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하루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그래서 개학하기 전에 학생들이 새 학기에 써야 할 학습 자료를 다 챙겨 받아야 할 것이다.각 학년 학생이 어떤 학습 자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서점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들을 배달받을 수 있다.심효진은 걸레를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어젯밤에 이미 물어봤어, 리스트도 다 작성해 놨고 말이야. 내 가방 안에 있으니, 꺼내서 한번 훑어봐봐. 그리고 다시 서점에 전화하여 요 며칠 빨리 보내달라고 해.”보통 개학 하루 이틀 전이나 개학 당일 학생들은 선생님이 지정했거나 사라고 조언한 학습자료를 구입하는데, 이때는 서점이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하예정은 이미 언니와 숙희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개학 당일 가게에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하예진의 토스트 가게는 이미 인테리어 회사에 연락하여 가격을 협상했고 정월 대보름 이후에 착공할 예정이었다.학생이 개학하면 정월 대보름 전에 하예진은 동생을 며칠 도와줄 수 있다.“그래 어디 봐봐.”하예정은 카운터 앞으로 돌아와 앉았고, 심효진의 가방에서 그녀가 작성한 리스트를 찾아 꺼낸 후, 컴퓨터를 켜고 이 리스트에 적힌 책 이름들을 컴퓨터에 입력하려고 했다.심효진도 가까이 다가왔다.그녀는 의자를 하나 끌고 와서 하예정의 옆에 앉아 그녀가 컴퓨터를 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컴퓨터가 켜지니 하예정은 습관적으로 뮤직부터 틀었고, 즐겨 듣는 「보고싶다」를 선곡했다.“또 이 노래야, 너 이 노래 엄청나게 좋아하네.”“응, 한번은 태윤 씨의 차를 탔는데, 그때 차에 틀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거든, 정말 듣기 좋았어.”“참, 네 남편은 오늘 아무 서프라이즈도 없었어? ”심효진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응? 갑자기 무슨 서프라이즈야? 오늘이 무슨 날인데?”“달력을 보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있을 거야.”“그냥 14일이잖아, 뭐가 특별해?”하예정은 말하다가 갑자기 눈치채고 웃었다.“아, 밸런타인데이? 난 명절에 민감하지 않아. 우리 부부가 잘 지내면 하루하루가 밸런타인데이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지금 심효진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인데, 그녀는 그 사모님이 대단한 테크닉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전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했다.최근에 그녀는 전 대표의 불타는 결혼생활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그녀는 소정남더러 그 사모님에게 자신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소정남은 전 대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자 전 대표가 결혼한 사실을 제일 처음 알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그러니 분명 전 씨 사모님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소정남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는 전 대표가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한, 먼저 사모님의 정체를 폭로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의 거절은 심효진을 며칠 동안이나 우울하게 했다.소정남은 지금 그녀에게 구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을 보면, 전 대표가 자기 부인을 얼마나 철저히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모처럼 그에 관한 뉴스가 떴으니, 어떻게든 들어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봐야 했다.“뭐가 볼 게 있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일 거야.”하예정은 실소를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왜 그렇게 열심히 전씨 가문의 사모님이 누구인지 알려 하는 거야? 그 사모님이 누구든지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 정체를 안다 해도 만나지 못할 사람인데...”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모님한테 남편을 다스리는 테크닉을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그리고 또 자신과 전태윤의 달콤한 감정 관계를 떠올리며 굳이 전 씨 사모님에게 테크닉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전태윤은 그녀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그 신비한 사모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저번에 성소현이 나랑 전화 통화할 때도, 그 사모님을 아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었어.”심효진은 하예정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하예정은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녀는 흥미가 가득했다.“그래? 나랑은 이런 얘기한 적도 없었어.”성소현은 설을 쇠러 여행을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심효진은 뉴스를 클릭하며
어쩐지 이상하다 했지, 이모와 유전자확인 검사를 하자마자 전태윤이 출장을 간 것은 그의 고귀한 신분이 들통날까 봐 이모와의 만남을 피한 것이었다!결혼 후 4개월 동안의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리며 그녀의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졌다.심효진은 마우스를 잡은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예정아, 너 괜찮아?”하예정의 격렬한 반응에 놀란 그녀는 얼른 가서 하예정을 흔들었다.하예정은 꼭두각시처럼 가만히 앉아, 심효진이 자신을 어떻게 흔들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며, 전태윤의 확대된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았다.맞아, 그 사람이야!매일 잠자리를 같이하는 사람인데, 잘못 볼 리가 없다.점점 신뢰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남편이 자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고 있는 큰 사기꾼이라니!“예정아, 나 놀라지 마, 말 좀 해봐, 너 이러니 너무 무서워! 나... 예진 언니한테 전화할 거야.”심효진은 절친의 반응 없는 모습을 보며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하예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당황한 심효진은 하예진의 연락처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주소록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참 후에야 그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종잇장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하예정의 반응은 너무 무서웠다.해예진은 자기의 가게에 있었다.“효진아, 무슨 일이야? 예정이한테 점심때 밥 먹으러 안 간다고 전해줘.”그녀는 여동생이 점심을 같이하자는 줄 알았다.“예진 언니, 지금 어디예요? 빨리 와줘요, 예정이가 이상해요!”심효진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재빨리 아들을 안고 가게를 뛰쳐나가 지나가는 차를 불러세웠다.운전하던 노동명은 차를 급히 세웠다.그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하예진은 이미 주우빈을 안고 차에 올라탔다.“기사님, 어서 빨리 관성 중학교로 가요!”노동명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가게 문도 안 닫고...”“노 대표님?”해예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또 당신이에요?”어떻게 매번 노동
노동명은 차에서 내려 가게에 들어가 그녀 대신 키를 가지고 나온 후 가게 문을 잠갔다.차에 돌아온 후 노동명은 차를 운전하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안절부절못하고 얼굴빛도 창백해있고...”“효진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예정이한테 일이 생겼대요.”하예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예정인 오늘 가게에 청소하러 돌아간 거였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혹시 책장이 넘어져 깔리기라도 한 건가? 책장 안에는 책들이 많아 꽤 무거울 텐데...’하예진은 감히 생각할 엄두가 안 났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봐, 혹시라도 어디 잘못된 건 아닐까 너무 무서웠다.그녀에게는 부모도 없고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여동생밖에 없는데 여동생마저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하예진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 모습을 보고 노동명은 걱정되는 듯 물었다.“예진 씨,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하예정은 절친의 와이프라 노동명도 못내 걱정되었다.“몰라요. 효진이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저 예정이에게 일이 생겼다고만 했어요. 효진이가 저렇게 당황한 걸 보면 큰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빨리 다시 효진 씨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요, 울지만 말고. 무슨 일인지 아직 파악도 못 했잖아요. 만약 예진 씨가 상상했던 것처럼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괜히 운 거잖아요!”“참지 못하겠어요... 전에도 선생님이 갑자기 교실에서 불러내며 마을에서 전화가 왔는데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급히 집에 도착하니 우리 부모님은 이미 모두 돌아가셨어요, 또 그때처럼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요...”하예진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매우 두려워했다. 혹시라도 나쁜 소식을 들을까봐...“헛생각 말고 먼저 한번 물어나 봐요.”노동명도 하예진 자매가 11년 전에 부모님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예정은 당시 겨우 10살인지라 아마도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을 거지만 하예진은 그때 이미 15살이었고 곧 고
심효진은 바로 대답했다.“바로 그 사람이에요!”“전 대표가 기자의 인터뷰를 하는 걸 봤는데 결혼 생활에 대한 인터뷰였어요. 예정이도 그 인터뷰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멍한 표정으로 그저 서 있기만 하는 거예요. 내가 예정이를 흔들어도 보고, 때려도 보고, 부르기도 했는데 여전히 반응 없는 모습이라 너무 놀라서 예진 언니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어요.”하예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제부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니...‘설마?’그녀는 전씨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옷차림도 평범했고, 차도 평범한 차였고, 그녀가 생각했던 재벌 가문의 호화로운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전씨 가문의 사람들은 수양이 매우 좋았다.“바로 갈게. 예정이에게 물 한 잔 따라줘 봐. 만약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찬물을 뿌려봐 봐. 그럼, 정신 차릴 수 있을거야.”“... 그러다가 예정이가 감기에 걸리면 어찌하려고요?”그 순간, 하예진은 이상할 정도로 냉정해졌다.“그렇게 해야 예정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야. 아니면 계속 멍하니 앉아있기만 할거잖아.”그녀는 지금 하예정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소리 내 우는 쪽이 나을 것이다.‘제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예정이를 속였다니!’심효진은 여전히 멍해 있는 친구를 보며 입을 열었다.“예진 언니, 그냥 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그래, 지금 가는 길이야.”“예진 언니, 먼저 다른 방법을 써서 예정이가 정신을 차리도록 해볼게요.”심효진은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하예정을 잡고 흔들었다.“예정아, 예정아, 정신 좀 차려봐, 날 놀라게 하지 마!”하예정은 여전히 인형처럼 앉아있었다. 그녀의 몸은 심효진이 흔드는 그 힘에 따라 움직였다. 만약 흔들지 않으면 그녀는 또다시 나무토막처럼 그곳에 앉아 멍하니 컴퓨터 화면의 전태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심효진은 그녀의 얼굴을 꼬집어 보기도 하고 귀를 잡아당겨 보기도 했지
하예정과 심효진은 모두 서점을 떠났고, 하예진은 노동명의 차를 타고 서둘러 관성 중학교로 갔다.아직 개학도 하지 않은 관성 중학교는 조용했다. 학교 앞에 있는 가게들은 모두 문이 닫혀 있었고, 하예정의 서점도 문이 닫혀 있었다.“왜 문이 닫혀있지?”하예진이 차에서 내려 가게 문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그저 전씨 그룹에 가서 전태윤에게 그가 과연 갑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휴대전화 소리도 듣지 못한 듯 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하예진은 할 수 없이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스쿠터를 타고 하예정을 따라가던 심효진은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며칠 전에 충전한 스쿠터 배터리가 거의 다 바닥난 것이다.전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은 심효진은 스쿠터를 길가에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예진 언니, 예정이가 전씨 그룹에 전태윤을 찾으러 갔어요. 지금 예정의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요. 스쿠터를 타고 예정이의 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제 스쿠터도 배터리가 거의 다 바닥났고요.”심효진은 자신이 스쿠터를 타고 출근한 것을 후회했다.‘차를 몰고 왔을 걸 그랬어.’“알았어, 지금 바로 전씨 그룹으로 갈게.”동생이 전씨 그룹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하예진은 바로 몸을 돌려 차에 돌아갔지만, 노동명이 전화하는 것을 보고는 재촉하려던 것을 잠시 참아야만 했다.노동명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그는 하예진을 차에 태우고 왔기에 자연히 하예진과 심효진의 통화를 듣게 되었고, 전태윤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심효진의 말을 들어보니 전태윤이 먼저 신분을 노출한 것이었다.노동명이 보기에 전태윤은 하예정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미리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고백해야 했지만, 그는 그녀를 잃을까 봐 줄곧 고백하지 못했다.노동명은 전태윤이 하예정과의 감정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
그러나 휴대전화를 꺼내던 그는 단념했다.이건 자신이 결정할 일이고, 자신이 선택한 길이며, 어떻게 되든 끝까지 가야 할 것이었다.하예정은 화를 낼게 분명하다.그가 해야 할 일은 사과하고 설명하는 것뿐이고, 모두 그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할머니의 도움을 기대할 일이 아니었다.사실 하예정을 속인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가족들 모두 하예정을 속이고 있었다...아마 할머니가 도와주신대도 화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예 할머니마저 원망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신분을 숨긴 사람은 할머니였기 때문이다.하예정이 전태윤에 관한 인터뷰를 본 이상,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봤을 것이다.보통 사람들은 기껏해야 전씨 도련님과 결혼하고 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예정을 부러워하고 질투할 뿐이다.재미있는 것은 하씨 집안과 주씨 집안의 반응이었다.가장 먼저 인터뷰를 본 건 하지문이었다. 그는 전태윤의 얼굴을 보자마자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렸다.“설마? 설마? 그 천한 년이 그렇게 운이 좋다고?”하지문은 이미 그의 두 사촌 여동생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심지어 하예진 자매에 대해 언급할 때는 이름조차 부르지 않고 ‘천한 년’이라고 불렀다.만약 전태윤이 그가 자기 사랑하는 와이프를 천한 년이라 부르는 것을 듣는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고 다리를 부러뜨릴 것이다. 마음속 깊이 총애하고 사랑하는 와이프를 하지문이 감히 욕하다니, 그야말로 죽으려고 작정하는 것이었다.하씨 집안에 되돌아갈 복수는 이 정도뿐만이 아닐것이다. 그의 장인이 남긴 재산도 장차 와이프를 도와 돌려받을 것이다.하씨 집안의 그 쓰레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재산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지문아, 뭔 소리를 하는거니?”하윤재는 아들이 놀라 혼잣말하는 것을 보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그는 다가와 허리를 굽혀 아들의 휴대전화를 주워 들며 안타까워했다.“이 휴대전화는 2백만 원짜리인데 깨진 화면을 고칠 수 있겠어? 아니면 새것으로 바꿀 거야? 새것으로 바꾸려면 또 돈이 드는데... 너 지금 일도 없는데,
두 노인은 또 설을 쇨 돈을 달라고 들볶아 댔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두 노인은 이미 자신들의 저축을 다 써버렸고, 저축이 없으니 불안해져 그들에게서 돈을 받아 노후 자금으로 저축하려 했다.하지문이 입을 열었다.“아빠, 하예정의 남편이 바로 갑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인 전 대표야! 갑부, 알지? 우리 관성의 갑부가 억만장자인 거.”이 말을 듣고 하윤재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하예정의 남편이 갑부인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고?억만장자?그럼, 돈이 엄청 많을 게 아니야?’“지문아, 그게 사실이야?”“정말이라니까, TV에 나와 인터뷰까지 했어. 우리는 모두 그를 본 적이 있잖아. 기자가 그를 전 대표라고 불렀으니 그 사람인 게 틀림없어.”하윤재는 즉시 허벅지를 ‘탁' 치며 말했다.“당장 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야겠다. 그 두 노인의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가 생각났어. 하예정의 남편이 그렇게 돈이 많다니, 재산이 얼마나 된댔지? 억만이랬나? 하예정더러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돈을 보내라고 해봐,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오는 돈만 해도 노후 자금으로는 넉넉할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돈을 될수록 많이 달라고 해봐, 이제 돌아가시면 그 돈들은 다 우리가 나눠 가지게 되는 거야. 우리 자신에게 돈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잖아.”하윤재의 머릿속에는 조카가 억만장자의 집안과 결혼했으니, 자신들도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착각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예정 자매에게 원수와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하윤재는 서둘러 자기 부모님을 찾으러 갔다.전태윤의 인터뷰를 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하예정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전태윤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그녀가 차를 너무 빨리 몬 탓에 길가에서 다른 사람의 차와 접촉 사고까지 났다. 다행히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 하예정이 차에서 내려 지갑 안에 있는 몇십만 원의 현금을 모두 쥐여 주었더니, 상대방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