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전생에서 민윤희는 마치 유령처럼 존재감 없는 남편과 살았다. 아이를 낳던 날에도 남편 이정호는 곁에 없었다. 과다 출혈로 몇 번이나 의식을 잃으면서도 민윤희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온 것은 연결되지 않는 통화음뿐이었다. 의료진이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정신을 붙들었고, 민윤희는 떨리는 손으로 응급 수술 동의서에 제 이름을 적어야 했다. 아이가 열이 나서 40도까지 오르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정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민윤희는 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버티다 끝내 기력이 다해 병원 복도에 쓰러졌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에도, 그는 여전히 곁에 없었다. 차갑게 식은 부모님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돌아온 민윤희에게 큰아버지는 다짜고짜 뺨부터 올려붙였다. 남편 마음 하나 붙잡지 못한 탓에, 평생 체면을 지키며 살아온 부모가 사위의 마지막 배웅조차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며 몰아세웠다.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라는 모진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쉰여덟이 되던 해. 말기 암을 선고받은 민윤희의 삶도...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View More당시 임아진은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한 특수상해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출소한 뒤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세상은 이미 크게 달라져 있었다.수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냈으나 답이 오지 않거나 전과 경력 때문에 채용을 거절당했다.막다른 길에 몰린 임아진은 이정호를 찾아가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부탁하려 했다.하지만 HT그룹 건물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경비원이 입구에서 막아선 뒤 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대표님께서 이 돈을 받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임아진은 HT그룹 건물 앞에 서서 봉투를 쥔 채 원망과 후회에 휩싸였다.이정호와 결혼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HT그룹 안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마지막에 이런 처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이정호와 임아진이 고통에 빠져 사는 동안, 민윤희의 삶은 훨씬 풍성하고 눈부시게 흘렀다.5년 동안 ‘미야네 놀이터’는 계속 성장했다. 구독자는 500만 명에서 2,000만 명으로 늘었고, 민윤희가 펴낸 육아 서적 세 권은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삶은 알차고 자유로웠다. 곁에는 최태빈과 최은길, 다정한 두 부자가 있었다.최태빈은 민윤희가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상담센터 근처에 정원이 딸린 집을 마련했다. 바쁜 일상 사이에 편히 쉴 공간이 생겼다.민윤희가 사람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불필요한 식사 약속은 전부 대신 거절해 주고, 민윤희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최은길도 예전의 수줍고 조심스러운 아이에서 밝고 씩씩한 소년으로 자랐다.최은길의 생일을 앞두고 민윤희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 집 안을 완전히 새롭게 꾸몄다.사람을 불러 색색의 풍선을 백 개 넘게 달고, 벽에는 최은길이 좋아하는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가득 붙였다.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도 직접 만들었다.최태빈은 주방 문틀에 기대 바쁘게 움직이는 민윤희를 지켜봤다.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힘든 질투가 살짝 묻어났다. “윤희 씨는 저보다 은길이를 더 잘 챙
민윤희가 이정호의 이름을 다시 들은 것은 5년 뒤 어느 오후였다.육아 강연을 막 마친 날이었다. 상담센터의 인턴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HT그룹 이정호 대표가 또 온라인에서 화제예요. 집안일 때문에 집중하지 못해서 중요한 협상이 결렬됐다는 말이 있던데요.”자료를 정리하던 민윤희의 손이 잠깐 멈췄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일에 집중하세요.”인턴은 혀를 살짝 내밀고 얼른 핸드폰을 치웠다.그래도 이정호에 관한 말은 작은 돌멩이처럼 민윤희의 마음에 떨어져 아주 희미한 파문을 남겼다.아직 마음이 남아서가 아니라, 세월이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5년 전만 해도 평생 시선이 머물렀던 남자는 이제 민윤희의 삶과 아무 상관 없는 ‘뉴스 속 인물’이 되어 있었다.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이정호의 지난 5년은 평탄하지 않았다.이정호는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온 뒤 해외 업무 대부분을 미루고 가정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하지만 이정호는 민윤희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인내나 세심함이 부족했다.세월이 흐르고 사춘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두 아이는 거칠게 반항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계속 나빠졌다.이재준은 중학생이 되자 일찍 이성 교제에 빠졌다.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고, 중간 정도였던 성적은 반에서 꼴찌에 가깝게 떨어졌다.이우희는 더 심했다. 학교 밖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무단결석을 하고 술집을 드나들었다. 싸움까지 벌여 이정호가 학교에 불려 간 일도 여러 번이었다.이정호는 아이들을 바로잡으려고 많은 방법을 시도했다.이재준에게 가장 실력 좋다는 과외 교사를 붙였지만, 이재준은 수업에 협조하지 않았고 온갖 못된 장난으로 교사를 쫓아냈다.이우희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방문을 잠근 적도 있었다. 이우희는 이정호가 방심한 틈을 타 창문으로 빠져나갔다.한 번은 화를 참지 못한 이정호가 이우희의 뺨을 때렸다.이우희는 울기는커녕 목을 빳빳이 세우고 소리쳤다. “아빠는 아빠 자격도 없어! 엄마가 있
집으로 돌아온 이정호는 모든 업무를 미루고 병원에 남아 두 아이를 돌봤다.하지만 잠에서 깬 아이들은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엄마가 아닌 아빠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어느 날 밤, 이우희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중얼거렸다. “엄마가 끓여 준 죽 먹고 싶어.”이정호는 인터넷 영상을 보며 서툰 손으로 죽을 끓였다.그릇을 침대 곁으로 가져가자 이우희는 손으로 세게 밀어냈다.뜨거운 죽이 바닥에 모조리 쏟아졌다.“싫어. 이건 엄마가 만든 게 아니야!” 이우희는 서럽게 울었다. “엄마는 늘 죽에 달콤한 대추를 넣어 줬어. 아빠는 우리가 뭐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바닥에 흩어진 죽을 바라보던 이정호는 가슴을 무거운 돌에 얻어맞은 듯했다.예전에는 민윤희가 없어도 집안이 달라질 것 없이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다.이제야 민윤희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이정호는 그 뒤로 온갖 방법을 써서 아이들에게 잘해 주려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민윤희를 흉내 내 냉장고에 ‘우희야, 우유 마시는 것 잊지 마’, ‘재준이 수학 숙제 확인하기’라고 쓴 메모를 붙였다.이우희는 메모를 보자 눈가를 붉혔다. 종이를 바로 뜯어 쓰레기통에 버렸다.주말에는 혼자 두 아이를 공원에 데려갔다. 예전에 민윤희가 자주 사 주던 딸기 맛 솜사탕도 일부러 샀다.그러나 아이들은 솜사탕을 먹으면서도 풀이 죽은 표정이었고, 좀처럼 웃지 않았다.밤에는 아이들 곁에 앉아 숙제를 봐주었다.이정호는 연습장 가득 그림을 그려 가며 세 번이나 설명했다. 그래도 이재준은 이해하지 못했다.이정호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묻어나자 이재준이 불쑥 말했다. “엄마는 내가 모르면 여러 번 설명해 줬어. 그런데 아빠처럼 짜증 내지는 않았어.”이정호는 말을 잃었다. 마음이 쓰리고 시렸다.예전에는 민윤희가 일을 느리게 하고 같은 말을 많이 한다며 늘 못마땅해했다.이제야 그 ‘느림’이 인내였고, 많은 말이 전부 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윤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내 아이들이라 차마 외면하지 못했고, 그래서 계속 물러나기만 했어요. 하지만 여러 해를 바치고도 돌아온 결과가 이것이었잖아요.”말을 마친 민윤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이정호가 입원한 뒤에도 민윤희의 생활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어느 날, 민윤희는 앞서 이정호의 집착을 막아 준 일에 감사하려고 최태빈을 찾아갔다.최태빈은 사무용 의자에 앉아 옅게 웃었다. “정말 고맙다면 부탁 하나 들어줘요.”“무슨 부탁인데요?”“은길이 윤희 씨를 무척 좋아해요.” 최태빈은 말을 고른 뒤 조심스레 물었다. “은길의 임시 엄마가 되어 주겠어요?”최은길은 최태빈의 형이 낳은 아이였다.몇 년 전 형과 형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떠나기 전 최태빈에게 아이를 맡겼다.최태빈은 그 뒤 아버지를 자처하며 최은길을 반듯하고 속 깊은 아이로 키웠다.민윤희도 최은길을 무척 아꼈기에 고민하지 않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그날 저녁, 최태빈은 아늑한 분위기의 양식당을 예약하고 이 소식을 최은길에게 전했다.최은길의 두 눈이 환하게 빛났다.친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로 최은길은 오랫동안 모성애라 부를 만한 온기를 느끼지 못했다.민윤희가 따뜻하게 말을 걸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아 줄 때마다, 최은길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이제부터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최태빈은 손을 뻗어 최은길의 이마를 가볍게 톡 건드렸다. 말투에는 애정이 넘쳤다.최은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책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나무배를 조심스럽게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민윤희에게 내밀었다.“엄마, 제가 나무를 깎아서 만든 배예요. 엄마가 앞으로 가는 길에는 이 배처럼 순풍만 불고,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민윤희는 나무배를 받아 들었다. 코끝이 시큰해지는 따뜻함이 가슴으로 밀려왔다.이재준과 이우희를 여러 해 동안 정성껏 돌봤지만 아이들이 손수 만든 선물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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