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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Penulis: 수시
신세희의 등 뒤에 서 있던 사람은 다름이 아닌 부소경이었다.

남자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신세희를 쳐다보았다. 낮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는 마치 귀를 녹일 것만 같았다. “어머니 많이 아프셔. 휴식이 필요해. 고민 있으면 날 찾아오지 그랬어. 왜 어머니를 귀찮게 만들어?”

신세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 결혼 얘기 세희랑 한번 잘 상의해봐. 세희한테 꼭 잘해줘야 해.” 등 뒤에서 하숙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남자는 하숙민의 말에 대답하며 병실의 문을 닫았다.

부소경은 병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신세희를 끌고 갔다.

복도의 끝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얼굴은 이미 차갑게 얼어있었다.

남자는 신세희의 목을 단단히 움켜쥐며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너! 너 자꾸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 감히 우리 엄마 앞에 나타나?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우리 엄마가 사리 분별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좋을 텐데. 그럼 내가 사는 게 죽는 거보다도 더 못한 기분이 뭔지 느끼게 해줄 텐데!”

신세희의 얼굴이 빨갛게 질렸다.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 몰랐어요… 아주머니가… 당신 엄마인 거…”

부소경이 왜 그렇게 자신을 싫어하면서도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감옥에 있을 때 하숙민이 그랬었다. 출소하면 며느리 삼겠다고.

아주머니가 장난으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남자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네 말을 믿을 거 같아? 계속 이렇게 내 앞에서 알짱대는거, 판 더 키우고 싶어서 그런거잖아. 아니면 그냥 부씨 집안 사모님 자리에 눌러앉고 싶은 건가?”

아무런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냥 이대로 목 졸라 죽이라고 해. 그럼 평생 배 속에 있는 아이랑 함께 있을 수 있겠다. 엄마랑도 더 빨리 만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눈물이 눈가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남자는 드디어 그녀를 놓아주었다. 다시 평정심을 찾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차갑고 험악했다. “우리 엄마한테 남은 시간, 두 달 뿐이야. 난 꼭 엄마의 소원대로 너랑 결혼할 거야. 하지만 절대로 너에게 손대지는 않을 거야! 두 달 뒤에 바로 이혼해줄게. 돈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 테니까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 죽기보다도 더 못한 삶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하숙민에게 남은 시간이 두 달밖에 없다니?

신세희의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담담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지금 나랑 위장 결혼하자는 거죠?”

“아니면? 진짜 내 와이프가 되고 싶기라도 한 거야?” 남자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날 욕실에서 부소경이 자신의 나체를 봐 버렸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때 그녀의 몸에는 죽은 남자의 키스 마크가 가득했다.

그는 그녀를 더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세희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해!”

“아무 데나, 좋은 도시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줘요. 도시는 상관없어요.”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돌아가게 된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녀의 아이를 무시할 것이다. 아빠 없는 아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사람들의 무시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

부소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게 다야?”

신세희는 마음을 굳게 먹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현금 600만 원만 줘요. 용돈으로 쓰게요.”

600만 원, 그녀가 병원에서 받을 검사와 앞으로 들 모든 병원비, 그리고 시골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제대로 모실 수 있는 돈이었다.

부소경이 차갑게 웃었다.

역시, 욕망이 가득한 여자가 확실했다.

이혼하면 한 몫 챙겨준다고 말했는데, 벌써부터 용돈으로 쓸 돈을 달라고 하다니.

오늘 그녀의 말대로 600만 원을 만족시켜주면, 내일은 1,000만 원 달라고 할 건가?

갑자기 기분이라도 확 나빠지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돈 달라고 협박하는 거 아니야?

정말 욕심이 끝이 없는 여자다. 너무 혐오스러워!

요 몇 년간 내 앞길을 막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데? 신세희 하나 더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죽는 건 절대 안 돼.

부소경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쳤다. 5분 뒤, 비서가 손에 봉투를 든 채 엄숙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봉투를 받아든 부소경은 그 안에서 50만 원을 꺼내 신세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600만 원? 줄 수는 있어. 대신 할부로 줄게. 처음에는 딱 100만 원만 줄게. 우리 엄마 앞에서 연기만 잘해준다면 용돈은 두둑하게 챙겨줄게.”

100만 원?

그녀는 할 일이 많았다. 병원 가서 검사도 해야 하고, 살 집도 얻어야 하고, 취직자리까지 새로 찾아야 했다.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2… 200만 원! 더는 안돼요!”

“40만 원!”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심장을 얼릴 정도로.

“100만 원, 100만 원만 받을게요.” 여자는 빠르게 말을 고쳤다.

“20만 원!”

신세희는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격을 흥정하기만 하면 그가 액수를 아래로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만 원, 적어도 병원에서 검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20만 원.” 신세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뻗어 돈을 받았다.

부소경은 돈을 그대로 바닥에 뿌려버렸다.

남자는 아래로 내려다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해. 혼인계약서는 내가 다 만들고 보내줄 거야. 계약이 끝나면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챙겨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용돈은 말이야, 네가 하는 거에 따라서 결정할게. 네가 잘해야 받을 수 있어!”

신세희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는 부소경이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20만 원, 그녀가 자존심을 버릴 정도로 중요한 돈이었다. 임씨 집안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뭐라 그랬어요?” 신세희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다 줍고는 고개를 들어 부소경에게 물었다.

너무 천박하다!

부소경은 그녀를 흘겨보았다. “따라 들어오기나 해! 네 역할이 뭔지 잘 기억하는 거 잊지 말고! 입 잘못 놀리기만 해…”

“그럴 일 없어요.” 신세희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부소경의 일에 협조해주고 싶었던건 아니다. 그녀는 하숙민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감옥에서 그녀는 하숙민과 친 모녀처럼 지냈다.

그리고 지금, 하숙민은 곧 생을 마감한다. 부소경이 그녀에게 제안을 안 했다고 해도 그녀는 이렇게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신세희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아주머니, 소경씨랑 언제 혼인신고 할지에 대해 의논하느라 밖에 잠깐 있었어요. 죄송해요. 옆에 있어 드리지 못했어요.”

“바보야. 나는 그냥 너희가 빨리 결혼식 올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내 마음도 훨씬 더 편할 거 같아.” 아주머니는 신세희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신세희를 가까이에 다가오게 한 후 신세희에게 말했다. “세희야, 우리 아들 어때? 마음에 들어?”

신세희는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엄청 마음에 들어요.”

“지금 당장 소경이랑 혼인신고 하러 가면 안 돼? 아줌마는 네가 빨리 날 어머님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

신세희는 다정하게 하숙민의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그날 오후, 신세희와 부소경은 구청으로 향했다.

서류를 작성하던 그 순간에도 신세희는 지금 겪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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