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하예정과 딸은 한참 동안 통화를 이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전태윤이 살짝 질투심이 났는지 한마디 던졌다.“여보, 당신이 딸이랑 얘기한 시간이 나보다 길어. 딸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하예정이 남편을 살짝 밀쳐내며 딸에게 말했다.“하연아, 너도 이제 쉬어. 엄마가 끊을게. 네 아빠는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되는 것 같아.”“아빠는 엄마가 우리랑 있는 걸 못마땅해하시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엄마가 아빠만 생각하길 바라는 거죠.”전태윤은 딸의 말에 당당하게 받아쳤다.“네 엄마는 평생 나랑 함께 살 사람이니까 당연히 하루 종일 나만 생각해야지. 됐어. 그만 말하고 너도 이제 쉬어.”전하연은 아직 시간이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쉽게 전화를 끊었다.한편 용정은 예상대로 밤 10시가 되어서야 H시의 저택에 도착했다.그의 별장은 넓고 정원은 전통적인 정원 스타일로 꾸며져 있었다.용정은 예진 리조트의 풍경에 반해, 자기 집도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물론 정원을 유지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손길이 필요했다.그의 경호팀은 두 조로 나뉘어 호위하고 있었다.함께 외출하지 않은 팀은 별장 안에서 청소와 정원 가꾸기, 연못 관리 등을 맡았다.용정이 입주한 뒤로 저택의 담장은 더 높아졌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사각지대가 없었다.정원의 나무 등은 담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누군가 담을 넘어 숨더라도 나무에 숨을 수 없도록 했다.심지어 담장 아래에는 뾰족한 못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그 위로는 독초가 심겨 있어 잘못 건드리거나 먹으면 중독될 위험이 있었다.용정은 김청산과 함께 십여 년간 수련하며 이 모든 것을 익혔다.김청산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졍겨울이 모든 것을 그에게 전수했다.그와 함께 수련한 이는 용설희와 예훈이었다.예씨 가문의 젊은이들도 어느 정도 의학과 독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는데 정겨울이 이 분야에 능했기 때문이다.정겨울은 아들과 조카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자신을 지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용정이 용진
전하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빠는 안 늙었어요. 오히려 아직 젊으셔서 제가 아빠랑 같이 쇼핑하면 남들이 남매로 착각할 정도예요. 엄마도 마찬가지로 젊어요. 그러니까 아빠, 은퇴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큰오빠가 조금 더 익숙해질 때까지만 더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전하연은 속으로 전시우가 걱정되었다. 부모님이 완전히 손을 떼면 회사의 모든 짐이 그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테니까.지금은 전태윤이 반쯤 물러난 상태라도 그래도 가끔 회사에 나가서 도와주면 그나마 덜 버거웠다.“시우는 이미 많이 익숙해졌고 회사 직원들도 지금 잘 따르고 있어. 게다가 임준이도 옆에서 든든히 도와주고 있거든.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아빠 젊었을 때보다 더 잘하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나도 시우 지금 나이쯤에 가업을 물려받았어.”전태윤의 말에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아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그저 놀고먹는 부잣집 자식이 아니라는 점이 무엇보다 기뻤다.이제야 비로소 물러날 때가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소임준은 아버지 소정남처럼 자기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전씨 그룹에서 일하고 있었다.그는 전시우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이자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그 우정은 전태윤과 소정남의 인연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했다.소임준이 전시우를 돕는 것은 형제 같은 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시우를 처남으로 여기기 때문이기도 했다.전시우는 유일한 여동생을 소임준이 데려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관성에서 그와 겨룰 만한 상대는 소임준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전하연이 소임준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여동생은 그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남매의 정인지 연인의 정인지는 아직 분별하기 어려웠다.전하연도 아직 어렸기에 전씨 가문이 지금 당장 그녀를 시집보낼 리 없었다. 적어도 앞으로 5, 6년은 더 두고 볼 생각이었다.소임준은 그 기다림을 감수해야 했다.“삼촌이랑 작은어머니는 잘 계셔?”전태윤이 동생의 근
“오빠 스트레스는 우리 큰오빠만 못할걸. 가끔은 큰형이 그 무거운 짐 지는 거 보면 난 진짜 안타까워.”전하연이 걱정하며 말했다.“몇 년만 지나면 나도 좀 도와줄 수 있을 텐데 그럼 큰오빠가 좀 덜 힘들지 않을까?”“하연아,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해. 큰형 혼자 감당하는 거 아니야. 우리 같은 형들이 있잖아. 언제든지 도와주러 갈 수 있으니까 너는 그냥 네가 가고 싶은 길 가.”전서가 바로 받아쳤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여동생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여동생을 지키는 것을 자기들 몫이라고 생각했다.하늘이 무너져도 그 무게가 전하연에게 닿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형제들의 다짐이었다.“나도 사업해 보고 싶어. 지연 언니처럼 멋진 여자 회장이 되고 싶어.”“하연아, 너랑 지연 언니는 달라. 그쪽은 타고난 카리스마인데 너는 되게 귀엽고 부드러워 보여서 여자 회장이랑 좀 안 어울려.”전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럼 누나는 부드러우니까 ‘소프트 회장’ 하면 되지.”전수가 재빨리 끼어들었다가 형과 누나에게 동시에 한 대씩 얻어맞았다.“내가 귀여운 회장처럼 보여? 나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그냥 회장은 할 수 있잖아. 소프트가 아니라.”전수가 맞은 자리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지연 언니는 카리스마 있으니까 ‘카리스마 회장’이고, 누나는 부드러우니까 ‘소프트 회장’이잖아...”형과 누나가 동시에 노려보자 전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더 말했다간 또 얻어맞을 게 뻔했다.세 남매는 정원을 몇 바퀴 산책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때 전지섭이 또 전화를 걸어왔다.전하연은 한 시간 넘게 전화를 붙들고 얘기하다가 배터리가 10%밖에 안 남아서 급히 방으로 들어가 충전기를 꽂았다.그리고 부모님이 바쁘지 않을 시간을 대충 짐작해서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이 받았다.“엄마.”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하예정이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옆에서 전태윤이 휴대폰을 낚아챘다.“하연아, 아빠야. 삼촌 집에 잘 갔어? 재밌어? 아빠 보고 싶
모두가 누나 전하연에게 달라붙기를 좋아했다.전하연이 열다섯째인 전수를 데리고 나간다면 다른 사촌 동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말할 것도 없이 전지섭은 전하연에게 바짝 붙어 떨어질 줄 모를 게 뻔했다.전하연은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형, 형은 내가 행복하게 지내는 꼴이 못마땅하나 봐? 내가 누나랑 같이 놀러 간다는 게 부러워서, 형은 회사에 가야 돼서 못 따라가니까, 일부러 누나를 겁주려고 그러는 거지? 누나, 걱정하지 마. 동생들이 따라와도 문제없어. 우리 모두 호신술 정도는 할 줄 알아. 오히려 누나를 지켜줄 수 있어. 골치 아픈 건 지섭이지...”전하연은 어색하게 웃었다.이번 여름방학은 동생들 없이 조용히 보내고 싶었지만 입이 너무 빨랐다. 전수를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해버렸으니 다른 동생들이 모를 리 없었다.결국 그녀는 어김없이 동생들의 우두머리로 다시 등극하고 말았다.“전수야, 차라리 네가 관성으로 돌아가서 다른 형제들이랑 신나게 놀지 그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너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셔.”전하연과 전서, 그리고 전수는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라 다른 사촌들보다는 더 가까웠다.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특히 막내 전수를 많이 아꼈다.“싫어. 누나가 어디로 가든 나도 따라갈 거야”전수는 자기 친형을 노려보았다. 모든 게 형이 쓸데없는 말을 해서였다.이 형은 분명 자신을 질투하고 있다.전하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아직은 확실히 정한 게 없어. 어쩌면 친구들이랑 여행을 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너희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누나 친구들은 우리도 다 알잖아. 같이 가도 되잖아? 우리 같은 잘생기고 귀여운 동생들이 따라가면 누나가 얼마나 든든해? 남들이 부러워할걸?”전하연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의 친구들은 확실히 그녀의 사촌들을 잘생기고 귀엽다고 했지만 여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이야기나 가고 싶은 곳은 남자 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만약 오빠들을 데리고 갔다면 혹시 좋은 인연이
전서가 동생에게 말했다.“너무 서두르지 마. 이틀 뒤면 다른 형제들도 다 이쪽으로 올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서는 방학만 되면 우리 누나가 어디 있는지가 제일 중요하니까.”전수가 말을 이었다.“형, 내 말은 그냥 방학 동안 숙제 걱정 없는 편하게 놀고 싶다는 거야. 꼭 형제들 때문만은 아니야.”전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알아. 그래서 여기 있으라고 한 거야. 여기선 나만 네 공부에 신경 쓰니까.”그때 전하연이 끼어들었다.“오빠, 너무 겁주지 마. 전수는 똑똑하니까 중학교 가서 열심히 해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방학 시작하자마자 너무 압박하면 애가 힘들어해. 우리 아홉째 삼촌이 겪었던 걸 똑같이 전수에게 겪게 하지 마.”전수가 즉시 전하연의 팔을 붙잡으며 해맑게 웃었다.“역시 누나가 제일 좋아. 형은 자꾸 공부하라고만 해. 나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는걸. 내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면 나를 더 심하게 몰아세웠을 거야.”전하연이 말을 이었다.“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자신을 믿어. 공부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건강이 더 중요해. 누나는 네가 항상 행복하길 바라.”“오빠도 전수에게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마. 우리 애들은 다 공부 잘하잖아?”하예정의 말에 따르면 전씨 가문의 아이들은 타고난 두뇌 덕에 공부를 잘한다고 하지만 사실 모두가 쏟아낸 노력의 결과였다.“알았어. 그럼 이번 방학은 마음껏 놀게 해 줄게. 하지만 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다시 집중해야 해. 개학하고 나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알았어. 나 평소에도 엄청 열심히 하잖아.”전수가 형에게 혀를 내밀며 장난을 치자 전서가 동생의 이마를 톡 때리며 전하연에게 말했다.“하연아, 너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게으름 피우는 데는 짱이야. 우리가 없으면 바로 TV를 켜고 장난감을 놀거나 밖으로 나가서 신나게 놀아. 외할머니네는 다들 눈감아 줘서 애가 게으름 피우는 것조차 몰랐다니까.”전하연이 웃으며 말했다.“전수가 게으름을 피워도 항상 전교 1등을 유지했잖아. 그 정
용정은 차를 몰고 왔다. H시에서 A시까지는 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리지만, A시 시내는 출퇴근 시간이면 도로가 특히 막혔다.지금이 7시가 넘었으니 용정이 H시 집에 도착하려면 아마 10시쯤 될 것이다.“그래? 알았어.”전서가 두 개의 쇼핑백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간식과 주스가 들어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용설희에게 건네며 말했다.“누나, 이건 우리 엄마랑 하연이가 누나를 위해 준비한 거예요. 꼭 받으셔야 해요.”용설희는 망설이며 용정을 바라보았다.이미 함께 식사까지 했는데 또 선물까지 받을 수 있단 말인가.용정이 담담하게 말했다.“아주머니와 하연이의 마음이니까 얼른 받아. 하연이가 서운해할라.”그 말에 용설희는 그제야 봉투를 받으며 선우민아 일행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전서는 다른 봉투를 용정에게 건넸다.“형, 이건 형 거야.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나도 몰라. 우리 엄마랑 하연이가 넣은 거니까.”용정은 봉투를 받으며 웃었다.“난 절대 사양하지 않아.”“사양하면 다음에 올 때 대문도 안 열어 줄 거야.”전서가 일부러 협박하듯 말하자 용정이 웃음을 터뜨렸다.용정은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전서와 전하연의 배웅을 받으며 집 밖으로 나섰다.“하연아, 전서야, 얼른 들어가.”용정이 차에 오르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용설희는 조수석에 앉아 같은 차를 타고 있었다. 위험이 닥치면 자신이 주인을 지킬 수 있었다.“오빠, 집에 도착하면 문자 보내 줘.”전하연이 오빠에게 당부하고는 다시 용설희를 향해 말했다.“언니, 드린 거 꼭 드시고 사용하세요. 우리가 정성껏 준비한 거예요.”용설희가 받은 것은 최고급 영양제와 두 상자와 화장품 두 세트, 그리고 디저트 한 세트였다.용정이든 용설희든 모두 전창빈이 만든 디저트를 특히 좋아했다.두 사람의 봉투에는 모두 디저트가 들어 있었는데 만약 용정에게만 주었다면 용설희는 절대 받지 않았을 것이다.오늘은 전하연이 곁에 있었기에 용설희가 마지못해 받아들였다.그녀가 아니었다면,
성주현과 함께 돌아온 사람은 공은호의 가장 유능한 제자 중 하나로 ‘염천매'라고 불리는 남자였다.그의 본명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성은 염 씨였고 ‘비상하는 검은 매’라는 별명이 붙었기에 세인들은 그를 ‘염천매’라 불렀다.나이는 노동명과 비슷한 나이였고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워 그의 시선을 한 번만 마주쳐도 속으로 떨림이 일었고 매우 진지한 성격의 인물이었다.“이것이 바로 비서 할아버지께서 모아두신 증거예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곳에서 찾았어요.”성주현은 가져온 증거물을 이경혜에게 건넸다.이경혜는 받자마자 바로 보지 않고 먼
방윤림이 일어나 몸을 돌려 사무실을 떠났다.이은화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방윤림의 자세는 올바를 뿐만 아니라 뒤에서 보면 꽤 남성적인 매력이 있었다.방윤림은 비주얼도 나쁘지 않았고 모든 면에서 이윤미와 잘 어울렸다.시선을 거두어들인 이은화는 자신의 책상 한구석에 놓인 사진액자를 바라보았다.이윤미가 그녀 곁으로 돌아온 후에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 이윤미는 그녀의 옆에 있었지만 서로 닿지 않은 채 마치 낯선 사람처럼 어색하게 떨어져 있었다.반면 이윤정은 그녀에게 바짝 붙어 한쪽 팔을 꽉 잡은 채 마치 이윤미에게 무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이은화가 말을 이었다.“윤미는 후계자야.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이고 후계자를 낳아야 할 책임이 있는데 사위를 들이지 않으면 누구랑 딸을 낳겠다는 건지... 윤미가 따로 남자를 만나서 임신하겠대. 딸만 낳으면 후계자가 생긴다면서 시집가거나 사위를 들일 필요 없다고 하더구나.”결혼하지 않고 상대방 남자의 몸을 빌려 딸만 두겠다는 의미였다.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이은화 세대와 완전히 달랐다.이은화는 비록 이씨 가문의 주인이지만 이윤미만큼 개방적이지 못하고 여자는 반드시 시집가거나 사위를 들어야 한다는 사고에 갇
“예전부터 사모님께서 크고 아름다운 꽃집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어요. 가게 꽃들이 모두 예쁘다길래 일찍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나더군요. 이제 우리 시누이가 방학이라 매일 유치원에 데려다줄 필요가 없어져서 이렇게 들렀어요. 시간이 좀 생겨 나들이 나왔는데 내일이 시어머님 생신이라... 선물은 이미 준비했는데 꽃다발이 빠져서 여기로 찾아왔어요.”용씨 사모님의 연기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여운초는 그녀의 가면을 벗기기 전까지는 진짜 여운별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사모님은 정말 효성이 지극하시네요. 어떤 사이즈의 꽃다발을 원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