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최도진과 연애한 지 어언 3년이 되었음에도 최도진은 나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내 의붓동생에게 한눈에 반했고 대놓고 따라다니며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을 봐도 나는 울지 않았고 전처럼 놀다 질리면 다시 돌아오겠지 생각하면서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가 줬던 선물을 버리고 몰래 산 웨딩드레스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최도진의 생일날 나는 몸만 챙겨 혜민시를 떠나버렸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갑자기 최도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왜 아직도 안 와. 다들 너만 기다리고 있어.]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씹은 뒤 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해버렸다. 최도진은 모른다. 내가 보름 전에 대학교 선배였던 강윤우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고 새로운 도시에 발을 디디면 나는 선배와 결혼할 것이다.
View More결혼식은 아주 호화로웠지만 아주 로맨틱하게 끝났다.최도진과 이석민은 결혼식장에 발도 들이지 못했다.그럼에도 두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다만 이석민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뿐이다.갑작스러운 심장 마비에 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다행히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하지만 최도진은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밖에 서 있었다.왜인지 모르겠으나 이해화의 친구인 윤세희는 그의 연락처를 차단하지 않았다.이해화가 결혼한다는 것도 윤세희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알게 되고 찾아온 것이었다.최도진은 결혼 전날에 알게 되었다. 이해화의 신랑이 강윤우라는 것을.강윤우는 이해화가 대학교 시절 자주 대단한 선배라며 칭찬하던 사람이었다.그때의 그와 이해화는 썸을 타던 시기였기에 이 일로 질투를 하게 되었고 이해화는 그 뒤로 더는 강윤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강윤우를 피해 다니기도 했었다.그런데 결국 돌고 돌아 이해화가 강윤우와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같은 남자로서 최도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강윤우가 이해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다.강윤우의 SNS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엔 이해화가 빠지지 않았고 이해화를 보는 그의 눈빛에선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최도진은 그런 강윤우의 모습에서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도 예전엔 그렇듯 이해화를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어느샌가 질렸다는 이유로 이해화보다 어린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바람을 피웠다.그러다가 결국 이해화가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을 땐 한참 늦은 후였다.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강윤우와 이해화는 차를 타고 떠났다.‘둘만의 신혼집으로 가는 걸까?'최도진은 형언할 수 없는 씁쓸함과 질투를 느끼게 되었다.그는 강윤우와 이해화의 신혼집 마당에도 커다란 해당화 나무가 가득 심겨 있다는 것을 들었었다.마침 지금은 해당화가 필 계절이었으니 아마 예쁘게 활짝 피었을 것이다.최도진은
나와 강윤우의 결혼식은 이듬해 봄에 진행하게 되었다.절친한 친구 윤세희는 어렸을 때 했던 약속대로 나의 유일한 들러리가 되어주었다.나는 청첩장을 혜민시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돌리지 않았다.그런데도 어떻게 소식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결혼식 당일 아빠와 최도진이 제때 찾아왔다.두 사람을 만난 강윤우는 먼저 나의 의견을 물었다.메이크업을 받고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거울을 통해 곧 내 남편이 될 사람을 보았다.신부 화장은 조금 진했기에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평소의 내 모습과 조금 달랐다.마치 신혼집에 강윤우가 특별히 날 위해 심어둔 서부 해당화 같기도 했다.수줍게 핀 꽃처럼 아름답고 산뜻한 미소가 지어지게 했다.검은 턱시도를 입고 있는 강윤우는 평소보다 더 멋있고 잘생겨 보였다.우리는 거울로 서로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절로 웃음을 짓게 되었다.“두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강윤우는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럼 내가 지금 돌려보낼게.”“네.”과거의 일과 과거의 인연은 더는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고 싶지 않았다.가슴에 짙게 남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옅어지게 될 것이다.어차피 인생은 짧았고 한번 사는 인생 힘들게 상처받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손에는 부케를 든 채로 버진로드를 걸었다.강윤우는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얼른 내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도 느껴졌다.그래서 나도 손을 뻗어 잡았다.사람들의 축복과 환호를 받으며 우리는 손을 꽉 마주 잡았다.강윤우는 고개를 숙여 내게 키스했다. 둘만의 세상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길고 끈적한 키스에 나는 점점 숨이 찼다. 강윤우는 그제야 입술을 뗐다.“해화야.”강윤우는 반지를 꺼내 내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사랑해, 해화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했고,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사랑할 거야.”나는 고개
평소에 손지아를 그렇게 아껴주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이석민만 남아 있었다.그는 손을 휘저으며 파리를 쫓듯 경호원에게 두 사람을 내쫓으라고 사인을 보냈다.대문까지 왔을 때도 손지아는 포기하지 않았다.대문 기둥을 붙잡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최도진...감히 날 이딴 식으로 대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지! 나 임신했어. 내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네 아기라고! 네가 책임져!”손지아는 점차 광기 어린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다.“도진아?”이석민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최도진은 그런 손지아가 너무도 역겨웠다. 웃고 싶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애당초 자신이 왜 저런 여자에게 빠졌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아저씨.”최도진은 듬성듬성 백발이 자라난 이석민에게 다가가 말했다.“전 손지아와 잔 적 없어요. 맹세할 수 있어요. 전 단 한 번도 밤을 보낸 적 없어요.”“그럼 됐어.”이석민은 긴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손을 휘휘 저었다.경호원은 계속 두 사람을 끌고 나갔다. 시끄럽게 울부짖는 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하늘에 뉘엿뉘엿 진 노을이 커다란 저택을 감싸고 있었다.두 사람은 쓸쓸한 눈빛으로 이미 져버린 해당화 나무를 보았다.해당화는 이미 동면에 접어들었다. 언제 다시 꽃이 필지는 몰랐다.이 해당화 나무는 이해화의 엄마가 생전 아주 아꼈던 나무였다.이해화의 엄마가 세상을 뜬 후에도 이해화가 직접 가꾸었다.그러나 이해화가 집을 나가고 나니 해당화도 그걸 아는지 활짝 피어야 할 시기인데도 시들어 꽃을 피우고 있지 않았다.이석민은 눈물을 닦았다.“미안하구나, 해화야.”“해화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해화한테도 미안하구나. 도진아, 내가 그동안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어. 해화 엄마한테도 분명 해화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는데, 사랑을 아낌없이 듬뿍 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약속을 어겼어. 도진아, 그래서 내가 지금 벌 받는 걸까? 해화가 그동안 얼마나 서럽고 속상하고 힘들었겠어. 해화 엄마 영정 사진도 이미 복구
그러다가 소음으로 피해를 본 이웃 주민들이 경비실에 민원을 넣게 되었다.최도진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해화가 이미 이사를 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아파트는 경비에게 맡겨 내놓은 상태였다.‘어디로 이사한 거지? 혜민시에는 있는 건가? 돌아오겠지? 언제 돌아오는 거지?'최도진은 아무것도 몰랐다.그랬기에 더 불안하고 두려웠다.가슴 속 피어오르는 불안은 점차 커다란 괴수가 되어 그의 마음을 잡아먹고 있었다.그는 이해화를 잃게 되었다.어쩌면 영원히, 완전히 잃게 되었을지도 모른다.손지아 모녀의 모함으로 이해화는 그간 많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들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심지어 이씨 가문의 고용인들도 두 모녀가 그간 이해화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고발했다.그날 손지아 모녀는 이씨 가문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쫓겨나게 되었다.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쫄딱 젖었을 뿐 아니라 두 사람 얼굴이 전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최도진은 정원에 서서 시들어버린 해당화 나무를 보았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해당화는 시들면 다시 필 수 있었다.하지만 이미 떠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올 리가 없었다.그동안 이석민도 어떻게든 이해화에게 연락해 보려고 시도했으나 들려오는 건 차가운 기계음뿐이었다. 게다가 겨우 연결이 되어도 이해화는 그저 침묵만 지키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이해화는 혜민시를 떠날 때 엄마의 유품 하나만 들고 떠났다.그리고 엄마가 남겨준 재산도 챙겼다.지금 이씨 가문은 아무도 남지 않아 공허한 분위기만 맴돌았다.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해화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멀지 않은 곳에선 여자와 딸이 울며불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영원할 줄 알았던 부잣집 생활의 꿈이 와장창 깨졌으니 손지아 모녀는 그제야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냈다.“캐리어를 열어. 사람 불러와서 억지로 열기 전에.”이석민은 계단 위에 서서 말했다. 그의 모습은 다소 초췌해 보였다.최도진은 며칠 사이에 초췌해진 이석민을 보았다. 그는 유난히도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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