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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앞장을 가린 손

Author: STARGI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00:18:21
“황제의 인장이 맞는지도 확인해.”

설연은 붉은 자국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무강의 이름을 믿지 못하게 된 날, 다른 이름이라고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정문익은 전달표를 새 봉투에 넣었다.

“재가 장부와 대조하겠소. 일부를 보이라는 명과 옥분의 물건으로 꾸미라는 명도 같은 것이 아니오.”

그는 확인할 일을 셋으로 나누었다. 문서의 진위. 생략된 앞장. 보따리와 섞인 경위. 하나가 사실이어도 나머지가 저절로 참이 되지는 않았다.

설연은 그 설명을 끝까지 들었다. 지쳐서 한 사람만 미워하고 싶어질 때가 가장 위험했다.

밖으로 나오자 저녁 바람이 얼굴을 식혔다. 백현은 그녀를 길드 숙소로 데려갔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없는지 두 번 확인했지만 먼 길로 돌리지는 않았다. 설연의 어깨가 점점 굳고 있었다.

“약부터 먹자.”

“아란한테 돈 받았어?”

“반대야. 네가 약 안 먹으면 나한테 청구한대.”

설연은 약그릇을 들었다. 쓴맛에 눈살을 찌푸리자 백현이 말린 살구를 놓았다. 오래 좋아했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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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64화. 방울의 주인은 따로 있다

    설연은 황제보다 청년의 얼굴을 먼저 보았다.그는 일어나 인사했다. 너무 익숙한 동작이었다. 허리를 굽히는 깊이도, 눈을 내리는 시점도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알고 있었다.설연은 그 익숙함이 아팠다.황제가 은방울을 탁자에 놓았다.“기억나느냐.”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설연은 방울을 손대지 않고 보았다. 옆면의 작은 찌그러짐. 어릴 때 설호가 돌계단에 발을 부딪쳤던 자리였다. 붉은 끈은 없었다. 궁의 새 비단 끈으로 바뀌어 있었다.“수문에서 들려주신 것도 이것입니까?”“알아듣는구나.”황제가 미소 지었다.“설씨 집에서 거둔 물건을 보관해 두었지.”방울이 그 손에 있었다는 사실은 설호가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죽은 아이의 물건만으로도 누이를 멈춰 세울 수 있었다. 설연은 자신이 그 소리에 돌아보았던 순간을 떠올렸다.“돌려주세요.”그녀가 말했다.황제의 손가락이 멎었다.“네게?”“주인에게요.”청년의 눈이 올라왔다. 황제는 잠깐 그를 보더니 방울을 그의 앞에 밀었다.“가져라. 네 누이가 달라는구나.”청년은 바로 집지 않았다. 설연도 대신 가져다주지 않았다. 한동안 작은 물건 하나가 세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설연은 방울에 묶인 새 끈을 보았다. 어머니가 쓰던 매듭은 아니었다. 물건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돌보던 손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저 아이의 옷깃과 약그릇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돌아왔다고 그 손들의 자리를 한꺼번에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방울을 가져다주려던 마음을 거두고, 그가 선택할 때까지 기다렸다.아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폐하, 환자의 진료 경과와 약재 계정을 대조하고자 합니다. 처음 치료한 기록부터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황제가 그녀를 보았다.“살아 앉아 있는데도 믿지 못하느냐?”“저는 이름으로 진료하지 않습니다.”짧은 침묵 뒤 황제가 웃었다.“보여 주어라.”관리에게서 온 것은 제본된 경과첩이었다. 정문익은 번호와 보관 도장을 확인하고, 처음 진료한 뒤 인수 의원이 바뀐 날짜를 차례로 읽었다.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63화.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 입

    “지금은 안 가.”설연이 답했다. 평생 떠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킬 수 있는 것부터 말해야 했다.아란은 청년의 곁에 무릎을 낮췄다. 손목을 잡기 전에 허락을 구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맥을 짚고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약을 마지막으로 먹은 건 언제야?”“아침 종이 울리기 전입니다.”관리가 처방첩을 가져왔다. 정해진 복용은 아침과 밤이었다. 흥분할 때 추가로 먹이라는 말은 별도의 관리 지침에 있었고, 의원의 처방 표시는 없었다.아란은 두 종이를 나란히 놓았다.“처방한 의원에게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환자는 거부하고 있고, 숨도 돌아오고 있어요.”관리는 입술을 다물었다. 아란은 약잔을 버리지 않았다. 무엇이 든 약인지 검사할 수 있게 그대로 두고 추가 투약만 멈췄다.청년의 손가락이 탁자 아래에서 펴졌다.설연은 그 움직임을 보고서야 자신도 숨을 참았다는 것을 알았다.“잠들면 무서워?”“깨어났을 때 무엇이 없어졌을지 모르니까요.”그는 물그릇을 바라봤다.“방도 바뀌고, 돌보던 사람도 바뀌고. 어떤 날은 제 이름도 바뀌었습니다.”설연은 정우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그 이름을 처음 들은 자신의 실망이 부끄러웠다. 그에게는 그것도 살아남아 부를 수 있는 이름이었을 텐데.“어떤 이름으로 불러 주면 좋겠어?”청년이 처음으로 그녀를 오래 보았다.“아직 부르지 마십시오.”그 말에 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내밀고 싶었으나 무릎 위에 두었다.정문익이 자신은 약재 계정과 환자가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청년은 듣다가 물었다.“확인하고 나면 무엇을 하실 건데요?”설연이 대답하려 하자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저를 데려가겠다고 하지 마세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들 말했습니다.”그녀는 준비한 말을 삼켰다.“그럼 네가 물어봐. 나부터 확인해.”청년은 정문익의 붓을 보았다. 설연은 그 시선을 따라가고 나서야 이 대답들도 관청의 종이에 남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잠시 멈춰 달라고 청하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62화. 나를 찾는 사람

    설연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아란이 팔을 붙잡았다. 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너무 빨리 일어난 몸이 기울었기 때문이었다.“그 환자가 내 이름을 알아?”전갈을 가져온 내관은 청우재 관리가 쓴 답을 펼쳤다. 계정 조회의 사유를 환자에게 알리자 직접 면담을 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서명란에는 설호가 아닌 다른 이름이 있었다.정우.설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이름을 바꿨을 수도 있어.”아란이 말했다.“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알아.”설연은 종이를 접지 못했다. 알고 있다는 말로 손의 떨림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면담은 이튿날 아침으로 정해졌다. 황제는 허락했다. 정문익의 입회와 아란의 동행을 붙이고, 환자의 거처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은 금했다.너무 순순한 허락이었다.백현은 허가서의 뒷면까지 읽었다.“열쇠를 저쪽에서 주면 문턱 아래도 봐야 해.”설연이 그를 보았다.“함정인 줄 알아.”“알면서 혼자 가지만 않으면 돼.”아홉째 날 아침, 청우재의 문이 열렸다. 백현은 면담인에 포함되지 않아 바깥 접수처에서 기다렸다. 대신 드나드는 약 상자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감찰 서리와 함께 있었다.안쪽 정원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환자를 위한 의자마다 볕이 들었지만, 길이 갈라지는 곳마다 시위가 있었다. 담은 높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담 위로 손이 닿기 전에 화살이 닿을 자리였다.설연은 창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셌다.아란이 옆구리를 가볍게 건드렸다.“환자 보러 왔어. 건물 해체하러 온 거 아니고.”“세기만 했어.”“그게 시작이잖아.”정문익은 듣지 못한 척 앞서 걸었다. 다만 자신의 서리에게 출입 시각을 적으라고 했다.면담실 문 앞에서 관리가 칼을 맡기라고 했다. 설연은 허리의 칼을 풀었다. 수령표를 받아 품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를 놓는 손보다 문고리를 잡는 손이 더 떨렸다.방 안에는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어린아이가 아니었다.설연은 그 사실 하나에 발을 멈췄다. 동생이 살아 있다면 열여덟 살이라는 것을 수없이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61화. 살아 있다는 말 대신

    설연은 다음 달이라는 세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 약은 어디로 갔어.”목소리가 낯설었다. 울지도 않았는데 목이 잠겼다. 아란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책 아래쪽을 짚었다. 수령처는 이름 대신 배송 번호로 적혀 있었다.“이 번호부터 맞춰 보자.”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궁의 모든 문을 열어젖히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 나면 남은 자들이 사람부터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회수 담당 내관이 책을 가져가려 했다. 정문익의 서리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분실 시도와 연결된 부분입니다. 해당 쪽을 입회하에 베끼고 원본은 봉해 주십시오.”내관은 상급자에게 확인을 보냈다. 답이 올 동안 설연은 의자에 앉았다. 한 번도 편해 본 적 없는 등이었지만 지금은 다리가 먼저 버티지 못했다.아란이 물을 내밀었다.“마셔.”“지금은…….”“살아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찾는 사람도 살아 있어야지.”설연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 말 속에 살아 있다는 단정이 없어서 오히려 믿을 수 있었다.해가 기울 무렵 제한된 사본 작성이 허용됐다. 다른 환자의 이름은 가리고 설호의 계정과 배송 번호만 남겼다. 원본을 가져간 사람, 봉인한 사람, 사본을 받은 사람을 모두 기록했다.정문익은 반역 사건의 가족 명단도 확인하게 했다. 약을 받는 설호가 설연의 동생과 같은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그날 밤 돌아온 답에서 번호는 일치했다.설씨 대감의 둘째 자식, 설호. 생모를 적은 칸은 설연의 어머니와 달랐다. 어른들은 종이에 선을 그어 두 아이를 나눴지만, 어린 설호는 언제나 설연의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누나가 있는 쪽이 따뜻하다며.설연은 기록을 읽다가 눈을 감았다. 이제야 동생이 이복이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릴 만큼, 그 선은 오래 잊고 살았다.“시신을 확인한 사람은?”그녀가 물었다.정문익이 별지를 넘겼다.군대가 함께 죽었다고 보고했을 뿐, 설호의 시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었다는 말도 믿을 수 없게 됐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60화. 죽은 아이의 다음 달

    설연은 상자 뚜껑을 더 열지 않았다.“여기서부터 아무도 옮기지 마.”서리는 상자를 내려놓은 자세로 굳었다. 빈칸에는 묶음 끈만 남아 있었다. 책을 뺀 뒤 끈을 다시 눌러 놓은 모양이었다.“처음부터 없었습니까?”아란이 물었다.“덕원상단에서 받을 때는 세 권이었습니다.”서리가 인수표를 꺼냈다. 중간 문에서 봉인을 확인한 사람도 따로 있었다. 설연은 궁 안을 무턱대고 뛰지 않았다. 누가 마지막으로 만졌는지부터 물었다.“회수 내관이 먼저 와서 왕실 것인지 확인했습니다.”방 안의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나는 상자를 열지 않았소.”설연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서로 같은 사람을 말하는지부터 확인해.”옥분이 문으로 갔다. 바깥 시위에게 방금 상자를 확인하고 나간 내관을 불러 달라고 했다. 시위는 마당 건너를 가리켰다. 회색 꾸러미를 낀 사람이 서쪽 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저 사람입니다!”서리가 외쳤다.설연이 문턱을 넘었다. 뛰는 소리에 사내가 돌아보았다. 손에 든 꾸러미가 옆구리로 감춰졌다. 시위가 멈추라고 외치자 그제야 달리기 시작했다.설연은 뒤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회랑 중간의 계단을 가로질러 서쪽 문 앞에 먼저 닿았다. 숨이 가빠 어깨가 저렸다. 사내가 옆길로 꺾자 그녀는 길가의 세탁 장대를 밀어 통로에 뉘었다.사내의 발이 걸렸다. 꾸러미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그는 품에서 칼을 꺼내려 했다. 설연은 발로 손목을 눌렀다. 힘으로 오래 버틸 생각은 하지 않았다.“여기!”뒤따라온 시위가 사내의 팔을 잡았다. 설연은 한 발 물러나 벽에 등을 댔다. 왼손의 붕대가 당겼다. 혼자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이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아란이 꾸러미를 받아 매듭을 풀었다.“또 뛰었지.”“이번에는 네 장부야.”“내 장부는 어깨가 없어. 부러져도 내가 붙이면 돼.”옥분이 옆에서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삼켰다. 설연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란은 화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만졌지만 힘은 조심스러웠다.책은 젖지 않았다.

  • 내원수의 목숨은 내 것   59화. 네가 돌아오면

    “목록을 먼저 만들게 해 달라고 해.”설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가져가는 걸 막을 권한이 없더라도, 무엇을 가져갔는지는 남겨야 해.”정문익은 이미 같은 요구를 적고 있었다. 백현은 감찰청에 남아 인계될 상자의 수와 봉인을 확인하기로 했다. 설연은 아란의 기록이 있는 대기소로 향했다.같은 시각, 서측 별당의 문이 열렸다.무강은 황제가 직접 왔다는 말을 듣고 천천히 일어났다. 오래 앉아 있던 다리가 저렸다. 허리에는 더 이상 수로 인장이 없었다. 황제의 눈이 비어 있는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이제야 몸이 조금 가벼워 보이는구나.”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황제는 두 사람 사이에 찻잔을 놓게 했다. 내관이 물러간 뒤에도 감찰 관원은 문밖에 남았다. 황제는 그것이 거슬린다는 듯 문을 보다가 웃었다.“형제끼리 차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구나.”“폐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네가 돌아오면 거둘 수 있지.”무강은 찻잔에 손대지 않았다.황제가 종이를 내밀었다. 배에서 잘못 본 일로 소란을 피웠다고 쓰라는 것이었다. 옥분에게 강요한 서약도 평범한 근무 약속이었다고 적혀 있었다.“그날 네가 많이 아팠다는 건 모두 안다.”“그래서 잘못 보았다고 적으라는 겁니까.”“네가 본 것을 조금 덜 단정하라는 말이다.”무강은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 칼을 들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를 죽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틀렸다고 쓰면 사람들은 다시 배에 태워질 수 있었다.황제는 기다렸다.그가 원하는 것은 그 인장보다 오래된 것이었다. 무강이 어릴 때처럼 자신을 올려다보며 다음 일을 물었으면 했다. 다친 손을 숨긴 채 형이 화났는지 살피던 얼굴을, 황제는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했다.“그 아이는 너를 용서하지 않았지.”무강의 눈이 올라왔다.황제는 그 반응이 반가웠다. 아직 닿는 곳이 있었다.“짐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도 곁에 둘 수 있다. 저 아이가 그럴 수 있을까?”무강이 종이를 내려놓았다.“용서받으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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