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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Author: 알리사 제이
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 사흘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출국 사흘 전, 지아는 정성스럽게 이어 붙인 사진 콜라주 하나를 내게 보냈다.

왼쪽에는 우진과 지아, 그리고 아이들이 롯데월드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네 사람은 서로 바짝 붙어 머리를 맞댄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아는 그 에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있었다.

누가 봐도 완벽한 한국식 핵가족의 모습이었다.

오른쪽에는 누군가 몰래 찍은 내 뒷모습 사진이 있었다.

나는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대형 오븐의 기름받이를 문지르며 청소하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겉으로는 다정한 척하지만 독기가 뚝뚝 떨어지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꿈의 가족 vs. 가정부.”

“더러운 일 맡아줘서 고마워, 언니. 언니는 정말 자기 자리 하나는 잘 지킨다니까.”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지만 화는 전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사진을 삭제한 뒤, 집 안에서 내 존재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폐기물 수거 업체에 연락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낡은 가전제품들을 모두 처분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몇 년 동안이나 직접 고쳐 가며 사용했던 물건들이었다.

옷장에 걸려 있던 ‘엄마 옷’들도 전부 꺼냈다.

우진이 늘 “촌스럽다”고 비웃던 옷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커다란 봉투에 담아 의류 수거함에 넣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우진이 지난 세월 동안 아무렇게나 써 놓았던 메모와 카드들은 전부 세단기에 집어넣었다.

잘게 잘려 나가는 종이 조각들과 함께, 이 집에서 보낸 내 스무 해의 흔적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

출국 당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침대 곁에 서 있는 우진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내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고,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은행에서 이상 거래 알림이 왔어.”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당신 계좌에서 큰돈이 빠져나갔다는데. 돈을 어디로 옮긴 거야?”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날 새벽, 그가 아직 잠든 사이 개인 명의로 모아 두었던 저축금을 모두 이체해 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빨리 깰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휴대전화를 받아 들었다.

목소리 역시 침착했다.

“아, 그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새로운 대학 학자금 적립 플랜이 나왔는데 금리가 꽤 좋더라고. 주원이랑 서윤이 대학 등록금 마련하려고 목돈 넣어 뒀어.”

아이들을 위한 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진의 찌푸린 표정은 즉시 풀어졌고, 그는 거래 내역을 확인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잘 생각했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 재정은 늘 당신이 관리했잖아. 난 당신 판단을 믿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기 용돈뿐이었다. 자신의 소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가계 상황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몸을 숙여 내 이마에 형식적인 입맞춤을 했다.

“당신은 정말 완벽한 현모양처야.”

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부터 하고 와.”

나는 말했다.

“아침 준비할게.”

우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실과 연결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창가로 걸어가 정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아는 이미 와서 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를 마친 우진은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며 곧장 뒷마당으로 향했다.

나는 2층의 두꺼운 벨벳 커튼 뒤에 숨어 차갑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오늘의 지아는 마치 사교계의 나비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고, 우진을 보자마자 곧장 달려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입을 맞췄다.

우진은 처음에는 잠시 밀어내는 척했지만, 곧 주도권을 쥐고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내가 직접 심고 가꾼 장미 덤불 앞에서 열정적으로 키스했다.

지아가 충분히 애교를 부리고 만족한 얼굴로 떠난 뒤에야, 우진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는 이탈리아산 정장으로 갈아입으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경은, 이게 뭐야?”

그는 셔츠 깃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드레스 셔츠 칼라가 구겨졌잖아. 어제 다림질 안 했어?”

나는 셔츠 깃으로 간신히 가려진 그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선명한 키스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피곤해서 깜빡했어.”

우진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대체 뭐가 그렇게 피곤한 건데?”

그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집안일밖에 안 하잖아. 그것마저 제대로 못 하면 어떡해?”

그리고 그는 거울 앞에서 윈저 매듭을 묶으며 능숙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오늘 밤 중요한 인맥 파티가 있어. 파트너를 데려가야 하는데, 지아가 시간이 된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어. 세상 구경도 좀 시켜 줄 겸.”

“늦게 들어올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건 중요한 인맥 파티가 아니었다. 그저 갤러리에서 열리는 부잣집 자제들만의 사교 파티일 뿐이었다.

지아는 자랑할 만한 부유한 남성 파트너가 필요했고, 우진은 기꺼이 그 역할을 맡아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알겠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우진은 마지막으로 머리 모양을 확인했다. 비싼 잡지 표지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쾅.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집 안은 완전한 정적에 잠겼고, 그동안 내 얼굴에 붙어 있던 평온한 가면도 마침내 갈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해방감에서 오는 순수한 황홀감이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우진에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뒀어. 서재 책상 위에.”

메시지를 보낸 뒤, 나는 남편의 번호를 차단했다.

아들의 번호도, 딸의 번호도 모두 차단했고, 심지어 ‘심 씨 가족’ 단체 채팅방에서도 아무 미련 없이 나와 버렸다.

짐이 가득 담긴 여행 가방을 끌며, 나는 반평생 동안 나를 가둬 두었던 감옥에서 걸어 나왔다.

……

인천 국제공항 국제선 터미널.

공항 방송에서는 마지막 탑승 안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쓰레기통 앞으로 걸어가 휴대전화에서 유심 카드를 빼낸 후, 유심과 휴대전화를 함께 쓰레기통 안으로 던져 넣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프랑스 니스행 편도 항공권을 손에 쥔 채 보안 검색대를 향해 걸어갔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촌스럽고 존재감 없는 주부 이경은은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이경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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