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하가 피식 웃었다.“저는 아주머니를 탓한 적 없어요. 그저 소현 씨를 시집보내기 아쉬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제가 아직 부족해서 시름 놓고 저한테 맡길 수 없는 거겠죠. 제가 노력해 볼게요.”차에 올라타고, 예준하가 물었다.“어디가서 먹고 싶어요?”“준하 씨가 가자는 대로 어디든 상관없어요.”자신을 완전히 믿고 따르는 성소현의 모습에 예준하가 피식 웃었다. 차 시동이 걸리고, 성소현이 또 말했다.“밥 다 먹고 관성 중학교로 가요. 예정 언니랑 효진 언니네 서점이 최근에 계속 영업했더라고요. 정남 씨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시장을 못 가게 해서 효진 언니가 일찍 서점 문을 열었다고 해요.”심효진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도 꾸준히 출근하면서 다른 가게 사장님이랑 수다를 떨곤 했다.“그래요.”“정남 씨는 지훈 씨랑 사촌 형제 사이라 지훈 씨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남 씨가 알고 있으면 효진 언니도 무조건 알고 있을 거예요.”성소현은 소지훈의 목적을 알아내지 못하면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정남 씨도 모를 수도 있어요.”예준하가 운전하면서 말했다.“이 일을 정남 씨한테도 숨겼을 수 있으니 굳이 효진 씨한테 묻지 마요. 그냥 최근에 뭐 하고 다니는지만 물으면 될 것 같아요.”성소현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정말 누가 지훈 씨를 보냈는지 모르겠네요.”예준하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연준 씨가 한동안 보이지 않네요.”“연준 씨는 지훈 씨를 설득하지 못해요. 태윤 씨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을 연준 씨라고 가능하겠어요?”성소현은 예준하의 뜻을 알아차리고 바로 부정했다.장연준은 관성에서 워낙 겸손한 사람이라 그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무리 장씨 가문의 도련님이자 전태윤의 사촌 동생이라고 해도 소지훈을 설득시킬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그렇긴 하죠.”예준하가 피식 웃었다.“소현 씨, 그냥 신경 쓰지 마요. 저희 둘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지훈 씨 같은 사람이 열 명이 와도 아무
소지훈은 아버지가 이미 미쳤다고 생각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저 힐끔 쳐다보기만 해도 그쪽으로 생각하니 말이다.여자아이는 다시 부모의 곁으로 돌아갔고, 워낙 비밀로 한 일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성소현도 심효진한테서 들은 이야기였다.소균성의 미친 짓 때문에 성소현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성소현의 나이가 마침 스물몇 살이었고, 소지훈이 꽃까지 선물하고 공항에 픽업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밤새 혼담을 꺼내러 올지도 모른다.성소현은 하예정에게 언제 돌아올 건지 문자를 보냈다.그러자 하예정한테서 바로 전화가 왔다.“예정아, 출장 끝났어?”“네. 오늘 돌아왔어요. 어르신이랑 언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우빈이는요? 우빈이 보고 싶어서 죽겠어요. 지금 옆에 있어요? 바꿔줄 수 있어요?”성소현은 주우빈을 정말 좋아했다.매번 이모라고 불릴 때마다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하예정이 웃으면서 말했다.“지금 밖에서 놀고 있어. 이따 들어오면 너한테 영통 보낼게. 비즈니스는 잘 끝났어?”원래는 하예정이 출장을 갔어야 했지만, 할머니한테 설득당해 예진 리조트로 간 것이다.성소현은 이경혜가 자꾸만 장연준과 엮어놓아 짜증 났던 참에 출장을 핑계로 어쩌다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우빈이 누구랑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어요? 곧 개학인데 인제 그만 놀 때도 되지 않았어요? 나중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면 어떡해요.”성소현은 자신도 어릴 때 이랬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놀기 좋아하는 바람에 유치원도 가기 싫어해서 아침이면 유치원에 가자고 설득하느라고 온 가족이 출동했다. 겨우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성소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가끔 가족들이 말을 꺼내 그녀를 놀리곤 했다.말만 들어도 상상되는 것 같았다.“연정 씨 아들 준호랑 놀고 있어. 나이가 비슷하거든. 둘이 맨날 즐겁게 노느라고 정신없어.”성소현이 웃으면서 말했다.“평소에는 혼자만 놀다 또래 친구를 만나서 좋겠죠
“그래.”하예정은 먼저 통화를 끊었다.이때 우빈이와 용정이가 집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서로 쫓아다니는 게임을 하고 있는 듯했다. 두 녀석 모두 땀투성이가 된 채 놀고 있었고, 작은 볼도 빨갛게 달아올랐다.2분쯤 지나서 두 꼬마를 지키던 두 도우미도 따라 들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니 두 녀석을 한참 쫓아다닌 모습이다.두 도우미는 하예정과 모연정이 두 아이의 땀을 닦아주는 걸 보며 웃으며 말했다.“큰 사모님, 두 도련님께서 어찌 빨리 달리는지 도통 따라올 수가 없었어요.”하예정은 조카의 땀을 닦아주며 먼저 말했다.“아마도 둘 다 무술을 연마하고 있어서일 거예요. 다리 힘이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좋아서 저도 둘을 따라잡기 쉽지 않더라고요.”하예정도 무술을 익힌 몸이다.“난 용정이를 따라잡지 못한 지도 오래돼요. 신의 어르신 곁에서 학습하면서부터 동작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아요.”그녀는 애초에 용정을 정겨울의 곁으로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용정의 원래 이름은 준호인데 신분을 숨기기 위해 평소에는 용정이라고 불렀다정겨울이나 신의는 용정의 교육뿐만 아니라 건강도 홀시하지 않았다. 용정이가 몸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무술도 가르쳐줬다.원한을 짊어지고 있는 용정은 무술을 닦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도 보호할 수 있게끔 말이다.사실 모연정은 용정이가 보통 아이처럼 자라 평범한 삶을 살기를 윈했지만 그의 신상에 감춰진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절대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용정이가 복수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가족을 죽인 자들이 절대 가만두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자들은 아직도 용정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다행히 운이 좋은 용정은 모연정을 만나 그녀의 양자가 되었고, 또 정겨울의 눈에 띄어 제자로 되었다. 신의와 그의 고수 친구들이 옆에서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자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예씨 가문의 세력으로도 용정을 철저히 보호할
할머니는 우는 아들을 보러 간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 씨, 따님이 너무 착하네요.”울먹이는 아들을 안고 달래던 모연정은 할머니의 말에 웃었다.“지연이는 어르신 품에 하루 종일 안겨 있었는데 왜 울겠어요? 원래도 잘 울지 않는 아이예요.”딸 예지연은 아버지 예준성을 많이 닮았다.“곧 관성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네요. 언제 또 지연이를 볼 수 있을지... 지금 많이 안아둬야죠.”전씨 할머니는 이제 연세도 있으셔서 언제 다시 예진 리조트를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모연정 부부가 이제 두 아이를 데리고 관성에 가지 않는 한, 전씨 할머니는 귀여운 두 아이를 다시 볼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어르신, 앞으로 제가 관성에 가게 되거든 애들을 데리고 어르신 댁에 찾아갈게요.”예준하가 성소현을 좋아하고 있으니 만약 두 사람이 부부가 된다면 모연정 부부도 분명 자주 관성에 가게 될 것이다. 또한 그녀는 하예정 등과도 대화가 잘 통했다. 아이들도 나중에 좀 더 크면 부모들이 외출하는 걸 보고 따라가겠다고 아우성칠지도 모른다.모연정은 이후 아이를 데리고 전씨 일가를 방문할 기회가 적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어르신은 할머니는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애들을 데리고 오거든 미리 전화해요.”할머니는 자신이 마침 집에 없을까 봐 걱정했다.모연정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미소를 띠고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예정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여전히 참지 못하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할머니가 그렇게도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걸 보고 마음속으론 자기도 빨리 임신해서 딸을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할머니도 다른 집에 증손녀가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하지만 그녀의 배는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다. 딸을 낳기는커녕 임신도 하지 않았다.‘휴... 될 대로 되라지 뭐.’...강성.온 오후 전호영은 다시 고현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고현은 조용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그녀와 전호영의 이름이 강성의 검색어 순위에 오른
고현은 한참 후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연회에 나와 함께 가자.”“그래."고빈은 거절하지 않았다.“지금 퇴근해?”“응.”“그럼 나도 지금 퇴근해서 형이랑 밥 먹으러 집에 갈게.”남매는 평소 각자의 집에서 살다가 가끔 고택으로 함께 갔다.고빈은 종종 누나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는데, 입이 까다로운 누나가 요리 솜씨가 특별히 좋은 요리사를 찾았기 때문이다.고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을 나선 그녀는 비서에게 물었다.“전 대표... 혹시 회사 입구에서 지키고 있는 건 아니겠지?’전씨 그룹은 강성 쪽에 몇 개의 호텔을 두고 있지만, 호텔이 잘 운영되고 있어 전호영이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거의 없었다.전호영은 여유의 시간이 많았다.고현은 전호영과 달리 고씨 그룹의 대표로서 매일 정신없이 바빴고 여유 시간이 별로 없었다.그녀는 전호영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하면 한숨이 나왔다. 전호영이 또 회사 입구에 꽃바다를 만들고는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고백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오전에 그가 준비한 꽃바다는 기자들의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모멘트에 올랐다. 그렇게 소문이 퍼지면서 기자들의 눈에도 띄게 됐다.아직도 인기 검색어 기사에서 당시의 사진을 볼 수 있다.그녀는 빨간 장미 꽃바다를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연예 기사가 그녀와 전호영의 가십거리를 대놓고 보도할 때, 그녀는 따로 손을 써 막지 않았다. 전호영이 행동을 멈추지 않는 한 연예 기사들이 그들의 일을 보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숨길 수도, 억제할 수도 없는 마당에 시간을 낭비해서 뭐 할까?고현은 자기가 낯가죽이 두꺼워 다른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이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회사 입구에 계시지 않습니다.”비서는 공손히 말했다.“이미 보안팀에게 전 대표가 오는 즉시 알려달라고 분부했습니다.”“온 오후 나타나지 않았다고?”비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네.”
“만약 우리 대표님이 여자라면 전 대표랑 딱 어울릴 것 같아. 설령 둘 다 남자라고 해도 함께 서 있으면 마치 둘이 부부라는 느낌이 들거든.”“어쩐지... 전 대표는 우리 대표님을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고백까지 하더라니. 네 생각에 우리 대표님께서 전 대표님의 고백을 받아줄 것 같아?”“그럴 리가, 우리 대표님이 게이도 아니고, 전 대표의 고백을 받아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전 대표도 정말로 우리 대표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둘째 도련님에게 들었는데, 전 대표가 집안 어른들의 재촉에 참지 못하고 강성으로 도망 온 거래. 집안 어른들이 소개해 준 명문가 아가씨가 마음에 들지 않다나 봐. 그래서 우리 대표님을 이용해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만들어낸 거래.”두 명의 프런트가 하는 얘기를 고현이 들을 리가 없다.그녀는 회사를 나올 때 무의식 간에 먼저 회사 입구를 바라보았는데, 확실히 전호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몇 분 후, 고현의 전용차가 경호차 몇 대의 호위를 받으며 고씨 그룹을 떠났다.고현이 이렇게 방비하고 있는 전호영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그는 고현의 개인 별장 입구에서 고현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그가 새로 산 집은 마침 이 별장 구역이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이 구역에 집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고현의 덕분이었다. 비록 아직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 입주하지는 못하지만, 출입 카드를 발급받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됐다.전호영의 집의 인테리어를 인테리어 회사에 맡기고, 가끔 와서 진행 상황을 살펴보곤 했다.전호영은 고현 집의 집사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남장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또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고현은 집에 도우미를 많이 두지 않았다. 전호영이 초인종을 울리지 않으면 별장 안의 사람들은 입구에 사람이 있는지 모른다.게다가 전호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차 안에서 고현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해가 지면서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마침내
‘큰형인 전태윤보다 훨씬 교활해.’전호영의 차는 별장 입구에 가로로 주차되어 있었다.남의 차를 치고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인지라 고현의 차량은 멈춰 섰다.전호영은 고현의 전용차가 눈에 띄자 큰 꽃다발을 품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오전의 꽃다발과 달리 이번에는 사람을 청해 오만 원짜리 지폐로 돈다발을 만들었다.고현이 온 강성 생화 점의 주인에게 전호영에게 장미꽃을 팔지 말라고 전했기 때문이다.전호영은 서진 리조트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꽃다발이 그렇게 일찍 도착할 방법이 없었다.그래서 먼저 돈다발로 대신할 생각을 했다.게다가 그는 오전에 온 강성 꽃가게의 장미꽃을 모조리 사버렸다. 다시 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전호영은 차 앞쪽에 기대어 두 손에 돈으로 만든 꽃다발을 안고 웃음을 머금은 채 고현의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곧게 뻗은 수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어, 전씨 일가의 셋째 도련님다운 멋진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고현은 오늘 저녁 참석해야 할 연회가 있다. 고현을 초대할 수 있는 연회라면 레벨이 높은 자리로 오늘 연회의 참가자는 모두 유명인사인 것이 분명했다.전호영의 신분으로 만약 그가 자주 강성에서 모습을 보였다면 분명 초청장을 받았을 것이다.그는 오늘 연회에 고현이 참가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초대장을 구했다.그리고 조금 있다가 고현과 함께 연회에 참석할 생각을 했다.“어라? 전 대표님이 왜 여기 계시는 거죠?”전호영을 발견한 고빈이 차에서 내려 전호영을 향해 걸어가며 웃으며 인사했다.차 안의 고현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남동생을 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조만간 동생이 자기 친누나를 팔아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여기서 고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둘째 도련님도 계시네요. 자, 저 좀 한번 봐주실래요? 저의 지금 모습 어때요? 잘생겼나요?”전호영은 미래의 처남에게 매우 좋은 태도를 보였다.그는 차에 기대어 있던 몸을 똑바로 세워 고빈에게 열심히 꾸민 자기 모습을
고현의 경호원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그들은 전호영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감히 손을 댈 수는 없었다.전호영은 예전에 큰 도련님을 연모했던 사람들과 달라 설득하여야 하지 바로 사람을 끌고 가버릴 수는 없었다.“호영 대표님.”한 경호원이 공손히 말했다.“번거로우시겠지만 저희 두 도련님의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차를 좀 옮겨주세요.”또 다른 한 경호원도 공손히 말했다.“그리고 더 이상 우리 큰 도련님을 귀찮게 하지 마세요. 우리 큰 도련님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큰 도련님이 남자를 좋아한다면 전호영은 차례도 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큰 도련님은 여자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들은 큰 도련님 곁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큰 도련님이 어떤 여자에게도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걸 보지 못했다.전호영은 경호원들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고현의 차창을 두드리며 차에서 내리든 창문을 내리든 하라고 손짓했다.“호영 대표님, 호영 대표님.”고빈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손을 뻗어 전호영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대표님, 먼저 차를 옮겨서 우리 형제가 운전해서 들어가게 해주세요. 우리 집에 들어가서 얘기하죠.”전호영은 여전히 차 안의 고현을 쳐다봤다.고현은 지금 전호영에게 매우 화가 났다.처음에 전호영에게서 느낀 호감은 오늘 완전히 사라졌다.그녀는 속으로 이 무모한 남자를 천번 만번 욕했다.‘어르신들은 상관하지도 않는 거야?’그녀는 전태윤에게도 말해 보았지만 사촌 동생들의 사적인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대답만 얻었다. 전태윤은 동생들이 먼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절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현은 속으로 전태윤이 전호영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호영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전호영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빙그레 웃으며 고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고현은 되려 그의 큰 손을 쳐냈다.그는 무구한 눈빛을 반짝이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