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냐니까. 엄마 지금 네 회사, 네 사무실에 있어. 근무시간에 넌 사무실에도 없고 회사에도 없고 어디로 간 거야? 미팅하러 나갔다고 하지 마. 네 비서가 아직 여기 있으니까.”"너 또 하예진 씨를 찾으러 갔지?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하예진 씨는 너랑 안 어울린다고. 하예진 씨는 이혼녀야. 게다가 세 살짜리 아이도 있어. 그것도 남자아이가. 넌 기꺼이 다른 사람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런 호구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아!”"넌 다른 사람 아들을 키우면서 집, 차를 사주고 결혼도 시켜야 해. 애 아빠는 아무 양육비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널 호구라고 비웃을 거야. 노동명, 관성에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나 골라도 하예진보다 낫지 않아?”윤미라는 정말 아들 때문에 화가 나 죽을 것 같았다.아무리 말해도 노동명은 전혀 듣지 않았다.윤미라의 말도 갈수록 험해졌다.노동명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제 일이에요. 엄마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 인생 제가 알아서 살게요. 전 형들과 달라요.”말을 마친 그는 윤미라의 전화를 바로 끊어 버렸다.휴대폰 저편의 윤미라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윤미라는 노동명의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비서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다.윤미라는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소파로 돌아와 자기 가방을 들어 올리더니 비서에게 말했다. "하던 일 마저 하세요. 전 가 볼게요.”비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래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윤미라는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괜찮아요.”비서는 그럼에도 윤미라를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윤미라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에야 비서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고 서둘러 노동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대표님께 가셨을 겁니다.”화가 잔뜩 난 윤미라의 모습은 분명 이대로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윤미라가 노동명을 찾으러 하예진에게 갔을 것이라고 비서가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주우빈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엄마, 우리 왜 이사해요?”아이는 이미 엄마와 함께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하예진이 거짓말을 내뱉었다. “우빈이 9월이면 곧 유치원도 가야 하잖아. 여긴 우빈이가 다니던 유치원과 좀 멀어서 유치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거야. 그러면 엄마도 우빈이를 데려다 줄수 있지.”3살 된 아이에게 의견은 없었다. 하예진의 말에 주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예진은 중매인에게 전화했고 자신의 요구를 부동산 직원 측에 말하며 집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녀는 전세로 이사 갈 생각이었다. 집을 사는 일은 다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천천히 보고 충분히 비교한 본 뒤 사도 늦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바로 주우빈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었다. 주우빈이 지금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관성에서 제일 좋은 유치원이었다. 1년의 학비만 해도 몇천만 원이었다. 그녀는 이혼할 때 주형인에게서 받은 위자료가 있었다. 그중에 조금만 꺼내 하루 토스트를 열었다. 비록 토스트 가게의 수입이 좋아 돈을 벌고는 있지만 차도 샀었으니 차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고 나면 하루 토스트에서 번 돈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 달만 더 고생하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예진은 아들이 갈 초등학교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집을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다. 편리를 생각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에 있는 집을 사는 것이 좋았다.하예진이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동안, 막 아파트를 빠져나온 노동명은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는 윤미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간 계산을 정확하게 해 윤미라가 하예진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명아.”윤미라가 걸어오며 손을 뻗어 노동명의 팔을 잡아당겼다. “엄마랑 같이 가자.”“어딜요?”윤미라는 아들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엄마가 오는 길에 방 씨 이모와 얘기를
“엄마!”“됐어! 엄마가 여기서 말하는데, 나와 모자 관계부터 끊고 예진이에게 구애하건 찾아가건 마음대로 해! 더는 상관하지 않을 테니.”윤미라는 말을 남기고는 돌아서서 씩씩거리며 떠나갔다.노동명도 어머니의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났다.그는 어머니가 하예진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왜 절대 허락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하예진에게 프러포즈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머니까지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니 발목이 잡히는 것만 같았다.원래 그의 구애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하예진이 어머니의 태도에 겁을 먹기라도 할까 봐 걱정도 들었다.노동명은 고개를 들고 하예진의 셋방 쪽을 한참 바라보더니 결국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차에 오른 후 전태윤과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한잔하러 나오라고 말했다.그는 두 친구가 대답하든 말든 상관 않고 전화를 끊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소씨 일가.소정남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한참 쳐다보다가 욕설을 퍼부었다.“나 아직 신혼 휴가 중이란 말이야. 이때 나오라고 부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시간을 들여다보니 저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노동명이 왜 갑자기 술 마시러 나오라고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소정남은 한참 생각하다 결국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동명이가 너한테도 술 마시러 나오라고 했지? 도대체 무슨 자극을 받고 이러는지... 글쎄 나한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 있지. 나 아직 신혼 휴가란 말이야... 괜히 귀찮게 구네. 태윤아, 너 시간 되면 같이 술 한잔해 줘, 난 우리 마누라 픽업하러 관성중학교에 가봐야겠어.”소정남의 말이 끝나자 전태윤은 바로 말을 이었다.“응, 나한테도 전화 왔었어. 그리고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고.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야 묻지 않아도 훤해. 분명 우리 처형에게 구애하다가 어머니에게 저지당한 거야. 그래서 둘이 또 한 번 말다툼했을 거고.”고집이 센 윤미라는 절대 허락할 일이 없
소정남의 말에 전태윤 역시 침묵에 잠겼다.노동명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아무 일에도 집착이 없는 듯 거칠고, 털털해 보이지만 사실 감정에 대해서는 집착이 강한 편이다.하예진이 평생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면 노동명도 그녀를 기다리며 평생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또는 그녀가 만약 다른 사람과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노동명은 여전히 평생 솔로로 지낼 것이다.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는 바에는 평생 솔로로 사는 편이 나을 거로 생각할 노동명이니까.“알았어, 네가 정 바쁘다면야 나라도 가서 한잔할게.”전태윤은 소정남이 아직 결혼 휴가 중인 데다 심효진도 임신 중인 상황을 고려하여 배려심 있게 한마디 했다.“됐어, 그냥 같이 가. 내 와이프는 온종일 서점에만 있어 괜찮아. 그리고 서점에도 따로 경호원을 배치했으니 나도 같이 가보지 뭐.”전태윤은 응하고 대답하고는 통화를 끝냈다.통화를 마친 전태윤은 한창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는 와이프를 쳐다봤다.하예정은 두 사람의 통화에 따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 단지 새 나오는 몇 마디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소정남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일 거로 짐작이 갔다.전태윤은 조용히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골똘히 잡지를 보고 있는 아내로부터는 평온한 아름다움을 느꼈다.아내는 타고난 미모를 지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받으면서 갈수록 예뻐지고 있고 기질도 좋아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맞아, 이게 다 내 공로지!’전태윤은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아내를 향해 걸어갔다.기척을 느낀 하예정은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일 다 끝났어요?”하예정은 저녁 행사 준비를 위해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회사로 찾아왔다. 막 도착했을 때 남편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어 그녀는 사무실에서 좀 기다리기로 했다.“아직 좀 남았어.”전태윤은 아내 가까이에 다가가 선 자세로 아내를 내려다보았다.“혹시 무슨 일 있어요?”오래된 부
노동명은 보통 아침 8시 전에 하예진의 가게에 식사하러 가는데 만약 하예진이 8시 이후에 가게에 도착하면 노동명과의 만남을 피할 수 있다.하예진은 메시지로 동생인 하예정에게 도움을 청했다.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하예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언니는 결국 숨어 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만약 그녀가 전태윤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전씨 일가가 자리 잡고 있는 관성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고, 언니도 정말 우빈이를 데리고 윤미라의 바람대로 노동명 멀리 관성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노동명이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고 해도 언니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하예정은 언니가 내리는 모든 결정을 존중하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언니에게 답장했다.“처형이 보낸 메시지야?”전태윤은 짐작이 갔다.이에 하예정은 응하고 대답했다.“처형이 뭐라고 했길래 표정이 이렇게 심각해?”“언니가 임시로 레아닐 아파트 단지에 새 전셋집을 구해서 이사할 생각이래요. 새 단지는 고급 단지라 보안 수준이 높아서 출입 카드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집주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는다네요. 이렇게 이사한다고 해서 동명 씨를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집에까지는 찾아오지 못하게 막고 싶은가 봐요.”하예정의 말에 전태윤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 뭐에요? 혹시 그 단지... 노씨 그룹에서 개발한 거예요?”노씨 그룹은 부동산 쪽의 업무 범위가 매우 넓다.“바로 동명이네 회사에서 개발한 아파트야. 입주율도 꽤 높고. 바로 옆에 있는 레아닐 팰리스랑 함께 개발했는데 동명이는 팰리스 구역에 큰 별장을 하나 남겨놓았거든. 아파트 단지 내의 집주인들은 별장 구역에 들어갈 수 없지만 별장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 단지에 출입할 수 있어. 뭐, 보안 수준이 높은 건 사실이야. 동명이가 초빙한 보안팀 팀원들은 모두 엄격한 훈련을 거쳤으니까.”“우리 언니... 이러다 스스로 덫에 걸려드는 건 아니겠죠?”‘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하긴 부
하예진은 급히 제부 전태윤에게 감사를 표했다.“처형, 한 가족끼리 사양할 필요 없어요.”전태윤은 속으로 처형이 자신의 도움을 받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급히 집을 이사하고 싶었던 하예진은 그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전태윤이 노동명과 술을 마시러 회사를 떠난 사이 하예진도 제부의 도움으로 재빠르게 셋방을 옮겼다.그녀의 새 거처는 전태윤 부부만 알고 있을 뿐 이경혜조차 알려주지 않았다.어느 호텔.테이블 위에는 노동명이 주문한 음식들로 가득했고, 독한 양주도 여러 병 놓여있었다.전태윤과 소정남은 곁에 앉아 노동명이 술을 들이켜는 것을 지켜보았다.“동명아, 음식도 좀 같이 먹어.”전태윤이 노동명에게 요리를 집어주며 말했다. 아마도 자기가 형수의 편을 든 것에 대해 친구에게 미안함을 느낀 모양이다.그도 절친인 노동명을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형수는 노동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데다 노동명의 어머니도 절대 동의할 것 같지 않아서이다.전태윤은 형수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동명아, 뭐라도 좀 먹으면서 마셔. 오자마자 끊임없이 술만 들이켜면 어떡해? 공복에 술을 마시면 쉽게 취할 거야, 그러니 너무 많이 마시지 마. 혹시 알코올중독이라도 걸리면 어떡해? 나와 태윤이가 너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소정남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노동명의 앞으로 밀어놓으며 술을 좀 적게 마시라고 권했다.“나 너무 괴로워서 그래.”노동명은 젓가락을 들고 전태윤이 집어준 음식을 집어 먹었다.둬 젓가락 집어 먹은 그는 또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는데, 그렇게 독한 술을 그는 맹물처럼 마셨다.그는 잔을 내려놓자마자 또 자기 술잔을 가득 채우려 했는데 이때 전태윤이 말렸다.“노동명, 그만 마셔, 너는 이미 여러 잔을 마셨어. 이런 술은 마실 때엔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취하게 될 거야.”“태윤아, 나는 네가 정말 부럽다.”노동명은 전태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정말 부럽다. 너나 정남이나 다 나보다 행복한
하예정은 따로 할말이 없었다.그녀의 주변 사람 중 심효진만이 순조로운 사랑길을 걸어 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성소현이든 언니 하예진이든 험난한 사랑길을 걷고 있다.그에 비하면 그녀는 행복하다 할 수 있었다. 비록 남편인 전태윤과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하였고, 이혼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또 신뢰하며 지금의 행복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하예정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자고 되뇌었다.전태윤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우리 인제 그만 생각하고 잘까? 될 대로 되라지 뭐.”하예정은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 답했다.부부는 서로를 껴안고 꿈나라로 향했다.다음날.점심이 되어서야 노동명은 정신을 차렸다.잠을 충분히 잔 탓인지 잠에서 깬 그는 배가 고프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두통이 없었다.그는 점심시간인 걸 알고 바로 일어나서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부모가 모두 1층 로비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발소리에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아들을 본 윤미라는 말했다.“동명아, 일어났어? 배고프겠다, 어서 밥 먹어.”계단을 내려온 노동명은 부모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또 저한테 포기하라고 설득하러 온 건가요? 그런 거라면 더는 이야기하실 필요 없어요. 난 절대 예진이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 나 예진이 좋아해요, 예진이랑 결혼하고 싶어요.”윤미라도 아들과 한번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들이 입만 열면 그녀를 화나게 하는 말이었다.그녀의 얼굴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노동명, 나도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정 예진이랑 함께 있고 싶거든 먼저 나와 모자 관계부터 끊고 봐. 그다음 네가 원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여보.”듣고 있던 노진규가 마지못해 아내를 불렀다.노동명은 한동안 어머니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려
윤미라의 차가 앞 차량을 추돌한 것이 아니라, 노동명의 차가 대형 트럭을 들이박은 것이다. 그리고 노동명의 차 뒤에 있던 차도 급정거했지만, 결국 노동명의 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다행히 윤미라는 제때 브레이크를 밟아 앞의 차를 추돌하지 않았다.그녀는 차를 세운 후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한 노진규는 여전히 아내를 설득해 아들을 쫓지 말라 할 생각이었다.“여보.”“동명의 차가 사고 났어요.”윤미라는 남편에게 한마디 던진 후 앞으로 달려갔다.앞에 있던 차는 노동명의 차를 추돌해서 차 앞부분이 파손되었고, 차 안의 사람은 크게 놀랐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그에 비해 노동명의 차의 훼손 상태는 훨씬 더 끔찍했다.차 앞부분이 거의 화물차 밑으로 처박힌 채 뒷부분만 밖에 남아 있었고, 노동명은 이미 상처를 입고 의식을 잃었다.“동명아, 동명...”윤미라는 상처 입은 아들을 보며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고 똑바로 서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똑같이 얼굴이 창백한 노진규가 급히 아내를 부축했다. 그도 큰 쇼크를 받았지만 애써 정신을 다잡고 서둘러 구급차를 부른 후 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했다.“동명아, 우리 아들.”윤미라는 아들을 차 안에서 구출하려고 남편의 부축을 뿌리쳤다.노진규도 도와주러 따라갔지만 두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이때, 경찰과 소방차 그리고 구급차 등이 현장에 빠르게 도착했다.“살려주세요, 제발 내 아들 좀 살려줘요...”윤미라는 의사를 보자마자 의사의 옷을 움켜쥐고 울부짖었다.의사는 냉정하게 환자 가족을 위로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노진규는 의사가 아들을 구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강제로 아내의 손을 의사의 몸에서 떼어냈다.윤미라는 남편의 품에 안겨 울면서 쓰러졌다. 그녀는 지금 뼈저린 후회를 느끼고 있다. 만약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왜 동명이가 예진이를 만나지 못하게 막았을까? 이미 서른여섯 살인 우리 아들이 어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