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당시 임아진은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한 특수상해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출소한 뒤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세상은 이미 크게 달라져 있었다.수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냈으나 답이 오지 않거나 전과 경력 때문에 채용을 거절당했다.막다른 길에 몰린 임아진은 이정호를 찾아가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하지만 HT그룹 건물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경비원이 입구에서 막아선 뒤 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대표님께서 이 돈을 받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임아진은 HT그룹 건물 앞에 서서 봉투를 쥔 채 원망과 후회에 휩싸였다.이정호와 결혼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HT그룹 안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마지막에 이런 처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이정호와 임아진이 고통에 빠져 사는 동안, 민윤희의 삶은 훨씬 풍성하고 눈부시게 흘렀다.5년 동안 ‘미야네 놀이터’는 계속 성장했다. 구독자는 5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늘었고, 민윤희가 펴낸 육아 서적 세 권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삶은 알차고 자유로웠다. 곁에는 최태빈과 최은길, 다정한 두 부자가 있었다.최태빈은 민윤희가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상담센터 근처에 정원이 딸린 집을 마련했다. 바쁜 일상 사이에 편히 쉴 공간이 생겼다.민윤희가 사람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불필요한 식사 약속은 전부 대신 거절해 주고, 민윤희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최은길도 예전의 수줍고 조심스러운 아이에서 밝고 씩씩한 소년으로 자랐다.최은길의 생일을 앞두고 민윤희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 집 안을 완전히 새롭게 꾸몄다.사람을 불러 색색의 풍선을 백 개 넘게 달고, 벽에는 최은길이 좋아하는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가득 붙였다.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도 직접 만들었다.최태빈은 주방 문틀에 기대 바쁘게 움직이는 민윤희를 지켜봤다.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힘든 질투가 살짝 묻어났다. “윤희 씨는 저보다 은길이를 더 잘 챙
민윤희가 이정호의 이름을 다시 들은 것은 5년 뒤 어느 오후였다.육아 강연을 막 마친 날이었다. 상담센터의 인턴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HT그룹 이정호 대표가 또 온라인에서 화제예요. 집안일 때문에 집중하지 못해서 중요한 협상이 결렬됐다는 말이 있던데요.”자료를 정리하던 민윤희의 손이 잠깐 멈췄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일에 집중하세요.”인턴은 혀를 살짝 내밀고 얼른 핸드폰을 치웠다.그래도 이정호에 관한 말은 작은 돌멩이처럼 민윤희의 마음에 떨어져 아주 희미한 파문을 남겼다.아직 마음이 남아서가 아니라, 세월이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5년 전만 해도 평생 시선이 머물렀던 남자는 이제 민윤희의 삶과 아무 상관 없는 ‘뉴스 속 인물’이 되어 있었다.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이정호의 지난 5년은 평탄하지 않았다.이정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온 뒤 해외 업무 대부분을 미루고 가정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하지만 이정호는 민윤희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인내나 세심함이 부족했다.세월이 흐르고 사춘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두 아이는 거칠게 반항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계속 나빠졌다.이재준은 중학생이 되자 일찍 이성 교제에 빠졌다.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고, 중간 정도였던 성적은 반에서 꼴찌에 가깝게 떨어졌다.이우희는 더 심했다. 학교 밖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무단결석을 하고 술집을 드나들었다. 싸움까지 벌여 이정호가 학교에 불려 간 일도 여러 번이었다.이정호는 아이들을 바로잡으려고 많은 방법을 시도했다.이재준에게 가장 실력 좋다는 과외 교사를 붙였지만, 이재준은 수업에 협조하지 않았고 온갖 못된 장난으로 교사를 쫓아냈다.이우희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방문을 잠근 적도 있었다. 이우희는 이정호가 방심한 틈을 타 창문으로 빠져나갔다.한 번은 화를 참지 못한 이정호가 이우희의 뺨을 때렸다.이우희는 울기는커녕 목을 빳빳이 세우고 소리쳤다. “아빠는 아빠 자격도 없어! 엄마가 있
집으로 돌아온 이정호는 모든 업무를 미루고 병원에 남아 두 아이를 돌봤다.하지만 잠에서 깬 아이들은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아빠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어느 날 밤, 이우희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중얼거렸다. “엄마가 끓여 준 죽 먹고 싶어.”이정호는 인터넷 영상을 보며 서툰 손으로 죽을 끓였다.그릇을 침대 곁으로 가져가자 이우희는 손으로 세게 밀어냈다.뜨거운 죽이 바닥에 모조리 쏟아졌다.“싫어. 이건 엄마가 만든 게 아니야!” 이우희는 서럽게 울었다. “엄마는 늘 죽에 달콤한 대추를 넣어 줬어. 아빠는 우리가 뭐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바닥에 흩어진 죽을 바라보던 이정호는 가슴을 무거운 돌에 얻어맞은 듯했다.예전에는 민윤희가 없어도 집안이 달라질 것 없이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다.이제야 민윤희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이정호는 그 뒤로 온갖 방법을 써서 아이들에게 잘해 주려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민윤희를 흉내 내 냉장고에 ‘우희야, 우유 마시는 것 잊지 마’, ‘재준이 수학 숙제 확인하기’라고 쓴 메모를 붙였다.이우희는 메모를 보자 눈가를 붉혔다. 종이를 바로 뜯어 쓰레기통에 버렸다.주말에는 혼자 두 아이를 공원에 데려갔다. 예전에 민윤희가 자주 사 주던 딸기 맛 솜사탕도 일부러 샀다.그러나 아이들은 솜사탕을 먹으면서도 풀이 죽은 표정이었고, 좀처럼 웃지 않았다.밤에는 아이들 곁에 앉아 숙제를 봐주었다.이정호는 연습장 가득 그림을 그려 가며 세 번이나 설명했다. 그래도 이재준은 이해하지 못했다.이정호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묻어나자 이재준이 불쑥 말했다. “엄마는 내가 모르면 여러 번 설명해 줬어. 그런데 아빠처럼 짜증 내지는 않았어.”이정호는 말을 잃었다. 마음이 쓰리고 시렸다.예전에는 민윤희가 일을 느리게 하고 같은 말을 많이 한다며 늘 못마땅해했다.이제야 그 ‘느림’이 인내였고, 많은 말이 전부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윤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내 아이들이라 차마 외면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물러나기만 했어요. 하지만 여러 해를 바치고도 돌아온 결과가 이것이었잖아요.”말을 마친 민윤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이정호가 입원한 뒤에도 민윤희의 생활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어느 날, 민윤희는 앞서 이정호의 집착을 막아 준 일에 감사하려고 최태빈을 찾아갔다.최태빈은 사무용 의자에 앉아 옅게 웃었다. “정말 고맙다면 부탁 하나 들어줘요.”“무슨 부탁인데요?”“은길이 윤희 씨를 무척 좋아해요.” 최태빈은 말을 고른 뒤 조심스레 물었다. “은길의 임시 엄마가 되어 주겠어요?”최은길은 최태빈의 형이 낳은 아이였다.몇 년 전 형과 형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떠나기 전 최태빈에게 아이를 맡겼다.최태빈은 그 뒤 아버지를 자처하며 최은길을 반듯하고 속 깊은 아이로 키웠다.민윤희도 최은길을 무척 아꼈기에 고민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그날 저녁, 최태빈은 아늑한 분위기의 양식당을 예약하고 이 소식을 최은길에게 전했다.최은길의 두 눈이 환하게 빛났다.친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로 최은길은 오랫동안 모성애라 부를 만한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민윤희가 따뜻하게 말을 걸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줄 때마다, 최은길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이제부터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최태빈은 손을 뻗어 최은길의 이마를 가볍게 톡 건드렸다. 말투에는 애정이 넘쳤다.최은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책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나무배를 조심스럽게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민윤희에게 내밀었다.“엄마, 제가 나무를 깎아서 만든 배예요. 엄마가 앞으로 가는 길에는 이 배처럼 순풍만 불고,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민윤희는 나무배를 받아 들었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따뜻함이 가슴으로 밀려왔다.이재준과 이우희를 여러 해 동안 정성껏 돌봤지만 아이들이 손수 만든 선물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
민윤희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놀라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미처 피하기도 전에 훤칠한 남자가 문밖에서 뛰어 들어와 임아진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다.“칼 내려놔!” 이정호가 이를 악물었다.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임아진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손을 빼내려 발버둥 쳤다. “못 놔! 다시는 민윤희를 찾지 않고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약속하기 전에는 절대 안 놔!”이정호는 대답하지 않고 손에 더 힘을 주었다.그 침묵이 불에 기름을 끼얹듯 임아진의 분노를 끝까지 끌어올렸다.임아진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동안 두 사람의 몸이 거칠게 뒤엉켰다. 칼날이 푹 소리를 내며 이정호의 배를 깊이 찔렀다.피가 짙은 회색 정장을 빠르게 적시고 옷자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임아진은 제자리에서 굳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민윤희도 크게 당황했지만 곧 핸드폰을 꺼내 응급 구조를 요청했다.보안요원들이 빠르게 달려와 다친 이정호를 구급차에 태웠다.칼을 든 임아진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됐다.민윤희는 넓은 상담실에 홀로 앉아 한참 동안 마음을 진정시켰다.호흡이 차츰 고르게 돌아오자 비서가 이재준과 이우희의 손을 잡고 민윤희 앞에 섰다.“사모님... 사모님은 두 아이의 친어머니이십니다. 대표님이 다치셨으니 잠시만 아이들을 돌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민윤희는 잔뜩 주눅 든 두 아이를 바라보다가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다만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래요. 하지만 이정호가 퇴원하는 즉시 데려가라고 하세요. 앞으로 이정호와 관련된 일에 다시는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을 들은 이재준과 이우희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예전에는 민윤희가 사라지기만 바랐다. 막상 정말 떠나자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했다.옷과 양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숙제하느라고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맛있는 쿠키와 케이크도 먹을 수 없었다.늘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던 임아진도 차츰 인내심을 잃었고, 가끔은 아
10년 전 해경대학교에서 최태빈과 이정호는 누구나 인정하는 두 명의 수재였다.한 사람은 날카로운 재능을 숨김없이 드러냈고 머리 회전이 빨랐다.다른 한 사람은 침착하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한번 정한 일은 망설임 없이 밀어붙였다.수업 중 토론부터 각종 경진대회 순위까지 두 사람은 늘 팽팽하게 맞서며 한 번도 양보하지 않았다.졸업한 지 여러 해가 흐른 뒤에도 서로는 상대의 사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 1순위이자 눈엣가시였다.최태빈이 A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한 뒤에야 이정호의 경쟁자 명단에서 그 이름이 차츰 사라졌다.이정호는 오랜 세월 뒤의 재회가 이런 자리에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나도 여기서 널 볼 줄은 몰랐어.” 최태빈이 옅게 웃었다. “윤희 씨와 이혼한 뒤에 네가 임아진과 바로 결혼할 줄 알았거든.”이정호의 미간이 더 깊이 접혔다. “이혼은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야. 아진이와도 결혼하지 않아. 지금도, 앞으로도.”“왜?” 최태빈이 눈썹을 들며 속을 헤아리듯 바라봤다. “대학 시절에 너와 임아진은 모두가 인정하는 연인이었잖아. 네 집안에서 반대하지 않았다면 둘 사이 아이도 벌써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됐겠지.”“다 지나간 일이야.” 이정호가 낮게 말했다. “내가 윤희와 결혼하기로 선택했다는 건, 나한테는 윤희가 더 중요했다는 뜻이야.”최태빈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한 채 웃었다.“윤희 씨가 너한테 중요하다고? 그럼 윤희 씨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무슨 맛이지?”이정호의 목울대가 느리게 움직였다.“몰라? 그럼 가장 좋아하는 색은?”최태빈이 민윤희에 관한 질문을 잇달아 던졌지만 이정호는 어느 하나에도 답하지 못했다.강의실에서 민윤희가 아이들에 관해 물었을 때도 지금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떠올랐다.“이정호, 너는 예전처럼 오만하구나.” 최태빈은 웃음을 거두며 서늘하게 말했다. “윤희 씨에게 시간과 마음을 쓰는 건 하찮게 여기면서, 윤희 씨가 예전처럼 계속 너를 사랑하기만 바랐어.”“사람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