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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Penulis: 양순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4-06 10:08:45

대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레온은 그대로 굳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로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저의 폐하를 너무나 연모하거든요.]

그 말은 독처럼 달콤했고,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연모……?’

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로제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던 수줍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어떠했나.

첫날밤조차 그녀가 겁을 먹을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

그런데 오늘 본 로제는 달랐다.

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일’을 운운하고, 적국 황제를 말로 짓밟으며 비웃었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앉은 것처럼.

‘겉모습은 로제인데 다른 사람 같아.’

그 괴리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또각. 또각.

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적막을 깼다.

“폐하.”

은근히 낮고 단정한 목소리.

벨라리스였다.

그림자처럼 다가온 그녀가 레온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입가엔 정중하지만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황후께서…… 카시안 폐하에게 꽤나 정성을 들이시는 모양입니다.”

레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조심해. 황후는 나를 위해 그 오만한 자를 상대한 거야.”

“과연 그럴까요?”

벨라리스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고상함과 정숙함을 목숨처럼 여기시던 분이, 갑자기 왜 그런 파격적인 언사를 하셨을까요? 그것도 카시안 같은 색정 앞에서 말입니다.”

“그건…… 카시안의 기를 꺾으려고…….”

“아니요, 폐하. 여인의 도발은 때로 가장 노골적인 유혹이기도 합니다. 강한 사내의 승부욕을 자극해 자신에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죠.”

“로제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레온이 거칠게 소리쳤지만, 벨라리스는 여유롭게 눈을 가늘게 떴다.

“폐하께서 아시는 황후는 어제의 황후겠지요. 하지만 오늘 보신 그 여자는…… 아르센의 힘으로는 드라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영리한 여우였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레온의 가슴팍을 가볍게 스쳤다.

“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죽는 것보다, 새로운 선장에게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르죠. 아까 그 밤일 이야기 말입니다…….”

벨라리스의 목소리가 레온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폐하를 치켜세워주는 척하면서, 카시안에게는 나는 이렇게 뜨거운 여자다라고 광고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전쟁광이 이제 황후 폐하를 어떤 눈으로 보게 될지, 정말 모르시겠어요?”

“……!”

레온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정곡이었다.

카시안이 떠나기 전 로제를 보던 그 굶주린 붉은 눈동자.

그리고 로제가 자신에게 밀착하며 보여준 그 과감한 유혹.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카시안이라는 더 강한 남자를 낚기 위한 '미끼'였다면?

“사람은 변합니다, 폐하. 특히… 더 강한 힘을 목격했을 때는요”

벨라리스는 레온의 흔들리는 동공을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눈에 보이는 가짜 사랑 고백에 취해 계시다간, 가장 믿었던 침실에서부터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황후는 이미 폐하가 아닌, 카시안을 보고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벨라리스는 조용히 물러났다.

문이 닫히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지만, 레온의 머릿속은 폭풍이 몰아치듯 어지러웠다.

‘로제가…… 나를 버리려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하고 싶었지만, 오늘의 로제는 너무나 대담하고 낯설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무능함에 실망해 벌써 다음 남편을 고르고 있는 거라면?

“……로제.”

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정략이었지만, 다른 후보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해서 맞이한 아내였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은 이제, 가장 잔혹한 의심과 소유욕이 되어 그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

별궁으로 향하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봄바람이 스칠 때마다 잔가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뿐, 아르센의 하인들은 카시안이 풍기는 살기에 눌려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카시안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훑었다.

아르센의 궁정은 아름다웠으나, 그에게는 그저 부수기 딱 좋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어차피 시들 꽃 아닌가. 참 쓸데없는 것에 정성을 쏟는군.”

카시안이 장갑을 벗어 던지며 낮게 읊조렸다.

뒤따르던 참모가 멈칫하자,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본궁 쪽을 바라보았다.

“봤나? 이 나라 사내들은 계집처럼 분을 바르고 비단 리본을 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사내라면 마땅히 풍겨야 할 피 냄새와 땀 냄새 대신, 역겨운 꽃향기나 풍기면서 말이야.”

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번뜩였다.

아르센의 나태함은 그에게 혐오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정복욕을 자극했다.

“평화는 힘의 균형이 있을 때만 유지되는 법이지. 하지만 저 황제 꼴을 보니, 그 저울추는 이미 박살 난 모양이야.”

참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계획대로 당장 압박을 시작할까요?”

카시안은 가볍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냉소에 가까웠다.

“아니. 당장 무너뜨리기엔…… 아까 본 게 너무 흥미로워서 말이지.”

참모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황후 로제. 카시안의 적안이 아까 로제가 서 있던 테라스 방향을 정확히 꿰뚫었다.

“아르센 사람들은 머리에 꽃밭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그 황후는…… 제법 날이 서 있더군.”

“매력적인 여인이었죠. 폐하의 취향에도…….”

“취향?”

카시안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참모의 목등등이 순간 툭 하고 굳었다.

“내 밑에 깔려 있을 때나 매력적인 거지. 이미 다른 놈을 섬기고 있다면…… 그건 부숴버려야 할 장애물일 뿐이야.”

카시안은 로제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제 남편이 밤일엔 얼마나 열정적인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제 남편의 밤일을 과시하던 그 도발적인 입술.

그 눈빛은 수줍은 황후의 것이 아니라, 상대를 어떻게 하면 미치게 만드는지 정확히 아는 요부의 것이었다.

‘나를 앞에 두고 감히 그 애송이 같은 놈을 추켜세워?’

카시안의 아랫배가 기분 나쁜 열기로 뜨거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로제가 말한 그 열정이 제 것이 되었을 때, 저 고고한 황후가 어떤 소리로 울지 확인하고 싶다는 가학적인 정복욕이었다.

“일정을 좀 더 길게 잡아야겠어.”

카시안이 혀로 입술을 느릿하게 축였다.

“그 황후가 말한 열정이 진짜인지, 아니면 나약한 남편을 지키기 위한 가련한 연극인지…… 직접 확인해봐야겠군. 만약 연극이라면, 그 대가는 몸으로 치러야 할 거야.”

그는 별다른 감정도 없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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