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너였어.”정애의 말이 끝나는 순간 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엄마.”“그날 이사장실에 들어간 사람은 세아가 아니야.”정애의 목소리가 떨렸다.“너였어.”연희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난 그날 이사장실에 간 적 없어.”“갔어.”“아니야.”“연희야.”“나 그날 병원에 있었어.”“그래.”정애가 대답했다.“그런데 네가 기억하는 병원은 오전이야.”연희의 표정이 굳었다.“오후에는?”정애가 입을 다물었다.“엄마.”“오후에는 네가 사라졌어.”“어디서?”“병실에서.”연희의 머릿속이 멍해졌다.“몇 시간 동안 네가 없었어.”“왜 아무도 나한테 말 안 했어?”“네가 돌아왔을 때 기억을 못 했으니까.”“내가?”“그래.”정애가 숨을 삼켰다.“네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연희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그리고 계속 같은 말을 했어.”“뭐라고?”정애의 목소리가 떨렸다.“‘내 아이는 괜찮아?’”연희는 그대로 굳었다.그 말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말이었다.“엄마가 왜 이제야 말해?”“말하면 네가 또 무너질까 봐.”“그래서 세아가 대신 뒤집어쓴 거야?”정애가 대답하지 못했다.연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세아가 이사장실에 갔다는 기록은 가짜였고.”“…….”“내 이름으로 된 처방전도 있었고.”“…….”“그럼 내가 직접 이사장실에 갔다는 거야?”정애가 힘겹게 말했다.“그래.”“무슨 이유로?”“그걸 모르겠어.”“엄마가 봤잖아.”“문이 열리고 네가 나왔어.”“그때 내가 뭐라고 했어?”정애는 눈을 감았다.“아무 말도 안 했어.”“그럼?”“네가 나를 보자마자 웃었어.”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웃었다고?”“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흉내 냈다.“‘엄마, 이제 아무도 우리 아이 못 건드려.’”연희의 숨이 멎었다.“우리 아이?”“그래.”“그때 이미….”연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정애가 말했다.“그리고 다음 날부터 네 기억이 달라졌어.”“어떻게?”
“네 아이를 없애달라고.”연희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질 뻔했다.“다시 말해.”“무겸 씨가 부탁했어.”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그 사람이 나한테 네 임신을 끝내달라고 했어.”“왜?”“나도 몰라.”“거짓말하지 마.”“연희야.”“이제 나한테 모른다고 하지 마.”연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내 아이를 없애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세아가 한참 침묵했다.“무겸 씨가 그때 한 말이 있어.”“뭐라고 했는데?”“혜경 씨가 네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나면 안 된다고 했대.”연희의 표정이 굳었다.“정상적으로?”“응.”“왜?”“재단 때문이라고 했어.”연희는 숨을 삼켰다.도율이 옆에서 그녀를 바라봤다.“무슨 말입니까?”연희는 대답하지 않고 세아에게 물었다.“무겸이 직접 너한테 부탁한 거야?”“응.”“그럼 왜 네가 처방전을 받아?”“내가 보호자였으니까.”“누가 그렇게 만들었어?”“혜경 씨.”세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그 사람은 처음부터 내가 네 옆에 붙어 있는 걸 알고 있었어.”연희가 눈을 감았다.“그래서 내가 널 믿었던 것도 이용한 거야?”“처음에는 아니었어.”“그럼 언제부터였는데?”세아가 울음을 삼켰다.“내가 돈을 받았을 때.”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얼마?”“삼억.”도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삼억을 받고 내 아이를 없앴다고?”“처음엔 그냥 서류만 전달하면 되는 줄 알았어.”“그런데?”“네가 수술실에 들어간 뒤부터 일이 달라졌어.”세아의 숨이 거칠어졌다.“네가 깨어났을 때 나를 보면서 울었잖아.”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처음 후회했어.”“후회?”“응.”“그런데도 계속했잖아.”“맞아.”세아가 울먹였다.“그래서 나도 용서받을 생각 없어.”연희는 창밖을 바라봤다.“무겸은?”“뭐?”“삼억을 준 사람이 무겸이야?”“아니.”세아가 대답했다.“무겸 씨가 아니라 혜경 씨였어.”연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럼 무겸은 뭘 했는데?”“부탁만 했어.”“부탁
“처음부터 세아였어.”전화가 끊겼다.연희는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연희야.”세아가 조심스럽게 불렀다.연희가 고개를 들었다.“너.”“응.”“그날 이사장실에 갔어?”세아의 입술이 떨렸다.“기억이 안 나.”“또 기억이 안 난다고?”“정말이야.”연희가 사진을 들어 올렸다.“이건 네가 맞잖아.”“옷은 내가 입었어.”“그럼 네가 간 거네.”“아니.”세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내가 갔다면 기억해야 해.”“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전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나도 내가 무서워.”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율이 사진을 받아 들었다.“사진만으로는 실제 방문 목적까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출입기록은?”“그건 사실입니다.”“그럼 확인해야죠.”연희가 말했다.“그날 이사장실에 들어간 사람.”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CCTV 원본부터 확보하겠습니다.”그 순간 감사팀 직원이 말했다.“원본은 없습니다.”연희가 돌아봤다.“왜요?”“해당 기간 CCTV 서버가 교체됐습니다.”“언제?”“임신 종결 처방이 등록된 다음 날입니다.”연희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누군가 기록을 지운 거네요.”“그 부분은 조사 중입니다.”“아니요.”연희가 사진을 다시 들었다.“조사하지 마세요.”모두가 연희를 바라봤다.“제가 직접 확인할게요.”세아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어디를?”“이사장실.”도율이 바로 막았다.“지금 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그래도 가야 해.”“연희 씨.”“세아가 정말 그날 거기 갔다면 이유가 있어.”연희는 세아를 바라봤다.“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야 해.”잠시 뒤 연희와 도율은 재단으로 향했다.세아는 병원에 남겨졌다.연희가 나가기 전 세아의 손을 잡았다.“절대 혼자 움직이지 마.”“응.”“그리고 무슨 기억이 떠오르면 바로 전화해.”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연희야.”“왜.”“나 믿어?”연희는 잠시 멈췄다
“내 이름이 왜 여기 있어?”연희는 메일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처방 요청서 하단.환자 보호자.요청자.그리고 그 아래 찍힌 이름.이연희.세아도 화면을 확인했다.“네가 한 거야?”“아니.”연희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나는 이런 거 작성한 적 없어.”무겸이 앞으로 다가왔다.“잠깐만.”연희가 휴대폰을 치켜들었다.“당신은 빠져.”“이건 나도 처음 보는 서류야.”“그래?”연희가 웃었다.“그럼 더 이상하네.”“뭐가.”“내 이름으로 세아 아이를 없애려는 서류가 만들어졌는데, 당신은 처음 본다?”무겸은 입을 다물었다.도율이 화면을 확대했다.“서명은 전자서명입니다.”“누가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로그가 남아 있다면 가능합니다.”연희가 바로 물었다.“그럼 확인해요.”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요청하겠습니다.”그 순간 세아가 침대 위에서 말했다.“연희야.”“응.”“나 그 서류 본 적 있어.”연희가 돌아봤다.“언제?”“임신 초기에.”“왜 지금 말해?”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때는 네 이름이 있는 줄 몰랐어.”“그럼 뭘 봤는데?”“처방전 첫 장.”세아는 기억을 더듬었다.“내 이름이 있었고, 담당의사 이름도 있었어.”“그런데?”“마지막 페이지는 못 봤어.”연희가 굳었다.“왜?”세아의 눈이 흔들렸다.“누가 내 손에서 뺏어갔거든.”“누가?”세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무겸이 물었다.“누구였어?”세아가 그를 바라봤다.“당신이 아니었어.”무겸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누구야?”세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혜경 씨.”병실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연희가 무겸을 바라봤다.“당신 어머니가 세아 처방전을 직접 가져갔어?”“나는 모른다.”“또 모른다고?”“정말 몰라.”연희가 차갑게 웃었다.“당신은 참 편하네.”무겸이 눈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야.”“당신 가족이 무슨 짓을 해도 몰랐다고 하면 끝나잖아.”그때 도율의 휴대폰이 울렸다.“연희 씨.”“확인됐어요?”
삐—.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졌다.“선생님!”간호사들이 한꺼번에 병실로 들어왔다.세아가 배를 움켜쥔 채 몸을 웅크렸다.“아파요….”연희가 세아의 손을 잡았다.“괜찮아. 여기 있어.”“아이 심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그 말에 세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안 돼.”의사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말했다.“산모를 안정시키세요. 바로 초음파 준비합니다.”세아가 연희의 손을 놓지 않았다.“연희야.”“응.”“나 때문에 아이까지….”“그런 말 하지 마.”“근데 내가 약을 계속 맞았잖아.”“네가 뭘 맞는지 몰랐잖아.”연희는 세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속인 사람이 잘못한 거야.”그때 무겸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세아.”세아가 고개를 돌렸다.“나가.”“지금은 내 말을 들어야 해.”“싫어.”“아이를 살리려면 세강으로 가야 한다.”세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당신 어머니가 보낸 문자 봤어.”무겸의 얼굴이 굳었다.“무슨 문자?”연희가 그의 앞에 휴대폰을 내밀었다.“이거.”무겸의 시선이 화면에 박혔다.[절대 세아에게 약 이름을 말하지 마.]무겸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희가 물었다.“이제 설명해.”“나도 모르는 일이다.”“거짓말.”“정말이다.”“그럼 왜 네 어머니가 너한테 입을 막으라고 해?”무겸은 대답하지 못했다.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은 알고 있었어?”“뭘.”“내가 임신한 뒤에 무슨 약을 맞고 있었는지.”무겸이 눈을 피했다.그 순간 세아가 깨달았다.“알고 있었네.”“세아야.”“알고 있었어.”세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그런데도 아무 말 안 했어?”무겸이 다급하게 말했다.“나도 정확한 성분은 몰랐어.”“그럼 뭘 알았는데?”침묵.세아가 웃었다.“역시.”그때 의사가 무겸을 향해 말했다.“보호자분.”“네.”“지금 산모에게 투여된 약물 성분 확인이 필요합니다.”무겸이 굳었다.“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연희가 바로 막아섰다.“아니요.”“연희
“설명이 어떻게 다르다는 거예요?”세아의 목소리가 떨렸다.의사는 기록지를 다시 확인했다.“세강에서 어떤 목적으로 처방했다고 들으셨습니까?”“임신 유지요.”“확실합니까?”“네.”“누가 그렇게 말했죠?”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간호사였다.아니, 담당 의사였나.그때는 약 이름보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연희가 기록지를 받아 들었다.“약 이름은요?”의사가 말했다.“기록에는 투여 코드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드가 일반적인 산과 유지 치료와 맞지 않습니다.”세아의 얼굴이 굳었다.“그럼 무슨 약이에요?”“현재 기록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그럼 확인해 주세요.”연희가 바로 받아쳤다.“세강에 문의하면 되잖아요.”의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환자분이 세강으로 기록을 넘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그럼 원본을 확인하면 되죠.”“원본도 세강에 있습니다.”세아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연희야.”“응.”“그 사람들한테 연락하지 마.”“왜?”“무서워.”짧은 말이었다.연희는 더 묻지 않았다.대신 기록지를 다시 펼쳤다.“그럼 여기 적힌 코드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확인해 주세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의사가 나가자 세아가 눈을 감았다.“나 그 약 계속 맞았어.”연희가 말했다.“언제부터?”“임신 확인하고 얼마 안 돼서.”“몇 번?”“정확히 몰라.”세아의 손이 떨렸다.“그런데 한 번 맞고 나면 배가 이상했어.”연희의 표정이 굳었다.“어떻게?”“아픈 건 아닌데….”세아가 배를 감쌌다.“아이가 움직이는 느낌이 확 줄었어.”연희가 숨을 멈췄다.“그런데 왜 계속 맞았어?”“아이를 살리는 약이라고 했으니까.”세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내가 멍청했어.”“아니.”연희가 잘랐다.“지금 네가 자책할 일이 아니야.”“그래도 내가 직접 맞았잖아.”“누가 설명했는데?”세아는 입을 다물었다.연희가 다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