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남편은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12.04.2026
Von:  양순이Gerade aktualisiert
Sprache: Korean
goodnovel18goodnovel
10
1 Bewertung. 1 Rezension
23Kapitel
461Aufrufe
Lesen
Zur Bibliothek hinzufügen

Teilen:  

Melden
Übersicht
Katalog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이 아이의 아비가 드라켄의 심연이든 아르센의 화염이든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이 제국을 물려받을 내 아이일 뿐이니까. 아비 노릇을 하고 싶다면, 내 발치에서 증명해 봐.“ 나를 적국에 팔아넘긴 짐승 같은 남편과 나를 전리품 취급하던 오만한 적국 황제. 내 체취와 기운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된 두 남자의 목줄을 쥐고, 가장 완벽하고 관능적인 복수를 시작한다.

Mehr anzeigen

Kapitel 1

1화. 프롤로그

패전국의 황후가 맞이한 결말은 비참했다.

적국 황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정말 이 여자를 두고 갈 텐가, 아르센의 황제여?”

로제는 고개를 들어 카시안을 보았다.

피 묻은 검을 쥔 북방의 포식자.

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러나 지독히도 오만한 시선으로 로제의 남편을 조롱하고 있었다.

“……제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오.”

레온은 차마 로제 쪽을 보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로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밤마다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을 쥐어짜 내어 그 핏줄에 흐르는 드래곤의 폭주를 잠재워 주었건만.

그 착해빠진 무능한 남편이 살기 위해 내린 결단은, 아내를 적국 황제의 침소로 팔아넘기는 것이었다.

“하, 훌륭한 군주 나셨군.”

카시안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로제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왔다.

짐승처럼 번뜩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몸을 훑어 내렸다.

“자, 네 주인이 바뀌었다. 나의 전리품.”

카시안이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이제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남편의 목숨값을 대신해, 적국 황제의 정부가 되어 밤마다 그의 아래에서 헐떡여야 하는 삶.

하지만 로제는 그 손을 잡는 대신, 성벽 난간 너머 허공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

발뒤꿈치 너머로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 아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감았다.

“……!”

“로, 로제? 안 돼!”

카시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뒤늦게 고개를 든 레온이 사색이 되어 절규했다.

“나를 전리품 삼아 욕정할 생각인가 본데.”

로제는 피식, 서늘한 비소를 흘렸다.

“당신들의 그 비겁한 거래에 이 몸을 내어줄 생각 따위 없어.”

레온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변명했다.

“미, 미안해, 로제.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제국이…… 카시안 황제께서 너를 정중히 대접하겠다고…….”

“정중한 대접?”

로제는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비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났다.

“레온, 착각하지 마. 카시안이 강해서 우리가 진 게 아니야.”

로제의 시선이 레온의 떨리는 두 손을 향했다.

드래곤의 문양이 새겨진 그 손은 대륙을 호령할 힘을 품고서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검기를 뿜어내지 못했다.

“네가 무능해서 진 거야. 네 그 나약함이, 내 헌신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하는 그 한심한 의존증이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거라고.”

“로제, 그게 무슨…….”

“넌 그저 내 치맛자락 뒤에 숨어 피를 빨아먹고 연명하던 기생충일 뿐이었어. 그런 네가, 이제는 살겠다고 나를 팔아?”

레온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로제는 성벽 난간 위로 발을 올렸다. 더 이상 치욕스럽게 살고 싶지 않았다.

“기억해, 레온. 네 무능은 죄악이야. 나는 더 이상 네 죄를 대신 짊어질 생각이 없어.”

“안 돼!!”

두 남자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로제의 몸은 이미 허공으로 기울고 있었다.

추락하는 시야 속에서, 미친 듯이 절규하며 난간으로 달려드는 레온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 늦었어.’

내 피를 빨아먹고 산 기생충.

다음 생이 있다면, 너희 둘 다 내 발치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줄 테다.

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세상이 멈췄다.

아르센의 태양이 까마득한 성벽 아래 붉게 부서져 내렸다.

**

“허억!”

로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추락의 감각에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여긴……?”

익숙한 천장. 따스한 햇살.

그리고 눅진하게 가라앉은 침실의 공기.

로제는 이불 아래로 드러난 자신의 맨 어깨와, 가슴팍에 남은 붉은 흔적들을 내려다보았다.

허리 아래를 짓누르는 뻐근함과 허벅지 안쪽의 불쾌한 열기가 생생했다.

옆을 돌아보자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남편, 레온이 보였다.

아직 피 묻지 않은 얼굴.

근심이라곤 하나 없는 저 평온한 표정.

로제는 멍하니 앞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제국력 480년.

제국이 멸망하기 3년 전의 아침.

결혼식 첫날밤을 치른 직후였다.

‘시간이……. 되돌아온 건가?’

살아 돌아왔다.

지옥 같았던 배신도, 카시안의 모욕도 없는 시간으로.

“으음, 로제…….”

레온이 잠투정하듯 뒤척이며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직 잠에 취해 로제의 목덜미에 입술을 부비는 폼이 영락없는 대형견 같았다.

전생에선 이 순진한 온기가 너무나 애틋해, 내 생명을 갉아 먹히는 줄도 모르고 그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고 역겨워.’

눅진한 정사의 흔적이 남은 침대 시트 위로 차가운 증오가 번졌다.

나를 제물로 바치고 살아남으려 했던 비겁자.

로제는 자신의 허리를 감은 레온의 손을 차갑게 쳐내려다, 이내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이 레온의 탄탄한 가슴팍으로 향했다.

저 안에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드래곤의 마력이 잠들어 있었다.

‘그래. 기회가 왔어.’

로제는 천천히 손을 뻗어 레온의 심장 부근을 훑어 내렸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레온이 흠칫 몸을 떨며 더운숨을 뱉었다.

그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

‘이번엔 네가 날 위해 죽어줘야겠어, 레온.’

네 안의 괴물을 완벽하게 다듬어 카시안의 목을 물어뜯을 사냥개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네가 나 없이는 단 하루도 숨 쉴 수 없을 만큼 내게 미쳐버렸을 때.

‘그때, 가장 처참하게 버려줄게.’

로제는 결심을 굳히며, 당황과 열기로 젖어 든 레온의 눈동자를 빤히 응시했다.

"폐하, 어젯밤은 참…… 좋았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입술을 느릿하게 가르고 안쪽의 여린 살을 짓눌렀다.

레온이 움찔하며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감아 쥐었다. 무능하고 나약한 남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로제, 당신 오늘……."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로제는 그의 품에 고개를 묻으며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사랑을 속삭이는 입술이 아닌, 사냥감을 조이는 사냥꾼의 미소였다.

가장 완벽한 복수와 이별을 위한, 지독한 사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rweitern
Nächstes Kapitel
Herunterladen

Aktuellstes Kapitel

Weitere Kapitel

An die Leser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zensionen

sukjj9946
sukjj9946
하아.... 여기도 맛도리 집이요...
2026-04-09 18:55:53
3
1
23 Kapitel
1화. 프롤로그
패전국의 황후가 맞이한 결말은 비참했다.적국 황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정말 이 여자를 두고 갈 텐가, 아르센의 황제여?”로제는 고개를 들어 카시안을 보았다.피 묻은 검을 쥔 북방의 포식자.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러나 지독히도 오만한 시선으로 로제의 남편을 조롱하고 있었다.“……제국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오.”레온은 차마 로제 쪽을 보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로제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밤마다 자신의 생명력과 마력을 쥐어짜 내어 그 핏줄에 흐르는 드래곤의 폭주를 잠재워 주었건만.그 착해빠진 무능한 남편이 살기 위해 내린 결단은, 아내를 적국 황제의 침소로 팔아넘기는 것이었다.“하, 훌륭한 군주 나셨군.”카시안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더니, 로제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왔다.짐승처럼 번뜩이는 눈동자가 그녀의 몸을 훑어 내렸다.“자, 네 주인이 바뀌었다. 나의 전리품.”카시안이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이제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남편의 목숨값을 대신해, 적국 황제의 정부가 되어 밤마다 그의 아래에서 헐떡여야 하는 삶.하지만 로제는 그 손을 잡는 대신, 성벽 난간 너머 허공을 향해 뒷걸음질 쳤다.발뒤꿈치 너머로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 아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감았다.“……!”“로, 로제? 안 돼!”카시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뒤늦게 고개를 든 레온이 사색이 되어 절규했다.“나를 전리품 삼아 욕정할 생각인가 본데.”로제는 피식, 서늘한 비소를 흘렸다.“당신들의 그 비겁한 거래에 이 몸을 내어줄 생각 따위 없어.”레온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변명했다.“미, 미안해, 로제.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제국이…… 카시안 황제께서 너를 정중히 대접하겠다고…….”“정중한 대접?”로제는 실성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비바람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형
Mehr lesen
2화
아르센의 수도 칼텐부르크.나른한 봄볕 아래 평화롭던 도시의 공기는, 일순간 비릿한 피 냄새와 뜨거운 무쇠의 열기에 짓눌려 굳어버렸다.먼저 들린 것은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규칙적인 철제의 파동, 대지를 가르는 짐승의 박동이었다.“……왔다.”군중 속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성문 너머로 검붉은 그림자가 폭포수처럼 들이닥쳤다.북방의 포식자, 드라켄 제국의 황실 근위대.태양 빛을 집어삼킬 듯 번쩍이는 흑철색 갑옷들은 흙먼지 하나 없이 오만했다.300명의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는 도시를 순식간에 질식시킬 듯 무거웠다.그들의 등 뒤에서 펄럭이는 붉은 망토는, 마치 대륙을 피로 물들이며 밀려오는 파도 같았다.그리고 그 검은 파도의 정중앙.그 틈을 가르며 한 마리의 거대한 흑마가 모습을 드러냈다.드라켄의 젊은 황제, 카시안.“저, 저 사람이…… 소문의 그 전쟁귀?”“세상에…… 미친 짐승이라더니, 비현실적으로 아름답잖아?”흉터 투성이의 야수를 상상했던 이들은, 그의 기이할 정도로 오만한 아름다움에 숨을 멈췄다.밤의 장막을 잘라 만든 듯한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거칠게 흩날렸고, 조각도로 깎아낸 듯 선명한 이목구비는 오만할 정도로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홀려 시선을 마주친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감각에 뒷걸음질 쳤다.나른하게 내려뜬 눈매 속, 타오르는 루비처럼 붉은 동공이 번뜩였다.그것은 베어 넘길 사냥감의 급소,혹은 탐닉할 수컷의 욕망을 찾는 짐승의 것이었다.카시안은 자신을 향한 군중의 경외와 공포를 즐기듯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가죽 장화가 말 배를 차는 묵직한 소리가 긴장된 공기를 때렸다.‘한심하군.’그는 고삐를 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시선만으로 아르센의 성벽을 훑었다.방비는 허술했고, 병사들의 눈엔 기강 대신 나태함이 그득했다.짓밟아 무너뜨리고, 그 위에 군림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그의 위험한 시선이 움직일 때마다, 구경하던 귀족 부인들은 묘한 수치심과
Mehr lesen
3화
“황후 폐하를 들라 하라.”레온은 목소리 아래 깔린 비릿한 긴장을 억눌렀다.대접견실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자, 은빛 스며든 틈 사이로 한 겹의 드레스 자락이 부드러운 광채를 머금으며 모습을 드러냈다.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은빛과 금빛이 기묘하게 얽혀 흐르는 듯한 머리칼이었다. 햇빛 아래 흔들리는 그 물결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은 얼음 조각처럼 투명하고도 서늘했다.은회색과 청색이 겹겹이 섞인 로제의 눈동자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그녀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얇은 실크 드레스가 허벅지 곡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밀착되었다 사라졌다.레온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르센의 명문가 영애로 자라 성문에 발 한 번 내디딘 적 없다던 정숙한 아내. 어젯밤, 긴장으로 파들거리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겨우 첫날밤을 치렀던 그 수줍던 여인은 어디로 간 걸까.지금 대접견실로 들어오는 로제는, 마치 수천 명의 사내를 발밑에 꿇려본 여왕 같은 기개를 뿜어내고 있었다.‘……내가 알던 로제가 맞아?’레온은 등줄기를 훑는 기묘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어제의 그녀가 꺾기 미안한 하얀 꽃이었다면, 오늘의 로제는 그 향기만으로 사람을 질식시킬 듯한 붉은 장미였다. 그 낯선 괴리감이 레온의 소유욕을 기묘한 방향으로 자극했다.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노골적으로 로제에게 멈췄다.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의 동공이 확장되듯,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목덜미와 가슴의 굴곡을 타고 집요하게 내려갔다. 예의나 품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탐닉의 시선이었다.로제는 조용히 레온의 곁에 서서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황후, 로셀린입니다. 드라켄 황제 폐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청아한 목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키자, 카시안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황후 폐하. 레온하르트 폐하의 곁은…… 평화롭고… 안온해 보이는군요”로제가 대답 없이 자리에 앉자, 카시안은 다리를 꼬며 오만한 본심을 드러냈다.“여성은 치장과 품위를 통해 남자의 승전욕을 고취하는 존재지요
Mehr lesen
4화
대접견실의 문이 닫히자, 레온은 그대로 굳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로제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저의 폐하를 너무나 연모하거든요.]그 말은 독처럼 달콤했고, 동시에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연모……?’레온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로제는 눈만 마주쳐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던 수줍은 여인이었다.그리고 자신은 어떠했나.첫날밤조차 그녀가 겁을 먹을까 봐 제대로 안지도 못했다.그런데 오늘 본 로제는 달랐다.카시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밤일’을 운운하고, 적국 황제를 말로 짓밟으며 비웃었다.마치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앉은 것처럼.‘겉모습은 로제인데 다른 사람 같아.’그 괴리감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때였다.또각. 또각.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적막을 깼다.“폐하.”은근히 낮고 단정한 목소리.벨라리스였다.그림자처럼 다가온 그녀가 레온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의 입가엔 정중하지만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황후께서…… 카시안 폐하에게 꽤나 정성을 들이시는 모양입니다.”레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말조심해. 황후는 나를 위해 그 오만한 자를 상대한 거야.”“과연 그럴까요?”벨라리스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고상함과 정숙함을 목숨처럼 여기시던 분이, 갑자기 왜 그런 파격적인 언사를 하셨을까요? 그것도 카시안 같은 색정 앞에서 말입니다.”“그건…… 카시안의 기를 꺾으려고…….”“아니요, 폐하. 여인의 도발은 때로 가장 노골적인 유혹이기도 합니다. 강한 사내의 승부욕을 자극해 자신에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죠.”“로제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레온이 거칠게 소리쳤지만, 벨라리스는 여유롭게 눈을 가늘게 떴다.“폐하께서 아시는 황후는 어제의 황후겠지요. 하지만 오늘 보신 그 여자는…… 아르센의 힘으로는 드라켄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영리한
Mehr lesen
5화
별궁의 안뜰에 발을 들여놓자, 짙은 붉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몸을 낮추었다.“드라켄의 위대한 포식자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유들유들하고 관능적인 인상.엘런은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듯 우아하게 허리를 숙였다.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끈적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서쪽 연합의 제2왕자, 엘런입니다. 어제 연회는 정말 대단했죠. 아르센의 황후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다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더군요. 폐하께서도 그 맛을 보셨어야 했는데.”카시안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서연합의 놈들은 왜 하나같이 이토록 천박한지.“전하께서는 그 향기에 취해 머리까지 마비되신 모양이군. 잘 즐기고 가시오.”카시안이 무심하게 지나치려 하자, 엘런이 비릿하게 웃으며 그를 막아섰다.“에이, 폐하. 사내끼리 왜 이러십니까. 저 혼자선 이 밤이 미치도록 심심해서 말이죠.”카시안은 말없이 엘런을 바라봤다.그의 앞에서 저런 사적인 농을 던질 수 있는 자도, 드문 일이었다.참모가 조용히 기침을 했고, 그제야 엘런은 체면을 차리듯 말투를 고쳐 말했다.“아, 물론! 폐하께서 여유가 되신다면 말입니다. 실은 폐하를 꼭 한번 뵙고 싶어서 일부러 기다렸거든요. 전쟁의 책략을 배우고 싶습니다.”아르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카시안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따라오시오.”..별궁 안쪽의 응접실.향초의 눅진한 향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엘런은 술잔을 흔들며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아르센은 참 모든 게 탐스럽죠. 예법도, 음식도…… 무엇보다 그 황후, 로셀린 말입니다.”카시안의 손끝이 잔 위에서 멈췄다. 엘런은 그 반응을 즐기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솔직히 말하면, 본국에 있는 제 아내보다 수천 배는 더 자극적이더군요. 제 아내는 드라켄 출신이라 그런지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해서 침대 위에서도 나무토막 같거든요. 그런데 아르센의 황후는…….”엘런의 눈이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만지면 데일 것처럼 뜨거운 불꽃 같지 않습니까? 그 눈빛하며,
Mehr lesen
6화
엘런이 사라진 뒤, 응접실에는 지독한 혐오의 침묵만이 남았다.“폐하…… 괜찮으십니까? 저자가 감히…….”참모가 사색이 되어 다가왔지만, 차마 끝까지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카시안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머릿속엔 아까 자신을 도발하던 로제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다.“미친놈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역겹군.”“그렇긴 하지만…. 얼핏 보면 난봉꾼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세를 보는 눈이 날카롭습니다.”“알아. 그러니까 엮이지 말아야지.”카시안은 천천히 잔을 흔들었다. 붉은 와인이 마치 피처럼 일렁였다.참모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지만 이미 들은 말이 있으니 어쩌실 생각이십니까?”“어떻게 하긴. 구경이나 해야지.”카시안의 목소리는 낮고 위험했다.“인간의 지략을 운운하며 나를 짐승이라 비웃던 황후가, 저런 미친 개의 혓바닥에 어떻게 먹히는지. 혹은, 그 오만한 주둥이로 어떻게 저 자의 목을 쳐버리는지 말이야.”카시안의 붉은 눈동자가 로제가 있을 황궁 본관을 향해 타올랐다.“만약 그녀가 무너질 것 같으면…… 그때는 내가 직접 그 사냥터에 끼어들 생각이다. 저런 벌레에게 주긴 아까운 사냥감이니까.”**문이 닫히자마자, 로제는 더 참지 못한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억눌러 둔 분노가 찬물처럼 차갑게 치밀어 올랐다.“날 보고 애나 낳으라고? 저질스러운 작자 같으니!”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방 안의 공기가 날카롭게 가라앉았다.시녀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고, 곁에 있던 에다 역시 눈을 크게 뜬 채 움직이지 못했다.“폐하, 말씀을 조금만 낮추셔야….”“낮출 필요 없어. 들리면 들으라지.”로제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여긴 아르센의 황궁이야. 내가 왜 그런 무례한 인간의 눈치를 봐야 하지?”말끝마다 날이 서 있었다.그러나 그 분노 속엔 단순히 모욕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분노는 단순한 모욕감이 아니었다.로제는 카시안의 시선을 떠올렸다.예를 갖춘 미소 뒤에서, 레온을 아주 날카롭게 살피던
Mehr lesen
7화
서재의 문이 닫히는 순간, 레온은 마치 누군가 허리를 잘라낸 것처럼 힘이 빠져 문턱에 기대어 섰다.숨결은 거칠었고, 심장은 규칙을 잃은 북처럼 뛰었다. 아랫배에서부터 시작된 기분 나쁜 열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끓어오르고 있었다.‘미치겠군…….’레온은 비틀거리며 책상으로 걸어가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목이 탔다.오늘 대접견실에서 보았던 카시안의 그 붉은 눈동자, 그리고 제 아내를 훑어내리던 오만하고 끈적한 시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침몰하는 배에서 새로운 선장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쪽을 택했을지도 모르죠.]벨라리스가 속삭였던 독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평생 내 뒤에 숨어 수줍게 웃던 여자였다.어젯밤, 첫날밤을 치를 때만 해도 내 몸짓에 겁을 먹고 파들파들 떨었던 순진한 아내.그런데 오늘 그녀는 적국의 황제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을 ‘밤의 짐승’이라 포장하며 관능적으로 웃었다.그 대담한 유혹이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을까,아니면 카시안이라는 수컷을 자극하기 위한 고도의 꼬리치기였을까.“……하아.”‘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레온은 짓물러진 입술을 깨물며 제 가슴팍을 움켜쥐었다.머릿속은 온통 낮에 보았던 로제의 낯선 미소로 가득했다.카시안의 시선을 즐기는 듯하던 그 고결한 눈빛,저속한 농담을 태연하게 뱉어내던 그 입술.분명 그녀는 변했다.벨라리스의 말대로, 침몰하는 아르센을 버리고 더 강한 수컷의 품으로 갈아타려는 비열한 책략일지도 몰랐다.마땅히 분노해야 했다.황제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그녀를 문책해야 했다.하지만…….“하아…….”갈라진 신음이 터져 나왔다.의심이 꼬리를 물수록 신기하게도 아랫배의 열기는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혈관마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박혀 흐르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헤집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감각에 시야가 흐릿해졌다.‘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배신감에 몸이 떨리는 거야. 너무 원해서 괴로운 거라고.’레온은 스스로를 속이며 떨리는 손으로 크라바트를 잡아당겼다.비참했다. 숭
Mehr lesen
8화
별궁의 가장 깊은 방. 창틀에 비스듬히 기댄 카시안은 홀로 조용히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잔은 찰랑거렸지만, 그는 술을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커튼 뒤에서 일렁이는 짙은 그림자.그것이 토해내는 은밀한 속삭임에 카시안의 감각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흡사 뱀이 똬리를 트는 듯한 기이한 음성이었다.‘황제가 뺨을 맞고 쫓겨났다……?’빛을 잃어가는 액체를 천천히 흔들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속삭임은 밤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졌다.[“카시안 폐하의 반만큼이라도 강해지려 노력해 보세요…….”]그림자가 전한 로제의 서늘한 독설에,그는 잔을 감싸 쥐며 아주 미세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적국의 황제에게 무시당해 발끈한 남편을 위로하기는커녕, 내 이름을 방패막이 삼아 짓밟아 버렸다고?’그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이, 바람은 고요해졌고 어느새 그림자도 방바닥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독한 여자군.”창틀에서 내려온 카시안은 정적 속에서 아주 잠시 멈칫했다.레온하르트가 한밤중에 아내의 침전을 찾아가 발정 난 듯 헐떡였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오늘 낮,대접견실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 역시 보이지 않는 덫에 걸린 듯 숨이 멎는 감각을 느꼈으니까.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달큰하고도 압도적인 온기.평생 얼어붙은 한기와 공허 속에서 살아온 카시안의 심연이, 생전 처음으로 타인의 기운을 집어삼키고 싶다며 아우성을 쳤었다.‘그 애송이도 필요한거야. 그러니 이성을 잃고 매달린 거겠지.’카시안은 어둠 사이로 멀리 보이는 아르센 황제의 침전을 눈으로 훑었다. 그 방의 주인은 지금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몸부림치고 있을 터였다.“나의 반만 닮으라…….”손가락으로 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두드리던 카시안의 입술 사이로 기어이 낮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려 애썼지만, 씰룩거리는 입가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그 말은, 남편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비수였나. 아니면…… 정말로 내 시선을 끌기 위한 도발이었나.’무심히 던진 생각이었지
Mehr lesen
9화
은빛 드레스는 걸음마다 별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고, 목을 꼿꼿이 세운 자태는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다.“어머, 황후 폐하. 오늘따라 정말 눈이 부시네요.”자리를 잡자마자, 부채로 입을 가린 귀부인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었다.말로만 칭찬이지, 눈빛은 먹잇감을 탐색하는 사냥꾼들이었다.“어머, 황후 폐하. 오늘따라 정말 눈이 부시네요. 엊그제 황실 사람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해 보이십니다.”“그러게 말이에요. 밤사이에 훌륭한 코치라도 받으셨나 봐요?”뼈 있는 비아냥.촌티 나는 계집이 하룻밤 새 꼬리 치는 법만 배웠냐는 조롱이었다.하지만 로제는 여유롭게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과찬이십니다. 황후로서 남편의 혼을 빼놓는 일쯤이야 굳이 코치가 필요하지 않더군요. 그저 제가 가진 본연의 것만으로도 폐하께선 충분히…… 벅차하시니까요.”노골적인 침실의 암시에 귀부인들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하지만 그들은 굴하지 않고 가장 아픈 곳을 찔러왔다.“그래도 조심하셔야죠. 여자의 꽃은 한철이라잖아요?”“맞아요. 얼른 튼튼한 아들부터 낳으셔야 자리가 굳건해지죠. 사내의 애욕이란 언제 식을지 모르는 법인데.”본색을 드러낸 공격이었다.‘애 못 낳으면 넌 끝이다’라는 저주.로제는 붉은 입술을 매끄럽게 호선으로 말아 올렸다.“부인들께서는 참 걱정이 많으시네요.”탁, 하고 접히는 그녀의 부채 소리가 채찍 소리처럼 경쾌하게 울렸다.“자신의 가치를 남편의 변덕스러운 하반신이나 자식 유무로만 증명해야 하는 삶이라니. 매일 밤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실까요.”“네, 네? 그게 무슨……!”로제의 시선이 귀부인들을 차갑게 훑었다.“아, 부인들을 보니 시든 꽃 걱정을 미리 하시는 것도 이해는 가네요. 이미 꽤… 진행되신 것 같아서.”“……!”“스스로 빛나는 보석은, 진열대를 걱정하지 않는 법이죠. 오히려 걱정인 건 폐하께서 제 품이 아니면 단 하루도 잠들지 못할 만큼 저를 갈구하셔서…… 도리어 후계자가 늦게 들어서길 바라신답니다.”반박할 틈조차
Mehr lesen
10화
그 찰나, 연회장의 들뜬 공기를 찢고 끈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엘런이었다.흐트러짐 없는 머리칼 아래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건 그는, 방금까지 두 사람이 묘한 느낌으로 손을 맞잡고 있던 것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엘런은 부드럽게 허리를 숙였지만, 그 눈빛은 전혀 공손하지 않았다.흡사 탐나는 장난감 두 개를 발견한 아이,혹은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의 눈이었다.레온이 본능적으로 로제의 앞을 가로막았다.“무슨 일이시오, 엘런 전하.”“아, 방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두 분께서 워낙 애틋해 보이셔서 말입니다. 황후 폐하의 그 매서운 눈빛은… 마치 질투하는 연인 같아 꽤 자극적이더군요.”명백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어조였다.엘런의 시선이 레온과 로제를 느릿하게 훑었다.“아, 죄송합니다. 말이 너무 노골적이었나요?”그의 미소는 사과와 도발이 반반 섞인 미묘한 곡선을 그렸다.“제가 원래… 치정에 흥미가 많아서요.”“무례하군.”레온의 낮은 목소리에 엘런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무례함은 힘없는 자에게나 위협적인 법이죠. 폐하께서는 제 농담 정도는 여유롭게 받아주실 거라 믿었습니다만.”뻔뻔한 궤변을 늘어놓은 엘런은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아무래도 제 장난이 지나쳤나보네요. 사과드리죠.”하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여전히 도발적이었다.“장난이란 건, 쌍방이 즐거워야 성립되는 겁니다.”로제의 서늘한 일갈에 주변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다.“엘런 전하의 말은 전혀 즐겁지 않군요.”“이런, 제가 황후 폐하의 마음을 상하게 했군요.”엘런은 과장된 동작으로 가슴에 손을 얹더니, 다시금 부드럽게 로제를 응시했다.“황후 폐하, 제 무례를 제대로 사과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그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춤 신청이었다.레온이 다급히 로제의 귓가에 속삭였다.“거절하시오. 서연합의 망나니요. 내가 적당히….”그런데 그 속삭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로제는 그의 팔을 가볍게 밀어내고 엘런을 향해 앞으로
Mehr lesen
Entdecke und lies gute Romane kostenlos
Kostenloser Zugriff auf zahlreiche Romane in der GoodNovel-App. Lade deine Lieblingsbücher herunter und lies jederzeit und überall.
Bücher in der App kostenlos lesen
CODE SCANNEN, UM IN DER APP ZU LESEN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