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전화기 너머의 욕설이 순간 멈췄다.2초 정도 침묵이 흐른 뒤 주서경이 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너라고? 왜 내 딸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 하영이는 어디 있어? 당장 바꿔!”은태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아... 너 설마 내 딸을 납치한 거 아니야? 역시 너 좋은 놈 아니었어! 내가 유괴로 고소할 수도 있다는 거 알아?”“그만 하세요!”은태호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여사님. 인터넷에 올린 영상 봤어요. 제가 전화한 이유는 지금 당장 그 영상을 삭제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멈춰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예요.”“사실 왜곡?”주서경은 마치 엄청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날카롭게 웃었다.“은태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네가 부추기지 않았으면 내 딸이 집을 나갔겠어? 지금처럼 망가졌겠어? 전부 다 네 잘못이야!”“전 지금 옳고 그름을 따질 기분이 아니에요. 여사님이 정말 하영이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더는 이런 식으로 자극하지 마세요! 지금 하영이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 아세요? 하영이는...”은태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서경이 짜증스럽게 말을 끊었다.“그만 헛소리하고 정하영 바꿔!”“못 바꿔요.”은태호가 차갑게 말했다.“지금 자고 있어요.”“대낮에 무슨 잠을 자...”“방금 위험한 고비를 넘긴 지 얼마 안 됐어요.”“무슨 위험?”주서경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은태호는 처연하게 웃었다.“정말 궁금하세요? 하영이가 수면제를 많이 삼켰어요. 병원에 제때 오지 못했다면 지금쯤 이미...”여기까지 말하자 은태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수면제를 먹었다고? 미친 거 아냐? 내 허락도 없이 그런 걸 먹어? 누가 사 준 거야? 너야?”은태호는 눈을 감았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주서경이 여전히 욕을 퍼붓고 있었다.그녀가 은태호에게도, 정하영에게도 한참 욕을 퍼붓다 지친 뒤에야 은태호는 말했다.“하영이는 거의 죽을 뻔했어요.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후 정윤재가 미리 준비해 둔 숙소로 가서 쉬었다.아마 갑자기 월주시에 와서 적응이 안 됐거나, 정하영이 걱정돼서였을 것이다.어쨌든 심하온은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정윤재는 그걸 계속 마음에 걸려 하고 있었다.“그래.”심하온도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우리 가서 자자.”그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정윤재가 손을 조금 더 꽉 잡는 걸 느꼈다.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깨닫고 서둘러 덧붙였다.“내가 말한 건 그냥 잠만 자자는 거야!”“응. 알아.”정윤재는 코를 만지며 말했다.“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심하온은 그를 흘겨봤다.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도 그녀가 그를 모를 리 없었다.두 사람은 숙소로 돌아왔다.심하온은 침대에 몸을 대자마자 하품이 나왔다.어젯밤 정말 잠을 못 잤던 터라 지금은 몹시 졸렸다.정윤재는 그녀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그의 손끝이 그녀 눈 밑의 옅은 다크서클을 스치는 순간 두 눈에 안타까움이 떠올랐다.“자.”그는 조용히 말했다.“옆에서 같이 있을게.”그녀의 잠을 방해할까 봐 이불을 덮어 주는 동작도 최대한 조심스러웠다.심하온은 희미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코끝에는 정윤재 특유의 깨끗한 향기가 맴돌았다.긴장했던 신경이 마침내 풀리면서 그녀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심하온이 잠든 사이 주서경은 또다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요즘 그녀는 정동수와 이혼하며 재산 분할 문제로 바빴다.오늘 겨우 시간을 조금 내어 또 하나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이번 영상에서는 더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그녀는 울면서 말했다.“제가 딸을 조금 엄하게 키운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통제욕이라니요. 그렇게 심한 건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지 않았다면 그 애가 그렇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그리고 그 남자친구 말인데요. 집안이 얼마나 좋은지는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제 딸에게 정말 잘하는지 그게 더 중요합니다! 제 딸은 귀
“하지만 나는...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 같은 사람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태호 씨에게 짐이야.”“헛소리하지 마!”은태호는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가 곧 자신이 그녀를 놀라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 급히 부드럽게 낮췄다.“하영아, 너는 한 번도 짐이었던 적 없어. 나에게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없으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아.”정하영의 눈물은 더욱 거세게 흘러내렸다.그녀는 은태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됐어. 이런 얘기는 지금 하지 말자.”은태호는 그녀에게 더 큰 심리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물 좀 더 마셔.”그는 컵에 빨대를 꽂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갔다.정하영이 몇 모금 마시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조금 안심했다.은태호는 컵을 내려놓으러 일어났다.그때 병실 문에서 가볍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는 문을 열러 갔다.정하영은 누가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문 앞에서 희미하게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곧 은태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하영아, 심 대표님이 너 보러 오셨어.”정하영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이불 속으로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심하온이 늘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데 자신은 그런 마음에 이런 방식으로 보답했다.지금 그녀는 심하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다행히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 병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은태호 한 사람뿐이었다.“심 대표님이 네가 방금 깨어났으니까 지금은 안 들어오겠다고 하셨어. 조금 더 지나서 다시 보러 오겠대.”정하영의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새언니는 항상 이렇게 세심해. 지금 내 감정이 불안정할까 봐 일부러 들어와 말을 걸지 않은 거야. 난 이러면 안 돼.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걱정시키면 안 돼.’하지만 정말 너무 아프고 너무 지쳤다...한편 병실 밖에서 심하온은
“다행이야...”그는 중얼거리며 울면서도 웃고 있었다.옆에 있던 두 사람이 급히 그를 일으켜 세웠다.이 두 사람은 심하온이 보내 준 사람들이었다.심씨 가문의 사업은 전국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월주시에도 당연히 인력이 있었다.“은태호 씨, 괜찮으세요?”은태호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막 일어나자마자 수술실로 뛰어가려 했다.“하영이 보러 가야 해요!”의사가 급히 그를 막았다.“곧 나올 거예요. 아직 의식이 없고 곧 병실로 옮길 거예요. 가족분 상태도 좋지 않아 보이니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은태호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쉴 수 있겠는가.그는 차라리 하루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정하영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그 모습을 보며 의사는 한숨을 쉬었지만 더 말하지 못했다.다행히 심하온이 보낸 사람들이 은태호의 곁에 있어 그에게 음식과 물을 챙겨 줄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쓰러졌을지도 몰랐다.곧 정하영은 병실로 옮겨졌다.은태호는 그녀의 꼭 감고 있는 눈과 창백한 얼굴을 보며 눈물을 쏟아냈다.“하영아...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그는 항상 그녀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둘이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는데 왜...’하지만 곧 그는 깨달았다.그는 정하영이 아니다.아무리 사랑해도 그녀가 겪는 고통과 갈등을 완전히 느낄 수는 없다.그래도 그는 그녀가 살아 주기를 바랐다.정하영은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느꼈다.사실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했다.하지만 어딘가 마음속에 놓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지만 의식이 여전히 흐릿했다.자신이 어디 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그저 침대 옆에 누군가가 서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만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잠시 후 시야가 점점 또렷해졌다.침대 옆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사람은 은태호였다.그의 눈은 새빨갰고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
제가 하영이를 안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갈 때... 몸이 뼈도 없는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어요. 계속 이름을 불렀는데...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전화기 너머로 은태호의 흐느낌이 들려왔다.“심 대표님... 저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방금 수술실로 들어갔어요. 정말... 하영이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 봐 너무 무서워요!”이 말을 들은 심하온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워졌다.평소 늘 침착하고 성숙했던 은태호가 지금은 무력한 아이처럼 계속 울고 있었다.“일단 진정하세요.”심하온이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지금도 월주시에 있죠? 어느 병원이에요? 주소 보내 주세요. 제가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라고 할게요. 그리고...”그녀는 고개를 돌려 정윤재를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윤재는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저랑 정윤재도 월주시로 출발할게요.”사실 심하온과 정윤재는 이미 예전에 상의했었다.심하온의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회복되면 잠깐 여행을 가기로.그때 심하온은 말했었다.“월주시로 갈까? 은태호랑 정하영도 볼 수 있고.”그래서 지금 월주시로 가는 것도 완전히 계획 밖의 일은 아니었다.“감사합니다... 심 대표님.”전화를 끊자마자 은태호는 병원 주소를 바로 보냈다.그리고 갑자기 자기 뺨을 세게 때렸다.억지로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지금 정하영은 아직 수술실 안에 있으니 그가 먼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수술실 문을 바라보는 은태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는 그 잠깐의 방심을 해서는 안 됐다며, 정하영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끝없이 후회했다.그는 두 손을 모으고 계속 기도했다.‘하영아...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해...’한편 심하온은 전화를 끊자마자 사람들에게 지시해 월주시 최고의 의료진을 정하영이 있는 병원으로 보내도록 했다.정윤재 역시 월주시로 갈 전용기를 준비했다.“오늘 밤 8시에 출발 가능합니다.”심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갑자기 최 닥터의 표정이 변했다.“왜 그래요? 요즘... 무슨 일 있었나요?”“아니에요. 제가 아니라...”심하온은 서둘러 설명했다.목소리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제 친구 이야기예요.”“아, 그렇군요.”최 닥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그 심리치료사의 연락처를 심하온에게 보내 주었다.“그런데 그 사람은 요즘 여기저기 떠돌면서 지내서 저도 한동안 연락 못 했어요. 지금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고마워해요.”두 사람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눴다.잠시 후, 정윤재가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그는 최 닥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심하온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병원을 나와 차에 탄 뒤 심하온은 계속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았다.가끔은 멍하니 있다가 가끔은 바보처럼 웃었다.정윤재는 옆에서 그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방해하지 않았다.지금 그녀가 얼마나 기쁜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그는 그저 조용히 그녀의 기쁨을 함께 나누면 충분했다.그러다가 갑자기 심하온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자신이 아까까지 멍하니 웃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조금 부끄러워졌다.다행히 옆에는 정윤재만 있었고, 앞에서는 운전기사가 조용히 운전만 하고 있었다.그녀 쪽을 감히 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은태호에게서 온 전화였다.‘이 시간에 왜 갑자기 전화가 온 걸까?’심하온의 마음에 갑자기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에요?”“심 대표님...”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은태호의 목소리는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았다.“다 제 잘못입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고통 섞인 흐느낌이 함께 들렸다.심하온의 심장이 순간 꽉 조여들었다.숨조차 반 박자 멈춘 것 같았다.“은태호 씨, 진정해요! 하영이한테 무슨 일 생긴 거예요?”“하영이가...
그녀는 공민규의 친동생이다.설마 공민규의 마음속에 아버지의 내연녀가 낳은 아들이 친동생 공민서보다 더 중요할 리 있을까?그녀는 억지로 마음속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그럼 난 먼저 돌아가서 쉴게. 공재범 죽거든 가장 먼저 나한테 알려, 오빠.”말을 마친 공민서가 자리를 떠났다.공민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공민서는 지금 매우 수상쩍었다.설마 진짜 공재범의 말대로 그녀가 죽음을 사주한 걸까...공민서가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꾸밀 리가 없을 텐데....심하온은 세
소녀는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실소를 터트리곤 계속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괜찮아요. 별거 아니었어요.”심하온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저런 자식들 여자 괴롭히는 꼴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더라고요.”그때의 심하온과 지금의 심하온이 그의 눈앞에서 점점 겹쳐졌다.수년이 흘렀지만, 그녀는 여전히 햇살처럼 눈 부신 심하온이었다.별안간 고등학교 때 강다인이 따까리들을 데리고 같은 반 여학생을 괴롭혔던 일이 떠올랐다.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여 괴롭히다 보니 그 여학생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한때 자살 충동
만약 강다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지민은 이런 짓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정윤재의 가죽구두가 카펫 위를 밟았다. 그는 우지민 앞으로 다가가 땅바닥에 웅크린 이 남자를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온기도 없었다. 마치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를 째려보는 듯했다.우지민은 고통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정 대표님,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 먼 타국에서까지 이토록 노여워하시는 걸까요?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래? 전혀 모르겠어?”정윤재의 구두가 카펫 위에서 우지민의 머리로 옮겨갔
심하온은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그리고 그 마을이 정말 작았거든. 거주민도 많지 않고. 거기 사람들은 한식이 입에 안 맞는 것 같았어. 그 언니네 식당 장사도 아주 썰렁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딸이랑 계속 거기 살았대. 왜 딸을 데리고 큰 도시로 이사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미 조용하게 사는 데 적응했다는 거야. 아니 막말로 조용히 살아서 돈이 생겨? 대체 무슨 수로 돈을 버는지 전혀 빠듯해 보이지도 않았어.”임아라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심하온은 어느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