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영아, 너도 기회를 봐서 밥을 사든지 해. 우리 집 호텔에 가서 말이야.”“...할머니, 제가 무슨 이유로 밥을 사요?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요?”할머니는 말문이 막혔다.그러다 포기하지 않고 또 입을 열었다.“네가 이렇게 똑똑한데 어떻게든 이유가 생각날 거야.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거로 생각하지 마. 고현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너랑 딱 맞아. 넌 하루 종일 입을 다물 새도 없지, 고현은 말이 적지. 너희 둘이 같이 있게 되면 심심하지 않을 거야.”“할머니, 전 고현 씨를 볼 때면 진짜 남자나 다름없이 보여요. 고현 씨도 자신이 여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잖아요. 자꾸 저와 짝을 지어주려고 하시는데,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형제를 찾는 것처럼 느껴져요. 게이로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남자처럼 꾸민 건 정말 잘 꾸몄지. 그래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구분할 수 있을 거야. 고의로 낮춘 목소리는 너희들의 자연스러운 저음과는 다르거든. 고현의 목소리에는 항상 약간의 청아함이 담겨있어 너희들의 목소리와는 달라. 물론 밖에서는 남자처럼 하고 다니지만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거야. 여자인 걸 인정하지 않아도 옷을 벗기면 분명히 알리는걸.”전호영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할머니, 저 할머니 친손자 맞아요? 만약 눈에 거슬려 이러시는 거면 지팡이로 나를 한 대 때리던가요. 한 대 때려서 화가 풀리지 않으면. 두 대, 그래도 안 되면 세 대 때려도 돼요. 이렇게 나를 괴롭힐 필요 없잖아요. 게다가 제가 감히 옷을 벗길 담이 있겠어요? 고현 씨에게 맞아 죽을라. 여기는 강성이지 관성이 아니에요. 강성은 고씨 가문의 구역이라고요.”전호영은 할머니가 그를 괴롭힌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설거지를 깨끗이 하고 포장해 온 음식을 그릇에 담아 할머니에게 먹여주려 했는데 거절당했다.혼자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서 굳이 손자가 먹여줄
“내가 이 정도인 걸 만족해. 나는 비록 너희들의 혼사를 걱정하지만 동명의 할머니처럼 집착하지는 않아. 단지 너희의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여자를 찾아줄 뿐이야. 너희들이 어떻게 감정을 키우는지에 대해선 별로 간섭하지 않잖아. 이래도 너희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너희 부모들도 참 무책임하지, 입으로만 몇 마디 잔소리할 뿐 실제 행동은 아무것도 없잖아. 나 같은 늙은이가 직접 나서야 한다니. 또 너희들한테서 난폭하다는 둥 비난까지 들어야 하고 말이야.”그러자 전호영은 바로 손을 저으며 해석했다.“할머니, 우리는 할머니를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할머니도 난폭하지 않고요. 우리 가족 중에 할머니의 안목이 제일 높은걸요. 우리 모두 할머니를 가장 좋아해요.”그들의 부모들이 말로만 결혼을 재촉할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할머니에게 맡기는 것은 전씨네 도련님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할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어떻게 행동하시든 그들은 절대 화를 내지 않을 테니까.그토록 성격이 강한 전태윤도 결국 할머니에게 굴복했다.게다가 지금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자신이 나서기만 하면 손주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아첨해도 쓸모없어,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아첨이 아니라 손자며느리와 증손녀야. 너희들 중 누가 나에게 증손녀를 낳아주기만 하면 큰 상을 받게 될 거야.”전호영은 듣더니 입을 열었다.“증손녀는 태윤 형에게 가서 재촉해요. 이미 결혼한 건 태윤 형밖에 없어요.”그와 고현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네 형수 앞에서 몇 번 말했으니 이제 더 언급하면 안 돼. 아니면 스트레스 받아. 두 사람 지금 한창 달콤한 때인데, 어찌 아무런 기척도 없는지.”할머니는 더 이상 재촉하면 안 된다고는 했지만, 마음은 급했다.“얼마 안 됐어요. 아직 결혼식도 안 올린걸요. 급해하실 것 없어요. 재촉할 필요도 없고요. 둘째 형이 나중에 더 빨리 될지도 몰라요.”할머니도 그저 손자 앞에서
손은경은 식후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윤미라는 노동명을 바라보았다.그는 자기 세 형과 최근의 주식 시세에 관해 토론하고 있었다.그래서 어머니와 손은경의 대화를 듣지 못했고 어머니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다.둘째 형이 발견한 후 그를 툭툭 건드리고는 작은 소리로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엄마가 너를 보고 있어. 너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윤미라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엄마, 왜 그래요?”‘왜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지?’“은경이 데리고 같이 산책하러 나가.”윤미라는 아들이 자기 고뇌를 알아주리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단도직입으로 손은경과 함께 산책하러 가라고 했다.노동명은 손은경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은경 씨, 우리 집에서 한동안 지내면서 환경에 꽤 익숙해졌죠? 얼마 크지도 않은 곳이라 혼자 걸어도 길을 잃지는 않을 거예요.”윤미라의 얼굴은 순간 어두워졌다. 아무 물건이나 집어 들어 한대 내리치고만 싶은 기분이었다.손은경은 미소를 띠고 답했다.“혼자 걸어도 길을 잃지는 않아요. 그저 혼자 걷는 게 지루해서 누군가와 함께 수다를 떨고 싶어서 그래요. 동명 오빠, 같이 산책 가주겠어요?”형들과 엄마, 아빠의 시선에 그는 거의 입 밖으로 나오려던 거절의 말을 도로 삼켰다.“지금은 햇빛이 너무 세서 더워요.”‘저녁때도 아니고.’관성은 3, 4월이 되면 더위가 시작되어 5월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티셔츠로 갈아입고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오늘은 바람이 세서 안 더워. 은경이는 손님이잖아. 어서 같이 산책하러 나가.”노동명은 형들을 보며 자기 대신 말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모두 그의 눈길을 피하여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손은경에게 말을 건넸다.“은경 씨, 가시죠. 바람 쐬러.”손은경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동명 오빠 시간 좀 빌릴게요.”두 사람이 함께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윤미라는 남편에게 만족한 듯 입을 열었다.“저 두 사
노동명의 세 형은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또 동생 대신 말을 해주다간 어머니로부터 동생의 편을 너무 들어준 탓에 서른여섯 살이 돼서도 솔로라고 원망하는 소리를 들을까 봐 겁이 났다.노동명은 손은경을 따라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가로수 길을 따라 아무렇게나 돌아다녔다.노동명의 발걸음은 아주 빨랐다.하이힐을 신은 손은경은 그의 걸음에 따라가기가 힘들었다.“동명 오빠.”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을 그저 참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노동명을 붙잡았다.“왜 그래요?”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태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는 손은경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집안 사람들이 멋대로 여자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싫었다.“동명 오빠, 저랑 달리기 시합을 하려는 거예요?”노동명은 검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산책하는 것 아니었어요? 달리기 시합을 하려 해도 밥 먹은 후에 뛰면 안 되죠. 그러면 배 아프기 쉽거든요.”“...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지 마요. 저기 의자가 있으니까 앉아서 얘기 좀 해요.”노동명은 그녀와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비즈니스에 대해 말하려 해도 두 회사는 아직 협력 전이라 따로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따라 긴 돌의자 앞으로 가서 앉으려 했다. 손은경은 앉으려는 그를 제지하고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휴지를 꺼내더니 휴지로 돌의자를 두 번 닦은 후에야 앉으라고 권했다.그녀의 세심한 성격이 보이는 행동이었다.노동명은 털털하게 앉으며 말했다.“우리 집 청소부들은 매일 뒤뜰의 돌의자, 돌 탁자를 깨끗이 닦아서 괜찮아요.”“요즘은 바람이 세고 먼지가 많아 매일 닦아도 먼지가 계속 나오거든요. 아까 닦을 때도 휴지에 먼지가 가득했어요.”노동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은경 씨, 결벽증 있어요?”“아뇨.”“그럼, 시름 놓았어요. 난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저처럼 별로 청결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결벽증이 있는 사람과 잘
손은경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나도 마찬가지예요. 일할 때는 일 얘기만 하고 쉴 때는 쉬고 일에 관한 얘기는 절대 안 해요. 동명 씨,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물어봐요.”“우리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를 커플로 엮어주고 싶어 해요. 저도 동명 오빠가 마음에 들어요. 아직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함께 지내다 보면 동명 오빠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그녀의 눈에 노동명은 타깃이었다.그를 좋아하는 마음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반을 차지했다. 지금 사랑한다고 해도 노동명이 믿지 않을 게 분명하고, 그녀 자신도 믿지 않는다.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스토리는 두 사람에게 일어날 수 없다.“절 자꾸 피하시는데, 제가 어딘가 부족하나요? 아니면 마음에 두고 있는 다른 여자라도 있는 거예요?”노동명은 그녀가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물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숨기지도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하지도 않고 직접 그에게 물어보다니. 이 성격을 봐서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더욱 어울릴 것 같았다.그는 손은경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녀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건 처음이었다.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그녀는 확실히 예뻤고 모든 면에서 우수했다. 윤미라처럼 까다로운 사람조차 그녀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는 것을 보면 가지고 있는 조건이 아주 우월했다.두 집안은 모두 명문가이다. 비록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 두 집안이 혼인 관계를 맺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A시의 여씨 집안이 바로 관성의 남씨 집안과 사돈이 되었다. 그 두 집안 사이의 거리는 보통 먼 것이 아니었다.“은경 씨는 아주 우수해요. 젊고 예쁜 데다가 똑똑해서 우리 엄마 마음속의 이상적인 며느리예요.”손은경은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며느리가 무슨 소용이에요. 동명 오빠의 눈에 제가 이상적인 아내감인지 알고 싶어요.”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아주 바빠요. 제 아내까지 일이 바쁘면 둘 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게 될
노동명은 어머니가 함부로 부추기는 것을 싫어했지만 손은경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얘기해 보니 저랑 동명 오빠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네요. 동명 오빠도 제가 싫지 않다면 한번 사귀어보지 않을래요? 얼마간 사귀다가 도저히 절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게요.”그녀도 다른 연모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노동명은 말문이 막혔다.“설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아니요.”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노동명의 머릿속에는 처음에는 뚱뚱했지만, 점차 살이 빠져가는 그녀 뒷모습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다.그는 전태윤을 포함한 사람들의 앞에서는 자신이 하예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극구 부인했다.‘왜 하예진이 떠오르는 거지?’그가 좋아하는 것은 주우빈이지 꼬마의 엄마가 아니다.노동명은 정신을 차리고 얼른 하예진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쫓아내려고 애썼다.손은경은 웃으며 말했다.“없다면 한번 해보자고요. 만약 동명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말해줘요.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번 쟁취해 보려고요. 만약 그래도 실패하게 된다면 저도 쿨하게 인정할게요.”그녀는 무슨 일에서든 일단 열심히 노력한다. 노력한 후에도 지게 되면 패배를 시원하게 인정한다.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창피하지 않다. 그것은 자신을 놓아주는 것과 같으니까.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집요하게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본인이 상처받게 된다. 이건 자신을 해치는 것과 같다.“...저는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어요.”“시간 얼마 안 걸려요. 그저 같이 밥을 먹고, 쇼핑하고 주말에 여행 가는 게 다예요. 시간이 있으면 영화도 보고요.”노동명은 말문이 막혔다.“동명 오빠의 반응을 보니 싫은 듯하네요. 그럼, 잠시 제가 오빠를 쫓아다니는 걸로 해요.”손은경은 노동명에게 정식으로 구애하겠다고 말했다.노동명은 손은경의 대범한 말을 들으며 그녀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자기 취향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 사귀
하예진은 절대 억지로 상류층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다.이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면 그때엔 따로 애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다.전태윤은 하예진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본인의 자리에 대해 잘 알면서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마음가짐이 좋았다..“이 드레스를 입어요? 별로 예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그가 골라준 드레스를 받아 든 하예정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무슨 문제인지는 몰랐다.“예뻐, 아주 예뻐. 당신은 몸매도 좋고, 외모도 이쁜 데다가 기품도 좋으니 어떤 드레스를 입어도 예뻐.”그녀는 드레스를 품에 안고 말했다.“제가 직접 고를게요.”옷장 안에 있는 옷들은 모두 전태윤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옷이다. 각 종류의 드레스가 다 있어 드레스 가게를 열 수 있을 정도였다.그녀가 스스로 고를 때는 이쁜지 안 이쁜지만을 고려하면 되었기에 너무 보수적인 디자인은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고른 드레스는 모두 전태윤에게 리젝당했다.“여보, 그냥 내가 골라준 이 드레스 입어. 나 믿지? 정말 고급스러워.”‘어깨랑 등이 드러나지도 않고.’뒷말은 감히 하지 못했다.하예정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여보, 내 눈을 믿어. 이 드레스를 입으면 분명히 모든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거야.”그가 옆에 있기만 하면 수수한 옷차림을 하여도 연회의 중심이 될 테니까.하예정은 한 손으로 옷을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그의 이마를 쿡 찔렀다.“참 못됐어요.”그가 골라준 드레스를 입지 않으니 그녀가 직접 고른 옷에 대해 온갖 트집을 잡는 이런 못된 마음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방안 가득한 옷은 모두 당신이 사준 것이니 어차피 다 같잖아요. 어느 옷을 입든 차이가 없는걸요.”그녀가 직접 산 옷과 고모가 사 준 옷은 모두 발렌시아 아파트에 두었다.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뭘 입어도 다 마찬가지로 이뻐.”
“여보, 내가 화장 도와줄게.”하예정은 그의 뜻대로 가장 보수적인 이브닝드레스를 입었고 전태윤은 또 그녈 위해 자진해서 화장까지 해주겠다고 한다.그녀는 고민 없이 바로 거절했다.“제발 나 좀 살려줘요.”전태윤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그의 반응에 하예정은 또 까르르 웃었다.“화장할 줄 알아요? 누가 그 꼼수를 모를까 봐. 날 처녀 귀신처럼 만들 생각이죠? 그럼 아무도 날 눈여겨보지 않을 테니까.”“여자에게 화장해 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처녀 귀신까진 아니야.”“됐네요. 나 당신 못 믿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태윤 씨도 얼른 가서 준비해요. 시간이 얼마 없다고요.”전태윤은 떠날 기미가 없었다.“난 딱히 준비할 거 없어. 집 옷차림에서 정장으로 갈아입으면 되고 슬리퍼를 구두로 바꾸면 돼. 넥타이는 당신이 매줄 테고. 그럼 오케이야.”그는 화장할 필요가 없다.태생이 잘생긴 외모라 화장하면 오히려 더 못나 보인다.전태윤 도련님은 화장한 적이 아예 없다.“급하게 서두를 거 없어. 천천히 가도 돼. 얼굴만 내비치면 되니까.”왕년에 공세호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에서 전태윤은 아주 늦게 도착하거나 가서 잠깐 머무르다가 자리를 떠났다.전태윤 도련님이라 그런지 늦게 등장하고 빨리 떠나가는 것에 적응됐다.하예정은 방에 돌아가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하며 그에게 말했다.“당신 이젠 늦게 등장하고 빨리 자리를 뜨는 데 적응했나 봐요.”“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싫어.”“그러게 누가 전태윤 도련님 하래요?”전태윤이 말했다.“도련님 신분이 아니면 너랑 결혼하지도 못했어.”그가 맏이였기에 할머니는 그에게 하예정을 소개해 줬다.“똑똑.”이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가서 문 열어요.”하예정이 그를 내쫓았다. 그녀의 귓가에 대고 종일 재잘거렸으니까. 진중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전태윤 도련님이 그녀의 머리가 깨질 때까지 쉴 새 없이 재잘거릴 줄 누가 알았을까.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지금 하예정 앞에 벌어지고 있다.전태윤은 그녀에게 바짝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