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집에 돌아가서 다시 늑대로 변할게.”그는 자기 손등을 살짝 꼬집는 하예정의 손등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그녀가 또 꼬집으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정색하며 다시는 꼬집지 못하게 그녀를 앞으로 끌고 갔다.전태윤이 하예정을 송년회에 데리고 나타난 것을 본 전씨 그룹 임원들 모두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하예정에게 공손하게 대했다.오히려 올해 소정남의 여자 파트너가 더 이상 소씨 가문의 여자가 아닌 심효진으로 바뀐 것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소정남을 사모하는 여직원들은 소정남이 심효진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 이 여자가 소정남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 찼다.소 이사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니! 전 대표님에 이어서!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소정남이 두려워서 겉으로는 아무도 감히 심효진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에게 조용히 말했다.“소 이사님이 당신 회사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군요.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효진이는 벌써 그들에게 몇 번이나 죽었는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소 이사는 지위도 높고, 젊고 멋지고, 돈도 많은 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니... 비록 입이 좀 가볍고 가십거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야.”“...”상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칭찬인지 그를 깎아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예정 씨, 집에 가고 싶어?”“먼저 가도 돼요?”이것은 회사의 송년회다. 전태윤의 가족으로 참석해서 한 바퀴 돌고 난 하예정은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비록 모두 그녀한테 공손하게 대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익숙하지도 않고, 전태윤과 동료들이 회사 일에 대해 말할 때, 또 말참견하지도 못해서 그저 먹고 마시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그녀를 보는 눈빛이 무슨 뜻인지 말할 수 없이 이상했다.아마 그녀가 잘 먹는 걸 보고 먹다 죽은 귀신이 붙은 거라고
“나 아마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하예정은 고개를 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며칠만 있으면 휴가인데, 당신 왜 출장을 가는 거예요?”“짧은 출장이야. A시에 갔다가 2, 3일이면 돌아올 수 있어.”전태윤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쉬워?”“언제 떠나요? 짐 싸서 공항까지 바래다드릴게요.”전태윤은 하예정이 이 소식을 듣고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정말 출장을 간다는 걸 확인한 하예정은 전태윤이 출장 가서 무엇을 하는지 묻지도 않고 신이 나서 짐을 싸서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전태윤은 심정이 복잡해 났다.이젠 잠자리를 같이 한지도 여러 번이어서 자기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 줄 알았다.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그에게 매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전태윤은 이런 답답함을 안은 채 A시로 날아가 중요한 파트너인 예진 그룹 주인 예준성의 결혼식에 참석했다.예준성과 모연정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모연정이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는 말을 듣고 전태윤은 속으로 무척 부러워했다.예준하의 소개로 만성의 남씨 가문 도련님을 알게 되었는데, 듣자 하니 남씨 도련님도 그와 마찬가지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변 보호를 할 뿐만 아니라 흠모하는 여자들이 달라붙는 것도 막는다고 한다.결혼식 다음 날 전태윤은 예진 리조트에 갔다.전태윤과 가장 익숙한 예준하가 그를 접대했다.집에 들어온 후부터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듯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전태윤을 보며 예준하는 먼저 입을 열었다.“전 대표님께서 모처럼 오셨는데, 제가 여기저기 구경시켜 드릴까요?”전태윤은 일찍이 예진 리조트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들의 전 씨 저택도 예진 리조트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집주인의 호의를 사양할 수는 없었다.“그럼, 수고 끼칠게요.”예준하가 웃었다.“전 대표님께서 우리 A시에 오셨는데 주인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죠
전태윤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멀지 않은 곳의 정자를 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갔다.정자 주변에는 인공설이 많이 깔려있었는데 마치 설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그는 정자 아래의 바위에 앉아서 주변의 인공설을 쭉 둘러보더니 왠지 싸늘한 기운이 들어 예준하에게 말했다.“인공설 풍경이 매우 아름답네요. 장식 잘하셨어요.”“구정이라 설 느낌을 내봤어요. 우리 리조트에 진짜 눈이 있고 스키장에도 있어요. 스키 타러 가고 싶으시면 제가 함께 가드리죠!”전태윤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는 북방의 진짜 스키를 즐겨 타는 편이에요.”예준하가 가볍게 웃었다.“저도 그래요. 나중에 시간 내서 북방에 가 눈 구경도 하고 스키도 타요. 북방의 설경을 제대로 만끽하자고요. 전 대표님 혹시 감정 문제 때문에 기분이 우울한 거예요?”예준하는 싱글이지만 워낙 섬세하다 보니 형의 결혼식에서 전태윤의 마음이 딴 데 팔려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전태윤이 카카오 스토리에 부부가 함께한 사진을 올려서 전씨 그룹 사람들이 그가 유부남인 걸 다 알지만 결혼 사실을 완전히 공개한 건 아니다.그가 완전히 공개하지 않으니 예준하도 일부러 모른 척해야만 한다.전태윤은 예준하를 쳐다보며 물었다.“많이 티 나요?”예준하가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을 잘 모르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대표님은 늘 차갑고 진지한 표정만 지으세요.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이런 표정을 짓죠. 저를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저한테 얘기하셔도 돼요. 단, 제가 무조건 해결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어쨌거나 전 아직 싱글이니까요.”그는 여자친구조차 만나본 적 없다.사춘기 때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졸업 후 서로 다른 대학에 붙었다. 애초엔 자주 연락했지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그 뒤로 수년간 그는 예진 그룹의 관성 계열사를 성실하게 관리하느라 연애 방면으론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마음에 확 와닿고 그를 설레게 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예준하는 연애에 대
십여 분 후.예준성이 정자에 나타났다.“안녕하세요, 대표님.”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폐 끼쳐드려서 미안해요.”전태윤은 오늘 밤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뻔뻔함도 무릅쓰고 예준성과 약속을 잡았다.예준성이 웃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전 대표님. 어서 앉으세요.”그는 전태윤을 자리에 앉힌 후 동생에게 분부해 집사더러 디저트와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저한테 어떤 점을 묻고 싶으셨죠? 편하게 말씀하세요.”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에 난처한 기운이 살짝 감돌았다.“예 대표님, 실은 제 개인적인 문제로 대표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저나 예 대표님이나 모두 초고속 결혼을 했잖아요.”예준성은 아직 그가 초고속 결혼한 사실을 모른다.예준하가 집에 돌아와 얘기하지 않았으니까.전태윤의 말을 들은 예준성은 아주 의외라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전태윤처럼 차갑고 냉랭한 남자도 초고속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란 듯싶었다.“초고속 결혼은 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부인분은 사랑하게 되셨나요?”예준성의 마음속에 이미 답안이 있었다.전태윤이 만약 마음이 안 움직였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의 신혼 둘째 날에 찾아올 일도 없다.“초고속 결혼한 지는 3개월 됐어요. 아내가 저희 할머니를 구해줘서 생명의 은인이 됐어요. 제 가족들은 아내에게 몹시 감격스러워했고 감사의 뜻도 표했어요. 저희 할머니가 아내를 너무 좋아하세요. 아마 우리 세대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우리 집 상황도 예 대표님네 집안과 거의 비슷해요. 양기가 차 넘친다고 할 수 있죠. 전에는 아내를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할머니를 구해주니 매우 고마웠어요. 다만 얼마 안 지나 사태의 흐름이 변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늘 제 앞에서 아내의 좋은 말만 하는 거예요. 우리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전태윤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할머니가 종일 잔소리하시던 장면을 되새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저희 아홉 형
“초고속 결혼한 뒤 두 분은 어떻게 지내셨어요?”예준성이 오지랖 넓게 물었다.그와 모연정도 초고속 결혼을 했지만 둘은 결혼 전에 이미 11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옛친구나 다름없다.게다가 예준성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찜해뒀는데 모연정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티 내지 않으려고 제 감정을 꾹 눌렀다. 그러다가 어느덧 모연정이 가족들에게 모질게 결혼을 재촉받아 집에도 감히 돌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그녀는 마지못해 예준성을 남자친구로 속이며 함께 집에 갔다.예준성은 이 기회를 포착하고 모연정을 속여 계약 결혼을 진짜로 만들어버렸다.그와 모연정은 오래된 지인의 초고속 결혼이다 보니 전태윤과 하예정처럼 아예 낯선 이의 결혼과는 별개였다.하여 예준성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결혼 전에 할머니께 분명히 말씀해뒀어요. 결혼하는 건 되지만 그 뒤로 제가 어떻게 아내를 대하든 그건 오롯이 제 일이니 할머니는 일절 참견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일단 제 정체를 숨기고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 아내의 성품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자가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맨 처음 서로를 알아갈 땐... 우리 둘 다 적응하지 못했어요.”초고속 결혼한 초기에 전태윤은 자꾸만 본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하예정도 남편이 있다는 게 적응되지 않았다.둘은 사소한 마찰도 생겼지만 소통하며 해결해나갔다.“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태윤 씨는 서서히 아내분의 존재에 익숙해져갔고 호감도 생기셨죠?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니까요.”사람들은 늘 정들어버리면 서로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전태윤이 머리를 끄덕였다.“우린 지금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단계에요. 인정해요, 저는 이미 아내를 사랑하게 됐어요.”애초에 절대 아내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다던 그는 본인이 했던 말을 전부 번복하고 있다.“제가 고민인 건 이젠 저의 진짜 신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 전부 털어놓으면 아내가 홧김
“예 대표님은 유경험자다 보니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애초에 대표님은 어떻게 부인분께 신분을 밝혔어요? 부인분은 대표님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후 무슨 반응이었어요? 대표님은 또 어떻게 처사하셨기에 부인분이 온전히 대표님을 받아들이고 외부의 간섭을 전혀 안 받으신 거죠?”예준성은 전태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드디어 알아챘다.그는 아내에게 진짜 신분을 밝혔다가 아내가 여론의 막중한 타격을 입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의 문제까지, 이는 실로 까다로운 일이다.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성소현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매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 등지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전태윤과 하예정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예준성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저는 태윤 씨랑 상황이 조금 달라요. 물론 애초에 제가 초고속 결혼을 계획했지만 저는 이미 아내를 11년 동안 짝사랑해서 기회를 포착하자마자 아내를 속이고 혼인신고를 마쳤죠. 원칙적으로 저희도 초고속 결혼인 건 맞지만 서로 11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옛 지인의 결혼이라고 할 수 있죠. 연정이는 그때 저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저는 그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알았고 의도가 너무 확고했어요. 태윤 씨네 부부야말로 진정한 낯선 이의 초고속 결혼이죠. 아무런 감정 기초가 없고 결혼 초기에 태윤 씨는 아내분께 경계심을 가득 세웠겠네요. 뭐 설마 계약서까지 쓴 건 아니죠?”전태윤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역시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답게 계약서를 쓴 일까지 알아채다니...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아내를 오해했고 긴 시간 경계하며 사느라 계약서를 쓴 것도 사실이에요. 내용은 전부 아내에 대한 구속이었고요... 아내에게 유리한 조건은 단 하나, 이 결혼 관계가 해지되면 지금 사는 집과 차를 청춘 배상금으로 아내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어요.”예준성이 물었다.“그 계약서 아직도 갖고 계세요? 저랑 연정이도 처음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제가 폐기 처리했어요. 얼마나 힘겹게 얻은 아내인데 제가 뭣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는 게 아내분이 딴 사람에게 듣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예준성은 감회가 깊었다.애초에 그가 먼저 모연정에게 제 신분을 고백했다면 모연정도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예준성이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기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선우가 그녀 앞에서 폭로해버렸으니 순간 그녀는 예준성이 자신을 믿지 않고 경계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장모님도 두 사람이 현실적으로 차이가 너무 크다면서 모연정이 예씨 일가에 시집가서 괴로움을 받을까 봐 이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태윤 씨가 먼저 말하는 건 아내분을 신뢰한다는 걸 의미해요.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태윤 씨 아내분은 더 화날 거예요. 온 세상이 다 아는 걸 본인만 모르니 태윤 씨에게 감쪽같이 속았다고 여기실 거예요. 태윤 씨가 본인을 전혀 신뢰하지도 않고 경계만 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내분이 투정 부린다고 얼마나 가겠어요?”전태윤은 하예정이 한성격한다는 걸 떠올리며 살짝 겁에 질린 듯 대답했다.“제가 떠보듯이 물어봤는데 어떤 상황에서 날 떠나겠냐고 하니 바람피우고,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수없이 거짓말을 해대면 그땐 이혼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딱 한 번 거짓말했는데 나중엔 그 거짓말을 덮으려고 수없이 많은 거짓말로 둘러댔어요. 저는 예정이를 수없이 속였어요. 준성 씨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출장 간다고 속였어요...”예준성이 말했다.“아무튼 저는 태윤 씨가 먼저 이 모든 걸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다고 봐요. 태윤 씨 아내분이 무슨 반응을 할지는 저도 가늠할 수 없지만 말이에요. 우리가 초고속 결혼한 건 맞지만 사실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태윤 씨, 모 아니면 도라고 눈 딱 감고 부딪히세요.”전태윤이 침묵했다.“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기회를 봐가며 좋은 날을 골라서 남다른 방법으로 고백해보아요.”전태윤은 고민하다가 예준성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조언 너무 고마워요, 준성 씨. 곰곰이 생각해볼게요.”예준성도 가볍게 웃었다.“사람 마음은
셋째 예준영과 다섯째 예준하는 현재 어르신들이 가장 애태우는 대상이다.한 명은 셋째이고 다른 한 명은 다섯째이지만 배다른 형제라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난다.보통 사람들과 비하면 예준하도 노총각 행렬에 들어설 지경이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들은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니까.전태윤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도 준하 씨를 위해 소개팅을 해주고 싶은데 알고 있는 젊은 여성이 워낙 적어서 도움이 못 되네요. 아내한테 한번 말해볼게요. 아니면 할머니께 말씀드려도 돼요. 할머니는 아직도 제 동생들을 위해 선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준하 씨에게 어울리는 여자분 한 명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볼게요!”예준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전씨 일가의 어르신을 뵌 적이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젊은 세대와 거리낌 없이 지내고 그의 할머니보다 생각이 많이 깨어있다고 하신다.전태윤이 하예정과 초고속 결혼한 것도 전부 어르신의 공로이다.“그럼 할머님께 꼭 좀 부탁드릴게요.”예준성도 전태윤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전태윤과 남정윤은 같은 부류의 남자이다. 그들은 젊은 여자와 가까이하는 걸 꺼리다 보니 본인의 인생 대사를 다른 사람이 신경 써줘야 한다.전태윤의 할머니가 도와주시면 성공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연장자이시고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시니 예준하에게 좋은 짝을 찾아줄 수 있을 듯싶었다.“저희 할머니가 흔쾌히 찾아주실 겁니다.”어르신은 선 자리를 주선하는 일을 가장 좋아하신다.예준하가 말했다.“형, 내 의견 따윈 묻지도 않아?”“나중에 소개팅 약속 잡거든 그때 다시 알려줄게.”예준하는 말문이 턱 막혔다.예준성이 결혼하기 전에는 온 가족이 결혼을 다그칠 때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막아주었다. 어차피 큰형도 미혼이니 아래에 있는 동생들은 마음껏 지내도 된다.다만 큰형이 결혼하고 나니 동생들을 막아주지 않을뿐더러 어른들과 함께 그들의 결혼을 다그치고 있었다.‘할 수 있으면 준영 형을 다그치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