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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作者: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6 10:08:25

“황후 폐하를 들라 하라.”

레온은 목소리 아래 깔린 비릿한 긴장을 억눌렀다.

대접견실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자, 은빛 스며든 틈 사이로 한 겹의 드레스 자락이 부드러운 광채를 머금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빛과 금빛이 기묘하게 얽혀 흐르는 듯한 머리칼이었다. 햇빛 아래 흔들리는 그 물결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은 얼음 조각처럼 투명하고도 서늘했다.

은회색과 청색이 겹겹이 섞인 로제의 눈동자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얇은 실크 드레스가 허벅지 곡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밀착되었다 사라졌다.

레온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르센의 명문가 영애로 자라 성문에 발 한 번 내디딘 적 없다던 정숙한 아내. 어젯밤, 긴장으로 파들거리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겨우 첫날밤을 치렀던 그 수줍던 여인은 어디로 간 걸까.

지금 대접견실로 들어오는 로제는, 마치 수천 명의 사내를 발밑에 꿇려본 여왕 같은 기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알던 로제가 맞아?’

레온은 등줄기를 훑는 기묘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어제의 그녀가 꺾기 미안한 하얀 꽃이었다면, 오늘의 로제는 그 향기만으로 사람을 질식시킬 듯한 붉은 장미였다. 그 낯선 괴리감이 레온의 소유욕을 기묘한 방향으로 자극했다.

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노골적으로 로제에게 멈췄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의 동공이 확장되듯,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목덜미와 가슴의 굴곡을 타고 집요하게 내려갔다. 예의나 품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탐닉의 시선이었다.

로제는 조용히 레온의 곁에 서서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후, 로셀린입니다. 드라켄 황제 폐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청아한 목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키자, 카시안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황후 폐하. 레온하르트 폐하의 곁은…… 평화롭고… 안온해 보이는군요”

로제가 대답 없이 자리에 앉자, 카시안은 다리를 꼬며 오만한 본심을 드러냈다.

“여성은 치장과 품위를 통해 남자의 승전욕을 고취하는 존재지요. 황후 폐하처럼 탐스러운 분이라면…… 아르센의 황제가 제국을 돌볼 정신이 있겠습니까? 낮이나 밤이나 침소에만 박혀 있고 싶겠지.”

노골적인 성희롱이었다.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황제의 밤을 달래는 '장식품'이자 '배출구'로 깎아내리는 발언에 접견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레온의 얼굴이 단숨에 강직해졌다.

전생의 로제라면 수치심에 고개를 숙였겠지만, 지금의 로제는 달랐다. 그녀는 카시안의 적안을 정면으로 꿰뚫어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카시안의 붉은 적안을 정면으로 꿰뚫어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치장과 품위가 그저 남자의 정복욕이나 부추기는 도구로 보이신다니. 드라켄의 황제께선 세상을 참 단순하게 보시는군요.”

로제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내용은 날카로운 면도날 같았다.

“하긴, 평생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만 누비시느라 여자를 ‘정복해야 할 고기’ 정도로만 배우셨다면 그럴 수 있겠네요.”

카시안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예상 밖의 날 선 대답이었다.

감히 타국의 황제를 ‘무식한 야만인’이라 조롱하는 발언에 귀족들이 헉, 숨을 삼켰다.

“칼날로 땅을 넓히는 건 짐승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땅을 지배하고 사람의 혼을 빼놓는 건 온전히 머리를 쓸 줄 아는 인간의 영역이죠.”

로제는 부채를 천천히 접으며,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

“낮에도 밤의 욕망에 절어계시는 폐하 같은 사내가 감히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곡을 찌르는 독설.

카시안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듯 로제를 응시했다.

방금까지 그녀를 탐스러운 전리품쯤으로 여기던 붉은 눈동자에 기묘한 열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한 독설입니다, 황후 폐하.”

카시안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고상한 지략은…… 대개 밤의 매력이 부족한 여인들이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내세우는 방어 기제지요. 꾸며도 탐스럽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카시안은 마치 정론을 말하듯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러나 황후 폐하는…… 그럴 필요가 없으신 분이지요. 머리 아픈 정치 따위는 남자들에게 맡기시고, 그저 황제의 씨를 잘 받아 잉태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여자의 진짜 자질은 국정 테이블 위가 아니라, 침대 위에서 증명하는 법이니까요.”

명백한 모욕이자, 황후를 번식용 도구로 취급하는 도발이었다.

‘이 저급한 자식이……!’

레온은 더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드래곤의 마력이 그의 주변에서 위협적으로 소용돌이쳤다.

평생을 온화하게만 자라온 그였지만, 제 아내를 노리개 취급하는 카시안의 언사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레온이 폭발하기 직전, 로제가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마치 철없는 짐승의 짖음을 구경하는 주인처럼 여유로웠다.

“당연히 잉태해야지요. 폐하의 말씀대로 황후의 자질이 그곳에 있다면 말입니다.”

로제는 슬쩍 레온의 단단한 팔뚝에 자신의 가슴을 밀착하며, 보란 듯이 고개를 기댔다.

살결이 닿는 감촉에 돌연 레온의 몸이 돌처럼 빳빳하게 굳었다.

“정략결혼이라 다들 차가울 거라 짐작하시지만…… 저는 제 남편을 너무나 연모하거든요.”

로제의 시선이 카시안을 똑바로 뚫어지게 응시했다.

“게다가 제 남편이 밤일엔 또 얼마나 열정적인지. 폐하께서는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어젯밤에도 제가 겨우 달래서 재워야 했을 정도니까요.”

“커헉……!”

옆에서 차를 마시려던 레온이 비명 같은 사레를 터뜨렸다.

얼굴이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어젯밤, 그는 로제가 아플까 봐 손 하나 대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며 쩔쩔맸었다. 그런데 지금 로제는 그를 대륙 최고의 정력가로 묘사하고 있었다.

당혹감에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레온의 몸은 정직했다.

카시안 앞에서 자신을 밤의 지배자*로 치켜세워주는 아내의 노골적인 도발에, 묘한 정복감과 함께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카시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재밌어.’

가능하다면 전리품으로 취할까 했는데, 침대 위에 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사레가 들려 괴로워하는 레온을 비웃으며 일어섰다.

“아르센의 황제께서는…… 낮에는 양 같으시더니 밤에는 늑대라도 되시는 모양이군. 부럽군요, 황후 폐하. 저런 소년 같은 얼굴로 짐승처럼 군다니.”

카시안은 로제에게 다가가며 목소리를 은밀하게 낮췄다.

“……그 정열이 나중에도 식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복상사라도 하시면, 이 아름다운 황후의 밤을 누가 위로해 주겠습니까?”

“폐하가 부끄러움이 많으셔서요. 이해해 주세요.”

로제는 지지 않고 태연하게 레온의 등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레온의 옷감 너머 척추 라인을 은밀하고 끈적하게 훑으며, 그가 느끼는 수치심과 흥분을 완전히 장악했다.

레온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카시안 앞에서 자신을 '진짜 남자'로 세워준 그녀에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종속되는 기분이었다.

“부부 금슬이 그토록 좋으시다니 다행이군요.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황후 폐하. 밤이나 낮이나 말입니다.”

카시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남긴 채 대접견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오만한 뒷모습을 보며, 로제는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뻣뻣하게 굴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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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궁의 안뜰에 발을 들여놓자, 짙은 붉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몸을 낮추었다.“드라켄의 위대한 포식자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유들유들하고 관능적인 인상.엘런은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끈적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서쪽 연합의 제2왕자, 엘런입니다. 어제 연회는 정말 대단했죠. 아르센의 황후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다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더군요. 폐하께서도 그 맛을 보셨어야 했는데.”카시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서연합의 놈들은 왜 하

  •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4화

    대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레온은 그대로 굳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로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저의 폐하를 너무나 연모하거든요.]그 말은 독처럼 달콤했고,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연모……?’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로제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던 수줍은 여인이었다.그리고 자신은 어떠했나.첫날밤조차 그녀가 겁을 먹을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그런데 오늘 본 로제는 달랐다.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일’을 운운하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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