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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Penulis: 썸머 워터 멜론
송재혁은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만, 아내로서 남편이 다른 여자를 품에 껴안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정가을은 캐리어를 끌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롱 트렌치코트에 검은색 머리를 깔끔하게 말아 올린 포니테일,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다이아몬드 귀걸이까지 착용했다. 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받쳐 입은 모습은 마치 격식을 갖춘 듯했다.

걷는 걸음마다 코트 자락이 흩날리고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드러났다.

전체적으로는 매니시하면서도 위풍당당한 모습이 이른바 ‘싸움 잘하게’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정가을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서동하는 비로소 그녀를 알아차렸다.

그의 눈에 잠시 놀라움이 스쳤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태연하게 이시연을 놓아주었다. 이어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을...”

찰싹!

정가을은 거침없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온 힘을 다해 때렸더니 서동하의 뺨에 순식간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동하 오빠!”

이시연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녀는 미간을 구기고 정가을을 노려보며 뻔뻔스럽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뭐라고요?”

정가을은 비웃음이 섞인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이봐요, 불륜녀 씨! 그쪽이 꽉 안고 있는 이 남자는 내 남편이에요! 뭐 하는 짓이냐고요? 당연히 바람 현장 잡으러 왔죠!”

정가을의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주변을 오가는 여행객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시연을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동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곤란해지는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정가을을 나무랐다.

“가을아, 함부로 말하지 마! 시연이는 나랑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야. 너 데리러 왔다가 마침 오늘 귀국한 걸 만났어. 오랜만에 보니 너무 반가워서 인사로 잠깐 안아줬을 뿐이야.”

서동하는 이시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한 톤 높인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라도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여 자신의 첫사랑을 불륜녀로 몰아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정가을이 휴대폰을 치켜들었다.

“동하 씨, 방금 둘이 포옹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서 온 국민에게 정말 인사 포옹이었는지 감정이라도 받게 해줄까요?”

“가을 씨.”

붉은 원피스를 입고 화려하게 화장한 이시연이 웨이브진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채 차분하고 당당하게 정가을을 마주 보았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가라앉힌 듯했다.

“저랑 동하 오빠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던 만큼 조금 격하게 인사했을 뿐인데,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전 동하를 오빠처럼 따르고 동하도 절 여동생처럼 챙겨주고 있어요. 가을 씨는 이제 동하 오빠 아내가 됐으니 이런 상황에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맞지, 오빠?”

말을 마치며 이시연은 다정하게 서동하의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정가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서동하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은 눈동자로 지그시 정가을을 바라보았다.

“아, 그렇군요.”

정가을은 마치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말투에서도 한결 편안함이 묻어났고 눈꼬리에는 희미한 웃음까지 감돌았다. 평소처럼 온화하고 순종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서동하의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가을아, 네가 먼저 오해한 거니까 얼른 시연이한테 사과해야지.”

정가을은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 서동하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서동하는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녀가 자신을 때린 것을 후회하고 속상해하리라 여겼다.

그녀가 자신을 너무나도 끔찍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찰싹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서동하의 오른쪽 뺨에도 선명한 붉은 손자국이 새겨졌다.

정가을은 얼얼한 손을 문지르며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이 되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야 좀 사람 같아.’

가슴속을 짓누르던 답답함이 한풀 꺾이자 정가을의 눈꼬리에 맺힌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미소였다.

이시연의 얼굴에 떠올랐던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정가을! 너 미쳤어?”

이제는 정가을이 생글거리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쪽이 우리 남편이랑 같이 자란 친구든 뭐든 상관없는데 나랑 이 사람은 법적으로 맺어진 부부예요. 혼인신고도 마쳐서 법의 보호를 받는 사이라고요. 시연 씨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분수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게 좋겠어요. 앞으로 또 이런 식으로 선 넘으면 그땐 시연 씨까지 때리는 수가 있어요. 분수랑 예의가 뭔지 확실하게 가르쳐 드려야죠.”

서동하는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정가을이 자비 없이 후려친 탓에 귀가 먹먹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모기가 귓가에서 윙윙대는 것 같았고 입안에선 쇠 비린내가 났다.

그에게 정가을은 늘 순종적이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가족들의 모진 시집살이에도 불평 한마디 없던 그녀가 손찌검이라니!

서동하는 충격 뒤에 곧장 불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정가을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어둡고 깊게 가라앉았다. 목소리마저 서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가을아, 나 오늘 일까지 다 미루고 꽃다발 사서 너 마중 나왔어.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나온 건데 이렇게까지 날 의심하는 거야?”

‘마중? 웃기고 있네.’

이시연을 데리러 온 걸 들키니까 이제 와서 거짓말을 지어내는 이 인간.

정가을이 비행기 시간이 바뀐 걸 몰랐기에 벌어진 해프닝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 꽃...

정가을은 서동하의 손에 들린 꽃다발로 시선을 떨궜다.

역시나 튤립이었다.

그녀는 눈가에 냉소적인 기운을 띤 채 낮게 물었다.

“나 주려고 특별히 골랐다고요?”

“그렇다니까.”

서동하가 이를 악물고 억울하다는 듯한 연기를 이어갔다.

“하!”

정가을은 A시에 있는 동안 사립 탐정을 시켜 서동하와 이시연의 과거를 샅샅이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자신만을 위해 고른 꽃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둘이 함께한 뒤로 모든 기념일과 데이트 때마다 서동하는 늘 튤립을 선물했다.

그는 튤립이 정가을과 닮았다고 했다. 온화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하고 우아해서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고...

거짓말쟁이.

튤립을 제일 좋아하는 건 이시연인데!

과거 서동하와 이시연은 연인 사이였다. 그러다 무슨 연유인지 이시연이 서동하의 형, 서해강과 만났고 사실상 이시연은 서동하의 ‘형수’인 격이었다.

다만 그런 관계도 서동하의 뒤틀린 사랑을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이시연을 위해 서씨 저택 정원에 튤립을 가득 심었었다.

나중에 이시연이 서해강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자 서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죽이려 들었고, 서동하가 죽음으로 맞서며 그녀를 해외로 빼돌렸다. 그 후 정원은 튤립 하나 남김없이 뽑혀 나갔었다.

정가을과 결혼 후 따로 살림을 차리자마자 서동하는 그들의 보금자리에 다시금 튤립을 가득 심어놓았다.

이제 그 튤립을 다시 보니 징그러울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꽃향기만 맡아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공항이라는 공공장소 탓에 서동하는 두 번이나 뺨을 맞고도 대놓고 날뛰지 못했다.

무엇보다 정가을을 달래 향후 3개월을 무사히 보내고 결혼식을 올려 할아버지가 쥔 주식을 손에 넣어야만 완벽한 실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짐짓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다정함이 섞인 목소리로 정가을을 어르고 달랬다.

“알았어, 가을아, 그만해. 질투하는 건 알겠는데 다 오해니까 나 때린 건 눈감아 줄게. 대신 시연이한테는 사과하자.”

“눈감아 줘요?”

정가을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을 들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엔 온기가 전혀 없었다. 차갑다 못해 얼어붙은 눈빛이었다.

“서동하 씨! 당신은 괜찮을지 몰라도 난 전혀 안 괜찮아요.”

“뭐?”

서동하는 몇 번 다독이면 정가을이 금방 평소처럼 사리 밝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며 까탈스럽게 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내와 자식이 있는 남자라면 다른 여자와 거리를 둬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요? 같이 자란 사이이니, 여동생 같은 존재이니 그딴 헛소리는 집어치워요.”

“이시연이 당신 친동생이에요? 피가 섞였어요? 백번 양보해서 친동생이라 해도 다 컸으면 예의를 지키고 거리를 둬야죠.”

“이렇게 피도 안 섞인 ‘여동생’이 꼴불견으로 옷 입고 유부남 팔뚝에 찰싹 달라붙는 꼴은 옛날 같으면 ‘파렴치한 창부’라고 했을 테고 요즘 세상엔 ‘불륜녀’, ‘첩년’이라고 불러요.”

이시연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조금 전까지의 화려하고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욕감에 파르르 떨 뿐이었다.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고 몰래 촬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동하는 일이 커져 서태석의 귀에 들어갈까 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일단 정가을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그는 경호원들에게 눈짓해 주변을 정리하게 한 뒤, 정가을을 끌어안으려 한 걸음 다가섰다.

서동하가 가까워지자 정가을의 코끝에 익숙한 남성 스킨 향과 함께 낯선 여성용 향수 냄새가 뒤섞여 풍겨 왔다.

그 독한 향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알았어, 가을아. 내가 다 설명할게.”

“손대지 말아요. 더럽고 역겨우니까!”

정가을은 그를 세게 밀쳐내고는 뒷걸음질 쳐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서동하도 그녀의 눈동자 속에 서린 혐오감을 놓치지 않았다. 남자의 자존심이 짓밟히자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드러냈다.

“가을아!”

그때, 두 남자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하나는 차갑고 분노에 찬 서동하의 고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온화하고 맑은 울림이었다.

정가을이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놀랍게도 송재혁이 서 있었다.

막 비행기에서 내린 듯 캐리어를 밀고 있는 그는 몸에 딱 맞는 검은색 맞춤 정장 차림으로 훤칠한 몸매를 자랑했다.

콧날에 걸친 금테 안경이 지적이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송재혁은 자연스럽게 그녀 곁으로 다가와 젠틀하게 포옹했다. 물론 가벼운 포옹이었다.

“오랜만이야.”

좀 전의 상황을 다 지켜본 터라 일부러 그녀를 안아준 게 틀림없었다.

본인만의 방식대로 정가을의 편을 들어주기 위함이겠지.

그녀는 몹시 감격스러웠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외삼촌.”

정가을이 ‘외삼촌’이라 부르자 서동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남자의 비뚤어진 소유욕이 발동한 것이다. 설령 사랑하지 않더라도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다른 남자의 손에 닿는 꼴을 볼 수 없어서였다.

하물며 조금 전 정가을에게 거부당하고 밀쳐진 뒤라 서동하의 심기는 더욱 뒤틀려 있었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이 정도의 포커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었다.

“송 변호사님이 네 외삼촌이었어? 금시초문인데?”

정가을이 의미심장하게 대꾸했다.

“누구에게나 비밀 하나쯤은 있는 법이죠.”

그 말을 내뱉으며 시선이 이시연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동하는 깊고 어두운 눈으로 정가을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한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송재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외삼촌, 마침 할 얘기도 있었는데 같이 가요.”

송재혁을 대하는 정가을의 태도는 조금 전 서동하를 대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예쁜 고양이처럼 온순하고 다정하기만 했다.

그런 온도 차를 직접 겪고 나니 서동하의 가슴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무언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답답함이 피어올랐다.

정씨 가문의 친척을 모조리 꿰고 있는 그로서는 송재혁이라는 존재가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가짜 외삼촌이란 말인가!

정가을이 송재혁과 함께 자리를 뜨려 하자 서동하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뒤쫓아왔다.

“가을아!”

그 순간, 이시연의 눈동자에 강렬한 증오가 번뜩였다.

과거 서동하가 정가을에게 접근한 건 오직 이시연을 질투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정가을이 주제 파악 못 하고 그 고백을 받아주지만 않았더라면 이시연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서해강과 헤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서해강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될 일도 없겠지.

나아가 서씨 가문에서 이시연을 원망하여 7년 동안이나 해외로 내쫓겨 이렇게 돌아갈 곳 없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텐데.

한편 서동하가 정가을과 결혼한 이유도 간단했다. 그녀가 뒷배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다루기 쉽고 나중에 이시연이 돌아오면 쉽게 이혼할 수 있는 장기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시연은 그들의 결혼이 서동하의 계획된 연극임을 알면서도 7년간 M국에서 매일 밤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지냈다. 서동하가 가짜 연극을 하다가 진짜로 정가을이라는 대역을 사랑하게 될까 봐.

결국 그녀는 국내의 사설탐정을 고용해 둘을 몰래 도촬했다.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서동하가 정가을을 예뻐하고 다정하게 껴안고 세 식구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지켜보았었지...

멋있고 자상한 남자, 예쁘고 온화한 여자, 영리하고 준수한 아들까지, 너무나 완벽한 세 식구의 모습에 이시연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저 남자는 내 남자야.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나라고! 동하 오빠가 사랑하고 아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야.’

정가을은 그녀의 행복을 훔쳐 간 도둑년일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경진국으로 돌아가, 서동하의 곁으로 돌아가 정가을을 내쫓고 모든 것을 되찾아와야 했다.

서동하의 팔을 붙잡은 이시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미간을 구긴 채 가느다란 손으로 아직 표시도 나지 않는 배를 덧없이 감싸 쥐었다.

“오빠... 나 배가 좀 아파.”

이시연을 부축한 서동하는 고개를 들어 정가을과 송재혁의 뒷모습을 보았다.

송재혁의 훤칠한 체격과 정가을의 가녀린 실루엣이 나란히 걷는 모습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눈이 다 시릴 정도였다.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바위가 들어앉은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다.

“오빠.”

이시연이 그런 서동하의 눈치를 살피며 분노가 일었지만, 짐짓 슬픈 표정을 지었다.

“혹시 연기하다가 진짜로 정가을을 사랑하게 된 거야? 그래서 보내주기 싫어?”

이시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련하게 매달렸다.

정가을과 이시연은 분명 닮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정가을이 숲속에 조용히 피어난 꽃처럼 맑고 고요하다면 이시연은 화려하게 가꾼 붉은 장미처럼 뜨겁고 치명적이었다.

장미 같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서동하는 순식간에 정가을을 잊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시연아, 보육원에 있을 때 약속했잖아. 너만이 내 유일한 신부라고. 평생 너한테 잘해줄 거야. 지금은 그저 결혼식과 할아버지 주식 문제 때문에 상황이 좀 복잡해서 그래. 오해하지 마, 아이한테 안 좋아.”

서동하는 이시연을 미리 준비해 둔 별장에 데려다주고 가는 길에 가정의를 불러 대기시켰다.

그 시각, 공항의 한 카페에 마주 앉은 정가을과 송재혁.

송재혁은 조사 중인 사건의 진척 상황을 그녀에게 전했다.

한주 갑부 서동하는 재산이 너무 방대했고 사적인 조사라 명확한 내역을 파악하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M국 쪽 증거 역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사진 정도일 뿐, 키스나 잠자리 같은 결정적인 증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정가을이 물었다.

“그럼 저는 계속 참아야 하나요?”

송재혁은 미리 작성해 둔 이혼 합의서를 그녀 앞에 밀어놓으며 답했다.

“아니, 더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 이제 이 이혼 합의서를 당당하게 서동하 얼굴에 집어 던져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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