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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귤이
다행히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면서 곤경에 처한 다인을 구해주었다.

“여보세요?”

다인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허둥지둥 전화를 받았다.

전화 건너편에서 슈퍼모델이자 가장 친한 친구 임미연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한다인. 어제 혼인신고서 뗐으니, 밤에 곧바로 처녀 딱지도 뗐겠네?]

전화기 소리가 꽤 컸다.

시윤이 아직 근처에 있다는 걸 떠올린 다인이 급히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다행히 시윤은 이미 현관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혼인신고서만 뗐어.”

다인이 안도하며 말했다.

“처녀 딱지는 안 뗐어.”

[5년이나 사귀면서 고작 해본 거라곤 서로 가볍게 입술 스치기 정도였고, 서로 애무도 못했으면서...]

한참 동안 말하던 미연이 갑자기 ‘악!’ 소리를 질렀다.

[설마 혼인신고 한 당일 밤에 새 남편 물건이 '서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한 건 아니지?]

미연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더 커졌다.

마침 시윤이 문을 열고 다시 들어왔다가, '남편 물건이 서는 데 문제가 있다’라는 마지막 말을 정확히 들었다.

순간, 눈꼬리를 살짝 올린 시윤이 다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안 선다고?’

인기척을 들은 다인 역시 문 쪽을 바라보았고, 시윤을 보자마자 숨이 멈춰 버렸다.

이쪽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미연이 계속 조언을 늘어놓았다.

[이건 좀 문제 있네. 얼른 병원에 가 봐야겠다.]

[만약에 고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플라토닉한 관계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봐...]

다인은 머리가 핑 돌면서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왜 돌아왔어요?”

“시계 가지러.”

시윤은 드레스룸에서 시계 하나를 꺼내 차고 다인 앞으로 다가왔다.

시계를 다 찬 시윤이 팔을 앞으로 뻗어 화장대를 짚으면서 다인을 품속에 가볍게 가두었다.

고개를 숙이고 다인의 눈앞에 얼굴을 댄 시윤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말했다.

“서는지 안 서는지는, 밤에 시험해보면 알 거 아니야?”

다인은 뻣뻣하게 굳은 채, 그저 부자연스럽게 눈꺼풀만 깜빡거렸다.

“난 그런 말 안 했어요.”

시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여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와서 내가 서는지 시험해 보게.”

다인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시윤은 성큼성큼 다시 방을 나갔다.

다인은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오해했어.”

[뭘 오해했다고?]

[방금 내 전화 급히 끊었는데 화났어?]

[내가 기태안 물건이 '서는' 능력이 없다고 말한 거 때문에?]

미연은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의문과 불만을 쏟아냈다.

다인이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태안이 아니고, 시윤이야.”

또 오해를 살까 봐, 다인이 얼른 덧붙였다.

“어제, 나와 혼인신고 한 사람은 시윤이었어...”

[뭐라고?]

미연이 비명을 질렀다.

10분 후...

다인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 미연은 태안과 유림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심지어 입에 담을 수 없는 더러운 욕설까지도.

한바탕 화를 낸 미연이 비로소 속이 시원해졌는지 다인을 위로했다.

[잘했어. 후회하게 내버려둬. 남편 노릇하기 싫으면 시동생이나 하라고 해.]

[다인아, 이번엔 보는 눈이 생겼네. 기시윤은 GM그룹 대표인 데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스캔들도 없지. 기태안보다 백 배는 나아. 그런데...]

[기시윤도 결혼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네가 신붓감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결혼한 거잖아. 너희는 감정도 없고, 원래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혹시...]

미연이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인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괜찮아, 서로 필요한 걸 얻는 거니까.”

다인이 눈을 내리깔았다.

어제는 홧김에 혼인신고를 했지만, 오늘은 이미 마음을 정리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으니, 언제 헤어지든 상관없었다.

[알겠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신혼 선물 보내 줄게. 기다리고 있어.]

“무슨 선물인데?”

다인이 물었다.

하지만 미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건너편에서 광고 촬영을 재촉하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진짜 바쁘네!’

...

GM그룹 본사.

맨 윗층의 대표 집무실.

회의를 마친 시윤은 등을 곧게 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짙은 색 정장은 시윤의 고귀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압도적인 존재감을 더 드러냈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비서 진우빈에게 지시했다.

“결혼반지 골라 줘. 그리고 주식양도계약서도 준비해 주고.”

우빈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네, 대표님.”

하지만 말을 마친 뒤에도 떠나지 않고 자리에 서 있었다.

고개를 든 시윤이 유빈을 힐끗 보면서 물었다.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어?”

우빈이 말했다.

“대표님이 돌아오신 걸 회장님께서 아시고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본가에서 식사하라고요.”

시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나가 봐.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우빈이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시윤은 본가에 전화를 걸었다.

인사도 하기 전에, 전화기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젠 자립했다 이거냐? 귀국했으면서 나한테도 말 한마디 없고,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이제 네 얼굴 보려면 예약해야 할 판이구나?]

“할아버지, 진정하세요. 어제는 시차 적응하느라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거예요.”

시윤이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기철민은 코웃음을 쳤다.

[변명하지 마라. 3년 동안 내가 너한테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귀국하면 꼭 정착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시윤의 눈에 뭔가 떠오른 듯 부드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 안심하세요. 잘 기억하고 있어요”

시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제가 꼭 만족시켜 드릴게요.”

...

태안은 마침내 술이 깼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침대 위를 이리저리 더듬더듬하다가 마침내 베개 밑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였다.

그 순간 잠이 싹 달아난 태안이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오전에 회의가 있었는데, 다인이 전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그때 비서가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던 비서가, 태안이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왜 이제야 왔어?”

태안이 책임을 추궁하듯 물었다. 핸드폰에는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는데, 모두 비서에게서 온 것이었다.

“대표님께서 무슨 중요한 일이 있으신 줄 알고, 방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서가 변명했다. 지금 온 것도 사실은 시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테안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태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다인은 어디 있어?”

비서는 잠시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일개 비서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지난 5년 동안 중요 회의가 있을 때마다 비서가 걱정할 필요도 없이 다인이 직접 태안에게 알려줬고, 태안은 이미 이런 점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일과는 언제나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심지어 다인이 아플 때조차도, 항상 한 시간 전에 태안에게 전화를 걸어 깨워주곤 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다인은 태안에게 실망을 안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작 혼인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일부러 나 엿 먹이는 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해 준 모양이네.’

태안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한 번 울린 후 자동으로 끊겼다.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건 전화번호를 차단한 거야!’

태안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다인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화면에 메시지가 거부되었다는 표시와 함께 빨간색 느낌표가 나타났다.

‘좋아!’

‘아주 좋아!’

태안의 눈에 냉랭한 분노가 스쳤다.

‘이번엔 내가 오냐오냐해주나 봐라!’

‘나랑 다시 만나고 싶으면, 공주병을 고쳐야 할 거야!’

...

해가 지고 있었다.

캐룬 베어 별장의 침실. 창가에 양반다리로 앉은 다인은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구상하고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다인의 대본은 두 번이나 웹드라마로 제작된 적이 있었지만, 조회수는 평범했다.

히트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망작도 아닌 수준이었다.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걸려 온 전화번호를 힐끗 본 다인이 순순히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얘야, 너 어쩜 할아버지 보러 도통 오지를 않니? 어제 혼인신고 했지? 시간 내서 할아버지 보러 오너라. 태안이 그 자식도 데리고...]

다인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 태안이랑 헤어졌어요.”

전화 건너편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몇 번 들렸다. 한민수는 이런 일을 흔한 일로 여기는 듯했다.

[왜 그러니? 그 자식이 또 장난쳐서 너 화나게 했어?]

할아버지의 태도가 문득 다인에게 지난날의 일들을 생각나게 했고, 가슴이 찌릿하게 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이번엔 정말이에요.”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인이 말을 이었다.

“저 태안이랑 헤어지고, 시윤 오빠랑 혼인신고 했어요.”

침실 문 밖에서 다인의 말소리가 들리자, 반쯤 뻗은 시윤의 손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곧이어 시윤의 눈빛은 깊은 심연처럼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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