시가 될 때쯤, 눈이 슬슬 감기던 소우연은 밖에서 들리는 발걸음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그녀가 의서를 내려놓은 순간, 이육진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방에 들어섰다.“태자 저하, 많이 피곤하십니까?”소우연이 한걸음에 달려가 묻자 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지체되었다. 그런데 부인은 왜 아직도 안 자고 있는 것이냐? 혹시 이 서방을 기다리고 있는 거냐?”“네, 저는… 잠이 오지 않아서 태자 저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우리 합방에 관한 일을 생각하느라 잠이 오지 않은 것이냐?”순간 말문이 막힌 소우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오늘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소우연은 당연히 이육진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절대 합방과는 상관이 없다!“응?”소우연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이육진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정연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소우연이 다급하게 화제를 돌리며 눈앞에 서있는 이육진을 살짝 밀어냈지만 이육진은 피식 웃으며 소우연을 더욱 꽉 잡아당기더니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부인이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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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아, 준비되었느냐?”침대 끝에 앉은 이육진이 고개를 숙여 소우연을 쳐다보며 물었다.소우연은 머리를 들고 그런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도 이육진의 아우라가 선명하게 보였다.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소우연은 이내 얼굴이 빨개졌다.이육진은 아무 대꾸도 없는 소우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옷을 벗더니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다가 소우연의 손이 이육진의 매끈한 살결에 닿았고 그때부터 그녀의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천장을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워있던 이육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소우연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태자빈, 오늘부터 이 태자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태자빈의 말에 무조건 따를 것이야.”소우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전에 회남 왕비였을 때에도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거나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 같았다.한편, 이육진의 숨소리가 귓가에서 들리자 소우연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떨렸다.어둠속에서 소우연은 이육진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때, 이육진이 그녀의 손을 자신의 흔들리는 목젖에 올려놓았다.언젠가 치러야 하는 일이다.“부군, 그럼 합시다!”소우연이 용기를 내서 먼저 말했다.“뭘 한다는 것이냐?”낮게 깔린 이육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뭘 한다니?’입술을 살짝 깨문 소우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태자 저하,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소우연은 살짝 화가 났다. 분명 이육진이 먼저 그녀에게 합방을 하자고 했고 그녀에게 준비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모른 척하다니.“그, 부부 사이에 해야 할 일을 해야지요.”소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순간, 이육진이 침대 천막을 확 풀었다.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이육진이 고개를 숙여 소우연의 귓가에 귓속말을 했다.“이번에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어.”그렇게 소우연의 이마에 입맞춤을 하던 이육진은 그녀의 콧등,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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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군대에서 누군가가 춘궁도를 몰래 보거나 스스로 해결하는 행동을 발견하면 이육진은 그자에게 벌을 내리기도 했다.그런데 소우연과 혼인을 하고 나서부터 인간의 본능은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촛불 하나밖에 남지 않은 방 안은 매우 어두웠다.소우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몸을 덜덜 떨면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이육진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손에 힘을 너무 많이 준 탓에 손톱이 이육진의 등살을 파고들기도 했다.이육진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데 자신의 욕구 때문에 강제로 그녀를 품에 안을 수는 없었다.씁쓸하게 웃던 이육진은 고개를 숙여 소우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달랬다.“알겠어. 그만할게. 일단 가만히 있을 테니 네가 조금 나아지면 그때 빼겠다.”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한편,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성의 끈을 꽉 잡은 이육진은 어떻게든 조금 전의 다정한 행위를 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그렇게 겨우 마음속에 차오르는 욕구를 억누른 그는 꿈쩍도 하지 못한 채 소우연을 꼭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 그녀를 놓아주었다.소우연은 그제야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몸을 일으키고 침대 끝에 앉은 이육진은 소우연의 손을 꼭 잡았다.“죄송합니다. 저…”“연아, 죄송할 것 없다. 나도 네가 아픈 건 싫어. 서로 즐겁고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지 일방적으로 널 희생시켜서 내가 만족하려는 게 아니야.”이육진은 다정하게 위로하다가 이내 소우연의 손을 놓고는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다.이때, 소우연이 그의 손을 확 잡아당겼다.“괜찮으신 겁니까?”어차피 그녀는 전에도 종종 이육진을 도와 해결한 적이 있었다.“혹시…”“네, 제가 태자 저하를 도와주고 싶습니다.”잠시 고민하던 이육진은 다시 침대위로 올라갔다.밤이 깊어지고 방 안의 분위기는 다시 야릇해졌다.그렇게 30분이 지난 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이육진은 촛불들을 다시 밝힌 뒤 간석에게 목욕물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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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하…”입술을 살짝 깨문 채 부끄럽다는 듯이육진을 부르던 소우연은 침을 놓고 있는 손에 힘을 살짝 주었다.앓는 소리를 내던 이육진은 소우연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뭐든 부인이 말한대로 할 수 있지만 이 일만은 안 돼.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려해야지.”두 사람은 이제 진정한 부부로 거듭났고 소우연은 이육진의 자리를 물려받을 아들을 낳고 싶어했다.그리고 이 사실을 이육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한편, 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이 또다시 침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자 이육진은 일부러 큰소리로 외쳤다.“아파, 아파!”“네? 괜, 괜찮으십니까?”괘씸한 이육진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건 맞지만 이육진이 이렇게 아파할 정도로 힘껏 찌른 건 아니었다.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아파하지?한편, 이육진은 잔뜩 걱정한 소우연의 모습에 내심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는 손을 뻗어 소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이제 괜찮아.”소우연은 표정이 태연해진 이육진을 보며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합방이라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두운 밤이라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평소에 봤던 이육진 아랫도리의 윤곽이나 가끔 그를 도와 욕구를 해결해줄 때에도 뭔가 남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이육진은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 소우연이 살짝 걱정되었다. 혹시 오늘 있은 일로 안 좋은 기억이 남지는 않았을까?다음날 아침.이육진은 소우연이 깰까 봐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왔다.간단하게 씻은 뒤, 본채를 나선 이육진은 바로 간석을 찾아가 전에 그가 버렸던 책들을 다시 가져오라고 명령했다.한편, 간석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태자 저하와 태자빈께서 이렇게까지 화끈하신 건가? 이제 정상적인 잠자리에 만족하지 못하시고 책의 힘까지 빌려야 하는 건가?’“간석아?”이육진은 간석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요즘 따라 간석이 딴생각을 할 때가 많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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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부에 도착하자 하인이 다가와 알리겠다고 했지만, 소우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미리 알리지 않으셔도 돼요.”정연과 진우를 데리고 주합문 앞에 다다랐을 때, 소우연은 마당 한가운데서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는 용강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얇은 담요 하나 덮은 채 대나무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은 그의 온몸을 감싸며 은은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햇살 속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우연은 잠시 숨을 삼켰다.곁에 있던 호위가 다가오려 하자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저는 태자빈입니다. 용 감정과 조용히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호위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그는 그녀를 몰라볼 리 없었다. 주군께서 가장 자주 안부를 묻던 이였다. 위급한 상황에는 도우라는 명까지 내려졌으니, 그가 나서서 막을 이유는 없었다.소우연은 조용히 정연과 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누구도 들이지 말고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발소리조차 삼키며 마당을 가로질렀다.낙엽과 풀이 깔린 바닥 위로 바스락이는 소리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돌려보내라.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용강한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소우연은 멈추지 않았다.“제가 오늘 올 거라는 예감이 들진 않으셨나요?”그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햇살을 뚫고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그대로 누운 채 손을 모아 가볍게 인사했다.“태자빈 마마셨군요. 자리에 앉으시지요.”소우연은 그제야 그의 옆에 놓인 또 하나의 안락의자를 발견했다.방석까지 가지런히 놓인 자리가, 누가 봐도 ‘그녀’를 기다린 자리였다.“이걸 미리 준비하셨군요. 오늘 제가 올 걸 아셨던 거네요.”“예. 그리고 약간의 수를 써서 태자 전하께서 잠시 궁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단둘이 뵙고 싶었거든요.”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진맥해드릴게요.”“괜찮습니다…”그의 말이 끝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1화

    이민수는 혜주와 소범준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떴다.그가 떠난 뒤, 아령은 소씨 가문 안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소지윤에게 아이를 얻기 위한 계획도 한결 수월해졌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아씨는 누구에게도 깊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그런데 어째서… 소지윤 대인에게만은 그 마음이 다른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그의 아이를 가지려 하시는 걸까.한편, 태자부.이육진은 연회를 열고, 용강한과 심소균을 초대했다.술이 몇 순배 돌았을 즈음, 소우연이 용강한더러 ‘오라버니’라 부르자 심소균은 술잔을 들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아니…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된 거지?’태자빈이 ‘오라버니’라 부를 정도라면, 절대 가벼운 인연이 아닐 터.그보다 더 놀라운 건, 태자 이육진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심소균은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친 기분에, 괜히 청주를 몇 잔 더 들이켰다.“그냥 조용히 마시죠.”용강한은 무심히 말하며 자신도 잔을 비웠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소우희는 이미 죽었다.그토록 집요하게 소우연을 괴롭히던 이가 사라졌다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법도 했다.하지만, 연회 자리를 둘러싼 이들의 표정은 어딘가 무거웠다.심소균은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용강한은 알고 있었다.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심소균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이육진은 하인을 불러 그를 데려가게 했다.연회가 마무리되고, 소우연이 조심스레 물었다.“오라버니,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세요?”“괜찮습니다.”용강한은 담담히 웃었지만, 이어진 기침은 거셌고… 이내 곧 수건에는 선혈이 스며들었다.그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재빨리 망토를 여미고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띠었다.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눈은 날카로웠다.소우연은 물론, 이육진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용 감정, 네 몸 상태가 왜 이리 나빠졌느냐.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그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0화

    서재 안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숨막히는 분위기로 가득했다.이민수는 의연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예전에 우희가 소우연에게 얼마나 애원했는지, 부인께서 또 얼마나 고개를 숙였는지…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그런데도 소우연은 우희를 단 한 번도 용서하지 않았답니다.”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지금 잠시 조용하다고 이게 끝이라 생각하십니까? 제가 내민 손길을 뿌리치셨으니, 훗날 다시 찾아오신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고, 서늘한 눈빛을 떨구었다.“우희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아령이 눈물로 애걸복걸하지 않았다면… 소씨 가문을 위해 이 더러운 일에 제 발로 들어설 생각 따윈 없었습니다.어차피 저희 평서왕부는, 태자부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그 말에 소홍범의 안색이 굳어졌다.평서왕의 야심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과거 이육진이 불구가 되고 얼굴까지 망가졌을 무렵, 평서왕은 황태자의 자리를 가장 가까이서 노릴 수 있는 유력한 인물이었다. 비록 직접 황태자가 되지 못한다 해도, 그의 장남 이민수가 황제에게 양자로 들어가 후계자가 될 거란 이야기는 조정에 이미 돌고 있었다.수년간 평서왕부는 조용히 인맥을 조율하고 관료를 포섭해왔다. 이육진이 회복했다고는 하나, 평서왕 부자의 야망은 그 무엇으로도 꺾이지 않았다.소씨 가문은 이제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아버지…”소현우가 조용히 일어섰다. 우희를 향한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소우연에 대한 원망은 이미 마음속에서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있었다.이 길로 가나 저 길로 가나 지옥이라면, 차라리 평서왕세자의 손을 잡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소홍범은 고개를 돌려 소현준을 바라보았다.소현준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소우연을 직접 만나야 하나… 아직은 이르다.’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그 순간.이민수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서자, 소현우가 갑작스레 그의 등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9화

    “누구지?” 임진숙이 물었다.“평서왕부의 세자저하, 그리고 스스로 둘째 아씨의 지기라 밝힌 여인입니다.”소현우가 곧장 말했다. “어머니, 우희와 친하다고 했던 그 손수건 친구입니다. 어제 시신 수습을 도왔던 그 아가씨예요.”임진숙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모셔라. 우희의 친구라니... 잘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예.”소현우는 급히 나가 마중을 나갔다.지금의 소씨 가문에겐 더 이상 발버둥칠 힘도, 핑계도 없었다.평서왕 세자 이민수, 한때는 소우희의 혼처 상대였던 사내. 소우연만 아니었다면, 소씨 가문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일도, 우희가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여동생의 목을 조르는 죄를 짓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이민수가 도착하자, 병중에 있던 소홍범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맞았다.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태자부는 이제 발붙일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의지할 곳도 아니었다.소씨 가문이 마지막으로 기대어볼 곳은 오직 평서왕부뿐.본래부터도 세상은 소씨 가문이 평서왕부의 그늘 아래 있다고 여겨왔다.“소 장군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다시 뵙는 자리가 이리도 쓸쓸할 줄은 몰랐습니다.”소홍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얼굴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휠체어에 앉아 있던 소한준은 냉랭하게 내뱉었다.“소우연만 없었더라면, 우희는 진작에 세자저하의 곁에 있었을 겁니다. 이런 참변도 없었겠지요.”이민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다 지켜주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형식적인 위로가 몇 마디 오간 뒤, 아령은 이민수의 배려로 이당에 남아 임진숙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소홍범과 이민수, 소현우, 소현준은 서재로 향했고, 소한준은 하인의 부축을 받아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임진숙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한참을 흐느꼈다.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았다.‘우리 우희가 왜 이리 비참하게 갔을까… 우리 집안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그녀는 끝없는 자책과 회한 속에 빠져 있었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8화

    “그때는 정말로 믿었어. 그 은인이 우리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그런데 우리가 피를 말리며 상운국에 도착했을 땐 외가 쪽은 이미 떠난 뒤였지. 나중에야 들었어. 멀리 남강으로 이사했다는 걸 말이야. 그 은인은 어머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나 봐. 결국 어머니를 다시 백화루에 팔아넘겼어. 그리고 나도… 결국 기생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지.”아령은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로 조용히 혜주를 바라봤다.“넌 어떻게 생각해? 내 이모인 임진숙이라는 사람… 참 무섭지 않아?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지 않아? 왜 그 사람은 고귀한 장군 부인으로 살아가고, 우리 어머니는 천한 기생이어야 해? 왜 그 사람 자식들은 다들 한 자리씩 가질 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천한 신분이었던 걸까? 우리 어머니가 그걸 참지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였고.”아령의 눈빛은 억눌린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그래서 맹세했어. 어머니랑.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꼭 그 사람과 그 사람 가문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겠다고.”그녀는 눈물을 훔친 뒤, 환하게 웃었다.그 미소는 해맑았지만, 그 속에 담긴 결심은 날카롭고 서늘했다.“그게 바로 내가 살아 있는 이유야.”그 이야기를 들은 혜주는 마음 깊은 곳이 흔들렸다.‘그랬군요… 그래서…’소 부인 임진숙. 겉으론 다정하고 자애로워 보였지만, 어린 동생을 백화루 문 앞에 유기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중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소우희 아씨가 그렇게 악랄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군요.’‘진짜… 그 어머니에 그 딸이었네요…’“그 진홍색 비단함, 꼭 잘 보관해. 그 안엔… 언젠가 그 집안 사람들의 뼛가루를 담게 될 거야. 그래야 어머니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테니까.”아령은 혜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너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잖아.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평서왕부로 돌아가면 널 풀어줄거야. 그때 내가 준 돈으로 아무도 널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너답게 살아.”그 말을 들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7화

    그녀가 한때 이민수의 침소를 지키던 몸이었다는 사실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그랬군요...”소현우는 장정답지 않게 눈가가 붉어졌다.멀찍이서 하인들이 수레를 끌고 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저건...”“우희 언니에요.”아령은 숨김없이 고백하며, 눈가를 눌렀다. 슬픔을 삭이는 듯한 손짓이었다.소현우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소우희에게 이런 절절한 마음을 나누던 벗이 있었던가.그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소현준은 그리 쉽게 믿지 않았다.여인의 말은 빈틈이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그럼에도 혜주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있었다.소현준은 혜주를 일으켜 세우며 눈을 맞췄다.“정말... 둘째를 원망하지 않느냐?”혜주는 힘 있게 고개를 저었다. 그 눈빛엔 감사와 충성이 담긴 듯 보였다.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소우희를 증오했다. 결국 바랐던 대로 소우희는 혀를 잃고,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소현우는 그런 혜주의 내면까지는 읽지 못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어릴 적부터 함께한 사이니... 주인과 종이라도 정이 있었겠지.”사실 혀를 자른 것도 그날 격분한 소홍범의 지시였다.이제 소우희는 죽었고, 더는 이 하녀에게 뭐라 할 이유도 없었다.소현우는 이마를 짚으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아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맙다. 혜주가 그대 곁에서 지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우희가 남긴 인연이라 생각한다.”아령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오라버니... 아니, 장군님. 죄송해요. 순간 감정이 북받쳐서...”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실수라도 한 듯 웃어 보였다.소현우는 손을 내저었다.“우희의 벗이라면, 오라버니라 불러도 괜찮다.”잠시 후, 소씨 가문의 하인들이 아령 일행의 수레 대신 소우희의 시신을 직접 실었다.이제 그녀를 보내는 건, 가족의 몫이었다.소현준은 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형은 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6화

    전날엔 폭우가, 오늘은 뙤약볕이 내리쬐었다.이런 날씨 속에서, 소우희의 시신은 또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을까.강직한 무장이자 소씨 가문의 주인인 소홍범조차 그 앞에선 중심을 잃을 뻔했다.말을 꺼내려다 삼킨 그는, 결국 큰아들 소현우와 둘째 소현준에게 시신을 찾으러 가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난장골.산바람은 살을 찌를 듯이 뜨겁고, 공기마저 눅눅하게 달아올라 있었다.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숙취에 시달리던 소현우는 동생과 함께 난장골에 도착했다.주위를 둘러보니, 시신을 찾아 이곳을 헤매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그중 한 무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희고 단정한 옷차림의 소녀가 한 대의 수레를 따라가고 있었고, 수레 위엔 희미한 천이 덮인 시신 하나가 실려 있었다.소녀의 눈가엔 희미한 붉은 기가 맴돌았다.썩은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소현준은 코끝을 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호위병 하나는 이미 참지 못하고 옆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소현준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며 말했다.“둘째 아씨 시신부터 찾아라.”차가운 명령이 떨어지자, 하인들은 이를 악물고 악취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였다.하얀 옷의 소녀와 그 일행이 소씨 가문의 마차 앞으로 다가왔고, 소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실례합니다. 혹시 소씨 가문의 도련님들이신지요?”마차 안에 있던 소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마차 옆에 서 있던 소현준만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그리고 그 소녀 옆에 선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혜주였다.혜주는 곧장 무릎을 꿇으며 조용히 예를 올렸다.그 눈동자엔 아련한 빛이 어려 있었고, 그리움과 슬픔이 섞인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소현준은 미간을 좁히며 소녀에게 물었다.“너는 누구냐?”시선은 혜주에게 있었지만, 질문은 분명 그 소녀에게 향한 것이었다.소녀는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몸을 낮추며 답했다.“아령이라 합니다. 예전에 소우희 아씨를 몇 차례 뵌 적이 있고, 개인적인 은혜를 입은 바 있습니다. 서로 손수건을 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5화

    반 시진이 지나고, 어느덧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붉게 타오른 노을이 하늘 끝에 걸려 있었고, 맑고 푸른 하늘은 마치 물로 씻어낸 듯 투명했다.그 풍경은 마치 소우연의 마음과도 같았다.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가볍고 평온했다.소우희는 죽었다.이 세계의 여주인공은 사라졌고, 남주는 더 이상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었다.모든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새로 쓰일 터였다.진원 장군부.소현우는 돌아오자마자 술을 들이켰고, 그날 밤을 고스란히 의식을 잃은 채로 보냈다.그리고 다음 날, 해가 지기 직전에서야 겨우 눈을 떴다.헝클어진 머리에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못한 채, 그는 하인에게 명했다.“소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정청으로 불러라.”며칠째 앓고 있던 소홍범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군의 업무는 거의 대부분 부장들에게 넘긴 상황이었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이육진이 그의 군권을 서서히 회수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그러나 어찌할 수 없었다.지금 그의 수하 중 대부분은 본래 이육진의 옛 부하였다.이육진은 별다른 수를 쓰지 않아도, 그저 말 한마디면 모두가 따랐다.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소홍범, 그리고 그의 아들들마저도 과거엔 모두 이육진의 군 아래 있었다.5년 전, 국경에서 벌어진 전투.이육진이 매복을 당해 위기에 처했을 때, 소현우는 전방에서 적과 싸우며 지원 한 번 받지 못한 채 중상을 입었다.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그 순간, 그를 구해낸 사람은... 소우희가 아니었다.소우연이었다.소홍범은 이를 악물었다.소우희를 미워했다.믿고 싶었지만, 결국 기대를 저버린 딸이었다.소우연이 그의 큰아들을 살려냈다고 해서, 그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가족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그게 소우희의 자리를 대신할 이유는 아니었다.결국 일을 망쳤다.감히 소우연을 건드려, 집안 전체가 흔들리는 사태를 자초했다.정청에 모두가 모였다.눈이 퉁퉁 부은 임진숙이 조심스레 물었다.“어머님은 안 오는 거니...? 혹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4화

    ‘세상에 진심이란 없어.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야.’그 말이 또렷이 귓가에 맴돌았다.마지막까지 아령의 목소리가 소우희의 머릿속을 울렸다.‘날 미워하지 마. 미워할 거면 너 자신을 미워해. 네가 소씨 집안의 자식이라는 걸. 네 어머니가 악독한 여자였다는 걸. 그 여자가 내 어머니 인생을 망쳤고, 그래서 난 태어나자마자 천민이 되었어.’‘난 바라는 거 없어. 단 하나, 너희 소씨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두 눈으로 보는 것.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야.그리고 지금 난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소우희는 그녀가 정말로 복수가 성공하길 바랐다.여자의 숨소리가 멎었다.소현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비틀거리며 주저앉을 뻔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우희의 콧날 아래를 짚어보았다.숨이 없었다.정말로 죽은 것이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오라버니’라 불렀던 여동생. 그 목소리가, 그 웃음이, 아직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건만.소우희는 정말로 죽었다.그는 허둥지둥 감방을 뛰쳐나왔다.밖에서 기다리던 임진숙이 그 얼굴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니?”소현우는 눈을 피하며 단호히 말했다.“아무 일 아니에요. 어서 돌아가요. 어머니, 어서요.”말을 재촉한 뒤, 급히 달려가는 소씨 가문의 마차를 바라본 옥졸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불안한 기운에 곧장 감방으로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소우희가 죽어 있었다.그녀는 움직일 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그렇다면 가능한 건 단 하나.소현우 장군.그는 자신의 손으로 친여동생의 목숨을 거두었다.옥졸은 온몸이 얼어붙었다.어떻게 이런 일을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더욱이 태자에게...그는 급히 의원을 불렀지만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소우희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옥졸은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로 직접 태자부로 달려갔다.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금세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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