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풍덩—! 화려한 분수대에서 시작된 만남. 아티니스는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처음이 아닌 인연이며 수많은 생을 거쳐 이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눈이 막 태어난 강아지 같아.” 가벼운 놀림에 상처받았다가,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해줄게.” 단 한마디에 다시 흔들렸다. 그렇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세이런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되살아난 기억이 속삭였다. 이것이 열 번째 생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View More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과 달리, 아티니스 세레스니타의 표정은 흐린 하늘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말없이 긴 숨을 내쉬며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나러 가는 아이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차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티… 정말 혼자 가야겠니? 엄마가 같이 가 준다니까….”
아티니스 뒤를 따라 나온 릴리스 백작부인의 애타는 목소리에 이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던 글라디 백작도 걱정 어린 눈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도무지 딸을 혼자밖에 내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
‘3년전부터 외출은 허락해 주셨지만... 역시 매번 이러신다니까.’
아티니스는 걱정이 가득한 부모님을 안심시키듯,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미 큰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갔다간,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썼다는 걸 들키고 말 거야… 사고 친 건 나니까, 내가 직접 수습해야 해.’
어째서인지 그녀의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마법을 왜 반드시 숨겨야 하는지를 말해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다른 사람 앞에서 마법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겨우 얻어낸 외출은 다시는 허락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니, 저택 밖은커녕 방 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불안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티니스는 그것을 꾹 눌러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하녀, 리리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며칠 동안 이어진 긴 여정 내내, 마차의 흔들림보다 더 거칠게 그녀의 생각이 요동쳤다.
창 밖의 풍경은 쉼 없이 바뀌었지만, 아티니스의 머릿속은 한 자리에 머무른 채 같은 질문만 되풀이했다.
‘대체 어떻게 내가 세레스니타 백작가 영애인 건 알았지? 설마... 내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걸 이미 누군가에게 말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데 왜 하필...청혼서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리리가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아티니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아티니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리리를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리리, 만약에… 정말 만약에, 부모님이 날 방에 가둬두려고 하면, 꼭 날 탈출시켜줘.”
“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아가씨가 그런다고 순순히 방에만 계실 분도 아니잖아요.”
아티니스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리리는 그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이며 웃었다.
태연한 리리의 반응에 아티니스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지만,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한 불안은 가슴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아.... 어떡해에에에.....!'
아티니스는 아직 몰랐다.
평하롭고 고요하기만 했던 그녀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것이, 삼년 전—한 소년을 만난 그날부터였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그녀는 바로 그 소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편지 한 장.
청혼서였다.
편지 뒷면, 작게 적힌 단 한 줄.
「거절 시, 비밀 유지 취소」
그녀의 손이 더 세게 쥐어졌다.
‘이런... 나쁜 꼬맹이가!!!’
***
삼년 전.
시골 영지 백작가의 영애 아티니스는 생애 처음으로 부모님을 따라 수도를 방문했다.
보통 같으면 수도의 무도회는 피했을 부모님이었지만, 이번에 피할 수 없었다.
엘레우스 제국 황자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16세의 황자가 황태자로 책봉되는 행사였다.
딱딱한 무도회는 시골에서 자유롭게 자란 아티니스에게는 그저 지루하기만 했다.
그래서 지나치게 보호하는 그녀의 부모님이 다른 귀족들에게 끌려가는 사이, 몰래 무도회장을 빠져나왔다.
황실의 화려한 대리석 복도를 지나 정원 입구에 도착하자,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후–하아–. 이제야 기분 좋네!"
차가운 공기가 몸속 깊이 스며들며, 아티니스는 답답함이 단번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미로처럼 넓은 정원을 걷다가 커다란 분수대 앞에 다다랐다.
황실 분수대라고 자랑하듯 그 분수대는 금빛으로 반짝였지만, 그녀의 시선에 더 반짝이던 건 바로 그 분수대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이었다.
달빛처럼 은빛 머리카락이 밤바람에 살랑였고, 희귀한 사파이어 같은 짙은 자줏빛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완성된 이목구비는 마치 요정이나 천사 같았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봐… 요정인가? 천사인가?’
분수대의 후광 때문이었을까, 아티니스는 처음 본 그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잘생겼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중심을 잃고 분수대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위험ㅎ—!”
놀란 아티니스는 그를 붙잡으려 달려갔지만 결국 함께 물에 빠지고 말았다.
풍덩—!
[일곱 번째 심장 - 아티니스 (네루실리아)]문을 열고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여보, 다녀왔어요…? 그 아기는…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반갑게 남편, 글라디를 맞이하던 그의 아내, 릴리스의 시선이 그의 품에 안긴 작은 아기에게 머물렀다.“숲속에서 혼자 울고 있더라고.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부모로 보이는 사람은 없더군.”릴리스는 놀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품에 안았다.“어머… 불쌍해라… 이렇게 귀엽고 어여쁜 아이를….”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아이가 작게 칭얼거렸지만, 이내 따뜻한 품속에 몸을 맡긴 채 다시 잠이 들었다.“그대로 두면 위험할 것 같아서 내가 데리고 왔어.”글라디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릴리스… 혹시 이게 신의 뜻이 아닐까? 아이가 없는 우리에게 내려주신 축복 말이야.”
작은 몸이 바닥을 구르며 미끄러졌다. 아티가 클라루스에게로 달려가려는 순간 황제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어딜 가느냐.”“이거 놔!”휘익——!거센 바람이 황제를 향해 몰아쳤다. 거대한 벨벳 커튼이 거칠게 휘날렸고, 알현실에 걸린 깃발과 태피스트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황제는 아티니를 놓치고는 몇 걸음 뒤로 밀려났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그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제야 확신이 생긴 사람의 표정이었다. “하.”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터져 나오듯 크게 웃음이 번졌다.“하하하하!”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넓은 알현실을 가득 메웠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맨 보물을 마침내 손에 넣은 사람의 눈이었다.“정말이었군. 정말 존재했어. 그 거짓 같던 전설이 사실이었다니.”그때 겨우 몸을 일으킨 클라루스가 소리쳤다.“아티! 도망가!”하지만 아티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클라루스에게 달려갔다.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같이 가! 서로 지켜주기로 했잖아!”“왜 와! 도망가라고!”클라루스가 울먹이며 외쳤다. 아티는 고개를 저었다. 그 눈빛이 확고했다. 겁에 질려 있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목을 꼭 잡으면서도, 혼자 가지 않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클라루스는 그런 아티를 바라보다 이를 악물었다.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황제는 두 아이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두 아이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두 아이가 채 몇 걸음도 떼기 전이었다. 푸욱—.칼끝이 아티의 가슴을 꿰뚫었다. 심장은 아니었다. 정확히 심장 바로 옆, 죽지는 않지만 움직일 수 없는 위치였다. “…….!!”아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 고통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것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황제가 무심히 말했
“아얏!”얼마 가지 못하고 아티의 발이 굵은 나무뿌리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넘어지며 무릎이 거친 돌에 쓸렸다. 붉은 피가 번졌다.“아티!”클라루스가 황급히 그녀를 일으켰다.“괜찮아?”아티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조금만 참아. 조금만 더 가면 숨을 수 있어.”그가 그녀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다시 뛰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찾았다!”기사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기사들이 나타났다. 두 아이는 그대로 포위당하고 말았다. 클라루스는 본능적으로 아티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자신도 아직 어린 몸이었지만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가렸다.“비켜라.”기사 하나가 냉정하게 말했다
클라루스가 심부름한 물건을 두 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엄마! 아티! 다녀왔어요!”아무도 대답이 없었다.“아티?”클라루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평소라면 아티가 문 근처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거나, 엄마가 부엌에서 음식 냄새를 피우고 있을 텐데. 오늘은 집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발소리조차 울려 퍼질 만큼 식탁 앞에는 엄마 혼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탁자 위에는 처음 보는 두툼한 돈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클라루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엄마…?”그는 조심스럽게 돈주머니를 바라보았다.“이 돈은 뭐예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죠?”아티니스의 목소리에는 불편함과 억눌린 분노가 섞여 있었다.세이런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차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는 그 이유를 알아. 그리고 도와줄 수 있어.”“그 말도... 병약하다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죠?”아티니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전 오늘 거절하러 온 거예요. 그리고 비밀을 지켜준다고 한 말… 끝까지 지켜주세요. 전 그걸 확인하러 온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등을 돌렸다.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알아
생각지도 못한 큰 키에 아티니스는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했다. 그의 가슴팍 너머로 올라간 시선 끝에서 마주한 것은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짙은 자주빛 눈동자였다.‘여전히 잘생겼네… 잘생… 기면 안 되는데. 거절해야돼!’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아티니스는 순간 목적을 까먹을 뻔했다.당황한 그녀는 뒷걸음치며 거리를 두었다.“청, 청혼서가 마음에 들긴요. 협박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말을 하려다 목소리가 꼬이고, 톤도 이상해졌다.“대공자의 청혼서를 협박이라니. 너무한걸.”당황한 그녀와 달리,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되물
청혼서라는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면식 없는 대공가에서 결혼을 제안하다니. 게다가 시골 영지에 틀어박혀 살아온 자신을 어떻게 알고 보낸 건지 아티니스는 의아했다. “설마… 예전에 황실 파티에서 우리 아티를 본 건 아닐까요?”백작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골 영지 영애인 제게 누가 관심을 보였겠어요… 저도 관심 없었고요.”“무슨 소리야. 우리 아티의 아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였단다. 세상을 밝혀주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주홍색 머리카락에, 릴리스를 쏙 빼닮은 아메랄드를 담고 있는 두 눈동자. 그 무도회에
둘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아티니스는 다시 넘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그 소년을 내려다보았고, 소년은 팔꿈치로 몸을 일으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ㅁ… 뭘 봐.”정적을 깨는 차가운 말투였다. 그 말에 아티니스는 눈을 깜빡였다. 잠시나마 그에게서 느꼈던 환상이 살짝 깨지는 듯했지만 그의 얼굴은 쉽게 그 환상을 깨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 또한 그랬다. “옷 다 젖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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