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가 계속 하예정에게 집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효진의 엄마도 찬성하지 않았다.아무리 사랑해도 상대가 이미 결혼을 했는데 계속 집착하는 건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다!“아 참, 고모가 너한테도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줬으니 저녁 먹을 때 한번 만나. 이번엔 재벌 2세가 아니래. 네가 재벌가를 싫어하는 걸 알고 고모도 포기했나 봐.”사실 심효진이 도씨 사모님 생일 연회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이름을 날렸을 때부터 심미란은 효진이가 재벌가와 인연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바로 마음을 접었다.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고모는 또다시 그녀의 결혼을 신경 쓰고 있었다.조카가 26살인데 남자친구도 없으니 고모가 대신 마음이 초조했다.심효진의 엄마도 조급한 건 마찬가지이니 시누와 올케는 만날 때마다 심효진의 선 자리를 의논했다.“네 고모가 말하길 오늘 밤에 네가 만날 사람은 고모네 회사 직원이래. 회사에서 일한 지 몇 년 됐고 네 고모부도 그 사람 성품을 잘 알고 있대. 전에 8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3개월 전에 헤어졌대. 네 고모부도 그제야 너희 두 사람 선 자리를 마련해준 거야.”심효진이 물었다.“8년이나 만났는데 왜 헤어졌대요?”“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대. 딴 남자랑 결혼하려고 그랬나 봐. 아무튼 헤어진 건 확실해.”심효진은 그 여자가 8년이나 기다렸지만 결혼할 희망이 안 보이자 결국 마음 접고 딴 사람에게 시집간 거로 여겼다.“엄마, 나 소개팅하기 싫어요.”심효진은 고모가 소개한 남자를 거절했다.8년을 기다리고도 마음이 재가 되어 딴 남자에게 시집갔다고 하니 이 남자가 얼마나 매정할지 만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그녀는 벌써 상대에게 호감이 떨어졌다.“그 사람 업무가 너무 바빠서 여자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대. 그래서 여자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거야.”심효진의 엄마가 말했다.“고모부가 소개한 사람인데 나쁠 리 있겠어? 남자가 별로면 고모부도 네게 소개하지 않았을 거야. 소개팅도 하기 싫으면 대체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 너 인제 26살이야!
한편 소정남도 제법 훌륭한 녀석이다.그녀는 매번 소정남이 심서준에게 밥을 사줄 때면 속으로 한탄했다. 만약 심효진에게 밥을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번졌다.소정남은 진지하게 대답했다.“아주머니, 저 위장한 거 아니고요 제가 바로 효진 씨 남자친구예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효진 씨에게 대시하는 중이라 제 여자친구가 돼주겠다는 확답은 얻지 못했어요.”심효진의 엄마는 문득 휴대폰을 내려놓고 지금 딸과 통화하는 게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귀까지 파고 나서야 휴대폰을 다시 귓가에 갖다 댔다.“너 진짜 소정남이야?”“네, 저예요, 아주머니.”“지금 효진이한테 대시하는 중이라고? 서준이가 아니라?”“아주머니... 저 취향 확고해요. 여자만 좋아한다고요.”그는 속으로 구시렁댔다.‘미래의 장모님이 될 분도 효진 씨랑 같은 생각이었어?! 어떻게 내가 서준 씨한테 호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지?’웃기는 것은 심효진의 엄마가 이렇게 그를 의심하면서도 계속 제 아들과 만나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이토록 오픈 마인드란 말인가?“난 또 네가 서준이한테 너무 잘해줘서 우리 서준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 안 그래도 항상 서준의 아빠랑 어떡하냐고, 우리 이러다 남자를 며느리로 삼는 건 아니냐고 걱정했었어. 서준 아빠는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낯빛이 확 어두워지셨어.”소정남은 말을 잇지 못했다.“아주머니.”그는 이마를 짚으며 해명에 나섰다.“저는 쭉 효진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서준 씨한테 그토록 잘해준 것도 다 서준 씨가 효진 씨 친동생이라 미래의 처남에게 잘 보여 점수 따려고 그런 거예요. 제가 서준 씨한테 밥을 사줄 때마다 효진 씨가 항상 따라 나왔잖아요!”심효진의 엄마는 호탕하게 웃었다.“그랬구나, 그런 거였네. 서준이가 아니라니 다행이야. 나도 더는 남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겠어. 여보, 이리 와봐요. 좋은 소식 알려줄게요. 당신 아들 남자랑 결혼할 일 없으니까 인제 걱정 안 해도 돼
심효진은 이런 좋은 날들이 끝나갈 것을 생각하며 못내 아쉬웠다.통화를 끝낸 소정남은 휴대폰을 심효진에게 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오늘 밤, 같이 당신 고모 댁에 가서 식사하는데 내가 뭘 준비해야 하죠? 지금 내 컨디션은 어떤가요?”심효진은 디저트를 먹으며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 고모네 눈에는 가장 훌륭한 사람일 거예요.”전 씨 그룹의 이사이자 재벌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신분은 심효진의 고모가 가장 원하는 조카사위 감이다.절친 하예정이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과 초고속 결혼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효진의 어머니와 고모는 그녀 앞에서 하예정의 팔자가 좋아 관성에서 가장 우수한 남성을 남편으로 맞았다고 부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녀들은 하예정을 칭찬하고 부러워할 때마다 심효진을 쳐다보았는데, 그게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눈빛인지, 심효진은 다 알고 있다.“글쎄 내가 자기 자랑을 하는 게 아니고, 온 관성을 보아도 나보다 훌륭한 남자가 몇 명 없을 거예요.”“소 이사님께서 저를 좋아하시다니, 제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 봐요.”“그건 우리 둘이 전생에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 우리 이번 생에도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해요,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게요.”‘누가 당신과 다음 생에도 만나고 싶대요? 얼굴엔 항상 웃고 있지만 실로는 무서운 사람이면서...’심효진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다음 생이고 뭐고 이번 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우린 아직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았는데, 정남 씨는 벌써부터 엄마한테 그런 말을...”“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와 고모가 계속 소개팅을 주선해 주실까 봐 그랬어요. 만약 당신이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난 어떡하죠? 그리고 정말 말하길 잘했죠, 그렇지 않으면 효진 씨 어머니는 내가 줄곧 당신의 동생과 사귀고 싶어한다고 오해하셨을거에요.”“콜록콜록!”과자에 사레들
“당신이 원한다면야 언제든지요! 그 집들과 가게들은 모두 우리 엄마 아빠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에요. 엄마는 직접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나한테 심부름비를 백만 원 정도 주시며 집세 받는 거 도와달라고 한 거뿐이에요.”부모님의 돈은 언제나 부모님의 것이고 스스로 돈을 벌 능력이 있어야 한다.“당신 고모가 식사를 같이하자고 요청한 것은 김진우가 돌아와서래요.”“진우는 그저 방학에 고모를 보러온 것뿐이에요. 다시는 예정이를 집착하지 않을 거니 당신과 전 대표님도 더는 김 씨 그룹에 손대지 말아요.”전태윤이 전 씨 그룹의 대표라는 사실을 안 후로부터 심효진은 모든 일이 이해되었다. 소정남도 무조건 김 씨 그룹에 손대는 일에 참여했을 것이다.소정남은 떳떳하게 말했다.“태윤이도 우릴 봐서 김 씨 그룹에 협력 중지 이유를 알려준 거예요. 아니면 어떻게 도산할지도 모를걸요.”‘우릴 봐서? 당신이 김 씨 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잠깐! 그러니까 나때문에...’전태윤도 소문처럼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다.“진우가 예정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예정이가 전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마음을 접었어요.”심효진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이 지난 후 고모는 김진우를 평범한 사원의 신분으로 H 시의 계열사에 보내기로 했는데, 카드도 용돈도 모두 다 끊었다고 한다.엄마의 강요하에 하예정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전화도 허용되지 않고, 서점에 찾아갈 수도 없어 그리움에 미칠 것만 같았던 김진우는 이런 자신을 H 시로 보내려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그 당시 김진우는 분노에 차 엄마한테 물었다.“엄마, 나는 이미 엄마가 말한 대로 다 했는데 뭘 더 바라시는 거예요? 날 꼭 그곳으로 보내야겠어요? 엄마 아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그 말에 심미란은 벌떡 일어나 아들의 뺨을 치려고 손을 치켜들었다가 결국은 그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들의 마른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파 났다.더 사랑하는 쪽이 상처받기 일쑤라고...비록 하예정 때문에
김진우는 그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엄마, 거짓말이죠? 나를 단념시키려고 일부러 나를 속인 거 맞죠? 예정 누나의 남편이 어떻게 전씨 가문의 도련님일 수 있어요? 저는...”그는 문득 하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한 후 그녀의 남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엄마는 너를 속일 필요 없어, 엄마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전 대표가 직접 우리에게 말한 거야. 네가 전 대표의 와이프한테 마음을 두고 있어, 전 대표가 우리 김 씨 그룹에 손을 댄 거야. 진우야, 너 계속 예정이한테 집착하면 우리 김씨 가문 전체가 너 때문에 궁지에 몰리게 될 거야.”심미란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가문에 이익을 못 가져올지언정 발목을 붙잡지는 마.”“전태윤... 전씨 가문 도련님의 이름이 전태윤이에요?”김진우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전 대표가 하예정 누나의 남편이라니...“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전 대표의 이름을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한 거야. 하지만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것은 그가 예정이의 남편이라는 거다. 그의 신분과 지위, 권세를 떠나서, 그가 예정이의 남편인 이상, 너는 더 이상 예정이에게 매달려서는 안 되는거야.”“...”“예정인 남편이 있는 여자야, 네 집착은 결국 예정이한테 해만 줄 거야! 그래서 네 아버지랑 얘기해 봤어, 우린 널 H 시 계열사에 보내 경험 좀 쌓게 하기로 결정했어. 네가 경험을 쌓아서 우리 김씨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린 거야.”심미란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일깨워 줬다.“진우야, 네 또래에 너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야. 네가 노력하지 않으면 네 것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될지도 몰라. 엄마도 알아, 네가 지금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는걸. 하지만 아들아, 긴 아픔은 짧은 아픔보다 못하다고, 너는 아직 젊고, 나이도 23살밖에 안 되었어. 앞으로 긴긴 세월 동안 너는 분명 예정이보다 더 좋은 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
전태윤은 하마터면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급히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정이 지금 어느 병원이야?”그는 자신의 한마디가 그녀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입힐 줄은 몰랐다.자신의 나쁜 성격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나도 어느 병원인지 몰라. 가게에 효진이 혼자 있는 걸 보고 물었더니 상처를 입은 후 성소현 씨가 병원에 데려갔다고 들었어.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 물어보던지.”전태윤은 곧바로 소정남과의 전화를 끊고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한참 지나서야 전화가 통했다.“예정아, 어느 병원이야? 많이 다친 거야? 나 금방 갈게.”하예정이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성소현이었다.병원에 도착한 후에야 성소현은 하예정의 상처가 꽤 깊다는 것을 발견했다. 성소현은 의사가 그 상처를 처치할 때 땅에 흘러내리는 시뻘건 피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져 섰다. 피를 무서워하는 그녀는 보기만 하여도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하예정이 사용한 가위가 오래되고 녹이 슨 거라 의사는 파상풍 주사와 소염작용을 하는 링거를 맞을 것을 제안했다.왼쪽 손에 상처를 입고 오른손에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 받기가 불편했던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달라 부탁했다.성소현은 전태윤의 긴장한 질문에 마음이 조금 따끔했다.그녀도 그녀의 가족들처럼 전태윤이 왜 하예정을 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내가 어디가 예정이보다 못하다고...’하지만 이것도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상처는 이미 잘 처치했고 파상풍 주사도 맞았어요, 지금은 소염 작용을 하는 링거를 맞고 있어요.”그녀는 링거병을 보며 말을 이었다.“아마도 다 맞으려면 20분쯤 걸릴 거예요.”“어떻게 소현 씨가 전화를... 예정이는요?”“제가 전화를 받으면 안 돼요? 예정이는 지금 링거를 맞고 있어 전화 받기가 좀 불편해요. 다른 일 없죠? 그럼, 이만 끊을게요.”“지금 어느 병원이에요?”“그 대단한 능력으로 어디 한번 잘 찾아봐
전태윤은 표정이 굳어졌다.그가 하예정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안 후부터 두 남매는 모두 형, 누나 노릇을 하려 하고 있다.그는 전화를 끊었다.관성 중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관성 종합병원이다. 알아보지 않아도 성소현이 하예정을 그 병원으로 데려갔을게 분명하다.성소현은 전태윤이 먼저 전화를 끊어도 화를 내지 않고 휴대폰을 하예정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말했다.“예정아, 네 엄마는 내 친 이모이고 우리 둘의 사촌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네가 날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 맞지? 태윤 씨는 네 남편이니 날 누나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미리 말하는데, 넌 꼭 태윤 씨더러 날 누나라고 부르게 해, 알겠어? 내 속이 후련해지게 말이야”그 말에 하예정은 웃음이 나왔다.“그 사람 입이 내 몸에 붙은 것도 아니고, 뭐라 부르던지 내가 그걸 어떻게 단속하겠어요?”“아니, 너 꼭 그렇게 시켜! 아니면 날 볼 때마다 어두운 표정으로 ‘성소현’이라고 차갑게 부르는데... 너무 싫어! 비록 와이프가 되는 건 글렀지만, 누나가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하하하,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고 싶어!”성소현은 하예정 옆의 빈자리에 앉으며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손에 난 상처를 가슴 아픈 눈길로 쳐다봤다.“너 아까 너무 화난 나머지 자기 손을 전태윤이라 생각하며 벤 거 맞지?”“아니에요, 아무리 화가 난다고 자기 손을 베겠어요? 정말 이외에요, 그때 홧김에 힘 조절을 못 하고 이렇게 된 거예요.”“사실 말이지, 전태윤 씨는 정말 좋은 남자야. 전씨 가문도 가풍이 아주 좋은 가문이고 말이야. 나도 재벌 집에서 태어나 다른 재벌 집들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는데, 전국에 놓고 말해도 전씨 가문처럼 가풍이 좋은 재벌 집은 아주 드물어.”“...”“A 시의 예씨 가문도 그 부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외에 가풍이 좋은 재벌 집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전씨 가문처럼 최고의 재벌 집이면서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는
하예정은 조용히 성소현을 바라보았다.성소현은 말하다 말고는 일어났다.“입이 말라서 말이야, 물 한 잔 따라올게. 물 마실래?”“그럼, 저도 한 잔 주세요. 고마워요.”성소현은 손을 뻗어 하예정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자매끼리 그렇게 엄숙할 필요 없어. 예정아, 너 피부 관리 너무 잘했어. 촉감이 좋아. 네 남편, 네 얼굴 만지는 걸 좋아하지?”성소현은 하예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웃으며 가버렸다.그녀는 하예정과 자신에게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랐다.하예정이 다친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물컵을 손에 건네주지 않고 입가에 갖다 대주며 친절하게 말했다.“내가 먹여줄게.”“저 직접 할 수 있어요. 손가락이 이렇게 싸여 있어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지만 물컵을 들고 마시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하예정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성소현의 마음을 거절하지는 않았다.두 사람 모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 후, 성소현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난 먼저 너에게 이 정도까지만 말할게. 스스로 잘 생각해 봐. 만약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자신감이 없다면 태윤 씨에게 분명히 말해줘. 만약 그와 그의 집안이 이런 널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희들 이참에 일찍 헤어지는 게 좋을 거야.”“그들 집안은 내가 이렇게 가난하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에요.”하예정은 시댁을 대신해서 말했다. 전씨 집안은 처음부터 그녀가 어떤 조건인지 알고 있었다.성소현은 웃으며 말했다.“하긴, 전씨 집안은 대대로 모두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라 마음속으로 너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공개적으로 너를 어떻게 대하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젊은이들의 결정을 존중해. 너는 태윤 씨의 생각이 어떤지만 고려하면 돼. 네가 헤어지겠다고 해도 난 어쩐지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아. 그가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태윤 씨의 그 차가우면서도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성격으로는 아마 다음 생에 가서야 헤어질 수 있을 거야.”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소현 언니, 나도 그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