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아, 오면 온다고 말을 하지. 내가 내려가서 마중할 텐데.”전태윤은 아내의 손에 든 도시락통을 얼른 건네받았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힘들까 봐 재빨리 도시락을 책상에 올려놓고 다시 그녀 손을 꼭 잡고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하예정을 쳐다봤다.전이진은 한심한 표정으로 큰형을 바라봤다. 만약 눈알을 파서 형수님 몸에 붙일 수만 있다면 큰형은 아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내가 태윤 씨 회사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 뭘 마중 나와요. 도시락 싸 왔으니까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매일 제때 밥 먹어야 위병이 나아요.”전태윤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고마워, 여보.”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덩달아 웃었다.“태윤 씨 회사에서 오늘 보너스라도 줬어요? 차에서 내려서부터 보는 사람마다 눈웃음을 짓고 있는데 다들 진심으로 우러나온 그런 미소였어요.”전이진이 웃으며 한마디 끼어들었다.“형수님이 오신 건 보너스 받는 것보다 훨씬 기쁜 일이에요.”전태윤은 동생을 노려봤다.와이프가 도시락을 챙겨왔는데 동생이란 놈은 왜 저렇게 눈치도 없이 서 있기만 하는 건지, 얼른 꺼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도련님, 도시락통 이리 가져다주실래요? 제가 음식을 많이 담아와서 두 분 함께 먹어도 충분해요.”전이진은 재빨리 책상 위의 도시락통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탁자에 도시락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전태윤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순간 전이진은 동작을 멈췄다.전태윤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 짙은 눈길로 동생을 한껏 째려봤다.형의 따가운 시선에 전이진은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형, 그러니까 그게, 형수님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해왔는지 내가 대신 봐주려고 뚜껑을 연 거야.”형의 따가운 시선에도 전이진은 꿋꿋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맨 위의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형수님의 음식 솜씨에 감탄을 연발했다.“냄새만 맡아도 벌써 군침 돌아.”전이진은 도
그랬던 그가 지금 사진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하예정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새로운 가십거리가 생겼는데 아내에게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지 않겠는가.전이진도 바로 눈치챘다. 큰형은 지금 그와 호영의 혼사를 가십거리로 삼아 형수님께 들려주려는 속셈이다.큰형은 형수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동생들까지 팔아버렸다.전이진은 사진 두 장을 건네며 속으로 못난 자신을 비웃었다. 큰형은 지금 그를 팔아버리며 형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데 순순히 협조나 하고 있다니.만약 이후에 연애하다가 트러블이 생겨서 큰형과 형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들 부부가 조건 없이 그를 돕길 바랄 뿐이다.‘퉤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연애는 틀림없이 순조로울 거야. 초고속 결혼도 아니고 비밀 결혼도 아니고 신분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 분명 순조로울 거라고.’“무슨 사진인데요?”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의 관심을 끌어모았다.전태윤은 보물이라도 내놓듯이 사진 두 장을 선뜻 건네며 설명했다.“글쎄 할머니가 우리 손주들의 혼사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모른다니까. 저번에 사방으로 돌아다니셨잖아. 그거 다 이진이랑 호영이한테 어울리는 신붓감을 찾아주려고 그러신 거야.”전호영은 전씨 일가 셋째 도련님이자 전태윤의 셋째 삼촌네 장남이다. 현재 전씨 그룹 산하의 모든 호텔 업계를 책임지고 있고 뛰어난 언변에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다.하예정은 전씨 일가 남자들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다. 다들 하나같이 잘생겼으니까.그녀는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할머니도 그냥 있기 지루해서 도련님들 혼사를 신경 쓰시는 거예요. 도련님들 조건으로 결혼할 마음만 있다면 여자들이 줄지어 시집오고 싶어 할 텐데 말이죠.”다만 이 집안의 훌륭한 남자들은 확실히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다.작년에 그녀와 전태윤이 초고속 결혼할 때 전태윤은 서른 살이고 전이진은 형보다 한 살 어려서 지금은 곧 서른이 돼간다. 일반인들은 이 나이에 이미 아빠가 다 되었다.“할머니는 이진 도련님이랑 호영 도련님에
전이진은 호영의 키가 190인 걸 생각하며 그제야 할머니의 결정을 이해했다.그는 180도 채 안 되는 고작 176이라 고현과 함께 서면 그녀의 키가 훨씬 더 크다.아홉 형제 중에서 셋째가 키가 제일 크다.“아무리 남장을 해도 들키기 마련이죠. 여자는 목젖이 선명하지 않잖아요.”하예정은 고현의 사진을 빤히 쳐다보며 문득 이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왜 20년 넘게 남장을 하고 지냈을까?“예정아, 목젖은 가짜로도 만들 수 있어.”“...”그녀는 여전히 식견이 너무 적었다.“허초는 또 누구예요?”하예정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이에 전태윤이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었다.“A시 허씨 그룹의 대표야. 이분은 좀 짠해. 여동생 한 명 빼고 가족들이 전부 죽었어. 그래서 마지못해 가업을 물려받은 거야. 여태껏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을 거야. 수수한 외모에 수년간 중성적인 차림이라 그냥 보면 남자 같아. 이젠 두 자매가 모두 결혼했고 허초도 여성미가 물씬 풍겨. 아 그리고 허초랑 결혼한 남자는 A시 갑부 집안 큰 사모님의 큰 오빠야. A시 갑부 집안의 큰 도련님 예준성은 예준하의 친형이지. 준하는 전에 너도 봤지? 예씨 일가의 다섯째 도련님 말이야. 그 집안의 스토리는 내가 나중에 시간 나면 상세하게 알려줄게.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한 스토리야. 우리 전씨 그룹과 예진 그룹은, 예진 그룹이 바로 예씨 일가의 가족기업이야. 우리 두 그룹은 깊은 협력 관계라 이제 시간 내서 너 데리고 한번 만나 뵈러 A시에 가야겠다.”두 그룹은 서로 다른 도시에 있지만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전태윤은 한때 하예정의 일로 예준성에게 찾아가 조언까지 구했다. 비록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지 않지만 적어도 전태윤은 용기 내어 정체를 밝히고 한동안 모진 비바람을 견뎠다. 그리고 현재 비 온 뒤 무지개가 활짝 핀 것만 같았다.전태윤은 예준성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중에 하예정을 데리고 A시의 예진 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그녀에게 예씨 일가 사모님 모연정을 소개해 주면 인맥이
전태윤과 전이진은 동시에 속으로 구시렁댔다.‘할머니는 자신 없는 일은 안 하셔.’전태윤은 와이프의 손에서 여운초의 사진을 건네받고 전이진에게 돌려주며 또다시 그를 째려봤다.“형, 형수님, 저 먼저 갈게요. 두 분 계속 얘기 나누세요. 형, 배불리 많이 먹어야 해!”삐돌이!형수님이 분명 두 형제가 충분히 함께 먹을 양이라고 했는데 큰형이 기어코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그는 마지못해 핑계를 둘러대며 자리를 떠났다. 형이 쪼잔해서 그를 못 먹게 한다는 걸 절대 형수님께 들켜선 안 된다.전이진이 떠난 후 사무실에 그들 부부만 남았다.“예정아, 넌 밥 먹었어?”“다 먹고 나서 도시락 싸 왔죠.”하예정은 절대 굶을 리가 없다.전태윤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려 하자 그녀가 젓가락으로 가볍게 내리쳤다.“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요.”하예정은 그에게 젓가락을 건넸다.“얼른 먹어요. 이따가 다 식으면 결국 또 위 버려요.”전태윤은 젓가락을 건네받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여보, 그럼 나 먹는다?”“얼른 먹어요.”전태윤은 사양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예정아, 오늘 몸은 좀 어때? 배 아프지 않아?”“아니요. 당신이 끓여준 대추차를 마시니 이번엔 전혀 복통이 없어요.”전태윤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떠보듯이 물었다.“예정아, 우리 시간 되면 처형네 집에 가서 네 짐을 다 가져올까?”“나 언니 집에 짐이 얼마 없어요. 갈아입을 옷 몇 벌 뿐이니 안 가져와도 돼요. 그냥 거기 놔둘래요. 언니 집에 가서 지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가도 되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답했다.“그래. 내가 새 옷 몇 벌 더 사줄게.”“사지 말아요. 옷이랑 신발, 드레스를 사느라 모아둔 적금이 거의 다 거덜 났어요. 내 옷장은 이미 새 옷으로 꽉 찼다고요.”그녀는 이모와 함께 사교활동에 많이 참가해야 한다.이모와 성소현 두 모녀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새 옷을 엄청 많이 샀다.이모는 그녀가 인제
전태윤은 배불리 먹은 후 하예정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대충 한마디 물었다.저번에 성기현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그들 부부가 결혼한 지 몇 년이 됐는데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하더니 어느덧 유청하가 임신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대체 언제 임신할지 궁금했다.사실 그는 아이가 급한 게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그 과정을 즐길 뿐이다.오랫동안 솔로로 지냈으니 온몸의 세포가 요동치고 하예정을 갖고 싶어 피가 들끓는다.다만 아쉽게도 당분간 또 스님으로 지내야 한다.그는 하예정의 손을 높이 들고 다친 손가락이 거의 회복된 걸 확인하더니 고개 숙여 부드럽게 그녀의 다친 손가락에 키스했다.그의 잘못으로 하예정이 다쳤으니까.“언니한테 말했더니 언니가 영양제를 사주겠대요. 경험자라 나보다 아는 게 많아요. 언니가 다 사면 우리 함께 새언니 뵈러 가요.”유청하가 임신하자 하예정은 진심으로 사촌 새언니를 대신해 기뻤다.“그래 그럼. 처형 영양제 사는데 쓴 돈 내가 보내줄게.”하예정이 머리를 끄덕였다.“예정아.”“할 얘기 있으면 해요.”“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전태윤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가녀린 몸이 그의 품에 쏙 안겼다.“예정아, 넌 모를 거야. 널 찾아가지 못한 그 며칠 동안 내가 널 얼마나 미치도록 그리워했는지.”하예정은 그의 품에 나른하게 기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움을 호소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전태윤이 힘들어할 때 실은 그녀도 무척 힘들었다.물론 그와 비기면 훨씬 나은 편이다.“다들 식사하는 틈에 푹 쉬고 있어요. 머리가 맑아야 오후에 계속 막중한 업무를 처리하죠.”“나랑 함께 쉬어주면 안 돼?”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끝내 머리를 끄덕였다.전태윤은 기쁜 마음에 곧장 그녀를 안고 휴식실로 들어갔다.부부가 다시 애틋함을 되찾았을 때 하예진은 한창 가게에서 아들에게 밥을 먹이다가 전씨 어르신을 맞이했다.“할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하예진은 그릇을 내려놓고 자
어르신이 하예진에게 말했다.“너희 두 자매는 우리 집안 명예를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는 법을 몰라. 네가 만약 나보고 그 녀석들 몇 명 불러와서 가게 분위기를 띄워달라고 하면 장사 무조건 대박 날 텐데.”전씨 일가의 아홉 도련님이 여기서 토스트를 먹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간판이다.하지만 하예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본인 노력으로 해내고 싶어요. 우리 이모도 늘 도와주시겠다고 하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이렇게 되면 예정이가 부담이 더 클 거예요.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누추하지만 함께 드실래요?”하예진은 아들을 먹이느라 본인은 아직이었다.할머니도 사양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고생인들 못 겪어봤겠니? 전혀 누추하지 않아. 너희랑 함께 먹어야 인간미가 넘쳐서 좋지.”종일 고급 음식만 먹다가 담백한 야채로 입맛을 바꾸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하예진은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나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 저 그냥 우빈이랑 먹을 생각에 음식을 하나밖에 안 했어요.”계란말이라, 할머니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했다.“이 할미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음식 탓할 거면 일부러 밥때에 오지 않았을 거야.”할머니는 스스로 가서 밥을 펐다.하예진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사돈 할머니의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가 괜찮으시다니 그녀도 더는 미안해할 이유가 없었다.세 사람은 나란히 밥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고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우빈아, 삼촌이 뭐 사 왔게... 할머니?”노동명은 또 주우빈에게 풍차를 하나 사 왔다. 그는 풍차를 들고 우빈이를 부르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전씨 할머니를 보자 대뜸 걸음을 멈추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찔려 쪼르르 내빼려 했다.“동명아, 이 할미가 널 잡아먹는다던? 왜 날 보자마자 줄행랑이야?”노동명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헤벌쭉 웃었다.“잡아먹는다니 무슨 그런 험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는 저에게 부처님이세요. 아까는 휴대폰을 차에
할머니도 배불리 드시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노동명은 인정한다는 듯이 대답했다.“맞아요, 우빈이 엄청 똑똑해요.”“그런데 왜 계속 풍차만 사와? 사 올 거면 다른 재미난 장난감을 사 와야지 줄곧 풍차만 주니까 애가 지루해하잖아. 오죽하면 네 풍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밥만 먹을까.”전태윤의 친구들은 전부 전태윤과 같은 성격이다.다만 소정남은 예외였다. 그의 언변은 전호영에 버금가는 수준이다.할머니는 아직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딴마음을 품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우빈의 환심을 사려고 엄청 노력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노동명은 우빈이가 그를 아빠라고 불렀으면 하는 바람인 듯싶다.할머니의 생각을 읽었다면 노동명은 말문이 턱 막힐 것이다.‘저는 그저 단순히 우빈이가 좋을 뿐이에요...’노동명이 머쓱해하며 말했다.“제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애들이 무슨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저번에 우빈이한테 풍차를 선물했더니 애가 엄청 좋아하며 저한테 안기기까지 했어요. 그때부터 우빈이가 풍차 좋아하는 걸 알고 계속 풍차만 사 왔어요.”“...”할머니는 꽉 막힌 노동명이 너무 답답했다.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옛친구 노씨 어르신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노동명 같은 답답한 손주 녀석들 때문에 화나서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여태껏 제 집안의 아홉 손주 녀석이 골때리고 속 썩인다고 생각했는데 노동명과 비하니 다들 그보다 훨씬 똑똑해 보였다.비교는 금물이라더니, 남는 건 상처뿐인가?하예진은 머쓱해하는 노동명을 보자 재빨리 아들의 손을 잡고 그에게서 풍차를 건네받으며 활짝 웃었다.“우빈이는 여전히 풍차 노는 걸 좋아해요. 고마워요, 대표님.”그녀는 우빈이더러 얼른 삼촌한테 고맙다고 말하라고 다그쳤다.주우빈은 밥 한 그릇 깨끗이 비운 후 식탁에 내려놓고 티슈를 뽑아 입 주변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아이는 그제야 엄마 손에서 노동명이 사 온 풍차를 챙겨가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고마워요, 동명 삼촌.”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어르신은 노동명이 본인 손자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장손을 생각하니 어르신은 묵묵히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노동명과 전태윤이 절친한 사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많은 점이 닮았다는 걸 설명한다.노동명은 집사와 함께 수도세와 전기세를 확인한 후 전화를 끊고 하예진에게 답했다.“액수가 정확해.”그는 지갑을 꺼내 방금 받은 집세를 쑤셔 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다음부턴 카카오 페이로 집사한테 보내면 돼. 아니면 나한테 이체해도 되고. 내가 집사한테 연락해서 노트 잘하라고 할게.”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에게 설명했다.“저번 달에 카카오 페이로 이체했는데 이번엔 은행카드에 문제가 생겨서 ATM기기로 현찰을 꺼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인테리어 비용을 다 내고 집세 낼 돈이 남아서 현금으로 준 거예요.”그녀는 카카오 페이에 묶은 카드에 큰돈을 저축하지 않는다. 평소 생활 지출만 부담하니까. 큰돈은 전부 따로 적금하고 있다.“가게에 내가 더 도울 건 없어?”하예진이 재빨리 대답했다.“다 마무리했어요. 오픈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전단지 같은 건 이미 돌렸고?”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전단지 돌릴 거 없어요. 오랫동안 인테리어를 하느라 오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 봤을 거예요. 이젠 간판도 걸었으니 무슨 가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그녀는 이 근처의 회사나 공장 직원들을 끌어들일 목적이다. 거리가 너무 멀면 끌어오고 싶어도 다소 힘들다.경쟁력이 너무 크니까.이 거리에 토스트 가게가 이미 너무 많다.그녀의 가게가 이 거리를 휩쓸어 버리길 바랄 뿐이다.그녀는 모든 희망을 이 가게에 걸었다.노동명은 아무 말도 없었다.그는 가게를 한 바퀴 돌고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할머니가 계속 빤히 쳐다보시니 왠지 마음이 찔렸다. 대체 그가 뭘 잘못했길래 전씨 할머니가 줄곧 노려보는 걸까? 그리고 그는 왜 또 마음이 찔리는 걸까?“볼일 봐, 난 이만 갈게. 오픈 날에 또 응원하러 올게.”노동명은 결국 오래 남지 못했다.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