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셋째 황자 강도현이 유배되던 해, 아버지는 나와 함께 시체 더미에서 그를 업어 데려왔다. 그제야 아버지가 한때 그의 태부(太傅)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추격을 피하고자 강도현과 나는 시골에 숨어서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갔다. 닭과 물고기를 키우며, 해가 뜨면 함께 밭일했다. 그는 허름한 사철의 보살님 앞에서 이마가 깨지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서라는 내 유일한 부인이다." "권세도 부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셋이 평안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선황이 승하하시고 나라에 주인이 사라지자, 그는 역심을 품어서 검을 들고 경성으로 쳐들어갔다. 떠나기 전 그는 나를 꼭 끌어안고, 일이 성사되면 반드시 나를 경성으로 데려가 함께 천하를 누리겠다고 약속했다. 두 해가 지나자, 우리 아들 지민도 옹알이를 시작했다. 마침내 나를 경성으로 데려갈 마차가 왔다. 하지만 경성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재상의 딸 백유리가 이미 중궁의 주인이 되어 황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낮은 품계인 답응(答應)에 봉해졌을 뿐이었다.
View More나는 그의 앞에 떠 있었다.탁해진 그의 눈동자에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서라... 나를 데리러 온 것이냐..."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눈에서 생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힘없이 늘어진 손이 눈밭에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강도현이 죽었다.그는 끝없는 후회와 절망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죽는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다.나는 비로소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십 년 동안 내 영혼을 붙들고 있던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드디어 나는 떠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강도현의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지민은 그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그는 직접 내 유골함을 강도현의 관에서 꺼냈다.출상하는 날에도 지민은 황릉으로 향하지 않았다.그는 수수한 흰옷으로 갈아입고 내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영남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십 년이나 되었다.경성에 내리던 눈이 마침내 그쳤다.수레바퀴가 덜컹이며 굴러갔고, 사람을 집어삼키던 경성은 점점 멀어졌다.마차 안의 지민은 유골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어머니, 우리 집으로 갑니다."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고, 안도한 듯한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그 옷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아졌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이제는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나는 마차 밖을 떠돌았다.점점 뒤로 물러나는 풍경을 바라보며, 가까워지는 남쪽을 바라보았다.‘영남의 겨울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온 산을 뒤덮은 푸른 나무들만 있을 뿐이다.’‘그곳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낡았지만 따뜻했던 내 집이 있다.’‘잘 가, 지민아.’‘좋은 황제가 되어라. 네 아버지처럼 되지는 말고.’따스한 바람이 불어오자, 내 영혼은 마침내 수많은 빛으로 변해 흩어졌다.영남으로 향하는 바람 속으로 사라져 갔다.경성의 눈은 지난 그리움을 덮어 주고, 영남의 바람은 옛사람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이렇게 내 삶도 마침내 끝났다.[끝]
대세는 이미 정해졌다.백씨 가문은 멸문당했고, 백유리는 폐위되어 팔다리가 잘린 채 인형처럼 만들어져 내가 살았던 별전에 갇혔다.강빈욱은 서민으로 강등당해 영남으로 유배되었다.지민이 즉위하여 새 황제가 되었다.강도현은 태상황이 되었다.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다.태의는 이제 기력이 다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눈이 내리던 날, 강도현은 사람을 시켜 자신을 매화 정원으로 옮기게 했다.그는 내 조각상에 기대어 말라붙은 핏자국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지민은 곤룡포를 입고 그의 앞에 차갑게 서 있었다."짐의 수명이 다했구나."강도현의 목소리는 바람만 불어도 흩어질 듯 허약했다.그는 애원하듯 지민을 바라보았다."지민아, 짐에게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다.""짐이 죽거든 네 어미와 나를 황릉에 함께 묻어 다오.""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겠다는 게... 내가 그때 보살님 앞에서 맹세했던 약속이다."지민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크게 웃었다.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겠다고?""네가 그럴 자격이 있느냐?"지민은 웃음을 거두고 매섭게 소리쳤다."그때 한겨울 밤에 네가 직접 명을 내려 어머니의 손가락 열 개를 짓눌러 부러뜨렸잖니?""천하다고, 염치도 없는 여자라고 욕했잖니?""눈밭에서 얼어 죽어 가는 걸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잖니?""이제 와서 함께 묻히겠다고? 꿈도 꾸지 마!"강도현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리더니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지민아... 제발 부탁하마..."그는 힘겹게 침상에서 굴러 내려와 지민의 곤룡포를 붙잡으려 했다."내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저승은 너무 춥잖니? 네 어미는 어둠을 무서워하니 내가 가서 곁을 지켜 줘야 한다...""어머니가 어둠을 무서워하게 된 것도 다 네 탓이다!"지민은 조금도 가차 없이 한 걸음 물러나 절망에 빠진 채 눈밭에서 기어가는 강도현을 바라보았다."나는 이미 영남에
변고가 일어난 것은 선제의 기일이었다.백 재상은 군권을 틀어쥐고 세력을 키우며 금군 통솔자와 손잡고 강도현에게 퇴위를 강요하여 태자 강빈욱을 서둘러 즉위시키려 했다.대군이 황궁을 에워쌌다.태화전 안에는 백유리는 화려한 황후 예복을 차려입고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폐하, 병환으로 고생하신 지도 오래되었으니 이제 그만 쉬셔야 합니다.""양위 조서는 제가 이미 써 두었습니다. 옥새만 찍으시면 됩니다."강도현은 용상에 앉아 심하게 기침했다.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 백유리를 차갑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그러면 아니겠습니까?"백유리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밖의 금군은 모두 제 아버지의 사람입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그때 전각 밖에서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대문이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은색 갑옷을 걸친 지민이 피 묻은 장검을 들고 전각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그 뒤에는 폐하를 구하러 온 군사들이 물밀듯이 따라 들어왔다."역적을 잡아라!"지민이 명을 내렸다.백유리가 경악했다."강지민! 지금 무슨 짓이냐? 내가 네 어마마마다!""어마마마?"지민이 차갑게 비웃더니 손에 든 검을 재빠르게 휘돌리더니 백유리의 어깨를 꿰뚫었다."악!"백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지민은 그녀의 상처를 발로 짓밟고 힘껏 짓눌렀다."이 독한 년아, 네가 감히 그 말을 입에 올리다니!""그때 네가 계략을 꾸며 내 친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억지로 원수를 어머니라 부르게 했지.""지난 십 년 동안 날 날마다 짓밟아 놓고도, 정말 내가 물지 않는 개라고 생각했느냐?"강빈욱은 겁에 질려 오줌까지 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빌었다."형님,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지민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손을 뒤집어 검을 휘둘렀다.강빈욱의 손발 힘줄을 단숨에 끊어 버렸다."그 손으로 나를 때리고 그 발로 나를 걷어찼지.""오늘 그대로 돌려주마."강빈욱은 돼지
십 년, 나는 궁에서 꼬박 십 년이나 떠돌았다.그 십 년 동안 나는 백유리의 적자 강빈욱이 막무가내인 망나니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남을 짓밟고 제멋대로 굴었다.상서방에서 동반 학동들을 말처럼 타고 괴롭히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찍질했다.그중에서도 지민은 그가 가장 괴롭히기 좋아하는 상대였다."강지민, 너는 고작 사생아일 뿐이니 어서 엎드려 내 말이 되어라!"열두 살인 강빈욱은 거들먹거리며 지민의 무릎을 걷어찼다.지민은 아무 표정도 없이 바닥에 엎드려 무릎을 꿇었다.강빈욱이 등에 올라타 말채찍을 휘두르게 내버려두었다."이랴! 사생아, 빨리 달려라!"지민의 두 손은 거친 바닥에 닳아 피가 배어 나왔다.하지만 그는 신음조차 하지 않았다.다만 내리깔린 눈동자에는 짙은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강도현도 이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마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그는 매일 조회에 나가는 것 말고는 매화 정원에서 내 조각상만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백유리는 몹시 의기양양했다.자신이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다.지민의 기개는 이미 꺾였고,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여겼다.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몰랐다.한밤중이면 지민은 온몸의 진흙을 씻어 내고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그는 모든 암중 호위들의 눈을 피해 소리 없이 전조 중신들의 저택에 잠입했다.지난 십 년 동안 그는 끝까지 참고 견디며 백씨 외척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충신들의 지지를 얻어 냈다.그는 직접 군영으로 찾아가 백씨 가문에 억눌려 지내던 한미한 집안 출신의 장수들과 의형제를 맺었다.그는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독사와 같았다.평소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나서면 반드시 적을 단숨에 쓰러뜨렸다.열여덟 살이 된 지민은 훤칠한 키에 서늘한 인상을 지닌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눈매와 이목구비는 강도현을 닮았지만, 눈빛만큼은 그보다 훨씬 매섭고 차가웠다."어머니."내 생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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