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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Author: 주 한잔
”소우희가 옥패 그림으로 널 운불사에 유인해서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소우연의 안위 문제가 제일 중요했기에 이육진은 일단 용강한에 관한 일을 내려놓았다.

한편,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일부러 잔뜩 화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때 당시 살린 소년이 부군이라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소우희가 그때 당시 제가 매일 밤낮으로 외출하여 낯선 남자를 치료해 준 일로 부군 앞에서 제 명예를 더럽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운불사까지 찾아가게 된 것이지요. 그때 당시 살린 소년이 부군이라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은 부군 때문에! 제가 소우희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미리 도망칠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전 진작 소우희 때문에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을 겁니다!”

소우연의 말에 이육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일은 확실히 내 잘못이 맞다. 내가 너에게 진작 얘기했어야 하는데. 앞으로 절대 너에게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육진이 소우연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하자 소우연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에잇, 됐습니다. 마음이 넓은 제가 부군을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미소를 짓던 이육진이 소우연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얘기해 줄 수 있겠느냐? 넌 용강한 그자를 만나러 다녀오자마자 그자를 용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자가 네 친정 식구가 되었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 우리는 조금 전에 서로 숨김없이 다 얘기하기로 했어.”

서로 숨김없이 다 얘기하기로 한 건가? 분명 본인이 앞으로 소우연에게 숨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해놓고?

하지만 어차피 이제 두 사람은 한배를 탄 전우이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기에 당연히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소우연은 예전에 자신과 용강한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네가 그자도 살려준 것이냐?”

이육진이 살짝 질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소우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전 다른 사람을 살리면 안 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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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우연의 손끝은 여전히 따뜻했다.“조금은 나아졌지만…”소우연은 조심스레 대답했다.“더 지켜보며 조절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그래.”이육진은 팔짱을 낀 채, 용강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나는 의술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 사람 곁은 한기가 밀려온다. 차갑단 말이야.”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렇게까지요? 전 잘 모르겠던데요.”사실, 손을 댔을 때 손목이 꽤 차갑긴 했지만. 그 외엔 오히려 덥고 습한 날씨에 시원함을 주는 약초처럼 그의 곁에선 묘하게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을 뿐이다.그 말에 용강한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정말 못 느끼셨습니까?”소우연은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체온이 낮은 건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기운이 넘쳐흐를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서요.”소우연이 손을 거두자, 용강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태자빈 마마 말씀대로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치료하는 게 좋겠습니다.”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곁에 서 있던 경문에게 시선을 돌렸다.“앞으로 약은 명심이 가져올 거야. 꼭 챙겨 드시게 해야한다. 알겠느냐?”경문은 바로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예, 태자빈 마마. 깊이 감사드립니다.”사실 경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주군이 이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 수많은 의원이 불려왔지만 그는 늘 고개를 저으며 단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이 병은 인연이 있는 자만이 고칠 수 있다.’그래서 그는 고통 속에서도 진맥을 거절했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 앞에 있는 이 여인 앞에서는 아무런 거부도 없이 맥을 맡기고, 침까지 받아들이고 있었다..경문은 그저 조용히 속으로 중얼쳤다.‘아, 과연 이 분이 주군께서 말한 ‘인연 있는 사람’이었구나.’운명이란, 참으로 야속하고도 묘했다.“내가 연탄을 좀 보내볼까?”이육진이 문득 제안했다.하지만 용강한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이 가을 끝물에 연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92화

    희미한 꿈결 속.창밖에선 빗방울이 파초 잎을 두드리며 떨어지고, 거센 바람이 창틀을 덜컹이며 흔들고 있었다.소우연은 비몽사몽인 채로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보았다.빗물이 방 안까지 들이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정연아.”하지만 곧 귀에 들려온 대답은 익숙한 정연의 목소리와는 조금 달랐다.조금 더 낮고, 어딘가 남성적인 음성이었다.그녀가 말을 잇기도 전에 창이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방 안이 조용해졌다.몸을 감싸던 싸늘한 기운도 어느새 사라지고, 등 뒤로 훈훈한 온기가 밀려왔다.마치 따뜻한 화로가 등을 데우는 듯한 느낌이었다.그 온기가 서서히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자, 어딘지 모르게 숨결은 흐려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이건?’소우연은 문득 자신이 무언가에 휘감겨 있다는 걸 느꼈다.몸을 비틀며 벗어나 보려 했지만, 뒤에서 감싼 팔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집요했다.그러다 등 뒤에서 느닷없이 입술이 목덜미를 훑었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밖에선 정말로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우레처럼 굵은 빗줄기가 창살을 두드리며 방 안 가득 메아리쳤다.“누가 창 닫아달랬다더냐?”낮고 짙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이육진이었다.“꿈이었어요. 비가 오는 꿈을 꿨어요.”소우연이 나지막이 대답하자, 이육진은 묵묵히 웃음을 삼켰다.“그 비가… 혹시 ‘운우지정’의 그 비는 아니었느냐?”그 말에 소우연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뺨이 후끈 달아오르며, 말도 잇지 못한 채 몸을 작게 웅크렸다.이 사람은… 진짜…그녀가 앞일만 생각하고, 뒷일을 대비하지 못한 걸 그는 귀신같이 알아챘다.이육진이 원한 건 단지 대화도, 단잠도 아니었다.창밖에선 여전히 바람이 울고, 비는 퍼붓고 있었다.그 거센 폭우가 한동안 이어지다, 이내 부슬부슬한 가랑비로 바뀌었다.하늘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물을 준비하라’고 일렀다.밖에서 대기 중이던 정연과 간석은, 서로 눈빛을 맞춘 채 깊은 탄식을 삼켰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91화

    이육진은 상소문 정리를 마친 뒤, 곁에 앉은 소우연을 바라보며 조정 이야기를 꺼냈다.“요즘 소씨 가문 말이다. 완전히 발을 뺐더구나. 더는 태자부와 가까워지려는 낌새도 없었다.”소우연은 고요히 꽃 차를 들고 향을 맡다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와서 연을 끊는 걸 보면, 태자부에선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또 다른 쪽에 손을 뻗은 걸 수도 있고요.”“그런 자들은 원래 이익 아니면 눈길도 안 주는 법이다. 태자부가 흔들린다 싶으니 곧장 등을 돌렸겠지.”이육진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선 서릿발 같은 냉기가 느껴졌다.“소 씨 가문과 평서왕부는 처음부터 석연찮은 관계였지.”소우연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시선을 내렸다.이육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네가 대리혼으로 들어올 때부터, 그들은 처음부터 네가 아닌 소우희와 평서왕세자의 혼인을 밀었다. 평서왕부의 권세를 믿은 거지. 하지만…”그는 짧게 숨을 내쉬며 그녀를 바라봤다.“결국 그들이 버렸던 너는 내 다리와 얼굴을 고쳤고, 지금은 태자빈이 되어 이 자리에 있지. 소 씨 가문이 내다 버린 돌멩이가 가장 귀한 옥이 될 줄은 몰랐던 거야.”소우연은 가볍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찻 잔을 흔들었다.지금쯤 소 장군은 밤마다 잠을 설치며 후회하고 있진 않을까.그녀는 정연이 건넨 꽃차를 받아들고 조용히 말했다.“태자전하, 이 꽃차 한 잔 드셔보시겠어요?”이육진의 잔에는 이미 용정차가 담겨 있었기에, 그녀가 굳이 따로 건넨 것이었다.정연은 두 사람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소우연은 장난기 섞인 미소로 이육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러다 밖에선 태자전하께서 대낮부터 제 방에 틀어박혀 계신다고 생각하겠어요.”이육진은 미동도 없이 말했다.“오해할 게 있느냐. 낮에 그런 일을 안 했던 것도 아니잖아.”그 말에 소우연의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불쑥 떠오른 어젯밤의 기억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홱 돌렸다.“차나 드세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90화

    이육진이 돌아온 것은 한낮 식사를 마친 직후였다.“태자빈은 어디 있느냐?”“태자전하, 태자빈 마마께서는 지금 배나무 별채에 계십니다.”이육진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자신의 몸은 이미 다 나았는데, 또 무슨 약재를 연구하고 있는 걸까?그때 명심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그리고… 태자빈 마마께서 용 감정을 이곳 태자부로 모셔와 별채에 머물게 하셨습니다.”“뭐라고?”이육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곧 어제 소우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용 감정이라면…다른 사람이었으면 몰라도, 그 사람은 달랐다.수없이 자신을 도왔고, 소우연에게도 빚진 것이 많은 인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존재였다.그런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이육진은 바람처럼 발걸음을 옮겼다.배나무 별채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별채 마당 한편에는 약재 선반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고, 그 위엔 온갖 약초가 가지런히 말리고 있었다.소우연과 정연은 그 옆에서 약재를 고르고, 가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마당 한복판, 특히 시선을 끄는 곳엔 낮은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덧입은 옷만 해도 세 겹은 되는 듯한 용 감정이 햇살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그 옆엔 경문이 양산을 들고 서 있었지만, 얼굴만 그늘지고 온몸은 여전히 따스한 햇살에 노출되어 있었다.이육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갔다.그의 그림자 아래에서 용 감정이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며 공손히 인사했다.“태자전하께서 오셨군요.”그 말에 소우연과 정연도 고개를 돌렸고, 정연은 조심스레 예를 갖췄다.소우연은 곧바로 이육진 곁으로 다가왔다.“오늘은 평소보다 늦게 오셨네요.”“조금 일이 길어졌느니라.”이육진은 소우연에게 짧은 웃음을 건네고, 곧장 용강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옷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구나.”그 말과 동시에, 어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소우연이 말해주었던 용강한의 병. 그리고 더 오래전, 그가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하늘의 이치를 들여다보다, 그 반동을 고스란히 받아 생긴 병이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9화

    “괜찮습니다. 굳이 불은 피우지 않아도 됩니다.”용강한이 부드럽게 말했다.소우연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라버니, 불편하시면 말씀하셔야죠. 괜히 불편하게 지내실 필요는 없어요.”“불편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불을 피워야 할 정도라면, 겨울은 넘기지 못할 것 같아서요.”그 말에 소우연과 정연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정연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소우연은 단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오라버니 뜻을 따르죠. 다만 정말 견디기 어려우실 땐 꼭 말씀 주세요. 불편을 감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용강한은 잔잔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생각지도 못하게 병을 고치러 태자부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정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소우연은 곧 은침을 꺼내 준비를 시작했고, 정연은 명심에게 차를 준비하라고 일렀다.“명심아, 홍차를 좀 우려 주거라.”“예, 마마.”홍차는 위장을 덥히는 데 좋아서, 몸이 차가운 용강한에게도 도움이 될 터였다.소우연은 침착하게 지시를 내리면서도 손놀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가녀린 손끝으로 정확한 혈자리를 짚어내며, 은침을 차례로 그의 팔에 꽂아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용강한이 조용히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소우연은 망설이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사실 그녀는 용강한의 가슴과 등에 침을 놓고 싶었지만, 이미 혼례를 치른 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예전이라면 생사의 경계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녀도 모르게 이육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그런 사정을 용강한이 알 리 없었다.“아, 아니에요. 괜찮아요.”소우연은 애써 웃으며 말을 돌렸다.대신 팔에 놓는 침의 수를 늘리면 될 터였다.효과는 조금 더딜지 몰라도, 꾸준히 하면 분명 차도가 있을 것이다.그녀의 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열이 전해졌다.그 열기는 마치 그의 차가운 경맥을 타고 스며들 듯 퍼져 나갔다.정말로 추위가 조금씩 가시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8화

    “오라버니, 그렇게까지 격식 차리실 필요 없어요.”소우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이육진은 밤새도록 그녀에게 오라버니라 부르게 했다.겉으론 무심한 척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생각해보면 자신이 평소에 용강한을 오라버니라 부르는 것도 한몫했는지도 모른다.두 사람은 예전부터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기로 했고,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왔다.하지만 지금처럼 신분이 달라지고, 관계가 미묘하게 바뀐 뒤에는 그 친근한 호칭조차 누군가에겐 불편함이 될 수 있었다.특히 이육진이라면 겉으론 태연해도, 그 속마음은 질투심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그 생각에 소우연은 괜히 조심스러워졌다.가을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날이 매섭게 춥지는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강한은 벌써 겨울 외투에 털 망토까지 두르고 있었다.몸이 정말로 차갑긴 한 모양이었다.그 모습에 소우연은 마음이 살짝 저릿해졌다.“태자빈 마마, 혹시 목이 불편하신 겁니까?”용강한이 조심스레 물었다.들리는 목소리로 봐선 확실히 쉰 듯했다.소우연은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감기 기운이 좀 있어서요.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무리하지 마십시오.”말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동편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혹여 불편하신 게 있으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소우연은 정중히 말했다.용강한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신세를 지게 되어 송구합니다.”곁에 서 있던 경문이 조용히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실례를 무릅쓰고 여쭙습니다. 소인은 어디서 묵게 될지요…”소우연이 정연을 바라보자, 정연이 자연스럽게 답했다.“이 방 옆에 통방이 하나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별채 객실이 하나 있네.”경문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용강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객실에서 머무르도록 하게. 자네 코 고는 소리가 너무 크지 않은가.”“……!”경문은 한순간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자신이 코를 곤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늘 가까운 방에서 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7화

    밤은 깊어가고, 뜰 안의 등불들이 하나둘씩 환히 켜졌다.하늘엔 엷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둥근 달은 반쯤 가려진 채 수줍은 듯 사람 세상을 엿보고 있었다.이내 구름이 걷히자, 달빛은 유난히 밝고 또렷하게 아래를 비추기 시작했다.태자부 전체가 불을 밝힌 듯 환했고, 그 중심인 본채는 바람 소리마저도 따스하게 느껴질 만큼 봄기운이 감돌았다.온 뜰이 달빛에 잠긴 밤, 마치 봄날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웠다.그렇게 두 시진쯤 흘렀을까.본채 밖 풍경에 달린 방울이 서너 번이나 울려 퍼졌다.그날 밤, 물을 부른 것만 해도 벌써 서너 번째였다.간석은 먼지떨이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태자 전하, 정말 대단하십니다…’속으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하지만…‘태자빈 마마의 배는 어째서 아무 소식이 없단 말인가…’간석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마음속 기도를 올렸다.‘하늘이시여, 두 분이 이토록 정성껏 애쓰시니, 부디 귀한 아기를 점지해 주시옵소서. 태자부는 물론 상운국 전체가 기뻐할 일 아니겠습니까…’그날 밤 마지막으로 물을 부른 것은 소우연이 반쯤 정신이 나간 채였을 때였다.기억나는 것은 이육진이 직접 그녀를 정갈히 씻기고, 이불을 덮어준 장면뿐이었다.정신을 온전히 차린 것은 다음 날 새벽,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눈을 뜬 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정연을 불렀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양이보다도 작고, 새된 소리조차 내지 못할 만큼 목이 완전히 쉬어 있었다.결국 그녀는 손을 들어 침상 옆에 달린 방울 끈을 당겼다.딸랑, 딸랑.방울 소리가 울리자 정연이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태자빈 마마, 깨어나셨습니까?”소우연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대답 대신 정연을 바라보았다.입을 열 기운조차 없었기에.말없이 누운 그녀의 모습을 본 정연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피했다.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전날 밤, 태자빈 마마는… 많은 것을 견뎌내신 것이다.오늘은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계셔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6화

    창밖으로는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따스한 봄바람이 불자 뜰 안의 꽃잎과 풀잎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거렸다. 곳간에서 피어난 은은한 꽃 향은 마치 봄기운처럼 방 안을 가득 채웠다.향이 번지자, 간석과 정연은 눈치껏 본채 문 앞에서 조용히 물러섰다.누군가는 옷가지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욕탕을 손질하며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그로부터 한 시진이 흐른 뒤, 하늘은 어느새 어둠으로 뒤덮였다.그제야 이육진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물을 준비해라.”간단한 세신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소우연은 숟가락을 들었지만, 밥을 뜨는 손끝이 자꾸만 힘을 잃어갔다.이육진이 손짓을 하자 정연이 얼른 앞으로 다가서려 했으나, 예상과 달리 그뿐만 아니라 간석과 명심에게도 전부 물러가라는 명이 떨어졌다.갑자기 시중 드는 사람을 내보내시다니… 또 그럴 작정이신 건가?정연은 속으로 아연실색했다.요즘 태자저하의 정력은… 지나치다 못해 겁이 날 지경이었다.태자빈은 눈에 띄게 지쳐 있었고, 윤기 없는 손끝, 가늘어진 숨결, 나긋하게 젖은 눈매까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얼마나 부른 걸까. 목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라니.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닫힌 뒤에야 소우연은 문득 깨달았다.방 안에는 이제 자신과 이육진, 단둘뿐이라는 것을.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 순간, 이육진이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젓가락을 빼앗았다.곁으로 다가와 바짝 앉더니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반찬이 먹고 싶으냐?”“예…? 제가 먹을 수 있어요.”얼떨결에 말하면서도, 소우연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수 있느냐? 방금 전엔 분명 못 하겠다 하지 않았느냐.”‘못 하겠다’라니…?소우연은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머릿속으로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숨이 벅차오르던 그 순간.‘저… 더는 못 하겠어요…’맞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못 하겠다’… 그 말이 또 그런 의미로 들렸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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