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노크 소리가 울리고 여태웅이 문밖에서 물었다.“여보, 다들 준비됐어? 빨리하고 나와. 우리 곧 지각이란 말이야.”추미자는 더 이상 여운초를 후려잡지 않았다. 어쨌거나 오늘 밤의 계획은 여운초를 팔아치우는 거니까. 너무 처참하게 후려잡았다가 사람들이 싫어하면 제값에 팔리지도 않는다.“네, 금방 나가요.”추미자는 남편에게 대답하고는 여운초에게 쏘아붙였다.“빨리 나가!”여운초가 맹인 지팡이를 짚고 나가려 하는데 문득 손이 텅 비었다. 추미자가 그녀의 지팡이를 뺏어서 한쪽 옆에 내던졌다.“연회 참석하는데 지팡이를 왜 챙겨? 나 따라오면 돼.”그녀는 딸아이가 말소리와 걸음 소리만 들으면 따라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여운초는 잠시 침묵하다가 묵묵히 추미자를 따라 방에서 나왔다.여태웅은 문 앞에서 기다리다 짜증 날 뻔했는데 두 모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순간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는 의붓딸을 한참 쳐다보더니 추미자에게 말했다.“운초 점점 더 예뻐지네. 당신도 닮고 얘네 아빠도 닮았어.”여운초를 볼 때마다 여태웅은 남동생이 떠오른다.다행히 여운초가 아빠를 너무 많이 닮지는 않았다. 안 그랬다면 여태웅은 그녀를 쳐다볼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추미자는 머리를 홱 돌리고 여운초를 한참 쳐다보다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운별이 보다 못해요.”그리곤 앞으로 두어 걸음 나아가 남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가요. 연회 곧 시작하겠네요.”“이 시간대면 연회가 곧 시작할 거야. 하지만 서두를 거 없어. 전태윤 씨가 등장해야 연회의 하이라이트잖아. 지금 가봤자 태윤 씨 안 왔을 거야.”전태윤을 언급하자 추미자는 하예정이 바로 떠올랐다. 그녀를 생각하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고개를 홱 돌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리는 여운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장님이 돼서 빨리빨리 못 걸어? 뭘 해도 우물쭈물하지. 너 같은 년은 돈 벌고 배 채우기 위해 지나가는 개도 훔치겠어, 쯧쯧.”여운초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계단 손잡이를 꼭 잡고서 천천히 걸어
또한 그녀도 인간하고만 대화한다. 이런 인간도 아닌 것들은 거들떠보고 싶지도 않다.여태웅이 아내를 이끌고 계단을 내려와 화려한 거실을 지나서 문밖을 나섰다.부부가 함께 탈 차가 이미 도착했고 경호원 차량도 한 대 있었다.“여보, 태윤 씨가 만약 하예정과 함께 연회에 참석한다면 당신 일단 응어리를 내려놓고 하예정과의 관계를 잘 다져야 해. 일단 머리 숙이고 하예정이 너그럽게 선처해 줄지 지켜봐 봐. 정 안 되겠다 싶을 때 다시 운초를 이용하는 거야.”“더 이상 어떻게 머리 숙여요? 맨 처음 원한을 맺었을 때부터 우린 먼저 고개 숙이고 갖은 방식으로 사과했는데 결과는 어땠어요? 전태윤 씨야 태생이 차갑고 무자비한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제일 가증스러운 게 바로 하예정이에요.”“툭하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나, 법원에 고소하지 않나, 인정머리라곤 전혀 없어요. 운별이는 아직 애인데 한참 어린 애랑도 따지고 들어야겠어요? 본인은 뭐 평생 우리 같은 사모님들과 교류할 일이 없을까 봐서? 어쩌면 내 체면도 안 봐주고 바로 운별이를 가둬 넣냐고요?”“이런 무자비한 인간은 우리 모임에서도 분명 함께 어울리지 못할 거예요. 두고 봐요. 태윤 씨는 틀림없이 하예정 때문에 지칠 때가 올 거예요. 태윤 씨라고 뭐 평생 하예정을 위해서 뒷수습 해주겠어요?”“여자 보는 눈이 왜 그 모양인지. 어떻게 촌뜨기와 결혼해? 아무나 한 명 잡아서 결혼해도 그 촌뜨기보단 나을 거잖아요! 우리 모임에 있는 사모님들은 누구 한 명 재벌 출신이 아닌 게 없는데 촌뜨기와 어울려야 하니, 어휴, 우리 레벨까지 내려가게 생겼어요.”추미자는 하예정에게 불만이 아주 컸고 거의 불만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마음 같아선 그녀를 아작내고 싶었다. 하예정 때문에 보배 딸 운별이가 잡혀갔으니까.“전태윤 씨가 지금 신선감 때문에 잘해주는 걸 믿고 감히 운별이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거예요. 태윤 씨가 없으면 누가 하예정 얼굴이나 쳐다보겠어요?”추미자는 감히 전태윤을 미워할 엄두는 없나 보다.그저
여태웅은 전씨 일가와 사돈을 맺기 싫은 게 아니라 그럴만한 복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하예정은 본인도 모를 사이에 어리둥절하게 안방마님의 자리를 꿰찼지만, 다른 사람들은 머리를 비집고 전력 질주해도 서원 리조트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이래서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하는 법.“그럼 성씨 일가 둘째 도련님은요?”여태웅이 아내를 힐긋 쳐다봤다.“당신은 운별이한테 신경 쓰면 쓸수록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저 우리 운별이를 손꼽히는 재벌가에 시집보낼 생각밖에 없지? 하예정 씨 이모가 성씨 일가 사모님이란 건 새까맣게 잊었지? 운별이가 이경혜 씨 며느리가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맞네, 내가 이걸 깜빡했네.’“운별이는 아직 어려서 서두를 것 없어. 천천히 고르면 돼. 우리 급선무는 일단 아이를 건져내야 해. 전씨 일가에서 깍듯이 모시는 사람을 찾아 직접 중재에 내세우면 하예정도 운별이 고소하는 거 포기할 거야.”여태웅은 하예정이 전씨 일가 사모님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한 운별이는 절대 관성의 재벌가에 시집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다른 도시의 우수한 젊은이들에게 슬슬 시선을 돌렸다.부부가 대화를 나눌 때 여운초가 드디어 나왔다.추미자는 큰딸을 그들과 같은 차에 태우기 싫었고 이에 여태웅이 말했다.“우리의 오늘 밤 계획을 잊지 마. 사소한 일로 계획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해. 운초가 처음 연회에 참석하고 또 당신 친딸이기도 한데 경호원 차에 태우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당신 엄청 삿대질할 거라고.”“좀 예쁘게 가꿔서 좋은 값에 팔아치우는 것뿐이에요. 운초가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관성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추미자는 입으론 구시렁댔지만 하는 행동은 결국 여운초를 차에 실었다.그렇게 한 가족 세 식구가 관성 호텔로 출발했다.호텔에 도착하니 문 앞 주차장에 차들이 꽉 차 있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전부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몰고 갔다.여태웅 가족은 호텔 문 앞에 차를 세우고 기사더러 지하 주차장에
대부분 드레스가 다 이런 스타일이어도 그들이 한사코 싫어한다.제 여자는 돌돌 감싸서 팔도 드러내고 싶지 않을 지경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으니까.지금 이 순간 여운초는 한입에 깨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운초 오늘 밤 너무 예쁘네.”전이진은 그녀를 칭찬한 후 여 대표 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대표님, 사모님, 제가 아는 분을 봐서 먼저 인사하러 가볼게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회장님들 꽤 많이 오셨어요.”“네, 가보세요, 이진 씨.”여태웅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그는 방금 전이진이 여운초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처음에 깜짝 놀라더니 두어 번 더 쳐다보고 예쁘다고 칭찬할 뿐 더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여운초에게 반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여태웅은 본인만의 꿍꿍이에 빠져있었다. 여운초가 전이진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녀를 전이진에게 주고 전이진이 나서서 여운별을 거들어준다면 하예정은 도련님 체면을 봐서 여운별을 용서해 줄 거라고 믿었다.아쉽게도 오늘 밤 눈부시게 화려한 여운초도 전이진의 마음을 흔들진 못했다.이젠 어쩔 수 없이 원계획대로 운초를 오늘 연회를 주최한 공씨 일가의 여느 남자에게 팔아치워야 한다. 공씨 일가에서 위엄이 있는 사람이면 된다.공씨 일가와 전씨 일가는 대대로 친분을 쌓아왔다.공씨 일가의 연회에 전씨 일가의 도련님들이 전부 참석한 걸 보면 두 집안이 상상 그 이상으로 사이가 좋다는 걸 설명한다.여 대표 부부는 공씨 일가의 사람을 중재에 내세울 작정이다.전이진이 떠난 후 여 대표네 가족은 호텔 종업원의 안내하에 안으로 들어갔다.전이진은 대충 핑계를 둘러대려 했는데 뜻밖에도 정말 친한 사람이 와버렸다.소정남이 약혼녀 심효진과 함께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 둘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기사가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소정남은 전에 항상 직접 운전했지만 오늘은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되니까 기사를 데려왔다.그는 여전히 훤칠한 모습이고 심효진도 예쁘게 치장했다. 작년에 하예정과 함께 이곳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어 오늘은
관성 호텔은 전씨 그룹 산하의 호텔이다. 비서실장 소정남이 매일 이 호텔을 제집 드나들 듯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이끌려갈 필요가 있을까?“아직 급하게 들어갈 거 없어요. 효진 씨 친구분들도 아직 안 왔잖아요. 문 앞 주차장에 차도 안 보인다고요. 태윤이는 제쳐두고 성씨 일가도 아직이에요. 다들 나처럼 시간 철저하게 지키지 않네요.”그녀는 살짝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다들 지하 주차장에 차 세웠나 보죠.”“못 믿겠으면 로비 매니저에게 가서 물어봐요.”심효진은 입을 삐죽거리며 그의 손을 놓고 다시 팔짱을 꼈다.“가요 우리.”소정남은 그제야 흡족한 듯 그녀와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오랜 절친 전이진은 결국 그들과 한마디 얘기도 못 나눈 채 문 앞에 덩그러니 내팽개쳐졌다.“...”솔로의 서러움이란.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짝을 맞춰 오니 그에게 눈길조차 안 줬다.다행히 그도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여운초에게 안 반한 게 아니라 여 대표 부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이 여운초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말이다.그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추미자가 여운초를 데리고 온갖 사모님들에게 인사시켜 주었다. 그녀가 큰딸을 데리고 등장하니 많은 이가 의아했지만, 머리 좋은 사람은 그 연유를 바로 알아챘다.여운초는 올해 26살, 결혼적령기에 들어섰다. 추미자가 갑자기 큰딸을 데리고 연회에 참석한 건 아마도 딸에게 적당한 시댁을 골라주기 위해서겠지.여운초는 꽤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여씨 일가에서 투명인 취급을 받고 있고 또 시각장애인이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홀로 꽃가게를 꾸려 돈을 벌고 있다.그녀의 조건은 사모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도 그녀와 사돈을 맺고 싶지 않았다.무엇보다 시각장애인이니까.전이진은 인파들 속에서 어머니를 찾고 나지막이 몇 마디 속삭였다. 둘째 큰 사모님은 추미자에게 끌려다니는 여운초를 보더니 아들에게 말했다.“넌 네 볼일 봐. 내 예비 며느리는 내가 알아서 지켜.”여운초가 시각장애인이라고 꺼리는 사모님들이 만약
또한 뼛속부터 하예정의 출신을 깔보고 있다.촌뜨기가 전씨 일가의 어르신을 구해줬다고 전세 역전하다니.전씨 일가의 그 많은 어르신들도 참 무던하시지. 왜 아무도 반박하지 않고 촌뜨기가 사모님이 되도록 내버려뒀을까? 앞으론 안방마님의 자리를 꿰찰 텐데. 하예정이 만에 하나 안방마님의 자리를 제대로 승임하지 못하고 전씨 일가에 먹칠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 보다.하예정이 만약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에게 시집갔다면 이렇게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을 것이다.“맞는 말이에요. 내 생각도 그래요. 하예정 씨는 시야가 좁아 만사에 깊이 고려하지 못할 거예요. 일하는 것도 마냥 서툰데 전태윤 씨 신분, 지위만 믿고 안하무인 격에 제멋대로 남 일에 간섭해서 태윤 씨만 원한을 맺게 생겼어요.”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추미자였다.“그러게 말이에요, 하예정 씨는 정말 오지랖이 넓다니까요. 그쪽은 여씨 사모님이죠? 지난번 동씨 가문 연회에서 뵈었어요. 하예정 씨가 오지랖을 피우는 바람에 두 모녀와 원한을 맺게 됐잖아요. 내가 좋은 마음으로 전씨 큰 사모님께 전화 드려서 며느리를 잘 관리하라고 말했더니 아니 글쎄 큰 사모님이 된통 혼내고 날 차단했지 뭐에요.”하예정에게 갖은 악의를 품고 핀잔을 두는 사람은 바로 그때 함부로 입을 떠벌렸던 온씨 사모님이다. 그 당시 장소민에게 한바탕 야단맞은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본인은 좋은 마음으로 다가간 건데 장소민이 벌컥 화내니 온씨 사모님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하예정이 만약 온씨 사모님의 며느리였다면 밖에서 감히 오지랖 피우다가 사람들과 시비 붙어 제 아들까지 피해를 보면 당장 아들과 이혼시키고 말 잘 듣는 며느리를 들일 것이다.장소민이 아무리 제 가족을 편들려 해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그런 사고뭉치 며느리는 지켜주면 줄수록 더 큰 화를 초래할 것이다.전씨 일가는 조만간 하예정의 손에 놀아나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전씨 일가의 명성도 분명 하예정 때문에 훼손될 테고!“전씨 가문의 큰 사
전태윤의 경호팀은 프로패셔널하게 그들 부부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아무도 함부로 두 사람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부부는 부모님을 뒤따라 자신들을 마중 오는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걸어갔다.다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공씨 일가 사람들의 시선은 결국 하예정에게 돌아갔다.영롱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우아한 기품이 차 넘쳐 어린 신부 같은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전태윤과 하예정은 부부 사이란 걸 진작 공개했지만 함께 상류층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하예정은 평소에 이모 이경혜를 따라 각종 연회에 참석했고 공씨 사모님은 또 그다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하여 공씨 일가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야 전씨 일가 사모님을 뵙게 됐다.관성에서 최근 반년 동안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전씨 일가 사모님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되레 전태윤과 나란히 서 있으니 여러모로 참 잘 어울렸고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하예정이 볼품없고 전태윤에게 가당치도 않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틀림없다.“이분은 제 아내 하예정입니다.”전태윤이 그녀를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이어서 공씨 일가 사람들도 일일이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다. 하예정은 온화하게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공씨 사모님 안시연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장소민에게 말했다.“난 참 소민 씨가 부러워요. 며느님이 딱 봐도 복스럽고 착하고 효심 가득할 것 같아요. 소민 씨 이젠 편하게 누릴 일만 남았네요.”장소민이 웃으며 답했다.“맞아요, 우리 예정이가 마음에 쏙 들어요. 이번 생에 딸아이가 없어 며느리를 딸처럼 예뻐해 주고 싶거든요.”안시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런 것 같았어요. 며느님 정말 예뻐하시는 게 눈에 다 보여요.”어르신은 그해 장소민에게 값비싼 주얼리 세트를 몇 개 선물해 주셨다. 장소민은 이미 많은 액세서리를 갖고 있지만 시어머니가 주신 주얼리 몇 세트를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성
안시연은 하예정의 목소리까지 감미롭게 들려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칭찬을 남발했다.사람들의 쏟아지는 칭찬에 하예정은 늘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대응했다. 그녀가 실수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떤 이는 이경혜가 사람을 참 잘 가르쳤다고 여겼다. 하예정이 그녀 따라 연회에 몇 번 참석하더니 촌뜨기에서 지금처럼 고고한 재벌가 사모님으로 거듭났으니까.하예정네 가족 네 명은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하예정을 한참 훑어보다가 칭찬의 말은 없었지만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푸짐한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고 옆에 있는 전태윤에게도 이렇게 말했다.“두 사람 잘 지내야 한다. 너희 할머니 사람 보는 안목이 틀림없어.”전태윤은 어르신께 자상하게 말했다.“고맙습니다, 어르신. 아내한테 꼭 더 잘하겠습니다.”어르신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씨 할머니보다 연세도 높으시고 정력도 할머니에게 못 미친다.전태윤같이 높은 신분의 후배만 공세호 어르신을 뵐 자격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그를 방해할 엄두도 못 낸다.몇몇 재벌 가문에서 속속들이 연회장에 도착했다.이경혜 부부는 딸과 함께 조금 늦게 도착했고 성기현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임신한 유청하가 입덧이 또 심해졌다. 연회장엔 사람이 많아 자칫하면 서로 몸을 부딪칠 수 있다. 성기현은 아내가 참석하는 걸 결사반대했고 본인도 집에서 아내의 옆을 지켰다.성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은 상업계에 종사하지 않아 이런 종류의 행사에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하여 성문철 부부와 성소현만 왔다.그들 세 식구도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성기현 부부가 안 보이자 이경혜에게 물었다.“기현이랑 청하네는?”이경혜가 웃으며 답했다.“청하가 아이 가져서 몸이 불편해 못 왔어요. 기현이는 집에서 청하 지켜주고 있고요. 기현이가 어르신께 대신 사과의 말씀 드리래요. 오늘 밤에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대요.”공세호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