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제230장테이블 위의 찻잔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자이와 카멜리아 사이에 흐르는 정적은 여전히 숨 막힐 듯 무겁게 깔려 있었다. 자이는 잔잔한 찻물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제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짙은 안개와도 같은 커다란 의구심이 머릿속 전체를 집어삼켜, 그녀는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딛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자이 언니." 카멜리아가 아까부터 방 안을 짓눌러온 침묵을 깨며 부드럽게 불렀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팽팽하게 긴장된 자이의 턱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 예전에 어른들한테 부부간의 인연에 대해 듣고 기억해 둔 속담이 하나 있어."자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경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가정의 시련이라는 건 말이야, 초반에 오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찾아오는 법이래." 깊은 감정의 파문이 실린 카멜리아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결혼한 지 5년이 되기 전이나, 심지어 10년이 되기 전에도 부부 사이를 시험하는 거센 폭풍우는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라더라고. 그게 제3자의 등장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마찰일 수도 있고, 혹은 기울어가는 경제적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카멜리아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자이의 손등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두 사람한테 찾아온 이 커다란 시련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이 결혼 1주년을 맞이하기도 전에 미리 내리신 시험일지도 몰라."자이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죄어오는 답답함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붉어진 눈꺼풀 경계에서 불쑥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을 닦아냈다."카멜리아… 나 정말 내 진짜 결정이 뭔지 아직 모르겠어." 자이가 경련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마음의 짐을 짊어지느라 너무나 무너져 내렸고, 피곤함이 가득한 소리였다. "나 지금은 절대적인 평정심이 필요해. 그동안… 네가 한 말이 다 맞아. 난 스스로 생각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 그저 네가 해주는 모든 조
제229장화장대 위에 놓인 휴대폰이 야트막하게 진동하며 자이의 아파트 방 안을 감돌던 정적을 깨뜨렸다. 화면에는 카멜리아의 이름이 떠 있었다. 자이는 녹색 버튼을 옆으로 밀고는, 슬며시 기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자이 언니, 나 지금 공항이야." 수화기 저편에서 탑승 안내 방송 소리가 어수선하게 섞여 들려오는 가운데, 카멜리아의 목소리가 다소 가늘게 흘러나왔다. "나 지금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타."자이는 빗의 위치를 정돈하려던 손가락을 멈칫하며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갑자기 중국엔 무슨 일이야, 카멜리아? 휴가라도 오는 거니?""아니." 카멜리아가 단호하게 대답하며 목소리 톤을 극도로 진지하고 힘 있게 바꾸었다. "우리 직접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자이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불쑥 요동치는 낯선 고동을 느끼며 짧은 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그래? 그냥 전화로 하면 안 돼?""안 돼, 자이 언니. 직접 만나지 않고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카멜리아는 더 이상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응?""그래… 기다릴게." 전화 연결이 끊기고 다시 적막이 찾아오기 전, 자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뉴욕에서 중국 남부 지역까지의 여정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뚜렷한 시차가 존재하는 지구 반대편까지 1만 키로미터가 넘는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카멜리아는 비행기 비행 경로를 따라 계속해서 웅웅거리는 제트 엔진의 낮은 소음을 동반한 채, 광대한 바다와 대륙의 지평선을 넘어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내에서 보내야만 했다.그녀의 옆에서 칼빈은 가만히 앉아, 팽팽하게 긴장된 아내의 손등을 때때로 부드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이 긴 여정 동안 카멜리아의 가슴속에서 얼마나 거대한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자이의 아파트 문 앞에 다다르자, 칼빈은 카멜리아의 손가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는
제228장어두컴컴한 VIP룸 안의 밤이 점점 깊어 갔다. 칼빈은 빈 위스키 잔을 유리 테이블 위에 둔탁한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는, 여전히 고통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주나의 어두운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조만간 카멜리아를 찾아가는 게 좋을 거다, 주나." 칼빈이 묵직하고 깊은 중저음으로 힘주어 말했다. "지금 집에서 많이 슬퍼하고 있어. 네가 오늘 낮에 나가고 나서 울음이 끊이지 않더군."주나는 극도로 가슴 답답한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약간 떨리는 손으로 검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알아… 내가 오늘 동생한테 얼마나 못된 오빠였는지 잘 알고 있다.""그 사람은 오직 너만 걱정해서 그런 거야, 주나.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네 눈에 그 방식이 틀린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칼빈이 싱글 소파에서 일어나며 입고 있던 검은 코트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그래, 내일 네 집으로 찾아가서 동생 만날게." 주나가 거친 목소리였지만 새로운 결의가 담긴 단호함으로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매형의 넓은 등대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나를 때리지 않아 줘서 고맙다, 칼빈.""고맙다는 말은 내일 네 여동생한테 가서 해라." 칼빈은 짧게 대답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고, 방 안은 다시 정적에 싸였다.몇 시간 뒤, 뉴욕의 빌딩 숲 뒤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며 애쉬포드 저택 거실의 커튼을 뚫고 금빛 라인을 비추었다. 카멜리아는 긴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잠을 이루지 못한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퉁퉁 부어 붉어져 있었다.똑... 똑... 똑...현관문을 두드리는 부드러운 노크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하녀가 움직이기도 전에 카멜리아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 문이 열리자마자, 친오빠의 커다란 실루엣이 그녀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주나 오빠…" 카멜리아가 꽉 죄어오는 목구멍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앞에 선 남자의 신호나 말 한마디 기다릴 것 없이, 카멜리아는 즉시 앞으로 달려가 오빠의 따뜻한 품에 몸을 던졌
제227장클럽 VIP룸 안의 어두운 조명은 오직 은은한 보랏빛만을 비추고 있었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몇 병의 술병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주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연신 잔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가죽 소파에 몸을 기대어 생기 없는 멍한 눈으로 천장을 내다보았다.그의 머릿속에는 오늘 낮 애쉬포드 저택에서 쏟아부었던 그 모진 말들이 불쑥 재생되었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카멜리아의 모습은 이제 칼날이 되어 돌아와 그의 가슴을 깊게 찌르고 있었다."내가 너무했어…" 주나가 바짝 마른 목구멍을 쓰다듬으며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후회가 가득 찬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하다, 카멜리아… 이 오빠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자이하고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진짜 모르겠다."스르륵.VIP룸의 슬라이딩 도어가 천천히 열리며, 밖에서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가 아주 잠시 새어 들어왔다가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툭.크고 단단한 손이 주나의 어깨를 조용하지만 힘 있게 다독였다. 주나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옆 싱글 소파에 자리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술 마신다고 해결될 일 아니야, 주나." 칼빈이 특유의 낮고 차분한 중저음으로 말했다. 그는 빈 잔에 위스키를 조금 따라 천천히 한 머금 삼켰다.주나는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씁쓸한 미소를 입꼬리에 지으며 칼빈을 흘끔 바라보았다. "네 아내 울렸다고 나 때리러 온 거냐, 칼빈? 어서 때려라. 난 맞아도 싸.""난 한때 너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남자로 온 거야." 칼빈은 진지하게 어두워진 눈빛으로 테이블 위의 술병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심정 이해해. 사랑하는 여자가 날 바라봐 주지도 않는 그 답답함이 뭔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이번 일로 카멜리아를 탓하지는 마."주나는 입을 다문 채,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잔을 꽉 쥐었다. "난 그냥… 내 친여동생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제226장주나에게 있어 그 한 주는 느릿하게 목을 죄어오는 고통과도 같았다. 아무런 확신도, 단 한 줄기의 희망도 없이, 자이는 중국 남부의 구석진 곳에서 그를 계속 무형의 그림자 취급했다. 하지만 측근으로부터 알아낸 새로운 사실 하나가 주나의 속을 다른 종류의 통증으로 까맣게 타들어 가게 만들었다. 자이—법적으로는 여전히 그의 아내인 그 여자가—그를 무시하기로 결정하기 전, 언제나 카멜리아에게 조언과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그 사실은 주나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왜 카멜리아는 자이 편만 드는 거지? 그저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이건 진짜 불공평해.' 뉴욕으로 돌아오는 내내 주나는 턱에 힘을 꽉 준 채 입을 다물었다.한편 뉴욕의 애쉬포드 저택, 발리에서의 긴 비행을 마치고 카멜리아와 칼빈이 막 거실에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신혼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따뜻한 분위기는 현관문이 거칠게 쾅쾅 울리면서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극심한 좌절감과 분노를 번득이며 주나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주나 오빠?" 핸드백을 탁자에 내려놓던 카멜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맞이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몰골이 안 좋아?""카멜리아, 얘기 좀 해." 주나는 인사치레도 없이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목구멍에 갇힌 감정 때문에 거칠고 날카롭게 죄어 있었다. 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칼빈을 무시한 채, 여동생 앞에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무슨 얘기, 오빠?" 카멜리아가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물었다."자이에 관한 얘기." 주나는 가쁜 숨을 들이쉬며, 여동생의 갈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나 다 알아, 카멜리아. 자이가 늘 너한테 전화해서 의견을 묻는다는 것도, 그리고 네가… 나한테 돌아오도록 설득하진 못할망정, 오히려 나를 계속 무시하라고 부추겼다는 것도! 왜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건데, 어?!"카멜리아는 순간 멍
제225장밖에서 쏟아지던 장대비는 어느덧 가느다란 이슬비로 가라앉았지만, 뼈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한기만을 남겨놓았다. 아파트 마당 한가운데, 주나의 몸은 더 이상 제 무게를 견뎌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검푸르게 질려버렸고, 온몸의 마디마디는 극심한 경련으로 마치 굳어버린 듯했다.쿵.거친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며, 주나의 의식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의 커다란 몸이 푹 꼬꾸라지며, 억세게 감긴 두 눈을 한 채 차갑고 축축한 진흙 바닥 위에 무력하게 엎어졌다.2층 커튼 뒤에서 자이는 남자가 쓰러지는 바로 그 순간을 목격했다. 커튼 자락을 쥐고 있던 자이의 손이 순식간에 격렬하게 떨려 왔다. 당장이라도 아래로 달려 내려가 그 위태로운 몸을 안아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가슴속에서 요동쳤지만, 카멜리아의 말이 다시금 그녀의 귓가를 쟁쟁하게 울렸다. '절대 쉽게 용서해 주면 안 돼. 더 고통받게 내버려 둬.'"정신 차려야 해…" 자이가 다시 흘러내려 창백한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아내며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가슴이 막힐 듯 답답해 오는 것을 느끼며, 강제로 발걸음을 돌려 창가에서 벗어나 침대 모퉁이에 다시 주저앉았다. "네가 선택한 길이야, 주나. 그 대가는 네가 치러야 해."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요란하게 가빠진 자동차 엔진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주나의 수행비서인 리안이 패닉에 빠져 흙빛이 된 얼굴로 운전석 문을 열고 뛰어 내렸다."대표님!" 이미 바닥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상사를 발견한 리안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주나의 목덜미에 손을 대어 희미하게 뛰는 맥박을 확인했다. "맙소사, 대표님! 몸이 이렇게 차가우시다니!"리안은 잠시 고개를 들어 인기척 하나 없이 꽉 닫혀 있는 자이의 침실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 리안은,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지는 주나의 건장한 몸을 짊어지고 간신히 차 뒷좌석에 실은 뒤, 곧바로 페달을 밟아 가까운 병원을 향해 어둠을 뚫고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