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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귤이
다인의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던 한민수는, 한 번 더 확인한 후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활짝 웃었다.

[좋아, 결혼했으면 됐어. 언제 같이 와서 할아버지랑 같이 식사나 하자.]

다인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

전화를 끊자, 침실 문이 열렸다.

방으로 들어온 시윤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인의 앞에 왔다.

고귀하고 우아한 분위기,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썹과 별빛 같은 눈동자. 그야말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용모였다.

숨이 턱 막힌 다인이 고개를 들어 시윤을 바라보았다.

“왔어요?”

“응.”

시윤의 목소리는 굵고 낮았다.

“신혼이라, 밥 먹으러 돌아왔어.”

다인은 문득 가슴 깊은 곳이 따뜻해졌다.

“고마워요.”

예전에 태안과 사귈 때는, 태안은 식사 약속을 해도 다인을 혼자 식당에서 방치한 채 몇 시간씩 바람을 맞히곤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그때마다 태안은 유림에게 불려 갔다.

유림이 재채기만 해도 태안은 긴장하며 병원에 데려다 주곤 했다.

다인은 항상 유림보다 뒤처지는 존재였다.

다인이 한 번 화를 내면, 태안은 귀찮게 쓸데없는 트집을 잡는다며 싫어했다.

다인은 생각을 거두었다.

노트북을 접어 창가에 내려놓고 일어나서 시윤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일부러 날 위해 돌아올 필요는 없어요. 괜찮아요. 원래 각자 필요에 의해 갑자기 한 결혼이니까요.”

“네 곁에 있어 주는 건 당연한 일이야.”

시윤이 다인을 응시하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함께 생활하고,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결혼을 원한다고.”

다인의 가슴에 따뜻한 감동이 스멀스멀 퍼졌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윤이 원래 성숙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지,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 다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손 씻고 내려가서 같이 밥 먹어요.”

다인은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다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윤의 눈빛이 점점 짙어졌다.

...

1층 다이닝룸, 두 사람이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고, 부드러운 조명이 마침 두 사람을 내리쬐었다.

훤칠한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그야말로 한 폭의 따스한 그림 같은 장면이었다.

식탁 위에는 여러 가지 요리가 놓여 있었는데 전부 다인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입맛까지 같을 줄 몰랐네.’

다인은 꼿꼿하게 앉아서 조용히 식사했다.

그때, 시윤이 바삭한 돼지갈비 한 점을 집어 다인의 밥공기에 얹어 주었다.

“네가 좋아하는 거야. 많이 먹어.”

다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어요?”

“아는 건 어렵지 않아.”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다인을 바라보던 시윤이, 낮고 느린 목소리로 당연한 듯 말을 이었다.

“우리는 부부야. 그러니 네가 어떤 사람인지 열심히 알아갈 거야.”

이 말에 다인의 코가 시큰해졌다.

정말로 한 사람을 알고 싶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태안은 지금까지 다인이 뭘 먹는 걸 좋아하고, 뭘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인은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

그런데 태안은 망고 주스를 시켜준 적이 있다.

그건 유림이 좋아하는 건데 말이다.

“시윤 오빠...”

다인의 약간 갈라진 목소리에, 시윤은 부드럽게 응답했다.

“응.”

다인은 시윤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보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오빠 나 싫어하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 거예요?”

‘싫어한다고?’

‘그동안 그렇게 생각했구나.’

시윤의 눈가에 맴돌던 짙은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시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답을 얻지 못한 다인이 포기하려던 찰나, 시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게다가, 넌 예전에 너무 바보 같아서 짜증 났어.”

“...”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그 말을 끝으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 후 시윤은 다시 서재로 갔다.

저녁때가 되자, 다인은 상주댁이 우려 준 차를 들고 서재 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를 뵈러 본가에 가는 일로 시윤의 의견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들어와.”

안에서 시윤의 낮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다인은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 앞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따뜻한 차를 시윤의 오른쪽에 놓으며 말했다.

“차 좀 마셔요.”

“고마워.”

시윤이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눈을 들어,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오디랑 구기자를 넣은 차네? 혹시 무슨 암시라도 하는 거야?”

다인의 뺨이 확 달아올랐고, 갑자기 아침에 ‘물건이 안 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나, 급히 해명했다.

“아니에요. 이모님이 타 준 거예요.”

대답하고 나니 또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너무 아는 척했나?’

시윤은 다인의 얼굴에 피어오른 홍조를 발견했다. 놀라움을 견디지 못하는 하얀 토끼처럼 다인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더 이상 놀리자니 마음이 아팠다.

결국 시윤은 관대하게 이 주제를 더 이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일어난 시윤은 다인의 앞을 가로막고는, 검은색 벨벳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선물이야.”

“이게 뭐예요?”

의아해하며 상자를 받아서 연 다인은, 상자 안에 있는 커플 반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윤이 매혹적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제 급하게 혼인신고 했잖아. 이건 보상의 의미로 주는 프러포즈 반지야.”

“마음에 들어?”

다시 묻는 시윤의 눈빛이 너무 유난히 진지했다.

다인의 호흡이 가빠졌다. 비록 급하게 한 결혼이지만, 이렇게 누군가 자기를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은 거부할 수 없었다.

다인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에 들어요.”

다인의 손을 잡은 시윤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지에 끼워 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항상 끼고 있어.”

고개를 숙인 시윤의 얼굴은 가까이서 보니 더 입체적이고 깊어 보였다. 다인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멈추었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자, 시윤은 다인이 거부하는 건가 싶어 눈빛이 어두워졌다.

“싫어?”

다인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아요.”

시윤의 표정이 그제서야 조금 누그러지더니 왼손을 내밀었다.

시윤의 손가락은 길고 가늘며, 마디마디가 뚜렷했다.

“그럼 여보, 이제 내 반지도 끼워 줄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다인은, 남성용 반지를 꺼내 천천히 시윤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다인의 길고 가는 손가락은 부드럽고 고왔다. 손가락 끝의 살갗이 서로 스치자, 분위기가 살짝 야릇해졌다.

갑자기 다인의 가는 허리를 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 시윤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응시했다.

“이제 우리, 부부 사이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시윤의 말에 다인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고, 머리속은 순간적으로 백지상태가 되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다인은 겨우 입을 열었다.

“뭐, 뭐라고요?”

시윤이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 끝으로 다인의 부드러운 뺨을 어루만졌다. 그와 동시에, 눈동자에 뭔가 뜨거운 게 스쳤다.

“여보, 남자랑 자본 적 있어?”

시윤이 고개를 숙여 키스하려 하자, 지나치게 긴장한 다인은 몸을 움츠리면서 본능적으로 얼굴을 뒤로 뺐다.

다인의 거부감을 느끼자, 시윤의 눈빛에 있던 열기가 점점 사라지더니 결국 놓아주었다.

“괜찮아, 시간은 얼마든지 줄게.”

다인은 멈칫했다.

‘이건 내 동의 없이는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인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인은 평소 냉랭하고 대하기 힘들어 보이던 시윤이,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다인은, 방금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해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시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다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런 작은 일에도 사과해?”

“시간을 준다고 했잖아.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

문득, 다인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태안에게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한참 뒤 다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 대답했다.

“네.”

그러다 문득 하나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우리 할아버지가 오빠를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나랑 같이 가서 뵐 수 있어요?”

“그래. 그런데 말이야...”

그윽한 눈빛으로 다인을 바라보던 시윤이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갖다 대고는,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여보, 키스 한번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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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인의 입에서 ‘결혼 취소’라는 말이 나온 건, 종말 예언만큼이나 터무니없게 들렸다.태안은 잠깐 멈칫하더니,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이런 밀당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네?”태안은 다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네가 결혼을 취소한다고 하면, 내가 그걸 믿을 줄 알아? 내가 겁먹을 줄 알아?”다인은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태안은 늘 그랬다. 다인이 무슨 말을 하든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태안에게 다인의 말은 늘 거짓말이었다. 태안의 관심을 끌려고 던지는 말쯤으로만 취급했다.“믿든 말든.”다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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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인의 눈빛과 마주치자, 태안의 마음이 갑자기 떨리며, 저도 모르게 공포가 밀려왔다. 그리고 자꾸만 다인을 완전히 잃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다인아, 나...” 태안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조여들었다.“오빠, 나 너무 아파...”유림이 갑자기 울며 몸을 비틀거리면서, 곧 기절할 것처럼 굴었다.태안이 급히 몸을 낮춰 유림을 부축하자, 순순히 품에 기댄 유림이 힘껏 태안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오빠, 나 죽는 거야?”“유림아, 겁내지 마. 넌 안 죽어, 오빠랑 같이 의사한테 가자.” 태안이 정신을 가다듬고, 방금

  • 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   제29화

    다인은 시윤을 보고 넋을 잃었다.마침 다인을 발견하고 찻잔을 내려놓은 시윤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쳐다보았다. “얘기 끝났어?”다인은 반응이 없었다.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그 말을 들은 다인은 순간 정신을 차리면서, 뺨이 화르륵 불타올랐다.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급히 고개를 숙여 시윤의 시선을 피했고, 아랫입술 안쪽을 꽉 깨물었다.‘방금 내 모습이 얼마나 멍청해 보였을까?’다행히 기철민이 서재에서 나왔고, 김 집사가 식사가 다 준비되었다고 알려 왔다.다인

  • 날 버린 남자 대신, 그의 형이 내 인생을 뒤집어놨다   제25화

    [유림이가 너한테 맞아 상처 난 자리, 몇 바늘이나 꿰맸어. 이번 일은 네가 너무 지나쳤어.][내일 혼인신고 끝나고, 유림이한테 제대로 사과해, 안 그럼 우리 사이 오래가지 못할 거야.]말투에서 느껴지는 고압적인 태도가 화면을 뚫고 나올 듯했다다인은 심지어 현재 태안의 얼굴빛이 얼마나 나쁜지 상상할 수 있었다.‘전화 거절당할 때 모습이 또 얼마나 열 받아 할까?’태안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심지어 다인은 그를 5년 동안 쫓아다니며 사랑을 구걸한 상대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더이상 자기를 쫓아다니지 않으니, 태안은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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