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이 선인장을 들고 오자 전태윤이 물었다.“네가 산 거야?”“출근하는 길에 「꽃필무렵」 꽃가게에 다녀왔어.”“꽃필무렵?”익숙한 이름이였다. 와이프한테서 들은 것 같은데... 전이진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여운초씨 꽃가게 이름이야. 근데, 가게 이름이 뭐 이래?”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딱 맞는 이름인데, 왜? 간 김에 화분 몇 개 더 사 오지 그래?”전이진은 입을 삐죽거렸다.“꽃을 사러 간 게 아니야, 이 선인장도 마지못해 산 거고.”‘선인장 가시에 손을 찔리게 했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을 수는 없잖아?’“컴퓨터 옆에 두려면 둥근 선인장을 사는 게 낫지 않아? 이 선인장은 가시가 길어 찔리기 쉬워.”전태윤은 몇 마디 하고는 전이진을 두고 먼저 로비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전이진은 형이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했을 거로 생각했다.몇 분 후.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전이진은 선인장을 한참 쳐다보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여운초의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기억력이 좋은 여운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금 선인장을 사 가신 손님분이시죠?”“네, 기억하고 있군요.”방금 그 때문에 혼났는데,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여운초는 마음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물었다.“다른 꽃 더 사시려고요?”“아까 깜빡 잊고 있다가 회사에 돌아와서야 생각이 났는데, 난초 하나 가져다줄 수 있나요?”“큰 거로 드릴까요, 작은 거로 드릴까요?”“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배달 되죠?”전이진은 여운초가 난초를 가져오면 그녀가 소경인지 아닌지 다시 한번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제가 사람을 시켜서 보내드릴 테니 주소와 연락처를 주시면 돼요.”전이진은 가게에 점원 두 명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만약 여운초에게 직접 배달해달라고 하면 너무 티 나고 자신이 못돼 보인다.“아니, 됐어요. 점심에 시간 날 때 가서 화분 몇 개 더 고를게요. 제 사무실이
여운초는 매우 뜻밖이었다.전씨 그룹 사람이라고?전씨 그룹의 직원일까, 아니면 전씨 일가의 사람일까?전혀 알 수가 없었다.여운초는 다음에 하예정이 꽃 사러 가게에 오면 그 전화번호를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했다.전이진이 여운초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르는 하예정은 전태윤이 자신을 가게까지 데려다준 후, 심효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도와줄 친구들이 도착하자, 먼저 그녀들에게 자신의 요구에 따라 작은 공예품을 만들어보게 했다.친구들의 솜씨가 서툴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다들 집으로 가져가서 만들도록 가게 창고에서 재료들을 가져다 나누어 주었다.몇몇 친구를 배웅한 후 가게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던 하예정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를 몰고 가게에 막 도착한 성소현이 서점 입구에 차를 세우는 것을 발견했으니까.“예정아, 나 기다리고 있었어?”성소현이 웃으며 하예정에게 걸어갔다. “방금 친구들 배웅하러 나왔다가 언니가 오는 걸 보았어요.”성소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보고는 하예정에게 물었다.“바로 네가 말하던 공예품 만드는 거 도와준다는 친구들?”“네, 이제부터 난 훨씬 한가해져 언니와 함께 큰돈을 벌 수 있어요. 참, 저녁에 우리 또 연회에 가야 해요.”연회 말이 나오자 하예정은 지난번 동씨 가문 연회에서 성소현과 자신이 앞으로 동서지간이 될 여운초를 돕느라 여운별의 미움을 산 것을 떠올렸다.응석받이로 자란 여운별은 뜻밖에도 하지철처럼 깡패들을 불러 그녀의 차를 가로막고 부수는 걸 택했다.비록 하예정은 아무 일 없었고 여운별도 경찰서에 보냈지만, 하예정과 여씨 가문의 모순은 점점 더 커졌다.“이 두 사람 낯이 익는데... 너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걱정돼서 일부러 경호원을 붙인 거구나. ”성소현이 가게 입구 의자에 앉아 있는 두 경호원을 바라보며 웃었다.“그건 아니에요, 내가 위험할까 봐 밀착 경호원을 두 명 붙인 거예요.”성소현은 히죽 웃으며 하예정과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
하씨네 마을이든 이웃 마을이든 젊은 세대들은 모두 외지에서 일하고 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일을 많이 할 수 없는 노인들뿐이어서, 밭이 황폐한 대로 있다. 다른 사람이 밭을 도급맡으면,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은 보통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하예정과 심효진도 성소현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성소현은 투자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말하고 나서 하예정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기쁜 소식을 전했으니, 이제는 나쁜 소식을 전할게. 예정아, 내가 사람을 시켜 토지 계약 건에 대해 알아볼 겸 너의 고향에 있는 망나니 친척들의 최근 상황도 알아봤어.”“고향 친척들이 한 일 중에 어느 하나 사람 기분을 더럽게 하지 않은 일이 있어요? 언니, 말해봐요, 무슨 일이든 난 감당할 수 있어요. 기껏해야 모래와 돌을 끌고 가 팔았겠죠.”“네가 실어 보낸 집 짓는 데 쓸 자재들은 다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내가 하지철을 한 번 혼냈더니, 효과가 있는 모양이네요.”하지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손자는 아니지만 막내로써 관심을 적지 않게 받았다.하예정이 하지철에게 하씨 집안 사람들이 모래와 자갈을 못 옮기게 지켜보라고 하자, 하예정을 두려워하고 있는 그는 아마도 고분고분 자기 가족들을 말렸을 것이다.“네가 애초에 그 사람들에게 소송을 걸어 부모님 집을 되찾겠다고 했잖아. 두 늙은이는 법을 전혀 모르지만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젊은이들의 설명을 듣고 소송을 하면 저들에게 이익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았을 거야.”성소현이 계속해서 말했다.“소송에서 지는 것이 달갑지 않은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마을에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어. 너희 자매는 친손녀도 아닌데, 무슨 체면으로 부동산을 다툴 자격이 있느냐면서 말이야.”“...”어리둥절해 있던 하예정이 차갑게 웃었다.“어떻게 내가 본인들 친손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내가 아빠를 그렇게나 닮았는데. 아빠가 본인들의 친아들이 아니어야, 우리 자매도 친손녀가 아
“그들이 무슨 악수를 쓰든 간에, 소송은 이미 결정된 거예요. 우리 자매의 것이면 절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것이 아닌 건 일절 다투지 않을 거고요.”하예정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녀는 마음이 모진 사람은 아니지만, 집안에서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철처럼 모질게 대할 수 있었다.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그녀는 일평생을 들여 치유해야 하니 말이다.“당연하지.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정식적인 절차를 밟으면 돼. 피차 손해 볼 일이 없게 말이야.성소현이 말했다.“그 사람들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뻔뻔해. 그런데 예정아, 너희 아버지는 정말 그 사람들 친아들이신 거야?”“나는 친자라고 생각해요. 친자가 아니라면 아버지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쏙 빼닮을 수 있겠어요? 단지 편애했을 뿐이에요... 어떤 부모들은 그렇게 큰애랑 작은애만 예뻐하고 그사이에 낀 자식은 소홀하게 여기기도 하잖아요.”“소송할 때 그 사람들이 혹시 우리 아버지가 친아들이 아니라고 한다면, 바로 DNA 감정을 요청할 거예요. 혈연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감정을 해보면 알게 될 거니까.”“만약 나랑 혈연 감정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일 거예요.”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자녀가 친자인지 아닌지는, DNA를 검사하면 바로 알 수 있다.그렇게 되면 하 영감네 부부가 마을에 퍼뜨린 소문은 주민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모두 한 마을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같은 연배의 노인들도 꽤 있는데, 어찌 그 사람들을 귀머거리, 장님 취급을 하며 하유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그녀의 어머니 같은 경우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주워다 기른 자식이었는데, 어머니께서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네가 말한 것처럼, 그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린 이유는 너를 도덕적으로 묶으려는 심산 때문일 거야. 너희한테도 친자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자신들과 집 재산 다툼을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맞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복에 겨웠어요, 복에.”그녀의 친척과 친구들은 쉽게 전태윤의 편에 서며 그를 위해 좋은 말을 해 주었다.그가 하예정에게 너무 잘해 주었기 때문이다.“나는 그이에게 무슨 선물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하예정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그러자 두 친구는 하예정이 애정을 과시하며 그녀들을 골탕 먹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효진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소정남도 그녀에게 아주 잘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혼자 솔로였던 성소현은 정말 부럽기도, 질투가 나기도 했다.“태윤 씨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 원래는 오직 와이프 자리가 부족했었는데 네가 시집가면서 그 자리도 메꿔졌잖아. 지금으로서는 아들 딸이 부족하니, 얼른 태윤 씨랑 아기나 만들어. 남자, 여자 이란성 쌍둥이 낳으면 되겠네.”성소현은 귀여운 주우빈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우빈이처럼 그렇게 귀엽고 총명하면 몇 명을 더 낳아도 괜찮아. 어차피 너희 태윤 씨한테는 키울 능력이 있으니까.”“예정아, 혹시 좋은 소식 있어? 좋은 소식 생기면, 제일 먼저 나한테 말해줘. 내가 조카에게 금팔찌 몇 개 채워줄 테니까.”그러자 심효진이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예정인 좋은 소식이 생기면 틀림없이 가장 먼저 남편한테 알려줄 거예요. 그러니 태윤 씨한테 갈 기회 뺏지 마세요. 어쩌면 태윤 씨가 질투가 나서 예정이랑 소현 씨가 못 어울리게 할지도 모르니까요.”그 말에 성소현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예전에는 내가 태윤 씨를 무서워했는데, 지금은 태윤 씨가 나를 무서워해요. 태윤 씨가 나를 처형이라고 부르는 거 못 들었어요? 하하하, 그때만 생각하면 웃겨 죽겠어요!”그러자 하예정은 조용히 속삭였다.“언니 분명 놀라서 밥까지 뿜었으면서?”“...”“내 오랜 친구가 곧 세상을 떠나서 좋은 소식은 당분간 없을 거예요. 나도 1남 1녀를 갖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예준하 씨 큰 형수님이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하던데, 곧 낳
하예정은 충격을 받았다.‘쟤는 무슨 창업을 한다고 그러지, 전씨 가문 후대만 계속 낳아주면 될 것을? 아이만 낳아도 부자가 될 수 있는데! 역시 억만장자는 다르구먼!”심효진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아이 낳는 거로 그렇게 많은 상금을 주다니, 게다가 그건 전씨 할머니가 주는 선물일 뿐이지, 또 다른 사람들 선물도 있을 거잖아?’“예정아,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너 부자 될 수 있을 거야.”심효진이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성소현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소씨 가문 사모님이 준 비취 옥팔찌를 여러 번 어루만지며 말했다.“효진 씨도 예정이 부러워할 필요 없어요. 예비 시어머니가 가보까지 효진 씨한테 줬잖아요. 난 내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 보고 또 만져보니 확실히 소씨 가문 가보가 맞아요.”“...”“이게 정남 씨네 가보라고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심효진은 소씨 가문 사모님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가문의 보물을 그녀에게 씌워줄 줄은 몰랐다.‘한 번에 통과된 건가?'“엄마가 저를 데리고 소씨 가문의 몇몇 부인들과 어울렸었거든요. 그래서 매번 소씨 가문 사모님이 이 옥팔찌를 차고 있는 걸 봤었어요. 그리고 소씨 가문 안주인한테도 또 하나 있어요. 안주인께서 차고 있는 건 사모님 것보다 색깔이 더 좋아서 값어치가 더 뛰어날 것으로 보이더라고요.”“사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건 가문에서 여러 세대 동안 내려온 보물이라고. 대대로 맏며느리에게 전해진대요. 소정남 씨가 소씨 가문 장남이에요?”그러자 심효진은 본능적으로 말했다.“소지훈 씨가 정남 씨보다 나이가 많아요.”“두 사람은 같은 엄마가 아니잖아요. 단지 사촌일 뿐이지.”그녀의 말에 심효진은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놀래라. 그 두 사람 친형제처럼 사이가 좋아서... 그럼 정남 씨는 장남이 맞아요.”“그러니까 예정이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효진 씨 예비 시댁도 전씨 가문에 전혀 지지 않거든요. 두 사람 관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두 가문에 시집가게 됐네요.”심효진과 하예정은
하지만 그녀도 전태윤의 자신의 남편이 될 줄 생각지 못했다.“예정아, 그건 다 지나간 일이야. 태윤 씨가 나를 처형이라고 불렀을 때 나는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졌어. 태윤 씨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아.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어. 이전에는 나랑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다니까?”성소현이 전태윤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은 것은, 비단 하예정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이렇게 보니, 내 절친이랑 네 이야기가 매우 비슷하네. 다만 가희의 역할은 태윤 씨랑 비슷할 뿐이지. 가희는 신분을 숨긴 채 남자 친구랑 사귀었어. 하지만 결국 그 남자는 가희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허벅지를 껴안았지. 무슨 30년을 덜 고생할 수 있다면서 말이야.”“... 그분은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차린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해요.”“나도 그렇게 가희한테 충고했어.”뒤이어 성소현은 자신의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먼저 갈게. 도급 계약서, 너 시간 있으면 한 부 작성해 줄래? 만약 시간이 없다면, 내가 우리 오빠 비서한테 한 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게. 나는 이런 일이라면 딱 질색이라서. 지난번 계획서도 하룻밤 동안 썼어.”“제가 할게요.”하예정은 흔쾌히 임무를 맡았다. 무슨 일이든 성소현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이것은 그들 세 사람의 투자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어떤 일은 직접 해보아야만 경험을 쌓을 수 있다.“연회 참가하게, 조금 이따 저녁에 너 데리러 올게.”하예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성소현을 배웅했다. 그녀가 멀어진 후에야 하예정은 가게로 돌아왔고, 심효진을 도와 함께 점심을 준비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북적북적 해졌다.그러자 두 사람은 식사 준비를 멈추고 먼저 돈을 벌기 시작했다.점심쯤, 하예진이 주우빈을 데리고 왔다.그녀는 아침 장사를 하므로 딱 반나절만 일하면 됐었다. 그렇다 해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 그녀는 매우
“괜찮아. 나 여기 멀쩡히 있잖아. 다만 차가 부서져서 오늘 태윤 씨가 나 출근하게 데려다줬어.”그러자 하예진은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누구야. 또 그 사람들이야?”그녀는 집안의 그 골칫거리들이라고 여겼다.“아니, 여씨 가문 사람이야. 바로 내가 지난번에 도와줬던 여운초 씨 여동생 말이야. 나랑 두 번이나 부딪힌 척 있거든. 그랬더니 글쎄 양아치 몇 명을 불러 나를 상대하지 뭐야.”“아주 무법천지구먼!”하예진은 욕을 내뱉었다.“경찰에 신고했어?”“응.”하예정은 언니의 품에 안긴 조카를 보며 말했다。“언니, 난 괜찮을 거야. 태윤 씨가 경호원 두 명을 더 붙여서 내 안전을 지켜주고 있거든.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언니랑 우빈이한테도 피해가 갈까 봐서야. 언니, 아니면 이사 와서 우리랑 같이 살자. 그러면 서로 보살핌도 받고 좀 안전해질 수 있잖아.”그러자 하예진이 말했다.“내가 세 들어 있는 곳은 안전해. 그리고 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 그 사람들도 교훈을 받고 다시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거야. 현대사회는 법치주의잖아.”하예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또 말을 보탰다。“가게에 있는 작은 창고를 정리했어. 침대 하나 사서 거기에 두려고. 그리고 세 든 집은 반납하고 우빈이랑 함께 가게로 가서 살 거야. 그럼 집세도 절약할 수 있고 안전할 수 있어.”왜냐하면, 그곳에는 노동명이 청한 순찰 경비원이 있기 때문이다.평소 두 모자가 드나들 때도, 하예정이 차로 마중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언니도 너무 긴장하지 마. 정면으로는 그 사람들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냥 언니더러 방비 태세라도 갖추라는 거야. 앞으로 언니가 노씨 그룹에 출근할 때처럼, 내가 아침에 언니네 가게에서 우빈이를 데리러 올 테니 숙희 아주머니가 돌봐 주실 거야. 언니는 그저 일에만 집중하면 돼.”두 자매는 이제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이 그녀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자매에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