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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그냥 있어

Author: 케사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15:06:45

알람이 울리자 해원은 눈을 떴다.

협탁 위에 엎어둔 개인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밤사이 쌓인 메시지와 메일 알림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연락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해원은 침대에 기대앉아 알림을 차례로 확인했다.

태원그룹 홍보실에서 VIP 대기실 위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보냈고, 촬영팀은 전용 엘리베이터 사용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다. 외부 장식 업체에서도 반입 시간을 확정해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 아래로 태원호텔 연회팀장이 전달한 메일이 보였다.

본부장 지시로 추가 변경은 오전 열 시까지 보류하겠습니다. 기존 확정안을 유지하며, 윤해원 총괄 확인 후 최종 반영하겠습니다.

태헌은 어느 쪽도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질문이 더 들어오지 않게 막아두고, 해원이 판단할 자리만 그대로 남겨놓았다.

출근한 해원은 가장 먼저 두 동선표를 나란히 띄웠다.

VIP 대기실을 옮기면 촬영팀이 사용할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야 했다. 요청을 모두 받아들이면 신부 이동 시간과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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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71화. 아직 갈 건 아니에요

    분수 뒤쪽 길은 생각보다 좁았다.앞에서 유모차가 오자 해원이 옆으로 비켰다. 태헌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유모차가 지나간 뒤 다시 나란히 걸었다.“어제 열한 시쯤 들어갔어요.”해원이 말했다.“일이 늦게 끝났어?”“예식이 밀려서요. 마지막 정리까지 하고 나니까.”오늘 아침에도 구두 안쪽에 발을 넣기가 싫었다. 다른 신발을 꺼냈다가 결국 같은 걸 신고 나왔다. 상담 때 입는 바지에 맞는 게 그것뿐이었다.“다연이는 오늘 운동도 간대요.”“퇴근하고?”“네. 저보고 같이 등록하자는데, 어제 그렇게 서 있고도 운동을 하고 싶은가 봐요.”“너는?”“안 간다고 했죠.”해원은 앞에 놓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다.“그랬더니 그래서 더 해야 된대요. 피곤하다고 하면 체력이 없어서 그런 거고, 안 피곤하다고 하면 할 만하겠네 그러고.”태헌이 웃었다.“빠져나갈 데가 없네.”“그러니까요.”길은 작은 화단을 돌아 다시 분수 쪽으로 이어졌다.해원이 걸음을 늦췄다.“여기 아까 왔던 데죠?”분수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그대로였다. 과자 봉지만 하나 더 늘어 있었다.“그런 것 같은데.”“아시면 말씀을 하시지.”“네가 이쪽으로 가길래.”“저도 처음 와봐요.”회사에서 가까웠지만 안쪽까지 들어와 본 적은 없었다. 해원은 갈림길로 돌아가 이번에는 왼쪽 길을 택했다.태헌이 따라오며 말했다.“오늘 연락 와서 반가웠어.”해원은 그쪽을 보지 않고 걸었다.왼쪽 길에는 운동기구가 몇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70화. 오늘은 들으려고 왔어요

    마지막 상담은 예약 시간을 이십 분 넘겨 끝났다.해원은 고객이 두고 간 우산을 들고 엘리베이터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신부는 받을 때까지도 자기 우산인 줄 몰랐다.책상에는 상담 기록이 펼쳐져 있었다.날짜 옆에 별표를 하고, 드레스 업체에 전달할 내용을 적었다. 오전에 보낸 견적서에는 아직 답이 없었다. 내일 다시 연락할 일로 옮겼다.다연은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뭐 찾아?”“이어폰. 분명 넣었는데.”해원은 의자 밑을 봤다. 없었다.“먼저 가. 찾고 갈게.”“나도 아직.”다연이 서랍을 통째로 빼려다 말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아.”“찾았네.”“서랍 정리하려던 거야.”다연은 서랍을 밀어 넣고 나갔다.해원도 상담 기록을 덮었다.휴대전화를 꺼내 태헌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그대로 썼다.[오늘 잠깐 볼 수 있어요?]보내고 나니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태헌에게 저녁 일정이 있을 수도 있었다. 오늘이 어렵다고 하면 다른 날을 정하면 됐다.해원은 서랍을 잠갔다.휴대전화가 울렸다.[응. 어디로 가면 돼?]회사 정문이라고 쓰다가 지웠다. 퇴근하는 직원들이 계속 오가는 곳이었다.[회사 뒤쪽 공원 입구요. 일곱 시 괜찮으세요?][갈게.]해원은 답장을 확인하고 가방을 들었다.밖은 아직 환했다.공원까지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 일찍 나왔다는 걸 알면서도 사무실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횡단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69화. 하루

    박정희 부부는 안내 직원을 따라 그대로 B-7로 들어갔다.중간에 멈추거나 다른 테이블을 찾는 일은 없었다.해원은 입구에 서서 두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것까지 확인했다.B-4는 세 줄 앞이었다.김영숙 부부는 여전히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서로 시선이 닿을 거리도 아니었다.“됐지?”옆으로 온 다연이 물었다.“응.”해원은 좌석표를 접었다.그때 신부대기실 쪽 직원이 다가왔다.“윤 실장님, 신부님 입장 전에 부케 한번 봐달라고 하세요.”“갈게요.”해원은 다연에게 좌석표를 넘겼다.“입구 십 분만 더 봐줘.”“알았어.”신부대기실에는 사진 촬영을 끝낸 가족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김서진은 거울 앞에 앉아 부케를 들고 있었다.“실장님.”“네.”“이거 너무 아래로 들고 있는 것 같죠?”해원이 손 위치를 조금 올려줬다.“지금 정도면 괜찮아요. 입장하실 때만 팔에 힘 너무 주지 마세요.”“저 빨리 걸을 것 같아요.”“그러면 앞만 보지 말고 음악 한번 들으세요. 첫 소절 끝나기 전에만 안 들어가시면 돼요.”신부가 웃었다.“그게 더 어려운데요.”“제가 문 앞에서 한번 잡아드릴게요.”밖에서 식전 영상이 끝난다는 무전이 들어왔다.해원은 시간을 확인했다.“이제 이동할게요.”복도로 나오자 다연이 반대편에서 손을 들었다.“좌석 끝.”“입구는?”“마지막 두 팀 들어오는 중.”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68화. 두 자리만

    본식까지 사십 분 남았을 때였다.해원은 오키드홀 입구에서 최종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신부 김서진은 대기실에 들어가 있었고, 양가 혼주는 인사를 마친 뒤 따로 쉬고 있었다. 식전 영상도 문제없이 돌아갔다.하객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해원은 안내 직원에게 몇 가지를 확인한 뒤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신랑 측 친구 테이블 두 개는 그대로 가고요. 신부 쪽 친척은 B부터 먼저 안내해 주세요.”“네.”직원이 돌아서자 다연이 홀 안쪽에서 빠르게 걸어 나왔다.손에는 좌석표 한 장이 들려 있었다.“해원아.”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해원이 다연을 봤다.“왜.”다연이 종이를 내밀었다.“이거 최종본 맞아?”해원은 받아 들자마자 날짜부터 봤다.그리고 아래쪽 수정 시간을 확인했다.아니었다.전날 오후에 마지막으로 바꾼 내용이 빠져 있었다.“이거 왜 여기 있어?”“홀 안 테이블 배치는 이걸로 들어갔어.”해원이 다시 좌석표를 봤다.신부 측 B-4.이름 네 개가 나란히 들어가 있었다.그중 두 집안은 함께 앉히면 안 됐다.몇 년째 재산 문제로 왕래가 끊긴 친척들이었다.신부 어머니가 전날까지 따로 부탁했던 사항이었다.해원이 홀 안을 봤다.“B-4 지금 몇 명 들어갔어?”“두 명.”“누구.”다연이 태블릿을 열었다.“김영숙 씨하고 남편분.”이미 앉아 있는 쪽이었다.해원이 좌석표를 다시 확인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67화. 빚 보다 먼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무실은 조금씩 조용해졌다.해원은 마지막 메일을 보내고 모니터 오른쪽 아래 시계를 확인했다.여섯 시 십 분.오늘 저녁에는 약속이 없었다.당연한 일이었다.어제 자기가 그렇게 정했다.부르지 말라고 했다.명령하지 말라고 했다.먼저 말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그런데 퇴근 시간이 되자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선명했다.해원은 휴대전화를 집었다.새 메시지는 없었다.태헌에게서도.해원은 화면을 껐다.내가 그러라고 했지.굳이 그다음 생각까지 이어가지 않았다.가방을 정리하다가 손을 멈췄다.어젯밤 받은 자료가 아직 휴대전화에 남아 있었다.해원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파일을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었다.궁금한 건 하나였다.윤해원 추가 확인.누가 시킨 건지.해원은 해당 파일을 열어 아래로 내렸다.본문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었다.다음 파일.또 다음 파일.그러다 전달 메일이 하나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짧은 문장이었다.윤해원 건은 별도로 확인 바랍니다.그 아래 요청자 이름.차태헌.해원은 한동안 화면을 내리지 않았다.가족 확인을 맡은 사람이 알아서 더 들여다본 게 아니었다.태헌이 다시 시킨 거였다.해원은 날짜를 확인했다.가족관계 확인이 끝난 뒤.그리고 채무 관련 자료가 처음 등장하기 전.순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66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해원은 파일을 다시 처음부터 열었다.어젯밤에는 순서대로 넘겨보기만 했다.한수경.차명우.두 사람의 관계.가족관계.그리고 그 아래 윤해원.처음에는 이상할 게 없었다.아버지가 재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에게 딸이 있었다.태헌이라면 알아봤을 것이다.그 정도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해원은 첫 번째 파일을 끝까지 넘겼다.마지막 장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가족관계 추가 특이사항 없음.기초 확인 종료.해원은 날짜를 봤다.그리고 다음 파일을 열었다.사흘 뒤였다.이번에는 제목부터 달랐다.윤해원 추가 확인.해원은 손가락을 멈췄다.한수경의 이름이 없었다.차명우도 없었다.자기 이름만 있었다.해원은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었다.근무처.경력.거주 형태.기본적인 생활 정보.처음 가족관계 자료에 들어 있던 내용보다 조금 더 깊었다.왜 필요한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해원은 파일을 닫지 않고 앞의 문서로 돌아갔다.가족관계 확인 종료.다시 다음 파일.윤해원 추가 확인.날짜를 다시 봤다.틀리지 않았다.가족을 알아보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게 아니었다.한 번 끝났다가,다시 자기만 따로 시작됐다.해원은 파일 목록을 아래로 내렸다.채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문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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