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호텔을 나와서도 다정하게 꽃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고맙지만 괜찮아. 우리 꽃집까지 가는 버스에 태워주면 돼.”전이진은 여운초가 앞으로도 자주 외출할 것을 생각하면 혼자서 버스를 타는 것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이렇게 말했다.“좋아. 그럼 밖에 있는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자.”“고마워.”여운초는 다시 감사를 표했다.이 사람이랑 함께하면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고맙다는 말일 것이다.두 사람이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6번 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전이진은 여운초를 도와서 버스에 앉혔다. 여운초가 버스에 오른 것을 보고 그는 뒤돌아서 호텔로 갔다. 호텔 문 앞의 작은 주차장에서 그는 또 금실이 좋은 형네 부부와 마주쳤다.“이진 씨, 운초 씨는요?”하예정은 시숙만 있고 여운초가 없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물어봤다. 하예정은 전이진과 여운초가 함께 식사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꽃가게로 갔어요.”전이진은 멈춰서서 형네 부부와 얘기를 하면서 형에게 물었다.“형수님 바래다주려고?”“응.”전태윤은 덤덤하게 응답했다. 하예정은 전이진에게 물었다.“운초 씨는 보이지 않아서 외출이 불편한데 이진 씨는 왜 꽃집에 바래다주지 않고 혼자 버스를 타게 했어요?”“제가 버스까지 태워줬어요. 바래다주지 말래요.”...‘여운초가 데려다주지 말라고 정말 안 데려다줬단 말인가? 여운초가 버스를 타고 돌아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되지도 않는가?’전이진은 형네 부부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운초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익숙한 환경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요. 꽃필무렵에서 우리 회사까지의 길은 습관이 돼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앞으로 내가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회사로 와서 나를 찾을 수 있죠.”“...”전태윤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동생을 핀잔했다.“네가 보고 싶어도 운초 씨가 널 보고 싶어 하는 일은 없을걸.”여운초는 지금 전이진이 자기를 접근하는 이유가 감정을 쌓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예
“당신이 주는 건 풀 한 포기라도 다 좋을 거야.”하예정은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오늘은 별장으로 돌아갈 때 풀 한 포기를 베어서 당신한테 선물로 줄게요.”전태윤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의 코를 꼬집었다. 하예정이 정말로 선물한다면 전태윤도 받을 의향이 있다. 전태윤이 한 말도 사실이다. 하예정이 선물한 것이라면 뭐든 좋다. 꽃필무렵까지 가는 길에서 전태윤이 갑자기 말했다.“예정아, 며칠 뒤에 나랑 함께 공씨 어르신이 여는 연회에 가자. 연회장소는 관성 호텔이야.”하예정은 고개를 까닥하고 그를 보면서 웃었다.“웬일이에요. 웬일로 전 씨 도련님이 연회를 다 가고. 듣기로는 전 씨 도련님은 한 번도 연회에 참가한 적이 없는데 이런 분을 오게 할 수 있는 가문이라면 당신네 전씨 가문과도 관계가 깊은 것 같네요.”전태윤은 아프지 않게 하예정의 이마를 치며 정정해줬다.“앞으론 여보네 전씨 가문이기도 해. 여보는 우리 전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 될 사람이야.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무슨 의문이 있으면 직접 이 남편한테 물어보면 돼. 연회를 여는 가문은 공씨 가문이야. 공씨 어르신이 관성의 상업계에서는 지위가 아주 높아서 사람들의 존중을 받아. 어르신은 매년 관성 호텔에서 한 번씩 상업 연회를 열어서 여기 상업계의 크고 작은 대표들한테 초대장을 보내곤 해. 교류인 것도 있겠지만 실력이 있고 규모가 아직 크지 않는 작은 회사들이 큰 비즈니스를 할 기회를 주는 자리기도 해. 공씨 가문과 우리 전씨 가문은 대대로 교제가 있어서 왕래가 밀접하고 관계가 아주 깊어.”“공씨 가문은 관성에서 사업을 아주 넓게 하는데 집안의 사람들이 다 알려지지 않은 편이야. 우리 전씨 가문은 대외로 알려진 게 많아서 공씨 가문을 위해 많이 막아줬어. 공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우리 엄마와 단짝이야. 작년에 공씨 가문의 연회 시간은 10월이었어. 그때 우리가 금방 혼인신고를 하고 당신이랑 효진 씨가 이 사모님을 따라 참가한 연회, 당신 기억나? 연회에 참가하고 집에 와서
하예정은 오늘 주로 본가에 일을 보러 갔기에 아직 심효진의 약혼날짜를 묻지 않았는데 전태윤은 알고 있었다. 그는 하예정에게 알려주었다.“효진 씨와 소정남의 약혼날짜는 3월 20일이야. 빨라, 오늘이 벌써 십몇 일인데. 두 사람의 약혼식도 아마 성대하게 치를 거야. 소씨 가문의 친척과 친구들이 아주 많아.”소정남 가문이랑 감정이 깊지 않은 사람들도 소씨 가문의 가주와 도련님을 봐서라도 선물을 보내올 것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소씨 가문의 정보망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두 사람의 결혼식 날짜도 우리 앞에 있을 거야.”전태윤이 계속 말했다.“아마 5월 1일 전에 혹은 후에 결혼식을 올릴 거야. 소정남이 말하길 약혼식이 끝나면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 아주 다급하더라고.”전태윤과 하예정은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좋은 날짜를 골라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 전태윤은 다급하지 않았는데 소정남과 심효진은 절차대로 진행하였기에 소정남은 당연히 다급했다.하예정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부부는 말하면서 금방 꽃필무렵에 도착했다.“일구 씨,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하예정은 강일구한테 얘기하고는 전태윤과 단둘이 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갔는데 여운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예정은 알바생한테 남편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운초를 기다렸다.알바생이 하예정이 주문한 꽃다발을 다 만들었을 때 여운초가 돌아왔다,“운초 씨.”하예정이 여운초를 불렀다. 여운초는 하예정의 소리를 듣고 반가운 미소를 띠었다.“예정 씨네요. 차에서 내리니 가게 문 앞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는데 왜 그런가 했어요.”하예정이 온 것이다. 아마 전 씨 도련님도 함께 왔을 것이다.“다른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 인기척까지 알았어요?”여운초는 웃으며 말했다.“다들 저 보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분들 시선을 느낄 수 있어요.”하예정이 웃었다. 이 여자애는 정말 세심했다.“예정 씨, 꽃 사시게요?”“네, 우리 남편한테 주려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전태윤은 도도하고 차가웠다. 온몸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는 꽃가게 안의 사람들을 압도적으로 눌러놓았다. 하예정은 오래 머물지 않고 꽃다발을 전태윤에게 건네준 후 바로 작별을 고했다.가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졌다.하예정은 언니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고 조카와 잠시 잡담을 나눈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주우빈은 하예정과 통화를 마친 후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엄마가 그 휴대폰을 가져가 버렸다.“엄마, 나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요.”하예진은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으면 엄마가 텔레비전을 켜줄게. 휴대폰으로 보면 눈에 안 좋아. 텔레비전도 딱 30분이야.”주우빈은 그 말을 듣고 입이 한발이나 나왔지만 엄마가 이미 리모컨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알았어요.”아들에게 텔레비전을 켜준 후 하예진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식재료들을 준비했다. 준비한 식재료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쓸 예산이었다.이때 초인종이 울렸다.“엄마, 내가 가서 열게요.”주우빈은 초인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바로 엄마에게 말하고는 작은 의자를 들고 가 문을 열었다.하예진은 아들이 문을 열도록 내버려두었고, 누가 왔는지 궁금해 부엌칼도 내려놓지 않은 채 부엌을 나섰다.집 앞에 서 있는 주형인과 서현주를 보고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아들이 문을 열어준 것을 보고 기뻐하며 아들을 안으려던 주형인은 그녀가 시퍼런 식칼을 들고 아들 뒤에 서 있자 쭈뼛대며 말했다.“예진아, 우... 우린 우빈이 보러 올 겸 청첩장을 주러 온 거야.”집의 인테리어도 반쯤 진행되었는지라 완공 날짜를 얻은 다음 서현주와 결혼식을 치를 날짜를 정했다.서현주는 빨리 사람을 청해 청첩장을 써달라고 재촉했다. 하예진에게 청첩장을 같이 보내러 오자고 강요한 것도 그녀의 뜻이었다.주형인은 하예진이 이미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서현주와의 결혼 청첩장
“동명 아저씨가 무슨 블록을 줬는지 꺼내서 아빠한테 보여줘봐봐. 아빠가 조립해 줄게.”주우빈은 곧 주형인의 품에서 나와 장난감이 가득 놓여 있는 선반으로 달아가 계속 조립하지 못했던 블록 상자를 가져왔다.주형인은 그 블록을 보고 속으로 노동명을 음흉하다고 욕했다.‘우빈이가 겨우 몇 살인데, 아직 3살도 안 되는 아이한테 이런 블록을 선물해? 아무리 우빈이가 똑똑하다고 해도 이런 고난도 블록을 어떻게 맞춰낼 수 있겠어?’노동명은 일부러 고난도 블록을 주우빈에게 준 것이 분명했다.‘우빈이에게 블록을 맞추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를 통해 예진에게 접근하려는 게 아니야? 참 염치없기도! 우빈이를 이용해 예진에게 접근하려 하다니.’주형인은 마음속으로 노동명을 수천수만 번 욕했다.하예진은 부부에게 자리를 권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라준 뒤 말했다.“지금 바쁘니까 청첩장은 여기에 두면 돼. 그날 시간이 나면 우빈이까지 데리고 갈게.”그들이 그녀가 결혼식을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감히 청첩장을 줄 담이 있다면 그녀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물론, 그녀도 결혼식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마음에 한이 맺힌 사람이면 몰라도 한이 맺히기는커녕 오히려 주형인과 이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주씨 같은 쓰레기 가문은 서현주 혼자서 잘 즐기라고 해.’하예진은 서현주도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거라 감히 말할 수 있다.김은희나 주서인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가정에서 참을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다만 모두 서현주가 내연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주형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서현주는 항상 승리자의 자태로 주형인과 하예진의 이혼을 내려다보았다.주형인과 결혼하지 않으면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듯이.“예진 씨, 지금 뭘 하는 거야?”서현주는 하예진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내가 뭐 도와줄 거라도 없어?”“없어.”하예진은 그녀의 도움을 거절했다.서현주는 여전히 뻔뻔하게 하예진의 뒤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
하예진은 서현주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유용한 소식을 물어내지 못한 서현주는 속으로 화를 내며 주형인의 옆으로 돌아갔다.동시에 그녀는 하예진의 셋집 환경을 살펴보았다.셋집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하예진의 손을 걸쳐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아늑했다.그녀는 집안 살림에 있어서는 하예진이 자신보다 훨씬 낫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주형인은 아들에게 블록 조립을 가르쳤는데 평소 아들과 거의 함께 있지 않던 그는 흩어져 있는 작은 블록 더미와 설명서를 보면서 조립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더러 이걸 조립하라고 하면 분명 인내심이 바닥나 금방 포기하였을지도 모른다.“조립할 줄 알기나 해요?”서현주가 그에게 물었다.“그러는 현주 넌 할 줄 알아?”가득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던 주형인은 아내의 말을 듣자 퉁명스럽게 한마디 쏘았다.주우빈은 고개를 들어 서현주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마음속 깊이 묻었던 의문을 물었다.“아빠, 이 아줌마는 왜 항상 아빠를 따라다녀요?”주형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현주는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우빈아, 난 네 아빠의 아내야. 그러니까 날 엄마라고 불러도 돼.”“난 엄마가 있어요, 아줌마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주우빈은 이내 화를 내며 서현주의 말에 반박했다. 하예진도 서현주의 말을 듣고 주방에서 나왔다.“엄마.”주우빈은 얼른 일어나 하예진의 곁으로 달려가 다리를 잡았다. 그는 작은 얼굴을 들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엄마가 내 엄마예요. 저 아줌마는 내 엄마가 아니에요!”하예진은 아들을 안으며 차가운 얼굴로 서현주에게 말했다.“우빈이에게는 친엄마 하나로도 충분하니 새엄마는 필요 없어. 주형인! 당신 아내 데리고 당장 나가.”주형인은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하예진과 아들을 바라보았다.이때 서현주가 말했다.“난 우빈이의 새엄마야. 새엄마도 엄마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 우빈이는 오빠의 친아들이고 나는 오빠 마누라야. 우리 셋이 한 가족이라고
방금 주형인이 함께 조립하려 했지만 도통 조립되지 않았다.그래서 우빈은 역시 동명 아저씨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처음으로 동명 아저씨가 그리워 났다.만약 노동명이 우빈의 생각을 알게 된다면 기뻐서 날뛸지도 모른다.하예진은 주형인이 아들에게 사준 장난감과 옷들을 찬찬히 본 뒤 아들에게 스스로 포장을 뜯어 놀게 했다.하예진은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일을 계속했지만, 서현주의 태도가 자꾸 떠올랐다.‘서현주가 우빈이를 좋아할 리가 없어. 우빈이는 나의 아들이니까.’예전에도 주씨 집안 사람들이 우빈을 보러 왔었는데 서현주는 그걸 알고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었다.‘최근에 왜 태도가 바뀐 거지?’주씨 일가 사람들이 우빈을 보러 오는 것을 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형인과 함께 와서 우빈에게 새 옷까지 사주다니... 수상할 따름이었다.‘주씨 일가가 우빈의 양육권을 다시 쟁취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미리 감정을 쌓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그럼 양육권을 가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우빈이와의 감정을 키워도 늦지 않을 텐데.’서현주는 동물원 사건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만약 주형인이 물어본 거였다면 그녀도 따로 의심하지 않았겠지만, 서현주가 물어본 거라 자꾸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휴대폰을 꺼내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은 전화를 곧 받았다.“처형.”전태윤의 목소리는 낮고 진지했다. 하예진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일 테니까. 그는 표정까지 엄숙해졌다.“제부, 바빠요? 내가 방해하지는 않았죠?”“괜찮아요. 저랑 예정이는 이미 집에 돌아왔어요. 오늘 저녁 시간이 비어서요. 무슨 일이죠?”그녀는 바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수상하게 느낀 점을 그에게 말했다.“제부, 나 요즘 서현주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돼요. 혹시 그 사건, 서현주가 계획한 게 아닐까요? 우빈이를 납치해 팔려고요. 그러면 앞으로 아이를 낳아도 주씨 일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테니까요.”그녀는 그저
통화를 마친 전태윤은 즉시 소정남에게 연락하여 처형의 의심을 알렸다.“나도 방금 소식을 듣고 너랑 얘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전화 왔네.”“무슨 소식인데?”전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우빈이 납치당한 일과 관련이 있어?”“그래. 형이 그러는데 여씨 사모님은 20여 년 전에 한 깡패 두목을 양아버지로 삼았는데 두목은 이미 경찰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았대. 그리고 그 두목의 부하 중 일부는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았고 일부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고 하는데, 행방이 묘연해진 그 부하들이 여씨 사모님의 손으로 넘어갔을 거로 의심돼. 그 사람들은 성격이 악랄하고 인원수도 많아 만약 여씨 사모님의 손에 들어간 거라면 경호원으로 고용됐을지도 몰라. 다만 20여 년 전의 일이라 행방을 찾기도 어렵고 신분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게다가 20여 년이나 지난 지금, 새로운 후계자를 키웠을 수도 있어. 여씨 사모님은 그 사람들 보스의 양딸이잖아. 만약 그때 여씨 사모님이 배짱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받아들인 거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충성할 거야.”전태윤은 조용히 말했다.“우리가 원래 짚은 사람이 바로 여씨 부부잖아. 너의 말을 들어보니 여씨 사모님이 배후에서 조종한 게 확실한 것 같아. 여운별은 아직 구금 중이고 예정이도 이미 고소했어. 예정이가 제출한 증거가 있으니, 여운별은 곧 형을 받게 될 거야. 여씨 사모님은 줄곧 여운별만 총애하고 사랑하며 아들보다 더 예뻐했어. 아마도 딸을 대신해서 예정이에게 화풀이하려 했을 거야.”소정남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말한 그 여자... 어쩌면 여씨 사모님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어. 주형인의 아내로서 주씨 일가를 따라 우빈이에게 접근할 기회가 많았을 거야. 그러니 언제든지 우빈이의 행방을 여씨 사모님에게 알릴 수 있어. 태윤아, 내가 사람을 시켜서 잘 알아보라고 할게. 이름이 뭐였지?”“서현주.”“알았어, 바로 사람을 시켜 조사하도록 할게.”“서현주 모르게 해야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