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님, 사적인 감정은 착륙 후에

기장님, 사적인 감정은 착륙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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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젯밤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죠.” 항공사고 조사를 계기로 악연이 된 국제선 기장 강태준과 항공 전문 변호사 윤서연.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두 사람은 해외 출장 중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다. 서로의 취향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이도 아니다. 그저 하룻밤의 실수였을 뿐. 그렇게 깔끔하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업무적 만남 속에서 두 사람은 또다시 선을 넘고, 결국 감정 없는 비밀 관계를 시작한다. 문제는 모든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던 오만한 남자, 강태준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나 싫다면서요. 그런데 왜 자꾸 나만 보면 도망갑니까?” 절대 사랑할 일 없다고 확신했던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혐관 로맨스. 과연 먼저 사랑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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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أول

1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여자와 잤다

강태준은 낯선 천장을 보며 눈을 떴다. 처음 느낀 건 지독한 두통이었다. 그다음은 낯선 향수 냄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허리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가느다란 팔이었다.

'…뭐야.'

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한 호텔. 어젯밤 국제 항공안전 세미나에 참석했고,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셨다. 거기까지는 기억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흰 베개 위로 흩어져 있었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린 여자가 그의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낯익은 얼굴. 아니, 낯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지난 반년 동안 자신의 신경을 가장 집요하게 긁어 댄 여자. 윤서연.

"…미친."

태준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윤서연이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윤서연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태준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젯밤의 기억이 뒤늦게 선명하게 떠올랐다.

호텔 바. 마지막 술잔. 엘리베이터.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윤서연의 눈.

‘후회할 것 같습니까?’

‘내일 생각하죠.’

그다음은.

"하…."

태준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선명했다. 자신의 셔츠 깃을 잡아당기던 손끝도,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풀어지던 표정도. 무엇보다. 평소라면 절대 들을 수 없었을 다정한 목소리까지.

그는 다시 옆을 바라봤다. 윤서연. 그 여자가 맞았다.

"진짜 돌겠네."

세상에서 가장 엮이기 싫었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그때였다.

"…몇 시예요?"

옆에서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서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전 9시 12분.

"아홉 시 넘었네요."

서연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올린 뒤, 침대 아래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태준은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윤서연 씨."

"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됩니까?"

서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기장님도 기억하시잖아요."

"……."

"그럼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요."

태준은 말문이 막혔다. 서연은 그런 그를 뒤로하고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 물소리가 들렸다. 태준은 침대에 앉아 닫힌 욕실 문을 바라봤다.

"…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 여자는 아침부터 지나치게 태연했다. 마치 어젯밤 일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그게 이상하게 자존심을 긁었다.

십여 분 뒤. 달칵. 욕실 문이 열렸다.

"일어나셨어요?"

서연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왔다. 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지금까지 자는 줄 알았습니까?"

"아직 침대에 계시길래요."

정말이지. 말 한마디를 곱게 하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뭡니까."

서연이 눈썹을 올렸다.

"뭐가요?"

"지금 이 상황."

"보시는 그대로인데요."

"윤서연 씨."

"네."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서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

"기장님은요?"

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렇지 않냐고? 당연히 아무렇지 않았다. 적어도 그래야 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됐네요."

서연은 화장대 위에 놓인 시계를 손목에 찼다. 태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상했다. 뭐가 이상한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기분이 더러웠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이렇게까지 태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디 갑니까?"

"조식 먹으러요."

"벌써?"

"아홉 시 반이에요."

태준은 침대 옆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히 오전 9시 32분.

"같이 갑시다."

서연이 돌아봤다.

"왜요?"

"왜긴. 밥 먹으러 간다면서요."

"그러니까 왜 같이 먹어야 하냐고요."

태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같이 밥 한 끼 정도는 먹는 것 아닌가. 적어도 어젯밤 같은 시간을 보냈다면. 하지만 서연의 표정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했다.

"기장님."

"말씀하세요."

"우리 어젯밤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죠."

태준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요?"

"서로 성인이고, 합의해서 있었던 일이잖아요. 굳이 의미 부여할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누가 의미 부여했습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서연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저는 이런 일로 사적인 감정이 업무에 영향을 주는 걸 싫어해요."

"……."

"기장님도 마찬가지시겠죠."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연은 그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업무적으로만 뵙겠습니다."

그녀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태준은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윤서연 씨."

서연이 돌아봤다.

"네?"

"원래 이렇게 쿨합니까?"

"무슨 뜻이죠?"

"사람이랑 자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는 거."

서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

"기장님한테 사랑이라도 고백해야 하나요?"

태준의 미간이 구겨졌다.

"말을 꼭 그렇게 합니까?"

"먼저 이상한 질문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방금요."

서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기장님.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 아니잖아요."

그 말에 태준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지난 반년 동안 얼굴만 마주치면 싸웠고, 상대의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 두 사람이 어젯밤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요."

서연이 덧붙였다.

"그냥 실수였다고 생각해요."

실수. 그 단어가 유독 귀에 거슬렸다. 태준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행이네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나도 윤 변호사랑 엮이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네. 저도요."

"……."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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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مراجعات

BT7274
BT7274
재밌어요! 흥미진진하네요.
2026-11-03 20:04:16
1
1
노에빌
노에빌
항공 기장 강태준과 항공 전문 변호사 윤서연의 혐관로맨스입니다! 하루에 1-2편씩 매일 업로드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6-11-03 15:07:1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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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فصول
1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여자와 잤다
강태준은 낯선 천장을 보며 눈을 떴다. 처음 느낀 건 지독한 두통이었다. 그다음은 낯선 향수 냄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허리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진 가느다란 팔이었다.'…뭐야.'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한 호텔. 어젯밤 국제 항공안전 세미나에 참석했고,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셨다. 거기까지는 기억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흰 베개 위로 흩어져 있었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린 여자가 그의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낯익은 얼굴. 아니, 낯익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지난 반년 동안 자신의 신경을 가장 집요하게 긁어 댄 여자. 윤서연."…미친."태준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윤서연이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윤서연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내가 지금 뭘 한 거지.'태준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젯밤의 기억이 뒤늦게 선명하게 떠올랐다.호텔 바. 마지막 술잔. 엘리베이터.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윤서연의 눈.‘후회할 것 같습니까?’‘내일 생각하죠.’그다음은."하…."태준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선명했다. 자신의 셔츠 깃을 잡아당기던 손끝도,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풀어지던 표정도. 무엇보다. 평소라면 절대 들을 수 없었을 다정한 목소리까지.그는 다시 옆을 바라봤다. 윤서연. 그 여자가 맞았다."진짜 돌겠네."세상에서 가장 엮이기 싫었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그때였다."…몇 시예요?"옆에서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서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전 9시 12분."아홉 시 넘었네요."서연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올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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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최악의 첫만남
찰칵. 문이 닫혔다. 태준은 한참 동안 닫힌 문을 바라봤다."…와."기가 막혔다.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여자에게는 없었다. 물론 자신도 진지한 관계를 원한 건 아니었다. 윤서연과 연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성격은 더럽고, 말끝마다 사람을 긁어 대고, 자신이 하는 말에는 반드시 반박부터 하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랑 무슨 연애를 한다고. 그런데.'그냥 실수였다고 생각해요.'왜 자꾸 그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태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집어 들다가 잠시 멈췄다. 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서연이 급하게 잡아당기던 순간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손안의 셔츠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헛웃음을 터뜨렸다."사람을 아주 우습게 아네."태준은 셔츠를 침대 위로 던졌다. 다시는 엮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윤서연과는. 절대로.***6개월 전. 인천국제공항. 오후 4시 17분.강태준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열두 통. 문자 메시지 일곱 개. 그중 여섯 개가 항공사 운항본부에서 온 것이었다.[강 기장님, 귀국하시는 대로 연락 부탁드립니다.][사고 관련 법률 검토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피해 승객 측 법률대리인이 선임되었습니다.]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또 시작이군.'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3주가 지났다. 인천발 싱가포르행 국제선. 순항 중 예상보다 강한 난기류를 만나면서 기내에서 승객 여덟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 두 명은 골절상을 입었고, 한 명은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태준은 즉시 객실 승무원에게 상황을 확인하고, 관제기관과 협의해 회항이 아닌 목적지까지의 운항을 이어 갔다.착륙은 안전하게 마쳤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고 당시 기상 정보. 고도 변경 요청 시점. 객실 안전벨트 표시등 작동 시점. 승무원들의 안전 조치. 모든 것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태준은 조사에 성실히 협조했다. 자신의 판단에 책임질 자신이 있었으니까. 문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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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 여자, 또 만났습니다
강태준은 원래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뒤끝을 남길 만큼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거리를 두면 그만이었다. 굳이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상대를 이해하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랐다."…윤서연."태준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항공사 법무팀에서 전달받은 사고 관련 추가 질의서였다. 총 열두 장. 질문만 서른일곱 개. 그중 절반 이상이 자신의 판단과 관련된 내용이었다.태준은 첫 장을 넘겼다. 사고 발생 전 기상레이더에 표시된 강수 구역의 범위 및 강도에 대한 기장의 인식. 두 번째 장. 고도 변경 요청 시점과 관련하여 당시 관제기관과 교신한 구체적인 경위. 세 번째 장. 객실 승무원에게 안전벨트 착용 안내를 지시한 시점과 판단 근거."하."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쯤 되면 자신이 비행을 한 건지, 시험을 본 건지 모르겠다. 물론 사고 조사의 필요성은 이해했다. 승객들이 다쳤고, 원인을 규명해야 했다. 기장으로서 그 과정에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말을 꼭 이렇게 해야 하나.'태준은 질의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 맨 아래에 적힌 이름. 법률대리인 윤서연. 그는 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똑. 똑. 똑."강 기장님."운항본부 사무실 문이 열리며 박지훈 부기장이 고개를 내밀었다."여기 계셨네요.""왜.""아까 법무팀에서 연락 왔습니다."태준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뭐라고.""오늘 오후 세 시에 추가 면담 요청이 들어왔답니다."펜을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누가.""윤서연 변호사요.""…….""이번에는 기장님하고 개별적으로 확인할 내용이 있다던데요."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 여자, 할 일 없답니까?"지훈이 눈을 깜빡였다."네?""질문이 서른일곱 개면 충분하지 않나.""아…….""서류로 답하면 될 걸 왜 굳이 사람을 불러."지훈은 잠시 태준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기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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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강태준 기장은 제 취향 아니에요
"사고 발생 약 18분 전, 기상레이더에 강한 강수 구역이 표시됐다고 하셨죠.""그렇습니다.""당시 해당 구역을 우회하지 않으신 이유는요?""우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만큼 위험한 구역은 아니었습니다.""그 판단은 어떤 자료를 근거로 하셨습니까?""기상레이더와 관제 정보, 당시 항로 상황입니다.""그럼 그 자료를 함께 확인해도 될까요?"태준은 잠시 서연을 바라봤다."윤 변호사님.""네.""기상레이더 화면을 보실 줄 압니까?""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해석은 가능합니다.""그럼 이게 뭔지 아십니까?"태준은 준비해 온 자료를 펼쳤다. 기상레이더 화면을 재구성한 그림이었다. 서연은 자료를 가까이 끌어당겼다."강수 강도를 나타내는 구역으로 보이네요.""그렇죠.""그런데요?""이 화면만 보고 난기류의 정확한 강도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알고 있습니다."태준이 멈칫했다."…압니까?""네. 기상레이더가 모든 형태의 난기류를 직접 탐지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는 공부하고 왔습니다.""…….""그래서 여쭤보는 거예요. 당시 다른 기상 정보도 확인하셨는지."태준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가 서류를 넘겼다."확인했습니다.""어떤 자료였습니까?""항로상 기상 정보와 다른 항공기들의 보고를 참고했습니다.""그 자료도 제출 가능할까요?""회사 측과 확인해 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서연은 빠르게 메모했다. 태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공격하려는 질문처럼 들렸는데. 막상 설명을 시작하자 그녀는 생각보다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다. 모르는 부분은 인정했고, 필요한 부분은 다시 물었다.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다음 질문드릴게요."서연이 고개를 들었다."사고 직전, 객실 승무원에게 착석 지시를 내리셨다고 했는데요.""네.""당시 기장님은 난기류의 강도가 예상보다 심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건가요?"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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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오늘도 쉽지 않겠네
같은 시각. 강태준은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저녁으로 주문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방금 전 통화 기록. 윤서연. 통화 시간 1분 43초. 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왜 전화를 했지.'자료 관련 내용은 사실이었다. 다만 굳이 지금 전화할 필요는 없었다. 내일 법무팀을 통해 전달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저녁은 먹었습니까?'그런 쓸데없는 질문까지 했다. 태준은 휴대폰을 소파에 던졌다."미쳤나."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윤서연이 밥을 먹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인가. 그 여자가 밤을 새우든, 회사에서 살든. 자신이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그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태준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순간 손이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었다.[박지훈: 기장님 내일 오전 브리핑 시간 변경됐습니다.]태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몇 초 뒤. 다시 집어 들었다. 윤서연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자신이 보낸 것이었다.[통화 가능합니까?]그 아래에는 서연의 답장.[네. 전화 주세요.]태준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별걸 다 신경 쓰네."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5분 뒤. 그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메시지를 작성했다.[밥은 먹고 일하십시오.]보내기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태준은 문장을 읽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전부 지웠다."…내가 왜."휴대폰을 내려놓은 태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저. 윤서연이라는 여자가 지나치게 거슬릴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다음 날 오전. 에어라인 운항본부.태준은 예정된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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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저런 여자는 처음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서연은 새로운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사고 당일 해당 항로를 통과했던 다른 항공편의 기상 관련 보고 자료였다."이번에 확보한 자료입니다."서연이 화면을 가리켰다."사고 발생 약 25분 전, 인근 항로를 운항하던 항공편에서 강한 난기류를 경험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태준은 자료를 바라봤다."확인했습니다.""그런데 기장님 항공편의 운항 기록에는 해당 보고를 전달받았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모든 교신 내용을 운항 기록에 따로 기재하는 건 아닙니다.""그렇다면 실제로 전달받으셨는지 확인이 필요하겠네요.""그건 관제 교신 기록을 확인하면 됩니다.""그래서 요청했습니다."태준이 고개를 들었다."이미요?""네."서연은 아무렇지 않게 다음 자료를 넘겼다."다만 그 기록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당시 기장님이 해당 정보를 알고 계셨는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태준은 팔짱을 꼈다."그럼 기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기다리는 동안 다른 자료도 검토할 수 있죠.""정말 부지런하시네요.""감사합니다.""칭찬 아닙니다.""알아요."서연이 미소 지었다."그래도 감사하다고요."태준은 입을 다물었다. 저 여자와 대화하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비꼬면 받아치고. 화를 내면 차분해지고.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려 하면 오히려 자신이 곤란해졌다. 정말이지. 피곤한 여자였다."그리고 한 가지 더요."서연이 새로운 문서를 펼쳤다."사고 당시 운항통제 부서에서 해당 항로의 기상 위험 가능성을 검토한 내부 기록이 있습니다."법무팀장의 표정이 굳었다."윤 변호사님, 그 자료는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부 문서입니다.""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위와 작성 경위를 확인하고 싶습니다."태준은 자료를 내려다봤다. 처음 보는 문서였다."이게 뭡니까?"서연이 그를 바라봤다."기장님은 처음 보세요?""그렇습니다.""사고 발생 전날 작성된 운항 위험 검토 자료로 보입니다."태준의 표정이 차갑게 가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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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
서연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 진짜."세상에 저런 남자가 또 있을까. 자존심 세고. 말투 거만하고.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남의 성격까지 고치라고 했다."누가 누구한테."서연은 휴대폰을 꺼냈다. 이정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도 강 기장이랑 싸웠냐?]서연은 곧바로 답장했다.[네.][ㅋㅋㅋㅋ 이번엔 또 왜?][그냥 존재 자체가 짜증 나요.][그 정도면 거의 운명 아니냐?]서연은 인상을 찌푸렸다.[선배.][응.][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메시지를 보내고 휴대폰을 넣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윤 변호사님."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의 걸음이 멈췄다. 설마. 그녀가 천천히 돌아봤다. 강태준이었다.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왜요."태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가왔다."차 어디 세웠습니까?""왜요?""물어보지도 못합니까?""네. 용건 없으면요."태준의 미간이 구겨졌다."말투 참.""기장님도 만만치 않으세요."태준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이쪽 주차장 출구 공사 중입니다."서연이 눈을 깜빡였다."네?""서쪽 출구 막혔다고요. 반대편으로 나가셔야 합니다."서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아.""아까 안내 방송 나왔는데 못 들었습니까?""회의 중이었잖아요.""그렇겠죠."태준은 무심하게 턱짓했다."저쪽으로 가십시오."서연은 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태준을 봤다."그거 알려 주려고 따라오셨어요?"태준의 표정이 굳었다."누가 따라왔답니까?""그럼요?""나도 주차장 가는 길입니다.""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그녀가 돌아섰다. 태준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윤 변호사님."서연이 또 돌아봤다. 이번에는 표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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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혹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
강태준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젯밤부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윤서연. 그 여자 때문이었다.'선약 있어요.'태준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도 선약. 오늘도 선약. 대체 무슨 약속이 그렇게 많은 건지. 물론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윤서연이 누구를 만나든, 어디서 저녁을 먹든, 몇 시에 집에 들어가든. 그건 전적으로 그녀의 사생활이었다. 그런데.'남자라도 만나나.'어젯밤부터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태준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하."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왜 그 여자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싫었다. 말끝마다 사람을 긁어 대고, 사사건건 반박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에게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사람을 너무 거슬리게 하니까.'그뿐이었다. 태준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9시 12분. 윤서연과의 약속까지 48분 남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오전 9시 43분. 윤서연은 로펌 회의실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강태준이 직접 설명하겠다는 내용은 사고 당시 기상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전날 통화에서 그는 전화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운항 자료나 도표를 가지고 올 가능성이 컸다. 서연은 관련 자료를 미리 펼쳐 놓았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윤 변호사님."비서가 고개를 내밀었다."강태준 기장님 오셨습니다."서연이 시계를 확인했다. 9시 43분.'…또 일찍 왔네.'"들어오시라고 해 주세요."잠시 후. 강태준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검은색 셔츠에 짙은 회색 슬랙스.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안녕하세요, 기장님.""네."태준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서연이 물었다."커피 드릴까요?""됐습니다.""물은요?""괜찮습니다.""그럼 바로 시작할까요?"태준이 시계를 확인했다."아직 열 시
last updateآخر تحديث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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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거지?
면담이 끝난 건 오전 11시 26분이었다. 서연은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오늘 설명해 주신 부분은 검토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태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럼 다행이군요.""추가로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윤 변호사님은 사람 질리게 하는 데 재능이 있군요."서연이 미소 지었다."기장님도 사람 피곤하게 하는 데 재능 있으세요.""…….""서로 재능이 확실하네요."태준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참 말 잘하십니다.""감사합니다.""칭찬 아닙니다.""알아요."태준은 결국 서류 가방을 닫았다."그럼 갑니다.""네. 안녕히 가세요."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돌아봤다."윤 변호사님."서연이 고개를 들었다."네?""점심은 먹습니까?"서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네?""점심이요.""먹겠죠.""누구랑."서연의 눈썹이 올라갔다."기장님.""…….""진짜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태준의 표정이 굳었다."아니라고 했잖습니까.""그럼 왜 자꾸 물어보세요?""그냥.""그냥?""…예의상."서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태준의 미간이 구겨졌다."뭐가 웃깁니까?""아니, 기장님."서연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예의가 참 많으시네요.""…….""저한테만 유독."태준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낮게 말했다."윤서연 씨.""네.""착각하지 마십시오.""네.""내가 그쪽한테 관심 가질 일은 절대 없으니까."서연은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다행이네요.""…….""저도 기장님한테 관심 없거든요."태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서연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그럼 진짜 안녕히 가세요."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회의실을 나섰다. 문이 닫혔다. 서연은 고개를 저었다."진짜 별난 사람이야.“***엘리베이터 앞. 태준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34분. 점심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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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고마운 건 아니었다
강태준은 오늘도 윤서연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정확히는 어제 오후부터였다.‘혹시 제가 다른 이유로 전화했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그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물론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었다. 윤서연이 자신에게 업무 외적인 이유로 연락할 가능성 따위는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그럼요?'그렇게까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할 필요가 있었나. 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참나."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어제부터 벌써 세 번째였다. 윤서연과의 통화 기록을 확인한 것이. 물론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사고 관련해서 추가로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뿐이었다."강 기장님."박지훈이 운항본부 사무실로 들어왔다."법무팀에서 연락 왔습니다."태준이 고개를 들었다."뭐라고.""오늘 오후에 사고 관련 내부 회의가 잡혔답니다.""몇 시.""세 시요.""윤서연 변호사도 오나?"지훈이 멈칫했다. 태준은 순간 자신의 입을 원망했다. 왜 하필 그 이름이 먼저 튀어나온 건지."아니."그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어제 그 여자가 수정 이력 얘기를 했으니까. 관련 자료가 나왔나 해서.""아."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윤 변호사님은 안 오십니다."태준의 손이 멈췄다."…안 와?""네. 오늘은 회사 내부 회의라서요.""그렇군."태준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지훈은 그런 그를 잠시 바라봤다."기장님.""왜.""혹시 기대하셨어요?"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뭘.""윤 변호사님 오시는 거요.""박지훈.""네.""너 요즘 많이 한가하지?""…아닙니다.""그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해.""네."지훈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돌아서는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태준은 그 모습을 노려봤다."웃냐?""아닙니다.""웃었잖아.""기침했습니다.""기침을 그렇게 해?"지훈은 결국 입술을 깨물었다. 태준은 짜증스럽게 서류를 덮었다."아, 진짜."요즘은 왜 이렇게 주변에 재수 없는 인간들만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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