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요일 오후의 사무실은 늘 조금 느슨했다.
다음 주 예식 일정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업체에 보낼 메일을 정리하는 동안, 옆자리에서 다연이 기지개를 켰다."오늘 금요일인 거 실화야? 이번 주 왜 이렇게 길었지.""그러게.""너 이번 주 내내 얼굴이 별로였어. 주말엔 좀 쉬어."해원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은 더 묻지 않고 자기 화면으로 돌아갔다. 해원은 그게 고마웠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금요일이었다.해원은 그 단어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일요일 아침, 해원의 집 복도에서 태헌을 배웅하며 했던 말이 있었다. 금요일에 봐요. 태헌은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던 아침이었다. 그 뒤로 닷새가 지났다.그 약속이 아직 유효한지 해원은 몰랐다. 그날 이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다음 날은 해원이 먼저 퇴근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태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 먼저 끝났어요.]답장은 사무실 건물을 나서기도 전에 왔다.[가 있어.]해원은 그 말을 보고 가방 안을 확인했다. 어제 받은 카드키가 지갑 옆에 들어 있었다.호텔에 도착해서도 프런트에는 들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익숙해진 층에서 내렸다. 방 앞에 서자 습관처럼 초인종 쪽으로 손이 갔다가 멈췄다.해원은 가방에서 카드키를 꺼냈다.삑.초록불이 들어왔다.문을 열고 들어갔다."……."아무도 없는 방은 처음이었다.태헌이 없는데도 방에는 그의 흔적이 가득했다. 책상 한쪽에는 다 마신 커피잔과 접어둔 영수증이 있었고, 옷장에는 어제 본 셔츠들이 걸려 있었다. 욕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등 뒤에서 문이 닫히며 잠기는 소리가 났다.기분이 조금 이상했다.남의 방에 혼자 들어온 건 맞는데 몰래 들어온 기분은 아니었다. 태헌이 직접 카드를 줬고, 먼저 와 있으라고 했다.무엇보다 자기가 문을 열었다.어제까지는 태헌이 안에서 열어줘야 들어올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해원은 괜히 웃음이 나서 가방부터 내려놓았다.침대 옆에는 어제 두고 간 충전기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그걸 보니 또 기분이 좋아졌다.해원은 휴대전화를 연결했다.자기 물건이 하나 있다는 것뿐인데, 어제보다 이 방이 조금 덜 남의 방 같았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태헌이었다.[씻어.]해원은 메시지를 읽고 바로 욕실 쪽을 봤다.[네.]
월요일 오후의 사무실은 주말 예식 뒷정리로 어수선했다. 해원은 일요일에 치른 두 건의 정산서를 맞추고 있었다. 옆자리에서 다연이 탁상 달력을 넘기다 말고 소리를 냈다.“야, 이번 주말 우리 둘 다 오프다. 이게 몇 주 만이야.”“그러네.”“넌 뭐 해? 어머님 댁 가?”“아니. 안 가.”“웬일이래. 쉬는 날이면 맨날 거기 가서 밥 얻어먹고 오더니.”다연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모니터로 돌아갔다. 해원도 정산서로 시선을 돌렸다. 숫자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예전에는 쉬는 날이면 별생각 없이 엄마 집에 갔다. 엄마가 먼저 오라고 할 때도 있었고, 해원이 그냥 심심해서 갈 때도 있었다. 엄마가 결혼한 뒤로 엄마 집은 그 큰 집이 되었고, 태헌이 있는 날은 넷이서 밥을 먹었다. 그걸 일정이라고 불러본 적도 없었다. 원래 그런 거였다.이제는 갈 수 없었다.누가 오지 말라고 한 건 아니었다. 엄마도, 명우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주 그 식탁에서 일어난 뒤로 해원은 그 집 현관을 혼자 열고 들어가는 자기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토요일에는 대문 밖에서 태헌을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런데 엄마를 보고 싶은 것과 그 집에 갈 수 있는 것은 어느새 서로 다른 일이 되어 있었다.해원은 정산서 맨 아래 합계를 다시 계산했다. 틀린 데는 없었다.여섯 시가 넘어 컴퓨터를 껐다. 가방을 챙기면서 휴대전화를 열었다.[끝났어요.]보내고 나서야 해원은 금요일에 태헌이 보낸 말이 [끝났어.]였다는 게 생각났다. 괜히 웃음이 났다. 일부러 따라 한 건 아니었다.이제 퇴근하면 제일 먼저 연락할 사람이 태헌이었다.
태헌은 휴대전화를 다시 거두었다. 화면을 한 번 더 보지는 않았다. 그대로 침대 옆 탁자 위에 엎어놓았다.해원도 그 답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초인종이 울렸다. 룸서비스였다.태헌이 문을 열고 쟁반을 받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해원은 서류가 밀려난 책상 한쪽에 그릇을 옮겨 담았다. 의자가 하나뿐이라 해원은 소파에, 태헌은 침대 끝에 앉아 접시를 무릎 위에 올렸다.파스타는 조금 식어 있었다. 둘 다 별말 없이 먹었다. 포크가 접시에 닿는 소리만 났다."내일 몇 시에 가요?""열 시쯤.""네."식사를 마친 뒤 해원이 그릇을 정리했다. 태헌이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리는 동안 해원은 창가에 섰다. 호텔 창밖으로 도로가 내려다보였다. 금요일 밤의 차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 차들 중 어딘가에는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태헌이 나오고, 해원이 씻었다.욕실 거울 앞에 놓인 세면도구는 전부 태헌의 것이었다. 칫솔 하나, 면도기 하나. 해원은 그 옆에 자기 물건을 내려놓을 데가 없어서 세면대 가장자리에 가방에서 꺼낸 작은 파우치를 올려놓았다.씻고 나왔을 때 방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태헌이 천장 등을 끄고 침대 옆 스탠드만 켜두었다. 태헌은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해원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누르며 창가 소파에 앉았다. 태헌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해원도 그 시선을 알았다."해원아."해원이 고개를 들었다."이리 와."몇 주 전 해원의 집 거실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그날 해원은 웃으며 걸어갔다. 오늘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대신 수건을 내려놓는 손이 그날보다 빨랐다.해원은 침대 앞까
금요일 오후의 사무실은 늘 조금 느슨했다.다음 주 예식 일정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업체에 보낼 메일을 정리하는 동안, 옆자리에서 다연이 기지개를 켰다."오늘 금요일인 거 실화야? 이번 주 왜 이렇게 길었지.""그러게.""너 이번 주 내내 얼굴이 별로였어. 주말엔 좀 쉬어."해원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연은 더 묻지 않고 자기 화면으로 돌아갔다. 해원은 그게 고마웠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금요일이었다.해원은 그 단어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일요일 아침, 해원의 집 복도에서 태헌을 배웅하며 했던 말이 있었다. 금요일에 봐요. 태헌은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던 아침이었다. 그 뒤로 닷새가 지났다.그 약속이 아직 유효한지 해원은 몰랐다. 그날 이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금요일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해원도 꺼내지 않았다. 지금 같은 때에 약속을 지키자고 말하는 게 맞는지,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다.여섯 시가 조금 넘어 업무를 마무리했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챙기는데 책상 위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태헌이었다.[끝났어.]해원은 그 짧은 한마디를 한참 내려다봤다.일요일에 태헌이 했던 말 그대로였다. 끝나면 연락할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태헌은 그 약속을 그대로 가져와 있었다.해원은 답장을 썼다.[어디로 가면 돼요?]잠시 뒤 호텔 이름과 방 번호가 왔다. 해원은 그 이름을 몰랐다. 태헌의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먼저 갈게."다연에게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지도 앱을 켰다. 택시로 이십 분 거리였다.
해원은 엄마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카페를 나왔다.집까지는 오 분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불을 켰다. 식탁 위에는 일요일에 엄마가 건넨 쇼핑백이 아직 그대로 있었다. 해원은 그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휴대전화를 꺼냈다. 태헌과의 대화창 맨 아래에는 오늘 아침 그가 보낸 짧은 메시지가 있었다.[출근했어.]해원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가 두 번 가고 연결됐다."응.""지금 괜찮아요?""방금 들어왔어."해원은 소파 끝에 앉았다."엄마 만났어요.""뭐라고 하셨어.""지금은 둘이 같이 집에 오는 건 못 보겠대요. 예전처럼 다 같이 밥 먹는 것도 못 하겠다고."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어.""저도요."해원은 그 말을 하며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정말 그랬다. 카페로 가는 길에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그 집에 둘이 나란히 들어가는 일은 해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해원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 그 말 자체는 아무것도 새롭지 않았다."근데요."해원이 말을 이었다."그 말 하나 하려고, 엄마가 여기까지 왔어요."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코트도 안 벗고 앉아 있었어요. 라떼 시켜놓고 거의 안 마셨고. 눈 밑이 다 꺼져 있었어요. 잠을 못 잤나 봐요."해원은 말하면서 엄마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한 번 걸렸다가 끝까지 버티던 목소리. 카페 문을 나서며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던 뒷모습."그 말 한마디 하는데, 엄청 오래 걸렸어요.
엄마에게서 연락이 온 건 목요일 오후였다.[퇴근하고 시간 돼?]해원은 사무실에서 그 메시지를 받았다. 사흘 만이었다. 현관에서 조심해서 가라는 말을 들은 뒤로 엄마는 아무 연락도 없었고, 해원도 먼저 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대화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몰라서, 그 말을 듣기 전에 무언가를 보내는 게 무서웠다.[응. 어디로 갈까?]답장은 조금 늦게 왔다.[너희 집 근처 카페. 아무 데나.]해원은 그 문장을 한참 봤다. 집이 아니라 집 근처였다.카페는 해원의 집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였다. 해원이 먼저 도착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러 가려다가 엄마가 무엇을 마실지 몰라 그냥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묻지 않아도 알았다. 따뜻한 라떼, 시럽 없이. 그런데 오늘은 그걸 미리 시켜두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수경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왔다. 문을 열고 들어와 해원을 찾더니, 테이블 앞에서 잠깐 멈췄다."……뭐 마실래?"해원이 먼저 물었다."아무거나.""라떼?""응."해원이 주문하러 다녀오는 동안 수경은 코트를 벗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음료를 받아 돌아왔을 때도 그대로였다. 오래 있지 않을 사람처럼.해원은 컵을 엄마 앞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수경은 컵을 두 손으로 감쌌지만 마시지는 않았다.창밖으로 퇴근길 사람들이 지나갔다. 둘 다 한동안 그쪽만 봤다."밥은 먹고 다니니."수경이 먼저 말했다.해원은 그 질문에 목이 조금 막혔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었다. 몇일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말."응. 먹어.""그래."다시 말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