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 귀걸이를 낀 사람이 너무 예뻐서 그런가 봐요! 아이고, 어쨌든 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꼭 하나 사야 속이 풀릴 것 같아요.”최화자가 연신 말을 이었고, 강서원은 짧게 대답했다.“그래요, 잊지 않을게요.”“에휴, 우리 아들도 그런 안목이 있었으면 좀 좋아요? 그렇게 예쁜 루비 귀걸이 한 쌍을 척하고 사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참, 사모님은 복도 많으시죠? 아들 셋이 다 하나같이 잘나가니 엄마 노릇도 안 힘드시겠어요.” “루비가 갖고 싶으면 한마디만 하시면 되잖아요? 설마 사모님이 말씀하시는데 막내가 못 들은 척할 수 있겠어요?”최화자가 아부를 이어가자, 겉으로는 변함없는 표정을 짓던 강서원이 속으로 싸늘하게 웃기 시작했다. ‘말만 하면 줄 거라고? 웃기지 마. 그 귀걸이, 여자 친구 엄마 비위 맞추려고 갖다 바친 거야.’‘옛날엔 아들을 낳느니, 차라리 찐 고기를 낳는 게 낫다는 말을 들으면 웃기만 했는데...’‘지금 보니, 웃긴 건 그 말이 아니라 나였어.’‘차라리 찐 고기는 먹을 수라도 있지, 아들은 대체 뭘 해? 엄마 속만 뒤집지!’...헛웃음만 남긴 채 시커먼 얼굴로 고옥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원은 말도 없이 계단을 올랐다.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조기봉이 그걸 보고 눈을 굴리더니 곧 따라 올라가며 말했다.“왜 그래? 누가 속이라도 썩였어?”강서원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걸었다.“오늘 영화제 가서 연예인 본다고 하지 않았어? 연예인 많이 왔더라?”조기봉이 일부러 말을 붙이자, 강서원의 발이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허, 연예인은 못 보고... 당신 아들만 봤어요.”“우리 아들?”조기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둘째도 갔어? 걔 지난 달에 그 여자 연예인이랑 끝났다며?”강서원은 또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조기봉은 황급히 덧붙였다.“당신이 연예인들이랑 얽히는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둘째도 이젠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했잖아...”“둘째가 아니고...”강서원이 참다못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마
“네, 그럼 금방 갈게요.”재석은 짧게 한 마디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재석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잠시 후에 정은이가 날 보면... 깜짝 놀라겠지?’‘...’재석이 컨벤션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영화제 개막식이 막 끝나, 기자들과 참석자들이 하나둘씩 행사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그는 서쪽 출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내린 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도착했어요.”[아, 재석아! 미안하다. 아까 기사분이 차 수리를 막 마쳤다고 해서 그 차를 타고 출발하던 참이야. 막 너한테 연락하려 했는데, 네가 먼저 전화했네. 괜히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네.]“괜찮아요. 집에 가서 푹 쉬세요.”[그래, 우리 아들, 고마워.]전화를 끊은 재석은 곧바로 차에 타지 않았다. 대신 차 옆에 기대어 서서 차 키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그 모습만 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누가 봐도 배우 아니야?’ 할 만큼 멋졌다.실제로 재석의 근처 지나던 파파라치 한 명은 그를 유심히 보다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일반인이네...? 아깝다.’하지만 재석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아니면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건지,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여 핸드폰만 들여다봤다.[자기야, 지금 내가 어디 있을 것 같아?][어딘데요?]정은의 답장도 빠르게 들어왔다. 재석은 행사장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고, 곧이어 웃으며 메시지를 덧붙였다. [여긴 갑자기 왜 왔어요?]재석의 메시지를 받은 정은은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널 데리러 왔지.]잠시 뒤, 행사장 안에서 소진헌, 이미숙, 그리고 정은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정은아! 여기야!”재석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재석을 본 정은의 얼굴엔 금세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진짜 왔네...’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조 교수 참 성의 있네. 밤늦게 직접 운전해서 데리러 오다니.”이미숙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농담처럼 말했다.“우릴
“강 대표님이요?”“맞아요. 만성 엔터 최대 투자자잖아요.”부감독이 조용히 대답했다.이미숙은 조금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아는 사이니까 인사하러 온 거겠지. 괜히 깊이 생각할 필요 없어.’부감독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혹시 실검 보셨어요?”“실검? 전 거의 인터넷을 안 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부감독은 살짝 당황한 눈빛으로 이미숙을 쳐다봤다.‘이 시대에 인터넷을 안 한다고? 진짜...? 헐...’하지만 그 감정은 단 몇 초 만에 감춰졌다.“선생님, 지금 실검에 올라왔어요! 그것도 좋은 이슈로요!”오늘 밤 주연인 오이영도 실검 두 개에 간신히 올랐는데, 이미숙은 무려 세 개, 그것도 전부 오이영보다 순위가 높았다.부감독은 은근슬쩍 이미숙을 다시 쳐다봤다.‘진짜... 예쁘긴 하셔. 요즘 같은 비주얼 퍼스트 시대에...’‘이렇게 생기셨으면 언제든 주목받지... 완전 그림이야.’“선생님, 오늘 귀걸이가 정말 예쁘네요.”“그래요? 고마워요.”오늘 저녁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귀걸이 얘기를 들은 이미숙은, 홀로 묵묵히 생각했다. 오늘 저녁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귀걸이 얘기를 들은 이미숙은, ‘이 귀걸이... 그렇게 눈에 띄는 건가?’...“사모님, 다녀오셨어요!”최화자가 반갑게 인사하자, 강서원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강서원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복잡했다.‘뭔가... 이상해. 느낌이 영 찝찝해.’그때, 최화자가 갑자기 일어나며 말했다.“사모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강서원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아... 진짜 화장실을 다녀온 건 아니어서,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데...’“어... 저도 잘 몰라요. 스태프분께 여쭤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럼 그렇게 할게요.”최화자가 자리를 비운 후에도 강서원은 자꾸 마음이 불편했다. ‘이대로 넘어가도 되는 걸까? 그냥 감으로만 판단할
“사모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거리가 멀어서 잘 안 보이긴 하는데, 피전 블러드라면 뭐든 예쁠 거예요.”“그 말 들으니까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하네요. 집에 옐로우랑 블루 사파이어는 있는데, 루비는 없거든요.”“나중에 같이 경매장 한 번 가봐요. 마음에 쏙 드는 거, 어쩌면 딱 만날 수도 있잖아요.”“정말요? 좋아요, 꼭 같이 가요!”“...”이후로도 무대에는 여러 스타와 제작진이 오르내렸지만, 강서원의 시선은 쉽게 고정되지 않았다.‘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니 집중이 안 돼...’갑자기 강서원이 벌떡 일어서자, 옆에 앉아 있던 최화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사모님, 왜 그러세요?”“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말을 마치고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이미숙은 주 제작진과 함께 다시 객석으로 돌아왔다.자리에 앉은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그녀 옆에 있던 부감독이 스태프에게 불려 나갔다.그리고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앉았다.고개를 돌린 이미숙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안녕하세요, 절 기억하시겠어요?”강서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이미숙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기억이 떠올랐다.“여사님! 맞죠?”1년 전, 두 사람은 같은 부티크에서 같은 원피스를 동시에 마음에 들어 했었다.결국 그 원피스는 이미숙이 먼저 구매하게 되었고, 대신 강서원에게 또 다른 추천 아이템을 권했다.강서원은 그 드레스를 입어보고 단번에 반해 버렸다.그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아까 무대 위에 계실 땐, 긴가민가했어요. 조금 헷갈리더라고요.” “저도 여사님을 보고 한참 생각했어요. 여긴 혹시 일이 있어서 오신 건가요?”“그런 셈이죠. 작가님 소설, 너무 재밌게 봤어요.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사서 읽었답니다.”“감사해요.”“사실 오늘 오기 전에도, 작가님을 본 적 있어요.”이미숙은 놀라며 물었다.“정말요? 언제요?
나진원이 말을 이어갈 때,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대형 스크린 카메라는 이미숙을 정확히 비췄다.이미숙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자연스럽게 눈을 맞췄다. 시선 하나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나진원의 말이 끝나자, 이미숙은 차분하게 손뼉을 치며 박수를 보냈다.이미숙의 손짓, 미소, 그리고 여유 있는 표정은 정말로 ‘배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렇게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단지 시나리오 작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현장의 대형 스크린은 이미숙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췄고, 당연하게도 그녀의 귓불에 달린 두 개의 루비 귀걸이도 화면 가득 잡혔다.1열 좌석 어딘가.“저 피젼 블러드 루비 품질 정말 좋네요. 나도 저 정도 급은 못 껴봤는데... 어느 브랜드 협찬인가요?”옆에 앉아 있던 여성이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녀는 강서원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사모님, 워낙 좋은 거 많이 보셨으니까 감이 오시죠? 어디 건지 알겠어요?”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서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 위의 어느 한 곳을 주시한 채,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사모님?”다시 한번 부르자, 강서원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시선을 돌렸다.“미안해요, 뭐라고 하셨죠?”이런 영화제에서 1열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작품을 이끌어 온 배우들이나 제작진, 혹은 영화에 투자한 자본가들이었다.강서원은 몇 년 전부터 한 영화 제작사에 투자를 시작했다. 드라마와 영화 배급을 전담하는 회사였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그런 일을 하려면 꽤 백이 필요한 법이라는 걸.그리고 강서원, 아니 조씨 가문은 그 ‘백’이 넘쳐흘렀다. 덕분에 그 회사는 몇 년 만에 고속 성장했고, 심지어 상장까지 이뤄냈다.오늘 강서원은 그 회사의 주요 투자자로서 영화제에 참석한 것이었다.옆자리에서 말을 걸었던 여성은 최화자이며, 평소 강서원과 자주 어울리는 사모님 중 한 명으로, 오늘도 그녀의 인맥 덕에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할
“저 사람 누구야? 배우야?”“에서 나왔던 조연인가?”“분위기 좋은데... 근데 자리 배치가 좀 이상하지 않아? 왜 남주랑 팔짱을 끼고 있지?”“배우는 아닌 것 같은데... 얼굴이 좀 생소한데?”“영화 스태프 중 한 명인가? 감독이랑 대칭으로 서 있으니까 부감독이나 제작자 쪽일지도? 근데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전혀 스태프 같지 않은데...”“그런 건 상관없고, 예쁘면 장땡이지.”“저 귀걸이 봤어? 야오송웨의 목에 걸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 더 빛나더라. 도대체 무슨 재질이야?”“루비 같은데... 그것도 최상급 피젼 블러드인 것 같아...”“...”정은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우리 엄마 진짜 예뻐요!”소진헌은 이미 넋이 나간 채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들었어도 그 표정은 마치 첫사랑을 마주한 소년처럼 설렘이 가득했다.정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아빠, 엄마한테 반했어요?”“아빠!”“어? 뭐라고?”소진헌은 정신이 번쩍 들어 정은을 바라봤다.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아빠, 침 흘리고 있었어요.”소진헌은 얼른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야, 이 녀석이...”이때, 스태프 한 명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물었다.“혹시 소진헌 선생님과 소정은 씨 되시나요?”“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일로...?”소진헌이 물었다.“다름이 아니라, 팀 감독님께서 두 분을 초청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안에 자리 마련해 두셨습니다.”“우리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요?!”소진헌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네, 물론이죠. 게다가 앞쪽 중앙에 좋은 자리로 준비해 두었습니다.”부녀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고, 자리에 앉았다. 정말로 앞쪽에 위치한 명당자리였다. 시야가 탁 트여 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이미숙과 주연 배우들이 앉아 있는 자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그때, 마치 부녀의 시선을 느낀 듯, 이미숙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살짝 눈을 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