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설연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아란이 팔을 붙잡았다. 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다. 너무 빨리 일어난 몸이 기울었기 때문이었다.“그 환자가 내 이름을 알아?”전갈을 가져온 내관은 청우재 관리가 쓴 답을 펼쳤다. 계정 조회의 사유를 환자에게 알리자 직접 면담을 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서명란에는 설호가 아닌 다른 이름이 있었다.정우.설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이름을 바꿨을 수도 있어.”아란이 말했다.“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알아.”설연은 종이를 접지 못했다. 알고 있다는 말로 손의 떨림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면담은 이튿날 아침으로 정해졌다. 황제는 허락했다. 정문익의 입회와 아란의 동행을 붙이고, 환자의 거처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일은 금했다.너무 순순한 허락이었다.백현은 허가서의 뒷면까지 읽었다.“열쇠를 저쪽에서 주면 문턱 아래도 봐야 해.”설연이 그를 보았다.“함정인 줄 알아.”“알면서 혼자 가지만 않으면 돼.”아홉째 날 아침, 청우재의 문이 열렸다. 백현은 면담인에 포함되지 않아 바깥 접수처에서 기다렸다. 대신 드나드는 약 상자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감찰 서리와 함께 있었다.안쪽 정원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환자를 위한 의자마다 볕이 들었지만, 길이 갈라지는 곳마다 시위가 있었다. 담은 높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담 위로 손이 닿기 전에 화살이 닿을 자리였다.설연은 창과 기둥 사이의 거리를 셌다.아란이 옆구리를 가볍게 건드렸다.“환자 보러 왔어. 건물 해체하러 온 거 아니고.”“세기만 했어.”“그게 시작이잖아.”정문익은 듣지 못한 척 앞서 걸었다. 다만 자신의 서리에게 출입 시각을 적으라고 했다.면담실 문 앞에서 관리가 칼을 맡기라고 했다. 설연은 허리의 칼을 풀었다. 수령표를 받아 품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를 놓는 손보다 문고리를 잡는 손이 더 떨렸다.방 안에는 젊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어린아이가 아니었다.설연은 그 사실 하나에 발을 멈췄다. 동생이 살아 있다면 열여덟 살이라는 것을 수없이
설연은 다음 달이라는 세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이 약은 어디로 갔어.”목소리가 낯설었다. 울지도 않았는데 목이 잠겼다. 아란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책 아래쪽을 짚었다. 수령처는 이름 대신 배송 번호로 적혀 있었다.“이 번호부터 맞춰 보자.”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궁의 모든 문을 열어젖히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 나면 남은 자들이 사람부터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회수 담당 내관이 책을 가져가려 했다. 정문익의 서리가 손을 내밀어 막았다.“분실 시도와 연결된 부분입니다. 해당 쪽을 입회하에 베끼고 원본은 봉해 주십시오.”내관은 상급자에게 확인을 보냈다. 답이 올 동안 설연은 의자에 앉았다. 한 번도 편해 본 적 없는 등이었지만 지금은 다리가 먼저 버티지 못했다.아란이 물을 내밀었다.“마셔.”“지금은…….”“살아 있는 사람을 찾으려면 찾는 사람도 살아 있어야지.”설연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 말 속에 살아 있다는 단정이 없어서 오히려 믿을 수 있었다.해가 기울 무렵 제한된 사본 작성이 허용됐다. 다른 환자의 이름은 가리고 설호의 계정과 배송 번호만 남겼다. 원본을 가져간 사람, 봉인한 사람, 사본을 받은 사람을 모두 기록했다.정문익은 반역 사건의 가족 명단도 확인하게 했다. 약을 받는 설호가 설연의 동생과 같은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그날 밤 돌아온 답에서 번호는 일치했다.설씨 대감의 둘째 자식, 설호. 생모를 적은 칸은 설연의 어머니와 달랐다. 어른들은 종이에 선을 그어 두 아이를 나눴지만, 어린 설호는 언제나 설연의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누나가 있는 쪽이 따뜻하다며.설연은 기록을 읽다가 눈을 감았다. 이제야 동생이 이복이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릴 만큼, 그 선은 오래 잊고 살았다.“시신을 확인한 사람은?”그녀가 물었다.정문익이 별지를 넘겼다.군대가 함께 죽었다고 보고했을 뿐, 설호의 시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죽었다는 말도 믿을 수 없게 됐
설연은 상자 뚜껑을 더 열지 않았다.“여기서부터 아무도 옮기지 마.”서리는 상자를 내려놓은 자세로 굳었다. 빈칸에는 묶음 끈만 남아 있었다. 책을 뺀 뒤 끈을 다시 눌러 놓은 모양이었다.“처음부터 없었습니까?”아란이 물었다.“덕원상단에서 받을 때는 세 권이었습니다.”서리가 인수표를 꺼냈다. 중간 문에서 봉인을 확인한 사람도 따로 있었다. 설연은 궁 안을 무턱대고 뛰지 않았다. 누가 마지막으로 만졌는지부터 물었다.“회수 내관이 먼저 와서 왕실 것인지 확인했습니다.”방 안의 내관이 고개를 들었다.“나는 상자를 열지 않았소.”설연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서로 같은 사람을 말하는지부터 확인해.”옥분이 문으로 갔다. 바깥 시위에게 방금 상자를 확인하고 나간 내관을 불러 달라고 했다. 시위는 마당 건너를 가리켰다. 회색 꾸러미를 낀 사람이 서쪽 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저 사람입니다!”서리가 외쳤다.설연이 문턱을 넘었다. 뛰는 소리에 사내가 돌아보았다. 손에 든 꾸러미가 옆구리로 감춰졌다. 시위가 멈추라고 외치자 그제야 달리기 시작했다.설연은 뒤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회랑 중간의 계단을 가로질러 서쪽 문 앞에 먼저 닿았다. 숨이 가빠 어깨가 저렸다. 사내가 옆길로 꺾자 그녀는 길가의 세탁 장대를 밀어 통로에 뉘었다.사내의 발이 걸렸다. 꾸러미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그는 품에서 칼을 꺼내려 했다. 설연은 발로 손목을 눌렀다. 힘으로 오래 버틸 생각은 하지 않았다.“여기!”뒤따라온 시위가 사내의 팔을 잡았다. 설연은 한 발 물러나 벽에 등을 댔다. 왼손의 붕대가 당겼다. 혼자 끝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이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아란이 꾸러미를 받아 매듭을 풀었다.“또 뛰었지.”“이번에는 네 장부야.”“내 장부는 어깨가 없어. 부러져도 내가 붙이면 돼.”옥분이 옆에서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삼켰다. 설연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숙였다. 아란은 화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만졌지만 힘은 조심스러웠다.책은 젖지 않았다.
“목록을 먼저 만들게 해 달라고 해.”설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가져가는 걸 막을 권한이 없더라도, 무엇을 가져갔는지는 남겨야 해.”정문익은 이미 같은 요구를 적고 있었다. 백현은 감찰청에 남아 인계될 상자의 수와 봉인을 확인하기로 했다. 설연은 아란의 기록이 있는 대기소로 향했다.같은 시각, 서측 별당의 문이 열렸다.무강은 황제가 직접 왔다는 말을 듣고 천천히 일어났다. 오래 앉아 있던 다리가 저렸다. 허리에는 더 이상 수로 인장이 없었다. 황제의 눈이 비어 있는 그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이제야 몸이 조금 가벼워 보이는구나.”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황제는 두 사람 사이에 찻잔을 놓게 했다. 내관이 물러간 뒤에도 감찰 관원은 문밖에 남았다. 황제는 그것이 거슬린다는 듯 문을 보다가 웃었다.“형제끼리 차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구나.”“폐하께서 내리신 명입니다.”“네가 돌아오면 거둘 수 있지.”무강은 찻잔에 손대지 않았다.황제가 종이를 내밀었다. 배에서 잘못 본 일로 소란을 피웠다고 쓰라는 것이었다. 옥분에게 강요한 서약도 평범한 근무 약속이었다고 적혀 있었다.“그날 네가 많이 아팠다는 건 모두 안다.”“그래서 잘못 보았다고 적으라는 겁니까.”“네가 본 것을 조금 덜 단정하라는 말이다.”무강은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 칼을 들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를 죽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틀렸다고 쓰면 사람들은 다시 배에 태워질 수 있었다.황제는 기다렸다.그가 원하는 것은 그 인장보다 오래된 것이었다. 무강이 어릴 때처럼 자신을 올려다보며 다음 일을 물었으면 했다. 다친 손을 숨긴 채 형이 화났는지 살피던 얼굴을, 황제는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했다.“그 아이는 너를 용서하지 않았지.”무강의 눈이 올라왔다.황제는 그 반응이 반가웠다. 아직 닿는 곳이 있었다.“짐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도 곁에 둘 수 있다. 저 아이가 그럴 수 있을까?”무강이 종이를 내려놓았다.“용서받으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황제
백현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동림상단.등잔 부속을 옮겼고, 연락책을 풀어 주는 보증금이라던 돈을 받아 갔으며, 이번에는 침전의 약을 운반한 이름이었다.“손부터 빼.”설연이 말했다. 배수로 덮개 사이에 그의 손톱이 걸려 있었다. 백현은 이를 악물고 손을 뺐다. 그녀가 허리띠를 놓자 두 사람 모두 바닥에 주저앉았다.감찰 서리는 젖은 장부를 마른 포대 위에 펼쳤다. 창고지기와 순라가 보는 앞에서 쏟아진 책의 수를 셌다. 수레의 사내는 골목으로 달아났고, 칼을 들이민 자는 붙잡혔다. 회수하라는 명이 진짜였는지와 칼을 쓰라는 지시가 있었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했다.백현은 사내를 보며 물었다.“동림상단 소속인가?”그는 입을 다물었다.허리에서 나온 품삯 수령표가 그 대신 상단 이름을 보여 주었다. 그것만으로 명령자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감찰 서리는 표를 다른 봉투에 넣었다.설연은 장부의 지워진 칸을 살폈다. 환자 이름은 긁어냈으나 배송 묶음 번호와 상단의 결제 번호는 남아 있었다. 같은 비용을 받으려면 지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그녀가 백현에게 말했다.“돈 받으려다 남긴 자국이네.”“내가 평소에 영수증을 사랑하는 이유야.”“지금은 사랑 고백할 때 아니야.”그가 고개를 들었다.“아는데, 가장 안전한 상대라서.”설연은 웃지 못하다가 짧게 숨을 뱉었다. 백현은 그 소리만 듣고 다시 장부를 눌렀다. 젖은 종이가 말려들기 전에 눌러 두어야 했다.날이 밝자 여덟째 날이었다. 보존된 상자는 감찰청으로 들어갔다. 귀비의 친정 덕원상단이 약을 납품하고 동림상단이 궁까지 옮겼다는 관계가 거래 장부로 확인됐다. 창고를 지킨다던 자들이 누구의 돈을 받았는지 추적할 길이 생겼다.백현은 돌아온 연락책 셋을 서로 다른 방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취조 없이 풀려났다고 했다. 셋째는 나가기 전 서류를 날랐던 사내를 기억했다.“이름은 모르겠습니다. 형조 문서방이라고 했습니다.”백현은 먼저 얼굴을 설명하게 했다. 그 뒤 정문익이 보관한 문상의 인상 기록과 대조했다
설연은 책을 정문익에게 넘기고 귀비전 시녀를 보았다.“회수하면 어디로 가는데.”“침전 물품방입니다. 묵은 납품표를 새 장부로 바꾼다고 했습니다.”백현이 겉옷을 집어 들었다. 장부를 옮긴다고 꼭 없애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궁에 들어가면 다시 보기 어려워진다. 지금 창고에 있을 때 확인해야 했다.귀비가 내준 열람 허가에는 친정 창고의 원장부도 포함돼 있었다. 정문익은 감찰 서리와 순라 둘을 동행시켰다. 길을 떠나기 전 회수 시각과 봉인 보존을 요구하는 전갈도 먼저 보냈다.설연과 백현이 창고에 닿았을 때 장부 상자는 이미 마당에 나와 있었다.아란은 장석의 경과를 인계하느라 뒤에 남았다. 다친 사람이 둘이나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혀를 찼지만 붙잡지는 않았다. 대신 돌아오면 어깨와 손을 다시 보겠다고 못 박았다.창고지기는 귀비의 인장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장부가 있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먼지와 말린 약 냄새가 났다. 백현은 회수 예정 상자의 번호를 먼저 적었다.“여기서 읽고, 같은 것을 봉하겠습니다.”감찰 서리가 말했다.창고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리의 열쇠를 놓지 못했다.설연이 그 손을 보았다.“무슨 말을 들었어?”“아무도 들이지 말라고…….”바깥문이 닫혔다.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창고지기가 몸을 돌리자 문 너머에서 누군가 외쳤다.“안에 있는 자들이 장부를 훔쳤다! 뒤쪽으로 못 나가게 막아!”백현이 문에 붙었다.“감찰 입회 중이다. 문을 열어라!”대답 대신 마당에서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밖을 지키던 순라 둘과 회수 인원들이 맞선 모양이었다. 감찰 서리는 창고지기의 열쇠를 받아 문 안쪽 자물쇠를 찾았다.밖에서 잠그는 문이었다. 창고지기가 문을 두드리며 자기 이름을 외쳤다. 밖의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백현은 서리에게 귀비의 허가서를 품 안에 넣으라고 했다. 빼앗기면 여기 들어온 이유부터 훔치러 온 것으로 바뀔 수 있었다. 서리는 문서 위에 겉옷을 단단히 여몄다. 그 움직임을 본 설연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