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이 소지훈 계획한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는 사실조차 몰랐다.호텔로 돌아가는 길에서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말주변이 좋은 정윤하는 이내 소지훈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두 사람이 첫 만남이 아닌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낸 오랜 친구처럼 말이다.소지훈도 눈앞의 운명적인 여신에게 점점 더 호감을 느꼈다.역시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답게 무술 실력이 뛰어나고 성격이 시원시원할 뿐만 아니라 말재주도 무척 좋았다. 이런 여자가 그에게 가장 잘 어울렸다.“아저씨, 아저씨는 회사 대표인데 전태윤 도련님과 협력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멀리 있는 연성에서도 전태윤 도련님과 그분 아내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거든요.”연성은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관성과 비교할 수는 없었고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였다.정윤하가 전태윤과 하예정에 관해 물어보는데 소지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정윤하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평소 학생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 외 다양한 소설을 읽는 것이 취미였다. 이 점은 소지현의 제수 심효진과 똑같았다.심효진은 스스로 서점을 운영하며 서점 안의 책을 모두 다 읽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새로운 책들을 들여왔다. 어쨌든 매일 읽을 책이 있어야 했다.정윤하는 겨우 24살 어린 여자였다. 게다가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했기에 소설보다 아름다운 전태윤과 하예진의 사랑 이야기를 당연히 더 좋아할 것이다.당시 전태윤이 갑자기 결혼했을 때 언론들이 크게 떠들어댄 데다 요즘 인터넷도 많이 보급되었기에 멀리에서 생활하는 정윤하가 그 소식을 접하고 흥미를 느낄 만도 했다.소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잘 물어보셨어요. 저와 전 대표는 몇 번 협력해 본 적 있어요. 사적으로도 친구로 지냈기에 가끔 밥도 먹어본 적 있는걸요.”“전 대표와 그분 아내의 실제 사랑 이야기는 윤하 씨가 인터넷으로 본 것과 별로 다른 점 없어요. 언론들이 과장되게 보도하지 않았거든요.”“참, 전씨 가문의 사모님도 싸움 실력이
“사실 제가 윤하 씨를 경호원으로 모시고 싶어요. 제가 마침 경호원이 부족하거든요. 윤하 씨처럼 실력이 좋은 분 한 분만 계신다면 제 안전은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정윤하도 웃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아저씨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은인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정윤하는 수많은 사람을 도와줬지만 소지훈이 가장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역시 대표라서 그런지 인성이 훌륭했다.소지훈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도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소지훈의 사업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어느 때인가 제가 지금의 직업이 지겹다고 느껴지면 아저씨께서 저에게 경호원 일자리를 소개해 주세요. 제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거든요. 자신의 손으로 돈을 당당하게 벌 수만 있으면 돼요.”“훔치거나 도둑질하는 일이 아니면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요.”정윤하는 자기가 무술을 잘하는 것 외 아무런 장점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일자리를 구함에 있어서 직장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직업의 종류를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언젠가 우수한 성적을 이룰 수 있다.소지훈이 말했다.“제가 윤하 씨 일자리를 남겨둘게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저의 경호원으로 일하신다면 윤하 씨 요구를 모두 만족시켜 드릴 수 있어요.”“네, 직장을 옮기고 싶을 때 아저씨께 꼭 연락드릴게요.”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관성 호텔에 도착한 소지훈은 거리가 너무 짧다고 아쉬워했다.진작 알았으면 방향을 바꿔서 에돌아 오면 정윤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첫 만남에 정윤하가 소지훈을 ‘살려’주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그녀가 소지훈에 대한 좋은 인상이 망쳐질 수도 있었다.차는 관성 호텔 입구에 멈추었고 소지훈은 정윤하를 바라보았다. 정윤하는 밝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멋진 분위기를 보며 소지훈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정윤하의 옆모습도 무척 아름다웠다.
소지훈은 차에서 내려 정윤하를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관성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정윤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제야 차를 타고 돌아갔다.그는 먼저 휴대 전화를 꺼내 자신의 유능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소지훈이 물었다.“다들 부상 상황은 어때?”“도련님, 우리 미래의 사모님 실력이 너무 강해요. 다들 상처를 입어 전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거든요.”비서가 정윤하를 미래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소지훈의 눈가에는 만족한 듯한 웃음기가 드러났다.사모님이라... 그는 이 호칭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소지훈의 운명의 여신이 아니었던가.그는 자신의 여신이 점점 더 좋아졌고 점점 더 만족하고 있었다.하느님은 여전히 소지훈에게 잘 대해주셨다. 그에게 이렇게 성격이 시원한 여자를 주선해 주어 진정한 남자로 될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소지훈이 정윤하보다 열 살 위였다느 점이다. 정윤하가 소지훈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싫어할지는 모른다.소지훈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남자는 이 나이가 꽃다운 나이에 속했다. 게다가 그는 관리도 아주 완벽히 잘해서 20대처럼 보였다. 겉으로 보면 그는 절대로 34세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정윤하와 마주 서면 소지훈은 자신이 늙었다고 느껴졌다.소지훈이 열 살 되였을 때쯤 정윤하가 막 태어났을 때였다.정윤하의 성격을 생각하던 소지훈은 그녀가 자신에게 빠진다면 절대로 자신이 늙은 점을 개의치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럼 모두 입원해서 치료하도록 해. 병원비와 영양비 그리고 기타 비용도 모두 계산해 주고. 또한, 그들의 앞으로 3개월 동안 월급을 3배 올려줘.”소지훈의 인생사를 위해 다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부하들이 다치면서도 이익도 얻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은 앞으로 3개월 동안 월급을 세 배로 올려 주기로 했다.비서가 웃으며 말했다.“한 달만 월급 3배
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 레아닐 아파트.하예진은 아들의 책가방을 챙겨 들고 방문 앞으로 걸어가면서 재촉했다.“우빈아, 좀 빨리 움직여. 늦었어.”우빈이는 어물어물하다가 방에서 자신의 신발을 들고나와서 소파 위에 앉아 천천히 신발을 신었다.그리고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오늘 유치원 안 가면 안 돼?”유치원에 다니기 전에 우빈이는 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유치원에 지원하러 갔을 때도 녀석은 유치원에서 놀다가 엄마가 데려가려고 하자 집에 가기 싫어서 울기도 했다.한동안 유치원에 다니던 우빈은 집에서 노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엄마가 그를 데리고 다니지 못하면 이모 회사로 갈 수도 있고, 안 되면 이모부 사무실에 가거나 이모 집에 가도 된다.유치원에 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 다니면서 녀석은 매일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예전처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지 못했다.엄마는 출근해야 하므로 일찍 유치원에 가야 했고 우빈이는 매일 유치원에서 가장 먼저 유치원에 도착하는 어린이로 되였다.“아프지도 않은데 왜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예진은 문을 열면서 고개를 돌려 아들에게 물었다.우빈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예진은 또 입을 열었다.“준호보다 더 잘하고 싶다며. 준호는 너처럼 며칠동안 유치원에 다니다가 또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을 안 하거든.”우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 아들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녀는 아들의 신발 신는 것을 돕지 않았다. 녀석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스스로 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아들, 엄마에게 말해봐. 왜 유치원에 가기 싫어?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널 괴롭혔어? 선생님은 너에게 잘해주고?”우빈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친구들 모두 좋아요. 저를 괴롭히지도 않아요. 저도 남을 괴롭히지도 않는걸요. 저는 무술을 배워본 사람인데 어떻게 남을 괴롭히겠어요. 선생님도 저한테 잘해줘요.”우빈의 무술 실력은
하예진은 아들을 다시 안으며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요즘 엄마가 너무 바빠서 우빈이와 놀아주지도 못하고 소홀히 대했어. 이틀만 유치원에 다니고 주말이 되면 엄마랑 바닷가로 놀러 갈래?”“이모도 가요?”“이모와 이모부랑 그리고 사촌 이모도 다 같이 가자.”우빈은 엄청나게 기뻐하면서 말했다.“좋아요! 미안해요, 엄마. 다시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 안 할게요.”하예진은 아들을 풀어주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빈이가 엄마 이해해줘서 엄마 너무 기뻐. 우빈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바로 고치는 착한 아이니까. 엄마는 우빈이가 너무 좋아.”그러더니 하예진은 아들의 작은 얼굴에 뽀뽀했다.녀석도 엄마에게 뽀뽀해 주었다.“엄마, 우리 유치원에 가요.”우빈이는 엄마 손을 잡고 집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엄마에게 또 말을 건넸다.“엄마, 제 가방은 제가 들게요.”하예진은 가방을 건네주었고 우빈이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집 문을 나선 우빈이는 옆에 서서 엄마가 문을 잠그기를 기다렸다.하예진은 문을 꼭 잠그고 돌아서서 아들의 손을 잡으려는데 한 남자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하예진 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바로 어젯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술에 취한 남자였다.취객은 어젯밤보다 많이 깨어 있는 것 같았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섬뜩했다.그 남자는 하예진을 노려보았고 하예진은 바로 아들을 안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여기서 사셨군요.”하예진은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그녀는 못 들은 척하고 아들을 안아 들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같은 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장을 보려는 모습을 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모, 아까 그 남자 봤어요? 우리 층에 살았었나요? 그전에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하예진은 사이가 가까운 이웃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면서 물었다.아주머니가 대답했다.“술 냄새 나는 그 남자요? 맨 위층에 사는 남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하예진의 앞을 가로막아 남자 취객이 하예정을 보지 못하게 했고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하예진에게 물었다.“애 아빠는 곧 돌아오는 거죠?”하예진도 말을 이었다.“곧 도착해요.”주형인은 조금만 더 입원하다가 퇴원할 수 있었다.확실히 곧 돌아올 것이다. 물론 하예진이 사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그녀는 주형인과 이미 이혼한 지 1년이 되어갔다.아주머니는 또 우빈이를 보며 물었다.“아빠 보고 싶어?”우빈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저를 데리고 주말에 아빠 보러 갔는걸요.”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주말에 아빠를 보러 갔구나.”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는 일부러 취객에게 하예진의 집에 남자가 있다는 걸 알게 하려고 말을 내뱉었다. 하예진의 남편이 출장 갔다가 곧 돌아오니 하예진을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였다.술 취한 남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1층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아주머니는 얼른 하예진 모자를 끌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그 술 취한 남자는 가만히 서 있었고 하예진이 그의 곁을 지나갈 때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제가 당신을 밤새 찾았거든요. 당신 이혼했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있어요.”하예진의 안색은 바로 어두워졌다.남자 취객은 일찍부터 그녀에게 눈독을 들였던 것이다.어젯밤 노씨 가문의 경호원이 하예진을 위층으로 데려다주었을 때 취객을 의식한 하예진은 자신이 사는 층에서 내리지 않고 몇 층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하지만 남자 취객이 그녀가 어느 층에 사는지 알고 싶어 밤새 찾으러 다닐 줄은 몰랐다.그리고 그녀가 이혼한 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예진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아들을 안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사실 레아일 아파트는 아주 안전한 아파트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도둑맞거나 위험한 일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이 술 취한 남자도 실연당하기 전에는 아마 정상적인 남자였을 것이다.그 남자는 지금 하예진에게 아
하예진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우빈이 이모부께서 우빈에게 별장을 하나 사주셨거든. 그것도 엄청나게 크고 아름다운 별장으로. 우빈이 이모가 사는 그런 별장을 사주셨어. 하지만 엄마가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어.”“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건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우빈이를 공부도 시키고 좋은 생활도 마련해 주기 위해서야. 그리고 우빈이 이모의 든든한 후원자로 되고 싶었거든.”“엄마는 네 이모부의 별장을 받아들이면 네 이모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 같아.”“사람들이 우리가 네 이모 덕에 사돈의 돈을 받아서 쓴다고 말하는 게 너무 싫어. 엄마가 돈을 많이 벌면 언젠가는 엄마의 능력으로 그런 별장에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동명 아저씨와 정남 아저씨도 모두 그 부근에 별장이 있대. 우리가 이모의 별장을 받아들여 이사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안전할 거야. 엄마도 고민이야. 그 집을 받아들일지 말지.”“방금 만난 술에 취한 아저씨 일을 네 이모에게 알린다면 분명 우리 때문에 엄청나게 걱정하실걸.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또 앞으로 사고라고 나게 되면 네 이모가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몰라.”“네 이모가 금방 임신해서 너무 놀라면 안 되는데.”하예진은 무척 갈등했다.그 술 취한 남자는 지금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하예진은 아들이 걱정 되었고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동생이 많이 놀랄까 봐 더 걱정했다.우빈은 겨우 3살 어린 아이였다. 녀석은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없었다.“저는 이모와 함께 살고 싶어요. 동명 아저씨랑 정남 아저씨랑 함께 살아도 돼요.”아들이 대답한 말을 듣자 하예진은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3살짜리 아이가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아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겨우 세 살인데 엄마를 도와 이런 문제들을 분석할 수 없었다.유치원에 도착하자 하예진이 차를 세웠다.우빈이는 스스로 안전벨트를 풀고 그의 작은 가방을 메고 스스로 문을
전태윤은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오더니 하예진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처형, 저희가 결혼식을 앞당겨 치를 예정이에요. 하늘 리조트에 있는 별장 저랑 예정이가 처형을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하예진이 있는 곳이 바로 하예정의 친정집이니 결혼식 치를 때가 되면 하예정은 언니 집으로부터 출발하게 될 것이다.하예진은 물잔을 건네받고 웃으며 말했다.“제부, 저도 마침 이 일 말하려고 찾으러 온 거예요.”그 말을 들은 전태윤은 기뻐하며 곧바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서랍 속에 있던 열쇠 뭉치를 꺼내왔다.그리고 그 열쇠 뭉치를 하예진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처형이 허락하면 언제든지 별장 열쇠를 가져다주려고 열쇠는 항상 제가 간직하고 있었어요.”하예진은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시고 열쇠뭉치를 보았다. 물의 따뜻함이 마음마저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다.하예정과 전태윤은 하예진을 지극정성으로 대해줬다. 전태윤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한 번도 하예정을 싫어한 적 없을 뿐만 아니라 처형인 하예진마저 더없이 존경했다.하예정은 말할 것도 없다.그녀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을 때부터 언니에게 효도하기 시작했다.하예진은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주부가 된 뒤 남편의 인색함에 수입이 아예 끊기고 말았다. 그때 그녀는 동생이 은밀히 가져다준 돈에 의지하며 힘겹게 견뎌냈다.동생이 없었다면 하예진은 그 몇 년을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제부, 그 별장 제가 받아줄게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가지는 게 아니라 제가 사는 거로 해요. 가격을 싸게 하더라도 공짜는 안 돼요. 그래야 제가 이사한 뒤에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죠.”전태윤은 하예진의 말을 듣자, 말문이 막혀 침묵을 지켰다.그는 하예진이 드디어 생각을 바꾼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다른 사람이라면 별장 하나를 돈 필요 없이 공짜로 준다면 엄청나게 기뻐할 텐데 하예진은 달랐다.그녀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들을 데리고 셋방을 쓰더라도 그의 부부가 주는 집은 받지 않겠다고 견지하여 전태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