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계속 그렇게 피해 보세요. 제가 아무리 재촉해도 소용없겠지만 태윤 씨가 나서면 다를걸요. 태윤 씨는 저처럼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지는 않을걸요. 태윤 씨도 도련님을 못 움직이면 할머니께서 직접 비행기 타고 오실지도 몰라요. 그때 가면 더 곤란해질걸요.”전유하는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형수님, 제가 결혼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건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야 결혼하죠. 게다가 우리 가문의 며느리 기준도 꽤 높은 편이고요. 형수님, 우리 형한테 전화부터 하세요. 괜히 걱정하실 테니까. 저는 애들 데리고 잠깐 나가서 놀다 올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유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결혼 이야기에서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하예정은 한숨을 내쉬었다.전유하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냈다.전태윤에게 전화한 것이 아니라 먼저 전씨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전씨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다.요즘은 청력이 예전 같지 않아 휴대전화 벨 소리도 잘 듣지 못하셨다.곁에 있던 사람이 알려 주고 나서야 전화가 온 사실을 아셨고 돋보기를 쓰고 보청기까지 착용한 뒤에야 전화를 받으셨다.“할머니.”하예정이 애교 어린 목소리로 부르자 전화기 너머에서 전씨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다.“양성에는 잘 도착했어?”“벌써 도착했죠. 먼저 도련님을 만났는데 도련님이 간식도 사 주고 여기 있는 별장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이제 좀 한가해져서 이렇게 전화드리는 거예요. 할머니는 뭐 하고 계세요?”하예정은 전화기 너머로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물었다.“아무것도 안 해. 그냥 몇몇 어르신들 모셔서 이야기 좀 나누고 산책도 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지.”예전에는 전씨 할머니의 곁에서 함께 수다를 나누던 분들이 꽤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아직 계신 분들은 몇 분 되지 않았는데 건강 역시 예전 같지 않았다.연세만 놓고 보면 전씨 할머니가 더 많았지만 그분들은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한 탓에
하예정이 웃으며 물었다.“도련님이랑 남수지 씨는 꽤 오래 경쟁해 왔나 봐요?”전유하가 어깨를 으쓱했다.“양선 회사 들어오고 나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죠. 어쩌다 보니 계속 부딪치게 되었는데 벌써 5년쯤 된 것 같네요.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남수지 씨는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만만한 상대 아니죠. 그런 경쟁자가 있으니까 오히려 긴장도 되고 재미도 있어요. 같은 업계만 아니었으면 저도 꽤 좋게 봤을 거예요. 양성 업계에서도 입지가 탄탄하고 남씨 가문의 따님이라 재벌 가문의 어른들 사이에서는 며느릿감으로도 많이 거론되는 걸로 알아요. 다만 또래 사업가들은 협업은 좋아하면서도 연애 대상으로는 좀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워낙 기가 세서 같이 있으면 위축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전유하 생각에는 단순히 부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수지가 워낙 뛰어나니 스스로 밀린다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을 거라고 봤다.그래서 다들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막상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면 한발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다.그녀에게 소개 자리도 몇 번 들어갔다고 들었지만 결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하예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건 뛰어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죠. 남수지 씨 정도면 분명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날 거예요.”“형수님, 남수지 씨 마음에 드셨나 봐?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벌써 남수지 쪽 편을 드시는 느낌인데요. 제가 형수님 가족이고 남수지 씨는 저의 앙숙이거든요. 앙숙!”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다.전유하가 자기 얼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저 여자가 저를 때렸어요. 여자인 걸 생각해서 참은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 맞받아쳤을 거예요. 혼쭐을 내줬을 텐데...”하예정이 솔직하게 말했다.“그래도 저는 남수지 씨가 꽤 마음에 들어요. 도련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 같지는 않던데요.”“인성 자체는 괜찮아요. 그건 인정해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가장 까칠한 모습만 저한테 보였으니까 제 눈에는 괘씸한 사람으로 보일 수밖
전시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전유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삼촌 요리가 창빈 삼촌보다 더 맛있어요? 창빈 삼촌보다 맛있으면 집에서 먹고 아니면 우리 밖에 나가서 먹어요. 엄마가 그러셨어요. 지역마다 그곳만의 음식이 있으니까 여행 가면 꼭 먹어 보라고요. 저 여기 음식도 한번 먹어 보고 싶어요.”전유하가 웃으며 답했다.“삼촌도 요리를 조금 배우긴 했어. 그래도 창빈 촌만큼은 못 따라가. 그 삼촌은 어릴 때부터 요리 좋아해서 유명 요리사들한테 많이 배웠는데 내가 어떻게 그 수준을 따라가겠어.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도 나쁘지는 않아. 그래도 오늘은 밖에서 먹자. 오후에 갔던 그 호텔을 기억하지? 거기 요리가 맛있어. 양성 지역 특색도 잘 살려서 맛있더라고.”“야호!”전시우가 신이 나 손뼉을 쳤다.옆에 있던 전하연도 오빠가 손뼉 치는 걸 보고 덩달아 따라 하며 환하게 웃었다.하예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어디에서 먹든 괜찮아요. 다만 집에서 직접 하면 조금 피곤하긴 하죠.”하예정은 전유하의 별장 주방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냉장고 안에는 식재료가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 있는 것도 대부분 간단한 아침 식사용이었다. 아마 전유하는 집에서는 아침만 간단히 먹고 점심이나 저녁은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는 듯했다.업무상 술자리에서 손님을 만날 일이 많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하예정이 문득 물었다.“회사에 식당 있어요?”“있죠. 두 군데 있어요. 직원용 식당이랑 임원들 식당으로 나뉘어 있어요. 우리 회사 식당에서 채소랑 과일을 꽤 많이 쓰거든요. 형수님 회사에서 양성 쪽으로 농산물 납품도 하세요? 가능하다면 저희 식당 구매팀이 한번 거래를 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가급적이면 남 좋은 일 시키기보다는 가족끼리 서로 도움이 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었다.물론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고 있었다. 두 지역 거리가 워낙 멀어서 하예정의 회사가 양성까지 납품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소량 물량만 따로 보내 달라고 하기에는 운송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하지만 이미 대
남수현이 물었다.“맞아. 관성 출신이야. 여기서 몇천 킬로는 떨어져 있잖아. 꽤 멀어.”남수지는 관성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남씨 가문의 사업이 그쪽에 없으니 갈 일이 없었고 여행으로 가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남수현은 문득 전유하의 집안 배경을 좀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 표정을 읽은 남수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빠, 나랑 전유하 씨는 절대 안 돼. 굳이 사람 보내서 집안 형편을 알아볼 필요 없어. 우리는 몇 년째 경쟁자로 부딪치고 있잖아. 서로 한 치도 안 물러서는데 갑자기 잘될 리가 있겠어? 밖에서는 죽어라 경쟁하고 집에 와서도 계속 싸운다고 생각해 봐. 그런 정신없는 결혼 생활은 나는 절대 싫어.”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차라리 할아버지께 장씨 가문의 아들이 결혼했는지 한번 여쭤볼까 싶어. 몇 번 만난 적 있는데 할아버지가 괜찮게 보셨거든. 나랑도 잘 어울린다고 하셨어. 학교 선배라 대화도 통해서 아직 싱글이면 한 번 만나 볼까 해. 내 결혼 문제 때문에 괜히 가족들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그러고는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나중에 정말 혼자 늙으면 오빠들 체면도 안 서잖아.”전유하와 자신을 엮으려는 분위기를 차단하려는 마음에서 남수지는 예전에 소개받았던 장씨 가문의 도련님과 다시 한번 만나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서로에게 한 번쯤 기회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조금 더 깊이 알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할아버지가 소개해 준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장씨 가문의 그 남자가 그나마 가장 인상이 좋았다.남수현은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전유하조차 아직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남수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차라리 남수지가 장씨 가문의 도련님과 조금 가까워지면 그 모습을 본 전유하가 자기 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수지에게 다가오게 될 가능성도 컸다.남수현은 두 사람이 앙숙으로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에게
남수지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나랑 그 자식은 그런 사이가 될 리 없어. 상대가 경쟁자면 당연히 철저히 파악해야지. 그래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잖아.”상대를 잘 아는 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이지 잘해 보자는 뜻은 아니었다.“그냥 해 본 말이야. 너 보고 당장 잘해 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 사람도 꽤 괜찮다는 거지. 전유하 씨를 좋아하는 여자도 꽤 많아.”남수지가 입술을 삐죽였다.“그래서 뭐. 나는 관심 없어. 누가 얼마나 좋아하든 그건 전유하 씨 일이야. 나랑은 상관없어.”한참 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게다가 그 사람도 나 안 좋아하잖아.”남수현은 미소만 지을 뿐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이번 토요일 밤에 비즈니스 연회가 하나 있어. 네가 대신 얼굴 좀 비춰줘. 나는 가고 싶지 않아.”“토요일 밤? 오늘 수요일이네. 알았어.”남수지는 이런 자리 경험이 워낙 많았다. 갑자기 대신 참석하게 되더라도 늘 무난하게 역할을 잘 해냈다.“전유하 씨도 참석할 거야.”그 말에 남수지 표정이 바로 굳었다.“누가 주최하는 연회야? 내가 그 자식이 어떤 사이인지 모른대?”솔직히 말해 그녀는 연회 자리에서 전유하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예전에 몇 번 그런 자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만나기만 하면 신경전이 벌어졌다.그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가 많은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더 신경이 쓰였다.남녀 가릴 것 없이 호감을 보이니 괜히 속이 뒤틀렸다.남수현이 설명했다.“나 회장님 연회야. 나씨 그룹 사업 분야가 우리랑 겹치지 않잖아. 양성 업계에서도 오래된 원로고 영향력도 크니까 우리도 초대받고 양선 회사도 초대받은 거야.”나씨 가문은 그 두 회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니 어느 한쪽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남씨 가문도 전유하도 나태성 체면은 세워 줄 사람들이라 설령 연회에서 마주치더라도 대놓고 충돌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참,
양선 회사의 대표는 그릇이 크고 판단도 총명한 사람이었다.그는 과감하게 회사 지분 절반을 전유하에게 넘겼다. 그렇게 전유하를 회사에 묶어 두면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자신 역시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실제로 그는 이미 상당한 부를 쌓았다.한때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사람이 지금은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 재산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이제 양선 회사는 사실 전유하의 회사나 다름없기에 그는 자신의 회사를 두고 다른 대기업으로 옮길 이유가 없었다.오히려 회사를 더 키우고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는 것이 더 나았다.양선 회사의 진짜 대표는 이제 회사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은 대부분 전유하가 맡았고 진짜 대표는 가끔 중요한 회의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실질적인 결정은 전유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대신 그는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과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챙기면서 시간이 나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즐겼다.매년 꾸준히 들어오는 수익 덕분에 이런 생활이 가능했는데 그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사실 지분 절반을 넘기기 전에는 여러 대기업이 전유하를 스카우트하려고 높은 연봉을 제시하기도 했다.하지만 양선 회사의 대표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예상 밖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과감하게 회사 지분 절반을 넘겨 전유하를 공동 경영자로 만든 것이다.남 밑에서 일하는 것과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렇게 전유하와 양선 회사의 대표는 서로를 신뢰하며 역할을 나눴고 그 협력이 지금의 양선 회사를 만들었다.남수현은 속으로 생각했다.‘나라면 그렇게까지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회사가 다시 일어선 뒤에는 지분의 가치도 크게 올랐을 텐데 그것도 절반이나 넘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아마 자신이었다면 많아야 몇 퍼센트 지분 정도만 줬을 것이다.절반이나 넘기는 결단은 쉽게 내리지 못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