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늦게 운전했지만 곧바로 하예진의 월세방에 도착했다.하예진은 애초에 동생과 너무 멀리 떨어지기 싫어서 발렌시아 아파트 인근에 집을 구했다.전태윤이 차를 세웠다.“도착했네요.”하예정은 차 문을 열고 그에게 말한 뒤 곧장 내렸다.“집까지 함께 올라가 줄게.”“괜찮으니까 그냥 돌아가요. 운전 조심하고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전태윤은 짙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예정아, 너 아직 나 관심하는 거지?”그는 손을 잡고 싶었지만 하예정이 몸을 홱 돌리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전태윤은 입구에 서서 그녀가 올라가는 걸 지켜볼 뿐 끝내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그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쭉 거절했다...한참 후 전태윤은 차에 돌아가 소정남과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어 지누 바에서 술 마시기로 약속했다.통화를 마친 후 그는 곧게 지누 바로 출발했다.소정남과 노동명은 그보다 먼저 도착해 룸에 들어가 술을 주문한 후 그를 기다렸다.전태윤이 들어올 때 둘은 마침 맥주 한 상자를 시켰다.“바에 좋은 술이 없는 거야 아니면 너희가 좋은 술을 살 돈이 없어? 맥주가 웬 말이냐고. 마시려면 독한 거로 마셔야지. 가장 독한 술로 오늘 밤 끝까지 달려!”내일은 일요일이니 실컷 자면 그만이다.소정남이 말했다.“난 그냥 안 마시고 옆에 있을게. 적어도 한 사람은 맨정신이어야지. 아니면 나중에 누가 집까지 데려가겠어? 그리고 나 내일 효진 씨랑 함께 효진 씨 고모네 댁에 가서 밥 먹어야 하니 술 마셔도 안 되고 취해선 더 안 돼.”노동명이 그의 팔을 툭툭 치며 오지랖 넓게 물었다.“너랑 효진 씨 벌써 가족들 만날 단계까지 간 거야? 진도 빠르네.”“나야 빠르고 싶지만 효진 씨가 느린 템포를 좋아해. 효진 씨 고모가 맞선남을 또 소개해 줬는데 김씨 그룹의 임원이라면서 함께 저녁 먹자고 하데. 이건 뭐 그냥 효진 씨랑 그 임원을 간접적으로 주선해주는 거잖아. 어딜 감히 내가 찜한 여자를
전태윤은 테이블 위의 술병과 술잔을 모조리 바닥에 쓰러뜨린 후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예정아, 하예정... 나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소정남과 노동명은 처음에 그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계속 곱씹으니 소정남이 가까이 다가가 귀를 쫑긋 세웠다.“하예정, 나 너 없어도 잘 산다고.”“쟤 뭐래?”노동명은 소정남의 괴이한 표정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소정남은 허리를 곧게 펴고 만취한 전태윤을 보면서 그에게 되물었다.“얘 초고속 결혼하고 지금까지 예정 씨 때문에 취한 게 이번이 몇 번째지?”맨 처음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하예정의 건성건성한 태도가 마음에 걸려 이들 둘을 불러서 함께 술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강일구가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때부터 강일구도 대리기사라는 신분이 생겨 정정당당하게 하예정을 마주했다.“그래놓고 뭐? 예정 씨 없어도 잘 살아? 참나.”소정남은 술에 취한 절친을 비웃었다.“예정 씨 앞에 가서 말해야지 술에 취해 우리한테 말해서 뭐하냐고? 네가 예정 씨 앞에서도 나 당신 없이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으면 내가 네 성을 따른다.”전태윤은 벌떡 일어나더니 소정남의 어깨를 꽉 잡고 그를 마구 흔들어대며 외쳤다.“하예정, 대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잘못했다고 사과도 했고 네가 친정에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도 줬어. 대체 뭘 더 어쩌란 말이야? 똑똑히 들어. 나만 원한다면 밖에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가 줄을 섰어! 하예정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산다고!”소정남은 그에게 휘둘려 머리가 어지럽고 그의 술주정에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그래, 예정 씨 아니어도 넌 얼마든지 잘 살아. 그러니까 예정 씨랑 이혼하고 너 좋다는 여자랑 결혼하면 될 거 아니야.”“이혼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나 절대 이혼 안 해! 넌 내 거야! 평생 내 여자라고. 난 너만 가질래! 꼭 너여야만 해... 그래야 한다고. 이 손 절대 안 놔. 계약서에 사인 안 할 테니까 이번 생에 나랑 계약서 따위
“예정 씨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면 예정 씨가 알아서 챙겨줄 거야.”소정남은 절친을 한 번 돕기로 했다.노동명은 미리 그를 일깨워주었다.“태윤이가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해대는데 아까 했던 말을 예정 씨가 들으면 엎친 데 덮친 격 아니야?”소정남이 대답했다.“그럼... 서원 리조트에 데려가야겠다.”노동명도 찬성했다.바에서 나온 후 노동명은 전태윤을 부축해서 소정남의 차에 앉히고 몇 마디 당부한 후 그들이 떠나가고 나서야 기사에게 전화해 데리러 오라고 했다.전씨 일가의 리조트로 가는 길에서 전태윤은 때로는 ‘예정아, 사랑해. 날 떠나지 마.’ 라고 주절거리다가 또 가끔은 ‘나보고 어쩌라고? 잘 들어, 난 너 없이도 잘 살아.’ 라며 구시렁댔다.아무튼 이 몇 마디 말만 곱씹을 뿐이었다.이는 영락없는 사랑과 자존심의 싸움이었다. 때론 사랑이 지배하고 때론 자존심이 지배하는 혼돈의 상태였다.한 시간 후, 소정남의 차가 서원 리조트로 들어갔다.그가 미리 할머님께 전화 드린 덕에 할머니는 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할머니.”소정남이 차를 세우고 할머니께 인사하며 내려왔다.“늦은 시간에 폐 끼쳐서 죄송해요.”“이 할미가 미안하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태윤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말이야.”할머니는 경호원을 시켜 전태윤을 차에서 내리게 했는데 그가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자 소정남에게 물었다.“이 녀석이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몇 병 마셨어요. 취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으니 감히 예정 씨네 집으로 못 데려가겠더라고요. 예정 씨가 괜히 허튼소리 하는 걸 들었다가 화만 더 낼까 봐요.”“무슨 허튼소리를 했는데?”소정남은 전태윤이 밤새 해댔던 막말을 할머니께 모조리 알려드렸다.할머니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얘 예정이 앞에서 절대 그런 말 못 해. 내가 잘 알아.”“할머니, 태윤이도 마음이 너무 갑갑해서 스트레스 좀 푼 거예요. 내일 술 깨면 또다시 껌딱지처럼 예정 씨 옆에 달라붙을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할머니가 말했다.
전태윤이 뭘 어쩌겠는가?그는 술에 취해 자면서도 꿈을 꾸었다.꿈에서 하예정과 엄청 심하게 다투다가 그녀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하예정, 나 너 아니어도 돼. 언제든지 널 바꿀 수 있다고. 내가 자세 낮출 때 적당히 하고 받아들이지!”하예정은 꿈에서 그를 차갑게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리고 떠나가려 했다.“하예정, 나 떠날 생각 하지 마! 넌 내 거야! 난 꼭 너여야만 한다고!”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꼭 붙잡고 못 떠나게 했다.전태윤은 그녀를 잡아당겨 오더니 품에 꼭 끌어안고 머리 숙여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와 뜨겁게 사랑도 몇 번 나누고 싶었다...“철퍼덕...”전태윤은 꿈에서 격렬하게 하예정을 파고들더니 몸을 뒤집는 순간 의자에서 떨어져 수영장에 첨벙 빠지고 말았다.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그를 통째로 삼켰다.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활활 타오르던 불씨도 수영장에 빠진 순간 꺼져버렸다.‘헐! 너무 추워! 물이 왜 이렇게 많아? 내가 왜 물속에 있지?!’그는 예고 없이 수영장에 빠져 사레에 걸려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어서 허겁지겁 반대편으로 헤엄쳐 가서 다시 일어났다.전태윤은 욕설을 퍼부었다.“어떻게 된 거야? 누가 날 수영장에 떨어트렸어?”그는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고함을 질렀다.수영장 주변의 가로등이 은은한 불빛을 내뿜으며 고요할 따름이었다.그의 고함에 대꾸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수영장 주변에 사람이 아예 없었으니까.그저 맞은편에 침대식 의자가 하나 있고 담요가 바닥에 떨어진 채 반은 물에 잠기고 반은 언덕 위에 있었다.전태윤은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다.이곳은 영락없는 전씨 일가 저택이다. 그날 할머니를 더이상 꾀병 부리지 못하게 하려고 전태윤이 바로 이 수영장에서 수영했다.감히 그를 수영장에 내버리는 사람은 할머니 말고 더는 없다!단지 마음이 갑갑해서 술 마신 것뿐인데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혼쭐을 내다니!전태윤은 물에 빠진 순간 술이 다 깼다.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수영장을 반 바퀴
전태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할머니의 지팡이에 맞을까 봐 더는 감히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좀 전에 할머니가 비꼬신 말을 기억하고 나지막이 말했다.“할머니, 나 예정이 아니어도 잘 산다는 말 안 했어요.”그가 어찌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그는 하예정이여야만 하는데, 그녀 아니면 아무도 안 되는데 말이다!!“진짜 안 했어?”전태윤은 순간 말문이 막혀 한참 후에야 겨우 말을 이었다.“꿈에서 그런 것 같은데... 할머니가 어떻게 아세요?”설마 꿈이 아니었나?진짜 하예정과 심하게 다투고 홧김에 그런 말을 한 걸까? 게다가 그녀와 뜨겁게 몸을 뒹굴려 했다고...“할머니, 나, 나 술 마시고 예정이한테 무슨 짓 했어요?”술에 취해 그녀를 강제로...맙소사!전태윤은 감히 더는 생각할 엄두가 안 났다.술 마시면 실수를 하는 법!심지어 그는 만취 상태였다.할머니는 지팡이를 내리고 그에게 말했다.“네가 예정이한테 무슨 짓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술을 몇 병 마시고는 허튼소리만 해대는데 인제 그만 깨야지. 어때? 정신이 좀 들어?”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네.”할머니는 그런 방식으로 전태윤을 술 깨게 했다. 만약 안 깨면 그대로 익사할 것이다.“술 마신다고 문제가 해결돼?”전태윤이 머리를 내저었다.“하지만 잠시 동안은 고민을 잊게 해주죠.”“인제 정신이 드니 좀 어때? 일이 더 커질 뻔했잖아! 술에 취하면 무슨 말이나 다 하고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어. 네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거, 어쩌면 술김에 한 일일 수도 있다고.”전태윤은 사색이 되어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할머니, 예정이 어떻게 됐어요?”“몰라, 난.”할머니는 그를 혼낼 뿐 하예정이 어찌 됐는지는 정말 모르신다. 어젯밤에 술 취한 손자를 데려온 사람은 손주며느리가 아닌 소정남이었으니까.전태윤은 자리를 뜨려 했다.“이리 와. 지금이 몇 시인데 예정이 찾아가려고 해? 자는 애 깨우면 널 예뻐나 하겠다!”현재 시각 새벽 다섯 시, 너무
말인즉슨 그녀가 전태윤의 삶에 스며들지 못하면 둘은 곧장 이혼하고 서로에게 자유를 돌려준다는 뜻이다.결혼은 꼭 서로 조건이 맞아야 할까?그와 그의 가족은 단 한 번도 하예정을 꺼린 적이 없는데 왜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큰 압박감을 주면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걸까?‘내가 우리 둘 사이에 조건 차이가 없다면 없는 거야! 내 말이 곧 법이라고!’“기억 안 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아 참, 이 말은 밤새 하데? ‘예정아, 나 너 아니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 혹시 취중 진담이라도 한 거야? 날 밝으면 예정이한테 가서 직접 전해. 우리 앞에서 센 척해야 무슨 소용인데.”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한없이 어두워졌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할머니, 예정이가 나한테 엄청 많은 말을 했어요. 내가 키우는 카나리아가 되고 싶지 않다느니, 나랑 어깨를 견주고 나란히 걷는 여자가 되고 싶다느니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나랑 공통 화제가 있고 싶다는데 우린 원래 공통 화제가 있거든요. 난 예정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게 아니에요. 예정이가 내 아내인데 평생 책임지고 키워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왜 기어코 본인한테 의지하겠다는 거죠? 나한테 시집와서 평생 호강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난 그런 여자들 다 싫고 예정이만 원해요. 그런데 왜 예정이는 딴 사람들처럼 나한테 시집와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지 않는 거냐고요?”“...”“내가 능력이 달려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다면 모를까, 아니 충분히 잘 먹고 잘살게 해줄 수 있는데 왜 한사코 독립을 고집하냐고요? 예정이는 지금 가게도 운영하고 수입도 있는데 뭐가 성에 안 찬 거죠? 내가 가게 관두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지내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준 자유가 아직도 부족한 걸까요? 예정이는 나 전태윤의 아내인데 누가 감히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겠어요? 내가 있는 한 예정이는 관성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어요. 분명 성소현 씨가 무슨 말을 해서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한 걸 거예
소정남을 보더니 두 셰퍼드는 짖지 않고 그에게 꼬리까지 흔들었다.그가 한때 심서준을 핑계로 자주 찾아오면서 심서준의 엄마가 그와 제 아들의 관계를 오해한 줄도 모른 채 셰퍼드 두 마리와 친하게 지냈다.심서준이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나 찾아온 건 아니죠?”소정남이 웃으며 답했다.“효진 씨 보러 왔어요. 서준 씨가 아니라.”심서준도 가볍게 웃었다.“나도 어제 알았어요. 엄마가 글쎄 정남 씨가 날 좋아하는 줄로 여기다니, 하하, 웃겨 죽겠어요!”“그러게요. 아주머니가 그렇게 오해하실 줄은 전혀 몰랐어요.”“그러게 누가 올 때마다 나 보러 왔다고 말하래요? 누나도 매번 위층에서 옷 갈아입으면서 겉으론 정남 씨를 신경 쓰지 않는 척해도 실은 일어나자마자 옷방에서 옷을 골랐다니까요. 여자는 참 말과 행동이 달라요.”소정남이 그를 질책했다.“내 앞에서 효진 씨 험담하지 말아 줄래요?”심서준이 말했다.“벌써 한배 탔다고요?”“서준아, 정남이 왔어? 어머, 진짜 정남이네. 어서 안으로 들어와.”심효진의 엄마가 집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소정남은 사 온 선물을 심효진 엄마에게 드리며 환하게 웃었다.“아주머니랑 아저씨가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제가 직접 골라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뭘 또 이런 것까지 사와. 너만 와도 나랑 네 아저씨는 너무 기뻐.”중요한 건 두 분 모두 한시름 놓았다.아직 남자친구가 없는 딸아이에게 이렇게 훌륭한 남자가 대시하고 있으니 그들은 시름이 놓였고, 둘째는 제 아들이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오해인 걸 알고 한시름 놓았다.방에 들어간 후 심효진의 아빠를 보자 소정남은 또다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심효진 아빠도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다 온화해졌다.오해가 풀리자 그녀의 부모님은 소정남을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았다.그를 자리에 앉힌 후 심효진의 엄마가 아들에게 분부했다.“누나더러 내려오라고 해. 정남이가 왔으니 우리 인제 고모네 댁으로 가야지.”심서준이 머리를 끄덕이고 위층
소정남이 웃으며 말했다.“저 그럼 분발해야겠네요. 아주머니가 준비하신 돈 봉투 하루빨리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듣자 하니 너희 집안이 정보통이라며?”심효진의 아빠가 물었다.“네... 그렇긴 한데 아저씨 정보에 관심 있으신가 봐요?”소정남의 물음에 심효진의 아빠가 진지하게 답했다.“이 나이에 정보는 무슨, 다만 심심할 때 나한테 말하는 것도 괜찮아.”심효진의 엄마가 곧장 남편을 흉봤다.“효진이는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니까.”심효진이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고 가십거리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빠 성격을 닮아서였다.소정남도 마침 이런 성향이니 그야말로 하늘이 정한 한집 식구였다.심효진은 본인이 없는 틈에 부모님이 소정남 앞에서 제 흉을 볼까 봐 아침 내내 못 고르던 옷도 냉큼 고르고 허둥지둥 갈아입고서는 휴대폰을 챙기고 아래층으로 달려갔다.“누나, 이미지 신경 써야지. 정남 형이 아래에 와 있어.”심서준은 누나에게 달려가지 말고 단아하게 있으라고 했다.어쩌다가 훌륭한 남자가 누나에게 홀딱 반했는데 이미지에 신경 안 써 이사님이 식겁하여 도망가 버린다면 심서준이 평생 돈 벌어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그는 누나보다 몇 살 어리지만 누나의 결혼을 걱정해야 했다.심효진이 고개 돌려 그에게 말했다.“그 사람 앞에서 우리 모두 발가벗겨진 몸인데 뭘 더 신경 쓰겠어?”심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소정남의 진짜 신분을 떠올리자 심서준은 불쑥 긴장해졌다. 정남 형이 설마 그의 밑천까지 다 털어낸 걸까?다만 소정남은 심효진한테만 관심 가질 뿐 그는 전혀 안물안궁이다.기껏해서 심서준의 성향과 취미를 알아내고 그에게 맞춰가며 제 편으로 만들 뿐이다.미래의 처남만 공략하면 미래 장모님의 마음도 손쉽게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어느덧 미래의 장모님도 그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신다.소정남은 일찌감치 태도를 표했더라면 지금쯤 그녀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정남은 심효진의 남자친구 신분으로 그녀와 함께 심미란의 집에 밥 먹으러 갔다.더는 심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