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언니와 이모께 할머니께서 하신 제안을 조용히 물어보았지만 언니와 이모는 여전히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3년 이상 임신 못 한다면, 부부의 건강문제가 확실히 아니라면 그때 가서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보자고 결정했다.한 아이를 입양해 그 기운으로 임신하려고 말이다.그때 정겨울이 하예정이 임신했다고 말했으니 하예정의 그 기쁨을 누구 알아주리! 전태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어머님과 아버님께서 내일 제 계좌로 400억을 입금할 거라고 하셨어요.”하예정은 갑자기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저한테 주는 상이라고 하셨어요. 임신 후로도 몸매가 변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아기를 더 낳으라고 제안하셨고요.”“제가 전씨 가문의 큰 공신이라며 꼭 상을 줘야 한대요. 우리가 아기를 가지는 게 부부에게 있어서 가장 평범한 일 아니에요?”하예정을 말을 꺼내면서 매우 답답해 났다.시부모님이 직접 400억을 주신다고 하니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마치 장사하는 것처럼, 거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임신과 출산이 돈과는 상관없는 전태윤과의 사랑의 결정체이고 두 사람 생명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웃으면서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은 전태윤은 하예정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왔다.“이건 우리 명문가들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 전씨 가문도 다른 큰 가문과 마찬가지도 아랫사람들이 임신하게 되면 어르신들이 저택 혹은 고급 차, 값비싼 액세서리, 심지어 자가용 비행기, 자가용 요트까지 선물하거든.”전태윤도 하예정에게 선물을 준비했다.며칠 후면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기념일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위해 고급 차와 고급 저택, 그리고 개인 요트 한 척을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려 했다.하지만 지금 하예정이 임신했기에 전태윤은 몇 가지 선물을 더 추가해서 아내에게 주기로 했다.부모님께서는 아내에게 돈을 선물했고 전태윤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거액의 돈을 선물하려 했다.하지만 결혼한 뒤로 모든 재산을 두 사람이 함께 소유하고 있다 해도 독립적인 성격을
전태윤에게 시집간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막강한 재력의 가문 도련님인 줄도 알고 시댁 식구들도 재산이 매우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전태윤의 뜻에 따르고 그를 이뻐하는 것을 보며 부잣집도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름없다고 느꼈다.하지만 이번에 임신한 후로 가문의 어르신들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을 보면서 진정한 부잣집이 어떠한지를 진정으로 실감하게 되었다!“태윤 씨.”전태윤은 또 고개를 숙여 아내의 이마에 뽀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난 당신이 날 여보라고 부르는 게 너무 좋아.”“저 또 배고픈 것 같아요.”하예정이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남편을 쳐다보았다.저녁 식사 때 분명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지금 또 배가 고팠다.전태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에게 물었다.“뭐 먹고 싶어? 내가 내려가서 해줄게.”“시원한 국수 먹고 싶어요. 오이와 국물을 듬뿍 넣어서.”전태윤이 멈칫했다.“집에 국수가 없을걸.”하예정은 바로 몸을 일으켜 반짝이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지금 시내로 가요. 야시장에서 산책도 하고 야식도 먹어요.”전태윤이 시간을 보더니 말을 꺼냈다.“오늘 시내로 들어간다면 시내에서 묵어야 할지도 몰라.”“오늘 밤 발렌시아 아파트에 가서 자고 싶어요.”전태윤은 웃으며 그녀에게 뽀뽀했다.“우리 부인이 나와 같은 생각 하고 있었네. 그래. 당신 국수 먹고 싶다면 우리 같이 가서 먹자.”임산부는 갑자기 뭔가 먹고 싶을 때 즉시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소정남이 말한 적이 있었다.그리고 임신하게 되면 입맛도 변하기 때문에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뒤이어 두 사람 가족들이 깨날까 봐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고 또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어르신들은 하예정이 임신을 금방 했기 때문에 잘 쉬어야지 자꾸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집안 어르신들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시내로 들어간 사실이 발견된다면 어르
“임신했을 때도 사실 많이 움직여야 하는걸요. 매일 침대에 누워있으면 출산에 도움도 안 돼요.”전태윤은 승낙도 거절도 하지 않았다.“내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고 의사에게 물어본 뒤 우리 논의해 보자. 하지만 힘든 일은 더는 하면 안 돼.”“제가 뭐 힘든 일을 할 게 있다고 그러세요.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사짓는 것도 아닌데. 저의 작은 장사를 하는 거잖아요.”“기껏해야 걸어 다니는 횟수가 많을 뿐이죠. 제가 알아서 제 상태를 점검할게요. 제가 힘들다고 느끼면 반드시 쉴 테니까 걱정 마요.”“소 대표처럼 저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지 않으면 돼요.”전태윤은 소정남 대신 해명해주었다.“효진 씨도 지금 매일 서점에서 일하고 있잖아. 소정남이 일 안 시키는 것도 아니고.”“그럼 태윤 씨 뜻은 앞으로 저도 매일 서점에 출근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세요?”“내가 당신을 알았을 때부터 당신이 서점을 운영하지 않았어?”하예정은 말문이 막혔다.“채소와 과일 장사는 관성에 있는 가게만 관리하도록 해. 출장 갈 일이 생기면 소현 씨에게 맡기고. 소현 씨가 못 갈 때면 나한테 알려줘. 내가 당신과 함께 출장 갈 테니까.”“알았어요.”하예정이 동의했다.남편은 소정남보다 조 더 관대했다. 적어도 그녀가 회사 일을 처리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소정남처럼 심효진이 서점을 지키는 것에만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내로 들어가는 거리가 매우 짧아 보였다.곧 시내로 들어갔다.전태윤은 하예정을 싣고 발렌시아 아파트 근처 아침 가게로 향했다. 하예정은 예전에 근처 시장에서 아침밥을 사 먹곤 했다.그러나 시간 문제로 인해 대부분 가게는 하예진의 하루 토스트 가게처럼 아침밥만 운영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일찍 문을 닫아버렸다.결국 하예정은 다른 가게를 찾아 국수를 먹었다.전태윤은 먹지 않았다.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맞은편에 앉아 아내가 먹는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아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결
“나도. 다 좋아. 물론 딸을 낳으면 더 기쁘지만.”전태윤은 생글생글 웃으며 아내가 국물까지 모두 마셔버리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다.말을 마친 전태윤은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하예정에게 딸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시 아내에게 해석해 주었다.“당신이 꼭 딸을 낳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우리 할머니도, 어머니도 모두 딸을 낳지 못했는걸.”“그들도 하지 못한 일을 당신이 꼭 해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하예정은 빙그레 웃었다.“전 괜찮아요. 당신 집안의 사람들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거예요. 그분들한테는 제가 낳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시니까요.”결혼한 지 1년이 되도록 임신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하예정이 임신 못 하는 줄 알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며느리가 딸을 낳기를 바라던 데로부터 임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기다리다 못해 이젠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았다.이젠 며느리가 임신 했다는 것은 어린 부부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어르신들은 기쁘기만 했다.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 이런 문제를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전태윤은 아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웃기만 했다.하예정이 그릇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자 전태윤이 물었다.“한 그릇 더 먹을래?”“아직 한 그릇을 더 먹을 수 있는데 시간이 늦어서 너무 배불리 먹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내일 또 먹으러 와요. 이 가게 국수가 너무 맛있어요.”전태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내일 내가 시원한 국수 한 그릇 끓여줄게.”“좋아요.”남편이 직접 요리 해주겠다는 소리에 하예정은 마다하지 않았다.국숫값을 결산한 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전태윤이 물었다.“밤바람 쐬러 갈래?”“내일 출근해야 해서 근처 한 바퀴 돌고 집에 가서 잘래요.”“내일 안 쉬어도 괜찮겠어?”전태윤이 아내에게 차 문을 열어주면서 말을 건넸다.“내일 우리 둘 다 출근 안
하예정은 웃으면서 전태윤을 재촉했다.하예정이 안전벨트를 매는 걸 확인한 전태윤이 그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둘은 부근을 한 바퀴 돌다가 발렌시아 아파트로 향했다.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지 않았으나 숙희 아주머니가 매일 찾아가 청소하고 하예정의 베란다에서 기르던 화초들을 돌보았다.방에 들어간 하예정이 전등을 켜고 베란다의 그네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많이 그리웠어 그네야.”산꼭대기 별장에서 지낼 때도 그네가 있긴 했지만, 이상하게 이 아파트의 그네가 그리웠었다.아마 전태윤과 사랑을 키워가던 곳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무언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게 있었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온수를 따라주고 베란다의 전등을 킨 후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고개를 들자, 옷을 말리는 데에 사용하는 대나무 장대 두 개가 보였다.“예정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먼 곳에서 대나무 장대 두 개를 가지고 온 거야? 대충 아무 장대를 걸어도 옷은 얼마든지 널 수 있잖아.”하예정도 고개를 들어 대나무 장대를 바라보았고 미소를 지었다.“글쎄,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빨래 널기 위해 대나무 장대가 필요했고 시골의 대나무가 마침 떠올라 행동에 옮겼던 것 같아요.”“그때의 태윤 씨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해 집안일은 아무것도 신경 써주지 못했잖아요. 집은 크지만, 부족한 가구가 많았고 어쩔 수 없이 내가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바보 같은 일을 한 것 같긴 해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어깨를 꼭 안으며 자기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그때는 너한테 이상한 편견이 있었어. 네가 내 할머니를 속이고 우리 집 재산을 보고 결혼한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할머니 말씀대로 네가 정말 좋은 사람인지 테스트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이 집은 정말 급하게 구매한 거야. 너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하루도 지내본 적이 없다 보니 이 집에 귀속감을 느끼지 못했어.”“그래서 집안일에 손을 떼
두 사람은 밤이 깊어지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국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하예정이 먼저 잠에 들어버려 대화는 종료되었다.이튿날, 하예정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났다.그 노크 소리는 마치 1년 전 어느 날 밤, 전태윤이 돌아오지 않을거라 생각해 문을 잠갔다가 전태윤이 세차게 노크하는 바람에 깨어난 그 상황과 비슷했다.눈을 떠보니 옆에는 전태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미리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전태윤이 문을 바로 열자, 노크 소리는 끊어졌다.열린 문으로 할머니가 보였고 전태윤은 바로 인사를 올렸다.그러나 할머니는 전태윤을 밀어내고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예정이는?”“아직 자고 있어요. 할머니는 밤새 오신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도착하셨어요? 아니 그것보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하예정이 아직 자고 있다는 말을 들은 할머니는 목소리를 낮추고 전태윤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전태윤의 어깨를 찰싹 내리치며 꾸중했다.“한밤중에 왜 예정이를 데리고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거야? 예정이 몸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이렇게 들쑤시고 다니다가 문제가 생기면 네가 책임질 수 있어?”“예정이가 임신했다니 당연히 내가 와야지. 다섯째와 여섯째에게 며느리를 찾아주는 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예정이보다는 중요하지 않아. 예정이 몸은 괜찮느냐?”할머니는 사실 오늘 아침 막 도착했다.장손이 자주 타던 차가 보이지 않자, 손자 부부가 서원 리조트를 떠났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고 경비에게 물어 떠난 시간이 어젯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래서 할머니는 곧장 발렌시아 아파트를 찾았다.제가 키운 손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할머니가 가장 잘 알았다.그리고 할머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할머니, 손자며느리는 아주 건강해요. 어제 갑자기 입맛이 돌아 고기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던데 비리지 않고 맛있게 육수를 내려면 집에서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시중으로 돌아온 거예요.”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전태윤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다.할머니가 말했다.“넌 네 볼일 보거라. 내가 문을 여마.”할머니가 몸을 일으켜 문을 열자 보이는 건 하예진이었다. 양손 가득 크고 작은 식재료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척 보아도 마트를 다녀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할머니, 언제 오신 거예요?”할머니를 본 하예진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나도 방금 도착했단다. 예정이 임신했다는 소리에 급히 돌아온 거지. 전태윤 저 녀석이 행여나 우리 예정이를 잘 보살피지 못할까 직접 챙기려고 온 거란다.”할머니도 기분이 퍽 좋아 보였다. 하예진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세우고 위아래로 하예진을 살폈다.“우리 예진이는 볼 때마다 예뻐지는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감이 넘쳐 보여.”“감사해요, 할머니.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건가 봐요.”하예진의 농담에 할머니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그래. 너희 두 자매는 모두 타고난 거야.”“예정이는요?”하예진은 동생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어젯밤 태윤 씨가 전화가 와서 예정이의 임신 소식을 알려줬어요. 작은이모에게 알렸더니 이모도 너무 기뻐하시며 바로 예정이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어요.”“예정이네 부부가 A시 예진 리조트로 이사 간 게 기억이 나 당연히 아직도 그곳에서 지낼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정이 올린 게시물 SNS 위치가 관성시 발렌시아 아파트더라고요. 돌아왔구나 싶어 빠르게 찾아왔죠.”“이렇게 이른 시간에 두 사람이 아직 아침밥은 먹지 않았겠거니 싶어 식재료를 좀 사 왔어요. 아침을 해주려고 하는데, 할머니도 아직 식전이죠? 제가 맛있게 해드릴게요.”그리고 하예진이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부산히 움직였다.그런데 전태윤이 앞치마를 두른 채로 주방에서 나왔다.“처형.”“태윤 씨,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매제가 주방에 있다는 건 하예진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다시 미소를 되찾은 하예진이 말했다.“예정이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예요? 두 사람
하예진은 미소를 지은 채로 할머니와 얘기를 주고받았다.“전씨 할머니, 연세가 많으시니 이제 이곳저곳 다니지 마시고 집에 계셔주세요. 저희가 할머니를 곁에서 돌볼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집안에 현명한 어르신이 한 분 계시면 그게 복이라고 하는데, 할머니는 바로 저희의 복이에요.”할머니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날 쫓아낸다고 해도 어디 가지 않으마. 집에서 예정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니겠느냐? 저 손주 녀석은 나이만 컸지 아무것도 몰라서 참.”전태윤이 바로 얼굴을 붉혔다.“할머니, 지금은 경험 부족이지만 배울 수 있어요. 바로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을 사와 천천히 모두 읽어볼게요. 다들 첫 번째 아이는 책에 적힌 대로 키운다고 그러잖아요.”두 번째 아이부터는 마음이 가는 대로 키우지만 말이다.하지만 하예정과 어렵게 첫 번째 생명을 얻었으므로 두 번째 아이에 대한 생각은 먼저 접어두기로 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모연정처럼 쌍둥이를 임신해 아들과 딸을 동시에 출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출산의 고통을 한 번만 겪으면 되었다.두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처형, 먼저 할머니와 얘기 나누고 계세요. 저는 아침 준비를 마저 하고 있을게요. 이렇게 많은 식재료를 사 왔으니, 제가 솜씨를 제대로 보여드려야겠네요. 요즘 예정이 식욕이 좋아 한 끼를 먹고 바로 배고파하더라고요. 이 집을 오래 비워 두어 주전부리가 없는데 식사를 마치고 바로 마트에 가서 예정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 올게요.”전태윤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다가 주방 밖을 향해 외쳤다.“할머니, 둘째에게 오늘 내가 회사를 나가지 못한다고 전해주세요. 중요한 사항은 통화로 처리하거나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세요.”평소 회사를 비우면 소정남이 회사를 지켰다.그러나 요즘 들어 소정남은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 정시 퇴근을 했고 야근을 꺼렸다.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할머니가 말했다.“너희 두 부부가 너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