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우는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예전에 고모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여운초와 맞설 뻔했지만 정의감이 결국 악의를 짓밟았기에 고모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고모는 여운초의 용서를 빌다가 소용이 없자 여천우와 여운초 사이를 이간질했다.“누굴 원망하고 미워할지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고모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건 다 자초한 일이니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마세요. 아, 저를 탓해도 뭐라 하지 않을게요. 저는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거든요. 고모의 것이 아닌 건 절대 빼앗을 수 없고 강제적으로 빼앗는다면 지금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겠죠.”두 고모가 타락한 모습을 본 여운초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었다. 어느 정도 만족한 여운초는 여천우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천우야, 가자.”“여운초, 넌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거야!”여미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여운초는 문 앞에서 집사한테 당부했다.“저 사람들이 또 와서 난동을 부리면 뒷마당에서 키우는 셰퍼드 두 마리를 풀어놓으세요. 아, 오늘부터 저랑 천우는 저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으니 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면 절대 봐주지 마세요.”집사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띠는 여운초를 바라보면서 어쩐지 뿌듯해 났다. 방으로 들어간 여운초는 여천우한테 말했다.“20여 년 전, 우리 아빠가 죽은 뒤 저 사람들은 알면서도 범인을 감싸고 돌았기에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그때는 내가 두 살밖에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몰랐고 고소하지 못했어. 지금 하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서 아무것도 못 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이곳까지 와서 난동을 부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천우야, 네 부모님이 지은 죄는 20여 년 전에 우리 아빠를 죽인 것에 그치지 않고 건달들과 손을 잡고 사람을 납치하고 때린 것도 포함돼. 예전에는 이 일에 대해 말하기 꺼렸지만 오늘 전부 알려줄게.”여운초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어서 여천우의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한 말은 전부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가족보다 더 친한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 말을 더더욱 믿어서는 안 돼.”예천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고 여운초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누나, 난 절대 고모한테 속지 않을 거야.”여운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 가문에서 제일 착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바로 너야. 넌 부모님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자신의 원칙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야.”여천우의 엄마는 여천우가 어릴 적부터 여운별과 오누이 사이라고 말하면서 가깝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여천우는 처음부터 여운초가 더 편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여운초의 곁에 달라붙어 있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누나, 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여천우는 여운초가 독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지만 상대를 완전히 말려 죽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고모도 어느 정도 봐주려고 했고 본가로 돌아와서 재산을 뺏지 않는다면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사촌 형을 여씨 그룹에서 쫓아낸 건, 예전부터 여씨 그룹에서 행세를 부리며 수수료를 떼어 가졌기 때문이다. 회사의 돈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것을 여운초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지만 삼촌으로서 조카가 저지른 잘못을 관대하게 포용해 주었고 사촌 오빠들도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여운초가 아버지의 자리를 이은 뒤,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은 배후에 어느 가문이 있든 상관하지 않고 전부 해임했다. 더 책임을 묻지 않고 해임했지만 여천우가 돌아왔을 때 두 고모가 여운초한테 울면서 비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여천우는 두 가문에서 여운초한테 무슨 수를 썼기 때문에 여운초가 김씨 가문과 최씨 가문을 파산하게 한 것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용서를 구하러 온 고모는 화장기도 없는 민낯과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사람 같았고 형편이 어려워진 것이 분명했다.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지나간 일은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아. 결국 내가
여씨 가문 둘째 아가씨 여운별은 진작에 사람들한테 잊혔기에 다시 돌아온다 해도 재기하기 힘들 것이다. 여운초는 자신을 해하려 드는 이부동생을 손 좀 봐주려고 했다.여운별이 여운초에게 했던 것을 고작 두 배로 돌려주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누이가 여운별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전이진은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었다. 음식 냄새를 맡은 여천우가 입을 열었다.“누나, 형부 진짜 요리 잘하나 봐. 냄새만 맡아도 침이 흐르는걸?”여운초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맞아, 이진 씨 할머니는 재벌가 사모님들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했는데 네 형부 가문에 사촌 형제가 모두 9명이거든. 이진 씨가 그러는데 모두 요리를 잘 한대. 할머니가 그렇게 가르친 거지, 할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드시기 좋아해서 손자들한테 요리를 배우라고 강요하셨대. 겉보기에는 식욕 넘치는 할머니인 것 같지만 사실 손자들의 독립 능력을 키워주신 거야. 아무도 지금의 부가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깐 말이야. 독립 능력이 강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줄 알게 되면 앞으로 어디에 가서도 굶어 죽지 않을 거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 그중에서 요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여섯 번째 도련님 전창빈이었는데 큰오빠 어머니가 나은 친동생이래.”전창빈은 잘 나타나지 않아서 여운초도 전창빈과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운초와 전이진의 약혼식이 있은 날, 전창빈은 다른 지역의 요리 대회에 참가하느라 약혼식에 불참했다. 하지만 두 날 뒤에 있을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참가할 것이다. 여운초뿐만 아니라 형수 하예정도 전창빈과 대화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하예진이 이혼하기 전에 주씨 가문에서 우빈을 데리고 사라지자 관성에 있던 전씨 가문 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때 전창빈도 관성에 있었으니 함께 도왔을 것이다.그때만 해도 하예정은 우빈을 관심하느라 전창빈을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여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전씨 할머니는 관성에 지혜로운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여천우가 입을 열었다.“형부, 지금 저 밥통이라고 놀리는 거예요?”“내가 언제 놀렸다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 천우는 뭐든 안 가리고 잘 먹잖아, 맞지?”여천우는 말문이 막혔다. 비록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밥통이라고 암시하면서 놀리면 안 되었다. “형부, 시간 될 때 요리 좀 가르쳐 주세요.”“난 아무 때나 상관없으니까 네 시간에 맞춰서 가르쳐줄게. 넌 대학생이라 학교에 가야 하잖아.”전이진은 요리를 배우려면 시간을 잘 배정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여천우는 어쩔 수 없이 방학에 배워야 했다.“그럼 겨울 방학에 돌아오면 가르쳐 주세요.”“그래, 네가 배우고 싶은 건 다 가르쳐줄게. 내가 아는 건 너한테 다 전수해 줄 거야.”여천우가 형부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 전이진은 여천우한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요리란 자고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연습하고 연구하고 스스로 깨쳐야만 맛도 영양도 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씨 가문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가르침 하에 요리를 시작했고 어느덧 2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여천우는 겨울 방학이 되어야 돌아오기에 몇 년 동안 연습해도 전이진만큼 잘하지 못할 것이다.“형부, 고마워요! 누나는 정말 복 받았다니까요.”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고말고.”“형부, 앞으로 누나 잘 부탁할게요.”“내 여자를 보살피는 건 나의 의무야. 난 애처가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천우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흥,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요.”“네 누나가 시력을 회복하면 결혼한다고 그랬어. 지금 천천히 회복 중이고 정 선생님도 새해가 밝아올 때 거의 회복할 거라고 하셨으니 그때 결혼하면 돼. 혹은 연말이거나 내년 초에 해도 되거든.”어차피 두 사람은 약혼식을 치렀기에 여운초는 도망갈 수 없었다. 전이진은 할머니가 내준 임무를 착실히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예쁜 여자를 품에 안았기에 아주 만족스러웠다.그에 비해 전호영은 강성에서
전이진은 약혼녀 여운초를 아주 사랑했기에 여운초가 앞을 보지 못할 때 직접 밥을 먹여주곤 했었다. 여운초는 생선 요리를 좋아했고 전이진이 직접 가시를 발라서 먹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전이진은 여운초를 보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오늘도 본능적으로 여운초 접시에 반찬을 집어주었다. 그러자 여운초는 여천우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말했다.“네 형부가 한 것 좀 먹어봐. 오성급 호텔 셰프 못지않은 실력인걸.”여천우는 허겁지겁 먹었고 식사를 마친 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만지면서 소파에 기대앉았다. 전이진은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 주방에서 걸어 나왔고 여천우의 배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앞으로도 계속 먹을 수 있는 건데 왜 급하게 먹었어? 이 배 좀 봐, 귀여워.”“형부, 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주니까 먹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형부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너무 맛있었다고요!”여천우는 두 사람과 함께 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매일 집에서 형부가 해준 밥을 먹으면 살이 찔 것이 분명했다.“앉아 있다가 나가서 소화할 겸 산책이라도 하자.”여운초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다 큰 애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야지, 이게 뭐야.”“누나가 자꾸 반찬을 집어줘서 받아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멈추지 못한 거야.”“내 탓 하지 마, 난 그저 네 형부가 한 요리를 하나씩 집어준 것뿐인데 네가 한 입 먹고는 맛있다 하면서 다 먹었잖아.”여천우는 동그란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그래, 다 내 탓이야! 조금 있다가 나가서 걸어야겠어.”밥을 먹은 뒤에 산책하면 백 세까지 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한편, 강성.전이진의 말에 의하면 전이진과 여운초가 애틋한 사랑을 할 때, 전호영은 아직도 고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고현이 전호영의 요구대로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건 전호영의 마음을 받아준다는 뜻이었지만 아직 깊이 사랑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성 호텔의 한 프라이빗 룸에서 술을 가득 마시고 취한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혼잣말
프라이빗 룸에 단둘이 남자 고현은 자신의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 썼지만 전호영이 손을 놓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호영 씨, 언제까지 연기할 거예요?”전호영은 식탁에 엎드린 채 고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자, 한 잔 더 해요. 좋아요, 한 잔만 더!”고현은 굳어진 얼굴로 전호영을 노려보았다. 전호영이 진짜 취했든 연기를 한 것이든 상관없이 전호영을 맞은편에 있는 하루 호텔로 데려다주어야 했다. 고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뻗어있는 전호영을 일으켜 세웠고 하루 호텔로 향했다.10여 분 후, 고현은 전호영을 부축한 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고현을 잡고 있던 전호영의 손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고현은 침대에 누워 쿨쿨 자는 전호영을 보면서 취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고현은 전호영의 신발과 양말을 벗겨주었고 베개를 머리 아래에 놓은 뒤 이불을 덮어주고는 옆에서 지켜보았다. 고현은 저도 모르게 전호영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호영 씨 여자 친구 신분으로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 것뿐이잖아요.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마시면 어떡해요? 물처럼 술을 마시니까 취하죠. 저는 신부 들러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호영 씨 형수님의 들러리를 하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하예정이 고현한테 신부 들러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었다. 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여자 신분을 드러내도 될지 고민되었고 신부 들러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거절한 것이다.고현은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가한 적이 많았다. 강성 상업계 거장의 아들이 결혼할 때 고현한테 부탁했고 두 그룹은 오래전부터 합작을 이어왔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신랑 들러리만 해본 고현이 신부 들러리를 할 리 없었기에 하예정은 이해해 주었지만 전호영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날 고현이 여성스러운 옷차림을 하고서 전호영과 데이트를 했고 전호영은 고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호영이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은 건 고현이 신부 들러리를 하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에 든 전호영은 고현의 말을 듣지 못했
고현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전호영을 응원했고 하루빨리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다. 고현은 전호영을 싫어하던 데로부터 받아들이게 되었고 달라붙는 전호영을 떼어내지 못했다.“호영 씨는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여자 신분을 밝히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만약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다면 호영 씨는 저한테 이렇게까지 매달리지 않았겠죠. 남들이 뭐라 하든 우리 두 사람의 행복만 신경 쓰고 싶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그날은 완전한 여자가 되어 드레스를 입을게요. 그럼 세상 사람들한테 당신이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잖아요.”고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설마 호영 씨가 저한테 여장하라고 강요한 줄 아는 건 아니겠죠?”전호영은 꿈을 꾸는지 조용히 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호영이 주도권을 쥔 줄 알았다. 지난번에 전호영이 고현에게 여성용 선물을 주는 것을 본 사람의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고현은 허리를 숙여 전호영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고 단잠에 빠진 전호영의 입술에도 입을 맞추었다. “저는 이만 회사로 가 볼 테니 푹 쉬어요. 저녁에 만약 깨어나면 호영 씨랑 밥을 먹고 아니라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잡을 거예요.”고현은 침대맡에서 일어나 바지 주머니에 있던 비행기 티켓을 몇 장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고현이 미리 구매한 비행기 티켓이었다. 내일 아침 8시 20분 비행기로 점심에 관성에 도착해 전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다고 했지만 고현은 결혼식 전에 도착하면 되기에 급히 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전태윤과 하예정의 결혼식에 참가 하기 위해 전씨 가문 개인 전용 비행장에 정착할 비행기만 해도 수백 대일 것이고 소정남과 심효진보다 더 많은 상업계 거장이 오기 때문에 비행장에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고현에게도 개인 전용 비행기가 있었는데 급한 업무를 볼 때가 아니면 굳이 타지 않았다.고현은 전호영의 로열 스위트룸을 나와 하루
고현은 이윤정을 차갑게 쳐다보고는 뒤돌아갔다. 보디가드중 한 사람은 이윤정 앞을 막고 서서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고 다른 사람은 고현이 안전하게 호텔을 나설 수 있게 보호해 주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호텔 앞에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이미 익숙해진 호텔 카운터 직원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하루 호텔의 직원들은 전호영이 수많은 재벌가 아가씨를 제치고 고현의 마음을 얻은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고현 도련님, 가지 마세요! 잠시만 시간을 내어주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갈게요!”이윤정은 고씨 가문 보디가드를 뿌리치고 고현을 따라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보디가드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실패한 이윤정은 고현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질렀다.“고현 도련님, 저는 도련님이랑 같이 관성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고 싶을 뿐이에요!”이윤정은 고현이 관성에서 열리는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가할 때 함께할 파트너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현의 파트너로 동행해서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을 보려고 했었다. 비록 전태윤은 연적 전호영의 사촌 형이지만 전태윤의 결혼식에 명성이 자자한 거장이 몰려들기 때문에 미래의 입지를 위해서 반드시 참가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현은 이윤정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보디가드의 보호 속에서 고현은 인행도로를 건넜고 고성 호텔 앞에 세워진 마이바흐에 올라탔다. 고씨 가문 보디가드가 이윤정을 놓아주자 이윤정은 차도를 가로질러 길을 건넜고 깜짝 놀란 운전자들이 브레이크를 밟고는 클랙슨을 마구 눌러댔다.차에 치일 각오까지 한 이윤정은 곧바로 고성 호텔로 향했고 문 앞에 세워진 보디가드 차량과 고현의 차량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또 놓쳤어.”이윤정은 정교한 화장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고현이 나올 때까지 고성 호텔 앞에서 10여 분 동안 기다렸지만 고현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이윤정은 얼굴을 쓰다듬더니 자신의 몸매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나 이래 봬도 전호영보다 몸매 하나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