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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or: 부용
그 뒤 사흘 동안 조정겸 부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소하던 궁녀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유정월이 감기에 걸려 태자와 황손이 밤낮으로 곁을 지킨다고.

떠나기 이틀 전, 아버지가 어머니를 데리고 입궁했다.

동궁에 들어와 육 년 동안 단 하루도 뵙지 못한 어머니였다. 뜻밖에 다시 만난 어머니는 내 창백한 얼굴을 보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란아, 고생이 많았구나."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닦으며 웃어 보였다.

"이제 고생은 끝났습니다. 어머니, 울지 마십시오."

아버지는 첩을 내보내는 문서를 마련하려면 아직 밟아야 할 절차가 있다며, 서둘러 어머니를 데리고 나갔다.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이틀 뒤면 떠날 터였다. 황후 마마께서 친히 약조하셨으니,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유산 뒤로는 피 섞인 분비물이 멎지 않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조정겸이 태의들의 진료마저 막아 두어, 나는 직접 처방을 썼다. 궁녀에게 몰래 궁 밖에서 약재를 구해 달여 오게 했다.

그날 저녁, 막 약을 먹으려는데 조정겸이 성난 얼굴로 들어왔다. 소매를 휘두르자 약그릇이 엎어졌다.

뜨거운 약이 닿은 흰 손목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조정겸의 눈에 아픔이 스쳤다가 이내 분노에 가려졌다.

"장나원, 어찌 저주로 윤헌을 해치려 했느냐?"

"네 손으로 키운 아이가 아니더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부인했다.

"소첩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뒤따라온 유정월이 금침을 빼곡히 꽂은 저주 인형을 내 이마에 던졌다. 맞은 자리가 곧장 화끈거렸다.

"봉의, 내가 밉거든 나를 해치면 될 것을. 어찌 윤헌에게 이러는 것이오?"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유정월이 울부짖었다.

"제 자식의 유해까지 써 가면서! 어찌 그리 모질 수 있소?"

끝내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힘없이 조정겸의 품에 기대었다.

나긋한 목소리와 달리 말에는 독이 서렸다.

"전하, 고승께서 봉의의 딸이 윤헌에게 화를 부를 팔자라 하셨습니다. 저 인형과 함께 불태워야 우리 윤헌이 무사할 수 있답니다."

"안 됩니다!"

온몸을 갉아먹는 통증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침상에서 비틀거리며 떨어진 나는 조정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옷자락을 붙들었다.

"전하, 그러지 마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조정겸의 얼굴에 망설임이 어렸다.

그때 조윤헌을 돌보는 상궁이 넘어질 듯 달려 들어왔다.

"전하... 태자 전하! 황손께서 피를 토하십니다!"

조정겸은 낯빛이 변하더니 유정월을 데리고 급히 조윤헌의 침전으로 향했다.

맨발로 뒤쫓는 사이 날카로운 돌에 발바닥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아픈 줄 몰랐다.

전각에 들어서자 궁녀와 환관들이 바닥 가득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조윤헌은 조정겸에게 안겨 연거푸 피를 토했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나는 단번에 거짓임을 알아챘다.

내가 조윤헌에게 사람을 놀리라며 가르쳐 준 속임수였으니까.

나는 문짝에 기대어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윤헌아, 정말 네 누이 때문에 아픈 거니?"

조윤헌은 찔리는지 내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피를 한 모금 뿜고 조정겸의 품에서 기절했다.

유정월이 달려들어 목이 찢어질 듯 울었다.

"가여운 윤헌아! 길러 준 어미는 역시 낳아 준 어미만큼 아이를 아끼지 않는구나. 이 어미가 너무 늦게 돌아왔어. 내가 네게 못 할 짓을 했구나!"

조정겸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죽은 아기는 불길하다. 그대로 두면 황손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보명전의 승려들은 시신을 불태워 천도하라."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죽을힘을 다해 보명전으로 달렸다.

도착했을 때, 마침 내 아기가 거센 불길 속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아가!"

나는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지르며 불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뒤따라온 조정겸에게 가로막혔다.

"나원아, 그만 떼쓰고 나와 돌아가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몰랐다. 나는 조정겸에게서 벗어나 필사적으로 앞으로 기었다.

조정겸이 나를 일으켜 세우려 잡아당기자, 나는 있는 힘껏 그를 물었다. 피와 눈물이 뒤섞여 떨어지고, 바닥을 긁는 열 손가락이 줄줄이 핏자국을 남겼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내 아기를 구하고 싶었다. 그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기를 감싼 포대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재를 조금 움켜쥐었을 뿐.

바람에 휘말린 불길이 팔을 덮쳤다. 살갗 타는 냄새가 멀리 퍼졌다.

"아가, 내 아가..."

조정겸이 나를 끌어 일으켰다. 불에 덴 팔을 본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장나원, 미친 것이냐?"

나는 아기의 유골을 두 손에 받쳐 들었다. 눈물이 두 뺨을 타고 쏟아졌다.

"그렇습니다. 미쳤습니다."

"제 딸을 잃은 날부터 그랬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전일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장나원이 되어 동궁에 들어온 그날부터..."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격해진 마음에 묵은 병들이 한꺼번에 도진 듯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피가 울컥 쏟아졌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작고 보드라운 여자아이가 어머니라 부르며 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내 아기였다.

'가여운 내 아가. 다음 생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렴. 나처럼 무능한 어미는 다시 만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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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13화

    월말에 두 나라의 동맹 회담이 끝나자, 조정겸 일행도 도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떠나기 전, 조정겸 부자는 노장군의 초대를 받아 저택을 찾았다.그때 나는 노영찬에게 나무에 걸린 연을 내려 달라고 하고 있었다.연을 떼어 낸 그가 나무줄기에 비스듬히 기대더니 웃으며 나를 놀렸다."어느 집 아씨가 이렇게 고울까?"나도 웃으며 받아쳤다."부군의 아내입니다."노영찬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대로 나를 끌어안고 풀밭으로 쓰러졌다.그에게 안긴 채 한 바퀴 구르고 나니, 나는 온전히 그의 품 안에 누워 있었다.노영찬이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내 아내라고?"나는 손을 뻗어 그의 볼을 꼬집었다."아닙니까?"나를 한동안 바라보던 노영찬이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에 기대었다.내가 모르는 사이, 문 앞에 선 조정겸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조윤헌이 두 주먹을 움켜쥔 아버지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아버지, 정말 어머니를 모셔 가지 않을 겁니까?"조정겸은 멀리서 노영찬과 연을 차지하려 실랑이하는 나를 바라보았다. 미련이 가득한 눈길을 보내다가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네 어머니는 지금 행복하단다. 우리가 방해해서는 안 돼."얼굴이 달라졌으니 조정겸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여겼다.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는 황제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 태자였다. 내 정체쯤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한참을 문 앞에 서 있던 조정겸은 끝내 조윤헌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그 순간, 나는 노영찬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멀어져 가는 부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햇빛 아래 조정겸의 머리는 온통 은빛이었다. 그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했다.하지만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다시는 만나지 않고, 서로를 잊은 채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끝이었다.(끝)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12화

    낯익은 목소리에 조정겸이 흠칫했다.그의 품에 안긴 조윤헌마저 힘겹게 눈을 떴다."어머니..."기운 없는 목소리였다.그래도 육 년 가까이 내 손으로 키운 아이였다. 아무리 모질게 마음을 먹었어도, 저런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렸다.조정겸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너는..."노영찬이 조용히 내 앞을 막아섰다. 나를 지키려는 몸짓이자, 내가 그의 사람임을 알리는 행동이었다."태자 전하, 얼마 전 신과 혼인한 아내입니다."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얼굴을 가린 천을 걷고, 조정겸을 향해 몸을 낮춰 예를 올렸다."맹아란입니다. 태자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조정겸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의 여인은 목소리만 장나원과 비슷할 뿐, 생김새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이 세상에 장나원은 더 이상 없었다."어찌하여 어르신 앞을 막아서는 것이냐?"조정겸의 낯빛이 차가워졌다.변방에서 지낸 이 년여 동안,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드문드문 전해 들었다.나를 추봉했고, 그 일로 황후와 거의 원수가 되다시피 했으며, 다른 여인을 들이지도 않았다는 것까지.하지만 나 때문에 하룻밤 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건 몰랐다.놀란 것도 잠시였다. 나는 곧 평정을 되찾았다."황손 전하의 병은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동궁에서 보낸 육 년 동안 조윤헌의 몸을 수없이 돌보았다. 이 아이를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장나원을 닮은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조정겸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윤헌을 살리지 못하면 네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명을 받들겠습니다."조윤헌의 맥을 짚고 약을 처방해 먹인 뒤 침과 뜸으로 다스렸다. 그러고서야 일단 위급한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수행한 궁녀에게서 조정겸이 변방에 온 까닭도 들었다. 두 나라의 동맹 회담에 참석하러 온 길이었다고 했다.그런데 도중에 조윤헌의 병이 도져, 그날은 예를 차릴 겨를도 없이 혼례에 들이닥쳤다는 것이었다.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11화

    군을 따라다니며 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본래 이름인 맹아란으로 돌아왔다. 스승님의 의술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덕에 사람들은 나를 신의라 불렀다.군에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지낸 지 반년 만에 도성에서 보낸 육 년은 까마득해졌다.한가할 때면 문득 떠오르기도 했지만,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다시 봄이 왔다.요즘은 이웃 나라와 동맹을 논의하느라 전투가 없었다. 덕분에 노영찬은 온종일 내 작은 집에 눌러앉아 지냈다.처음에는 스승님 일을 거들러 오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승님이 내 속을 짚으셨다."아란아, 그리 영리한 사람이 노영찬의 마음을 정말 모르겠나?"모를 리가 없었다.십오 년을 함께 자랐다. 그때는 그의 아내가 되기까지 한 걸음만 남아 있었다.노영찬의 마음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하지만 나는 그에게 시집갈 날만 기다리던 맹아란이 아니었다. 낯설게 변한 얼굴 아래에는 지옥 같던 육 년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앞날이 창창한 젊은 장군. 그런 사람의 곁을 내가 감히 바라도 될까?스승님이 내 걱정을 전하신 걸까. 아니면 세심한 그가 내 속을 헤아린 걸까.그날도 대가 없이 병자들을 돌본 뒤였다. 집까지 마차를 몰아 주던 노영찬과 나는 흔들리는 휘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아란아, 널 향한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 없어. 네가 좋다면 내일 어르신께 혼인을 청하마."목이 메었다."하지만 저는..."마차가 멈췄다. 휘장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노영찬의 눈빛이 뜨거웠다."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널 거기서 구해 내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어.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죽을힘을 다해 적과 싸웠어. 널 구하고 싶어서.""노씨 가문이 황실만큼 부귀를 누리지는 못해도, 이것만은 약속하마.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만은 편히 살게 해 주겠어."그가 휘장을 걷으며 조심스레 물었다."네가 싫다면, 그저 오라비와 누이처럼 지내도 돼."오롯이 나만 담고 있는 눈을 마주하자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10화

    변방의 작은 마을, 어느 별채.침상에 누워 눈을 뜨자 낯익으면서도 낯선 푸른 비단 휘장이 보였다. 잠시 머릿속이 흐릿했다.그날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운명이 내 편을 들어 주었다.벼랑에는 오래전부터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떨어지다가 그 줄기에 걸린 뒤 강으로 떨어졌고, 나를 찾아온 노영찬이 물에서 건져 주었다.내 스승은 독을 다루는 의술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서백헌이었다.구조되었을 때는 온몸의 뼈가 여러 군데 부러지고 바위에 얼굴까지 상한 데다 묵은 병도 가득했다. 그래도 스승님은 나를 살려 내셨다.다만 일 년을 혼수상태로 보냈고, 얼굴은 예전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달라졌다.깨어나 노영찬의 검은 눈을 마주한 순간, 그날 꿈결처럼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아란아, 살아야 해. 이제 곧 집에 갈 거야."어린 시절, 마을의 못된 아이들이 나를 버려진 집 안에 가둔 적이 있었다. 그때도 노영찬은 영웅처럼 불쑥 나타났었다.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손을 내밀면서."아란아, 집에 데려가려고 왔어."이번에도 젊은 장군은 나를 집으로 데려와 주었다.깨어난 이튿날, 노영찬이 말해 주었다. 궁중 내관을 매수해 아기의 시신을 바꾸어 두었고, 아이와 어머니를 한곳에 묻어 드렸다고.일어나 걸을 수 있게 된 뒤, 나는 노영찬과 함께 어머니와 아기의 무덤을 찾았다.돌아오는 길에 노영찬이 물었다."아란아, 이제 어찌할 생각이니?"끝없는 초원을 바라보자 막막해졌다.이토록 넓은 세상에 내 몸 하나 머물 곳이 없었다.노영찬은 그런 나를 보고 들뜬 마음을 누르며 제안했다."요 몇 년 변방에 싸움이 잦았어. 어르신께서는 연로하시고, 너는 그 의술을 온전히 배웠잖니. 군에 남아 일을 거들어 드리는 건 어떻겠니?"이 세상에 내 혈육은 이제 없었다.길러 주시고 목숨까지 구해 주신 스승님께는 은혜를 갚아야 했다. 남은 생을 곁에서 모시며 일을 거들어 드리면, 그 짐도 덜어 드릴 수 있을 터였다.나는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9화

    조정겸이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장나원의 옷자락조차 붙잡지 못했다.찬 바람이 불었다.눈앞에는 바닥도 보이지 않는 깊은 벼랑뿐이었다. 환하게 웃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나원아!"조정겸의 목에서 피가 치밀었다. 울컥 피를 토한 몸이 곧장 뒤로 쓰러졌다."아버지!"조윤헌과 호위들이 즉시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조정겸은 조윤헌의 팔을 움켜쥔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말이 끊어져 나왔다."윤헌아... 명이다... 반드시 네 어머니를 찾아라...""살아, 살아 있으면 데려오고,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찾아라!"조윤헌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따르겠다고 답했다.조정겸은 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의식을 잃었다.꼬박 엿새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그 엿새가 한바탕 허망한 꿈 같았다. 꿈속은 온통 장나원으로 가득했다.처음 동궁에 들어온 해, 장나원은 경계와 원망이 서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몇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태의들이 살려 냈다.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다. 후궁 하나가 더 들어왔을 뿐이라고 여겼다.마지막으로 목숨을 건진 뒤, 장나원은 무언가 마음을 정한 듯했다.사막에 갓 떠오른 해처럼 생기 넘치던 사람. 장원이 떠난 동궁에 작은 빛을 가져다주었다.조윤헌도 그녀를 따랐다. 좀처럼 다정한 기색을 보이지 않던 황제 폐하마저 심성이 순박하고 곱다며 칭찬했다.그래도 조정겸에게는 장씨 가문이 조윤헌을 돌보라고 보낸 장기 말 하나일 뿐이었다.궁 안에서 부림을 받는 궁녀나 상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대체 언제부터 달라진 걸까?'취기를 핑계로, 문득 이는 마음에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던 밤이었을까. 고개를 숙이자 울어서 붉어진 소녀의 눈이 보였다.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작은 소리로 빌었다."아픕니다. 조금만 살살 해 주실 수 없습니까?"아니면 그 밤이었을까. 자신을 향한 칼날을 대신 맞고 품에 쓰러지면서도 웃으며 달래 주었던 밤."소첩은 아프지 않습니다. 전하께서 무사하시면 됩니다."...육 년 동안 함께한 나날은 꿈의

  • 내 봄을 빼앗은 궁   제8화

    조정겸이 따라왔을 때, 나는 차갑게 식은 어머니를 안고 벼랑 끝에 앉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치맛자락이 금방이라도 나와 함께 날아갈 듯했다.조정겸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나원아, 돌아가지 않아도 좋으니 우선 이리로 와 주겠니?"호위들에게 가로막힌 조윤헌도 울며 빌었다."어머니, 제발 뛰어내리지 마십시오."나는 하늘 끝의 저녁 해만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옅은 안개처럼 가벼웠다."조정겸, 조윤헌. 사실 저는 동궁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내다보이는 것이라고는 네모난 하늘뿐이었습니다. 그 안에 제 삶이 갇혀 버렸습니다.""어머니를 살리려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하지만 여러 해를 함께 지내면서는 두 분을 정말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아기를 가진 걸 알았을 때는, 우리 네 식구가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이제 아기도 없고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떠나야 합니다."조정겸은 가슴을 얻어맞은 듯 멍하니 나를 보다가 애처롭게 말했다."나원아, 네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살아만 있어 준다면...""떠나도 좋다."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놓아주실 필요 없습니다. 갈지 남을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고작 스물한 해를 산 내 인생은 열다섯이 되던 해에 둘로 갈라졌다.그전에는 변방의 작은 마을에 사는 맹아란이었다. 독을 다루는 의원에게 배우며, 드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누렸다.그 뒤로는 장씨 집안의 둘째 딸이었다. 황후의 친정에서 난 귀한 몸이라면서도, 내 뜻대로 살 수는 없었다.이제야 이 목숨을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조정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귀한 황태자의 위엄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주기만을 비는 초라한 사내가 있을 뿐이었다."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너를 저버렸어. 그렇다고 나 때문에 목숨까지 걸고 고집을 부리지는 마라."조윤헌도 거들어 애원했다."어머니, 원망이 있으시면 소자에게 마음껏 푸십시오. 제발 뛰어내리지 마십시오."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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