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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8화

Author: 십일
동이 트며 새로운 하루가 밝아왔다.

아침 햇살이 바다 위로 부드럽게 흩뿌려지고,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재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순간 멍해졌다.

잠깐의 혼란과 당혹감이 스쳤다.

“깼어요! 깼어요!!”

전해산 교수의 다소 과장된 목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여러 의사가 우르르 몰려와, 재석을 둘러싸고 검진을 시작했다.

“정은... 정은이는 어디 있습니까?”

재석은 상반신을 억지로 일으키며, 의사들의 사이로 전해산을 똑바로 바라봤다.

“환자분, 지금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대로 누워 계셔야 합니다!”

그러나 재석은 말을 듣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움직이면...”

의사가 다급히 말리자, 전해산이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은이는 괜찮습니다. 조 교수님처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정은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위층에 있습니다.”

전해산은 솔직하게 말했다.

재석은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내려올 기세였으나, 다친 다리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전해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 교수님, 이제 성인이지 않습니까? 제발 좀 침착하게 행동하십시오! 그 상황에서 정은이는 목숨을 걸고 조 교수님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 교수님이 이렇게 치료를 거부하면... 정은이가 그런 모습 보길 원하겠습니까?”

그 마지막 한마디가 재석을 멈추게 했다.

그는 전해산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정은이는... 안전합니까?”

전해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안전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재석은 천천히 몸을 눕혔다.

그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은이와 갇혀 있던 그때, 몸은 의식을 잃었어도 정신은 또렷했다.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지만 정은의 절망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끝내 쓰러지기 직전, 그녀가 내뱉은 그 낮고 애틋한 한마디.

‘바보...’

의사들은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링거를 교체해 주었다.

“다리 상처는 이미 소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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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21화

    “여긴 왜 왔어?”강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저요?”시호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당연히 병문안이죠.”“나가.”강서원은 눈가의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낮고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너 같은 사람 환영 안 해.”시호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미소를 유지했다.“아드님 돌아가셨는데도 기력이 대단하시네요. 저는 순수한 마음으로 온 겁니다. 사모님께서 너무 상심하실까 봐 걱정돼서요.”이 순간에 재석을 입에 올리는 건, 강서원의 심장에 바늘을 꽂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꺼져. 당장 꺼져!”시호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화내지 말라니까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으십니까.”강서원은 시호를 똑바로 노려봤다.겉모습 너머에 숨겨진 속셈과 목적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강서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너... 대체 누구야?”“처음 만났을 때부터 넌 계산적이었어. 내 신뢰를 얻으려고 접근했지. 그리고 두 번째 만남도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강서원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왜 일부러 나한테 접근했어? 대체 뭘 원해?”“아이고, 들켜버렸네요.”시호는 과장된 표정으로 놀란 척하며 말했다.말투에는 조롱과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이미 조재석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소정은은 조사받으러 끌려갔고... 사모님도 곧 끝이니까요.”“조씨 집안은 이제 와르르 무너질 겁니다. 몰락은 시간문제죠.”“조씨 집안이 그렇게 미워?”시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웃음은 점점 날카로워졌다.“조씨 집안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사모님 때문입니다. 모든 원인은 당신이에요, 강서원 사모님!”“그러니까...”강서원은 천천히, 한 글자씩 눌러 말했다.“네가 증오하는 건 조씨 집안이 아니라... 나라는 거지.”그 순간, 시호의 미소가 사라졌다.시호는 병상 앞으로 성큼 다가오며 분노에 가까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제가 사모님을 미워하면 안 됩니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20화

    강서원이 쓰러지는 순간, 고요하던 바다 위로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오는 것 같았다.피할 틈도 없이, 감당할 시간조차 없이, 재석의 죽음이라는 현실이 모두의 머리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민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다리가 풀린 듯 비틀거리며 반걸음 뒤로 물러났고, 조금만 더 흔들렸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아니야... 말도 안 돼... 조재석 교수님이잖아... 그런 사람이 어떻게 죽어...”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단 하나였다.‘조 교수님이 돌아가셨으면... 정은 언니는 어떡해?’‘정은 언니도... 죽는 거 아니야?’“난 못 믿어!”민지는 그렇게 외치며 수술실 쪽으로 달려들려 했다.서준은 있는 힘을 다해 민지를 붙잡아 끌어당겼다.“여보, 정신 차려!”“여보, 당신도 안 믿지? 그렇지?”서준은 고개를 숙였다.“의사는 거짓말 안 해.”“너...”민지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서준은 말없이 민지를 끌어안아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지훈과 의료진이 함께 강서원을 응급처치실로 옮긴 뒤, 지훈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섰다.마치 삶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한순간에 사라진 사람처럼, 남은 건 텅 빈 몸뿐이었다.“아버지...”지훈은 조기봉을 바라봤다.그러나 조기봉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지훈은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한 박자 늦게, 거대한 슬픔이 밀려왔다.지훈은 복도 한쪽에 주저앉아 손등을 악물고 울었다.울음은 짐승처럼 거칠고 처절했다.“재석아... 너무 억울하게 갔다...”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복도 끝 모퉁이에 서 있던 임시호가 지켜보고 있었다.시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모두가 무너지는 장면을 감상하듯 바라봤다.마치 아주 흥미로운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환자 보호자이신가요?”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시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간호사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19화

    갑자기 전일의 발걸음이 멈췄다.몇 걸음 나아가던 전일은 방향을 바꿔 다시 돌아섰고, 곧장 관련 부서 인원들 앞에 섰다.선두에 서 있던 남자는 전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더 할 말이 있습니까?”전일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공무 수행 중이라고 했죠? 그럼 공무원증 같은 것을 좀 볼 수 있을까요?”선두의 남자는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역시 소정은 밑에서 일하던 사람답다.의심하는 타이밍까지 똑같았다.“물론입니다.”공무원증이 내밀어졌다.전일은 대충 보지 않았다. 눈으로 훑으며 세부 사항을 확인했다.잠시 후, 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됐어요.”그제야 전일은 재민과 함께 실험실을 빠져나왔다.밖으로 나오자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건물 전체에 이미 통제선을 둘러쳤고, 몇 대의 검은 관용차 안에서는 군복 차림의 인원들이 희미하게 보였다.재민은 숨이 막히는 기분에 본능적으로 전일의 얼굴을 확인했다.전일 역시 표정이 굳어 있었다.분명히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다.“이거... 생각보다 큰 일이 터진 거 아니에요?”전일은 말없이 재민을 데리고 조금 더 걸었다.사람들과 차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만큼 거리를 벌린 뒤에야 입을 열었다.“일단 흥분하지 말고, 정은이한테 먼저 연락해. 정은이가 뭐라고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해.”“네... 알았어요.”전일은 핸드폰을 꺼내 정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돌아온 것은 기계적인 안내음뿐이었다.연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됐다.전일의 마음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한층 더 짙어졌다.전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재민을 바라봤다.“정은이에게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네?”재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말이 안 됐다.정은은 늘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재민에게 정은은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다.반면 전일은 비교적 침착했다.정은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전일은 곧바로 민지와 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정은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18화

    “어? 그게 무슨 뜻이야?”“집에 가서 기다려. 내가 보기엔 정은 누나가 연행된 순간부터, 나랑 너, 그리고 진일 선배랑 탁재민까지 이미 관련 부서의 감시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커.”민지는 얼굴이 굳은 채로 중얼거렸다.“그, 그렇게 심각한 거야?”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기라곤 전혀 없는 눈빛이었다.“응. 꽤 심각해.”국가가 직접 나선 상황이었다.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일 리 없었다.민지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그,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아버님이랑 어머님께 여쭤보자. 아니면 할아버지께라도... 그래, 그분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알고 계실 거야...”“응.”“잠깐만...”민지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서준이 시선을 보냈다.“왜?”“이상해. 왜 조재석 교수님은 아직도 안 보이는 거야?”서준도 그제야 멈춰 섰다.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아내가 졸업식 무대에서 끌려 나간 이 시점까지, 조재석 교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전 교수님한테 전화해 봐.”“알겠어. 지금 바로 할게...”곧바로 통화가 연결됐다.민지는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빠르게 말했다.“전 교수님, 저 하민지예요! 혹시 조재석 교수님 지금 어디 계신지 아세요? 조 교수님이 정은 언니...”‘정은 언니’라는 말이 나온 순간, 전진욱의 목소리가 확 바뀌었다.[너... 정은이 후배 맞지?!]“네, 맞아요!”[잘 전화했어. 정은이 어디 있니?! 방금부터 계속 전화가 안 돼서 학교에도 연락했는데, 아무도 모르겠다고 하고... 지금 당장 시립병원으로 와야 해. 재석이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지금 수술실이야. 아직...]그 뒤의 말은 민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이 새하얘지며, 귓가에서 ‘웅’ 하는 소리만 울렸다.서준은 민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야?”민지는 굳어버린 눈을 힘겹게 굴려 서준을 바라봤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참아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졌다.“조재석 교수님이... 교통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17화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는 단 한마디는, 마치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찬물을 들이붓는 것과 같았다.순간, 현장은 폭발하듯 술렁이기 시작했다.“뭐야? 왜 국가안보 관련 부서가 여기까지 와?”“교육부나 학회 쪽에서 나오는 거야 흔하지. 근데 국가안보 관련 부서라니, 이건 좀...”“...”웅성거림은 점점 낮아졌고, 마침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소정은이... 무슨 사고를 친 거야?”그 말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주문처럼 작용했다.억눌려 있던 악의가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세상에, 국가안보 관련 부서면 나라 지키는 곳 아니야? 설마 소정은... 간첩질이라도 한 거야?”“그걸 누가 알아? 겉모습만 보고 사람 속을 다 알 수는 없는 거지.”“소정은이 ‘무한 실험실’에서 매년 쏟아내는 연구 성과가 얼만데. 해외 쪽에서 접근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에이, 미쳤나 봐. 어떻게 그런 짓을 해?”“그러니까 말이야. ‘무한 실험실’이 학교 밖에 따로 있고, 연구 성과도 학교와 공유하지 않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나라 팔아먹으려고 그랬던 거 아냐? 진짜 어이가 없다.”“야, 너희 말 너무 심한 거 아냐?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큰 죄를 멋대로 씌워?”정은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맞아! 정은 선배 실력 알잖아. 앞날이 훤한 데다, 총장님이 직접 붙잡고 교수로 남아 달라고 할 정도였어. 그런 사람이 굳이 나라를 팔 이유가 어딨어?”“그러니까. 정은 선배 돈도 부족할 게 없잖아. 어머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다 제작자고, 해마다 인세만 수십억이라던데. 남편도 조재석 교수 같은 명문가 도련님이고. 갖고 싶은 거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겠어?”“이건 분명 오해가 있을 거야.”“...”소진헌과 이미숙은 뒤늦게 상황을 인식하고,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무슨 일이 있어도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러나 정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는 손이 나타났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16화

    부부로 산 세월이 수십 년이다 보니, 이미숙은 한눈에 소진헌의 속내를 알아봤다.“자, 오늘은 딸 졸업식이에요. 갱년기 지나고 너무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소진헌이 코를 훌쩍였다.“누, 누가 그래. 나 감동해서 그런 거야!”이미숙은 앞으로 다가와 정은을 꼭 안아 주었다.“우리 딸, 축하해. 넌 언제나 엄마의 자랑이야.”정은도 조심스럽게 품에 안겼다.엄마의 품은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어릴 때처럼 무의식적으로 살짝 몸을 비볐다.설명하기 힘든 시큰함이 코끝으로 올라왔고, 눈가가 살짝 뜨거워졌다.그때, 이미숙이 딸의 귀에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신탁 통장 하나 만들어 놨어. 엄마가 주는 졸업 선물이야. 이제 평생 돈 때문에 고개 숙이거나 고민하지 말고, 네가 사랑하는 것만 보고 앞으로만 가.”“엄마...”“우리 공주님, 너무 감동하지는 말고. 지금 울면 화장 다 번진다.”정은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소진헌이 투덜댔다.“두 사람은 뭐 그렇게 귓속말을 해?”이미숙이 흘겨봤다.“소 선생님, 귓속말인 거 알면 좀 묻지 마요.”“근데, 조 서방은 어디 갔어? 왜 안 보여?”이런 날, 재석이 빠질 리가 없었다.소진헌은 앞뒤로 한 번 더 둘러봤지만, 끝내 재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정은이 설명했다.“원래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하기로 돼 있던 교수님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입원하셨어요. 그래서 재석 씨가 대신 투입돼서 세미나에 가게 됐고요. 일정이 닷새예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지금 돌아오는 중이에요.”“그럼 됐다. 이런 중요한 날 못 오면, 평생 후회할거야.”“정은 언니... 제가 아버님, 어머니랑 같이 사진 찍어 드릴까요?”민지가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아이는 이미 임수인이 안고 있었기에 민지는 손이 자유로웠다.정은이 웃었다.“그래.”소진헌은 바로 깃과 소매를 정리했고, 이미숙도 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정돈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부부가 좌우에 서고, 정은이 가운데 섰다.민지가 외쳤다.“카메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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