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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Penulis: 십일
남자의 손은 뼈마디가 뚜렷했고, 길쭉하면서도 예뻤다. 한쪽으로 눈을 드리우자, 정은은 그 사람의 카트에 인스턴트식품과 밀키트로 가득 찬 것을 발견했다. 시선을 위로 옮기니, 예쁜 손의 주인도 마침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저녁에 설마 이런 것만 먹는 건 아니겠죠?”

“에헴! 가끔 집에 늦게 돌아올 때가 있는데, 배달시키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간단하게 먹으면 되거든.”

조재석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계산해 봤는데, 이 음식들은 사람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단백질과 비타민, 그리고 탄수화물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어.”

정은은 재석이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조 교수님은 이미 과학적인 계산과 정확한 추산을 통해 모든 방면을 고려한 것 같네요. 하지만 따끈따끈한 밥과 이 밀키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선배님은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재석은 침묵했고, 그 대답 역시 아주 뻔했다. 누가 따뜻한 밥을 놔두고 인스턴트 푸드를 먹으려 하겠는가?

정은은 교활하게 웃었다.

“그러니까요. 저녁은 내가 할 테니까, 보답으로 선배님은 딱 한 가지 일만 도와주시면 돼요.”

...

30분 후, 재석은 도마 위에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이건 손질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

정은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평소에 마트에는 회를 썰어주는 아저씨가 있는데,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저 간단하게 처리해줬을 뿐이에요. 선배님 만약...”

재석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안경을 벗었다.

“한 번 해볼게.”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광어회로 만든 매운탕이 더 얼큰하고 맛있었는데, 물고기를 손질하는 것은 너무 번거로웠기에 정은은 이 일을 남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재석이 주방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정은은 또 조금 미안하다고 느꼈다.

‘물리학자에게 회를 썰라고 하다니, 인재를 너무 낭비하는 것 같은데?’

5분 후, 정은은 도톰하고 크기가 비슷한 회를 보면서 방금 한 말을 거두기로 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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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에는 또 정은이 찍은 수미의 사진이 있었다. 그때의 수미는 마침 금방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왔고, 그야말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처럼 넋을 잃었다. 그 사진을 보기만 해도 정은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마지막까지 훑어보니, 정은의 단독 사진뿐이었다. 핸드폰을 끄려던 참에, 그녀는 배경의 행인 중 익숙한 두 사람을 발견했다.정은은 입술을 깨물었다.‘실수로 서연희와 강도겸을 찍은 것 같군.’사진 속의 주인공은 정은이었고, 뒤에 있는 사람은 단지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으니, 오히려 그녀가 그 두 커플을 방해한 것 같았다....“이모님, 이모님!”도겸은 배를 안고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나 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이른 아침, 도겸은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간간이 쥐어짜는 위통에 그는 온몸이 차가웠고, 구역질이 났지만 또 아무것도 토하지 못했다.이런 통증은 도겸에게 있어 무척 익숙했다. 위병이 도진 것이었다. ‘집에 위장약이 있는 것 같은데,’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지 케이스 하나만 남았을 뿐, 안의 약은 이미 떨어졌다.도겸은 고통을 참으며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장약 사서 별장으로 들고 와.”비서는 1초도 감히 꾸물거리지 못하고 즉시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차를 몰고 별장에 도착했을 때, 비서는 도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대표님, 얼른 약 드시죠.”도겸은 그가 건네준 알약과 따뜻한 물을 받아 그대로 삼켰다.“뭐 좀 드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도겸은 손을 흔들었다,“먼저 가봐.”비서는 한숨을 돌리며 조용히 떠났다. 그러나 한 시간도 안 되어 도겸의 전화가 또다시 걸려왔다.[넌 대체 무슨 위장약을 산 거야?! 먹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하지 못하다니. 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거야 아니면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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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은 집에 돌아간 다음, 먼저 냉장고를 검사했다. ‘어제 산 채소가 많이 남았네. 그럼 소갈비찜, 탕수육, 계란찜, 음... 간단하게 야채볶음 하나 더 하자.’그녀의 현란하고 능숙한 요리 솜씨에, 전혀 밥을 할 줄 모르는 성준은 어안이 벙벙했다.“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배달을 시키거나 나가서 먹는데. 너처럼 스스로 밥을 하는 여자아이가 거의 없을걸.”정은은 담담하게 웃었다.“사람마다 생활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나도 그저 밥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뿐이에요.”성준은 바쁘게 돌아치는 정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또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집은 크지 않았지만 깨끗하고 정연했고, 인테리어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다.거실에 작은 책꽂이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성준은 그 책들이 모두 전문적인 서적인 것을 발견했고, 그중 물리에 관한 책이 무척 눈에 띄었다.여자아이의 방을 이렇게 쳐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성준도 시선을 거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음식이 식탁에 나타났고, 따끈따끈한 밥과 함께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성준은 탕수육을 한 입 맛보더니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너무 맛있네! 너 솜씨가 정말 좋구나.”그는 기름진 배달 음식에 익숙해져서 지금 정은이 만든 요리를 먹으니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정은은 성준이 놀란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입맛에 맞으면 많이 먹어요.”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저녁까지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그리고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는 심지어 쑥스러워서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넌 요리 솜씨가 이렇게 좋고, 또 성적까지 우수하니, 네 남자친구는 정말 행복하겠다.”정은이 말하기도 전에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먼저 먹어요. 누가 왔는지 확인 좀 할게요.”문을 열자, 서정은 두말 없이 정은을 끌고 나가려 했고, 정은은 영문을 몰랐다.“같이 병원에 가요. 우리 오빠 지금 아파서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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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성준은 오히려 무척 불편했다. 간신히 다 먹은 다음, 그는 서둘러 작별을 하며 떠났다.방안은 즉시 조용해졌고, 정은은 식탁을 치우며 머릿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서정의 말을 떠올렸다.‘위천공이라고...’이렇게 한눈을 팔다 정은은 실수로 그릇을 깨뜨렸다. 그녀는 얼른 손으로 줍다 오히려 그릇 조각에 베였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손등에 떨어졌다.도겸과 함께 한 시간은 6년, 그것은 6일도 아니고 6개월도 아니었다. 어떤 습관은 이미 정은의 뼛속에 깊이 새겨졌던 것이다. 그가 입원했다는 것을 들은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걱정을 하며 병원에 달려가고 싶었다.다행히 이성은 이런 본능을 가로막았다.‘이제 강도겸을 걱정하지 말고, 또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자.’처음에 정은과 도겸은 무척 달콤한 사랑에 빠졌지만, 서로의 곁을 함께 하는 동안 지겨움이란 감정이 나타나더니 심지어 이렇게 헤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은 틈이 나타났다.‘강도겸이 처음으로 약속을 어겼을 때부터? 아니면 그 남자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을 때부터?’지금 돌이켜보니 뜻밖에도 기억은 무척 모호해졌다.6년이란 시간은 행복할 수도, 슬플 수도 있지만, 또한 언급할 가치가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하이힐을 신은 서정은 씩씩거리며 밖으로 돌진했다. 너무 급하게 걸어서 그녀는 심지어 복도 안의 쓰레기 때문에 넘어질 뻔했다. 화가 난 서정은 욕설을 퍼부었다.“이게 뭐야? 이 낡고 냄새나는 곳을 집이라고! 정말 짜증 나!”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오빠, 왜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야? 의사가 푹 쉬라고 했잖아?”그녀는 한창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도겸이 환자라는 생각에 말투가 좀 누그러졌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 딱딱했다.병원에서, 도겸은 잠에서 깨자마자 서정이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정은 누나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나갔어요.”선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우리가 도저히 말릴 수가 있어야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38화

    7월 초, 기온이 점차 높아지면서 기상청은 폭염주의보를 발표했다.35도란 고온이 이미 일주일간 지속되었고, 조재석의 실험은 반복적인 계산과 검증을 거친 후, 마침내 새로운 진전을 가져왔다.모처럼 휴식시간이 생긴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7층까지 올라가며 한잠 푹 자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맞은편에서 한바탕 소리가 들려왔다.재석은 동작을 멈추었고, 굳게 닫힌 정은의 문을 바라보며 다가가서 노크했다.“정은아, 집에 있어?”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여전히 인기척이 없었다.재석이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 망설일 때,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틈 사이로 정은이 머리를 내밀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치 재석이 갑자기 문을 두드려서 나온 것일 뿐,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재석은 지금의 정은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 같았다. 마치 수분을 잃고 바짝 말라가는 장미처럼.재석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정은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영문을 몰랐다.이때,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논문을 쓰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진도는?”“두 주일 전에 다 썼는데, 이미 발표했어요. 이 두 달 동안 줄곧 복습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요.”재석은 안경을 밀었다.“지금 내 손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논문 한 편이 있는데. 좀 검사해볼래?”20분 후, 재석의 집에서, 정은은 소파에 앉아 논문을 훑어보면서 눈빛이 밝아졌다.재석이 그녀에게 준 논문의 제목은 생물 서열에 관한 것이었고, 생물의 초기 변화치를 토론하는 내용이었다.과제는 참신한 편은 아니지만, 아이디어가 기발한 데다 검증 방식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결론과 새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혁신을 하려면 대량의 데이터로 증명을 해야 했다.“이게 선배님의 논문이에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대학교 2학년 때 쓴 거야.”정은은 심정이 많이 복잡해졌다. ‘지금까지도 생물정보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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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에게 있어 이것은 얻기 힘든 기회였다.“만약 관심이 있다면 이 논문 가져가서 자세히 읽어봐.”말하면서 재석은 USB를 하나 꺼내 그녀 앞에 놓았다.“이 안에 상세한 실험 자료가 있어.”정은은 눈을 들더니 은근히 흥분해하고 있었다.“고마워요, 잘 생각해 볼게요.”10시, 정은은 집에 돌아가야 했다. 재석은 그녀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난 바로 이 맞은편에서 살고 있으니, 특별히 배웅할 필요가 없어요.” 정은은 웃으며 말했다. 재석은 오히려 그녀가 무심코 드러낸 손가락을 힐끗 바라보며 주의를 주었다.“반창고를 너무 오래 붙이면 안 돼. 요오드 볼트로 소독한 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좋을 거야.”정은은 얼른 검지를 숨겼다.“고마워요, 그렇게 할게요.”재석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돌려 분홍색 다육식물 하나를 가져왔다.“이거 줄게.”정은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손바닥만 한 다육식물은 잎사귀가 통통했고, 초록색에서 점차 핑크로 변하니 또 무척 예뻤다.“이거 너무 귀여운데, 정말 나에게 주는 거예요?”“응, 며칠 전에 꽃집을 지나다가 이것만 하나 남았길래. 지난번에 매운탕을 대접한 답례라고 생각해.”정은은 입술을 구부렸다.“이번에는 그냥 받을게요. 하지만 친구 사이에 같이 밥을 먹었다고 굳이 선물을 살 필요가 있나요? 다음에 답례하지 마요.”그녀는 눈을 깜박였고, 맑은 눈동자는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빛이 났다.“응.” 재석은 마음이 약간 흔들리기 시작했다....병실에서. 이른 아침, 고동건과 전선우는 병문안을 오기로 약속했다.동건은 그럴듯하게 보온병까지 들고 왔다.“도겸아, 내가 널 얼마나 관심하는지 좀 봐. 이렇게 죽까지 챙겨왔잖아! 헤헤! 넌 위가 안 좋아서 담백한 것만 먹어야 하니가, 내가 특별히 우리 집 셰프에게 아침 일찍 죽을 끓이라고 했어. 이게 비록 많진 않지만, 재료가 다 비싼 거라서, 다 먹으면 바로 힘이 펄펄 날 거야!”선우는 향기가 그윽하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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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6화

    정은은 은혁의 그 아련하고 억울한 표정을 보자, 그냥 말이 안 나왔다. ‘대체 지금 머릿속에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거지...?’ ‘진짜, 할 말 없네...’오후 세 시 정각.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이 하나둘 줄을 서고, 정은도 조용히 탑승했다.비행기가 거의 만석이 된 후, 은혁은 이코노미석 안에서 정은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A 열, F 열, 가운데 구역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없었다.잠시 후, 탑승 문이 닫히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곧 출발하겠습니다.”그제야 은혁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기내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봤다.그리고, 비즈니스석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있는 정은을 발견했다.“정, 정은... 씨? 이코노미석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게...”‘뭐지, 상황이 이상한데...?’ ‘내가 이코노미석이라 당연히 정은 씨도 그럴 줄 알았는데...’정은은 슬쩍 웃었다. “누가 그래요? 내가 이코노미석 탄다고?”“지난번에 올 때는... 그때는 분명...”“그때는 비즈니스석이랑 일등석이 매진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석에 탄 거고, 이번엔 자리가 있어서 그냥 비즈니스로 예약한 거죠.”‘아... 나 지금까지 뭐 한 거지. 혼자 다 짐작하고, 혼자 의미 부여하고, 혼자 낭만 타령하고...’은혁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사실 은혁 씨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뿐이죠.”그 말에는 어떤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사실만 전달할 뿐.은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와... 진짜, 뼈 맞았다.’자리에 앉은 은혁은 좌석의 불편함을 바로 체감했다. 다리는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의자도 푹신하지 않고, 무엇보다 공기 중에 떠도는 그 ‘답답한 사람 냄새’가 꽤 거슬렸다.‘내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다지만...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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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말문이 막힌 채, 몇 초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진짜... 남자 친구가 있었던 거야?’ ‘아니면... 나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걸까?’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정은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없었다....그 시각, 정은은 공장 회의실에서 진승구와 협의 중이었다. 조건은 명확했고, 가격도 이견 없이 깔끔하게 정리됐다.공장장인 진승구는 시원시원한 정은의 태도에 감탄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 인쇄를 지시했다.서류가 출력되자, 두 사람은 조용히 사인했고, 정은은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좋은 협력 관계 기대하겠습니다.”진승구도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정은이 회의실을 나선 후,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정은 씨는 어딨어요?” 은혁이었고, 숨이 가빠 보였다.“소... 소정은 씨요?” 진승구는 당황해하며 되물었다.“그래요, 그분. 지금 어딨어요? 아까 계약한다고 했잖아요? 그냥 바로 도장 찍지 말고 좀 더 시간 끌라고 했잖아요. 이틀 정도만 더 붙잡아 두지...”진승구는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아... 이미 계약 다 끝났는데요...”은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바보야, 바보... 진짜 바보!’속으로 열 번은 외쳤다. ‘이딴 놈한테 뭘 맡기겠다고...! 아버지한테 건의해야겠네. 앞으로 공장 접대비 전액 삭감... 출장자도 식당에서 밥 먹게 하고, 노래방은? 절대 금지!’은혁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척했지만, 자꾸만 뇌리를 맴도는 정은의 말 한마디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남자 친구가 있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어제 그 말은 분명 나를 밀어내기 위한 거였어. 다 망친 거야. 다 그놈의 진승구 때문이야...’진승구도 그런 은혁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됐다.‘은혁 도련님... 왜 저래...?’...정은은 과일 봉지를 하나 들고 김대영이 있는 작업실 쪽으로 향했다.“김 기사님, 누가 찾아왔어요!”“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4화

    정은이 계속 말했다.“이미 결과 나왔어요. 기준에는 전혀 못 미치네요.”김대영은 들숨을 멈췄다. “그렇게 빨리?”‘진짜다... 이 속도면 혼자서 실험실 하나는 돌리겠다니까.’“그럼, 옷부터 갈아입고 올게. 오늘은 절대 민폐 안 끼칠게!”“감사합니다, 선생님.”“에이... 감사하긴! 당연한 거지!” ‘선생님이라니... 아저씨도 아니고, 기사님도 아니고... 선생님이라 불러주다니, 나 오늘 힘난다.’모든 준비를 마친 오전 8시. 연구실 측에서 드디어 3세대 샘플이 도착했다.정은과 김대영은 다시 책상에 마주 앉아 정밀 측정과 테스트를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금방 흘러 점심시간.김대영이 말했다. “가자, 밥 먹으러.”“네.”식당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은 오후 실험 플랜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다. 바로 그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은혁의 머리는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심지어 셔츠 깃은 구겨져 있었으며, 표정은 평소답지 않게 초조해 보였다.“정... 정은... 씨!”은혁은 숨이 차 헉헉거리며 말했다. “겨우 찾았어요...”정은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아침부터 계속 메시지 보내도 답이 없고, 호텔 방에도 없길래...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요.”은혁도 정은을 걱정한 그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6시 반에 나왔어요. 어제 은혁 씨 늦게 들어온 것 같길래 아직 잘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안 깨웠어요.”정은은 솔직히 대답했다.“6시 반...”은혁은 민망한 듯 짧게 웃었다. 그리고 변명처럼 말을 덧붙였다. “나 어제... 일부러 취한 거 아니에요. 원래 술 그렇게 안 마시는데... 공장장이랑 애들이 자꾸 마시자고 해서...”“끝나고 또 노래방까지... 근데 거기, 이상한 데 아니고 진짜 건전한 곳이에요. 나 원래 그런 데 잘 안 가요.”정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해할 일도 없고, 솔직히 말해 저랑은 큰 상관도 없는 얘기예요. 그럼, 김 선생님이랑 밥 먹으러 가볼게요.”“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3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걸 잊었다.오후에 재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공장 쪽 진행 상황을 물어보는 짧은 통화였고, 그때 정은은 막 실험에 들어가 바쁜 와중이었다.“일 끝나면 내가 먼저 연락할게요, 알겠죠?”이 말은 바로 마지막에 정은이 한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하... 진짜 미쳤어. 그 말 해놓고 까먹었다고? 이런 사람은 또 없을 거야’정은은 민망함에 얼굴을 문지르며 핸드폰을 들었고, 톡을 열자마자 미확인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하나같이 은혁에게 온 것들. [정은 씨, 지금 어디예요?][정은 씨, 밥은 먹었어요?][정은 씨, 같이 식당 갈래요?][...] 친절한 말들이었지만, 그 속엔 정은이 찾는 메시지가 없었다.‘아니지, 지금 연락해야 할 사람은 장은혁이 아니라...’정은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몇 자 쓰다가 다시 전부 지웠다. 결국, 손가락이 향한 건... 영상 통화 버튼.띠-잠시 울리던 화면이 바뀌며, 재석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정은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일 끝났어?]“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피곤하지 않아?]“괜찮아요. 근데... 미안해요. 공장에서 나오는 길에 바로 연락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었어요...”[괜찮아, 언제 연락하든 난 항상 여기 있어.]‘이 말, 왜 이렇게 따뜻하지...’ 재석은 가슴속에서 뭉근한 온기가 퍼졌다.그때, 문득 정은의 시선이 멈췄다. “지금 어디예요?”[집.]“집 어디요...? 방? 아니면...”재석은 순간 멈칫했다. 정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화장실?”화면 속, 지나치게 가까이 잡힌 남자의 얼굴. 말도 안 되게 커진 이마와 눈, 화면에 머리까지 박을 기세였다.‘잠깐만. 이거... 설마...’“설마... 지금 옷 안 입었어요?”정적. 화면 너머의 공기조차 얼어붙는 느낌.재석의 얼굴이 굳었다. [씻으려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2화

    정은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슬쩍 바라봤다. 공장은 호텔에서 10km 떨어진 개발지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은혁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구역은 첨단 기술 산업 클러스터로 지정돼 있어서, 기술 협력 프로젝트도 대부분 그쪽으로 집중되고 있어요.” “정은 씨가 찾는 그 새로운 감온 정확도 소재는 우리랑 CG그룹이 공동 개발한 건데, 지금까지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세 가지 버전이 있어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고, 중간중간 전문적인 질문도 빠짐없이 던졌다. 은혁이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성의껏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나 실험 조건처럼 세세한한 부분은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약 20분 후, 두 사람은 공장에 도착했다. 은혁이 미리 연락해 둔 덕분에, 정문 앞에는 담당자가 나와 있었다.정은은 안내받아 간단히 실험실과 공장을 둘러봤다. 연구 구역과 생산라인은 전혀 겹치지 않게 구획이 나뉘어 있었고, 현장도 전반적으로 정돈된 느낌이었다.정은이 요청한 소재의 1세대와 2세대는 이미 완제품으로 확보되어 있었지만, 3세대는 아직 실험 단계였기에 정식 생산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직접 합성해야 했다.“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정은이 은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혁은 옆에 있는 연구원을 바라봤다.“8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엔 제품 받아보실 수 있어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관련 비용은 정산대로 처리해 주세요. 최종 결정되면 한 번에 입금할게요.”은혁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비용은 무슨 비용... 정은 씨,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요.”정은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수록 더 딱딱하게 해야죠. ‘친할수록 돈 문제는 분명하게.’ 이건 기본이에요. 더군다나, 우리 둘은 그냥 ‘친구’일 뿐인데, 은혁 씨가 도와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요.”“게다가 실험실도 예산이 따로 있는 조직이고, 모든 비용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1화

    실험실에서 진욱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게 재석을 힐끔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 “재석아, 너 오늘 길 가다 돈 주웠냐?”실험대 앞에서 입꼬리를 내릴 줄 모르던 재석의 손이 잠깐 멈췄다. “데이터 정리는 다 됐어? 3차 실험 가능성 평가 보고서는 언제 낼 건데?”“하, 이 사람 분위기 다 깨네.” 진욱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근데 말이야, 오늘 아침에 네가 샌드위치 먹는 거 봤거든.”“그래서?”“정은이가 해준 거지? 다 알아. 너희 둘, 다시 잘 되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이제 미련 접은 거야?” 재석은 살짝 고민하다가,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 싶어 입을 열려고 했다.바로 그때, 핸드폰에서 톡 알림이 떴다. 정은이었다.[도착했어요. 샌드위치는 맛있었어요?]재석은 바로 답장했다.[맛있었어.]정은은 곧장 자신의 일정을 재석에게 알려줬다.[지금 호텔 체크인하고, 오후엔 공장 갈 거예요.][응, 알겠어.]1분 정도 지났지만, 그다음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재석은 괜히 허전해졌다.‘예전에도 이렇게 대화했었는데... 왜 지금은 이걸로는 부족하지?’정은과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다. 더 많은 말, 더 사적인 얘기, 더 가까운 거리. 그 마음은 마치, 가려운 곳을 손톱 끝으로 슬쩍 긁은 느낌. 절대 시원하지 않았다. 그냥 더 간지러워질 뿐.‘그냥, 정은이한테 세게 할퀴어지고 싶은데...’“누구랑 톡하냐?” 진욱이 슬쩍 핸드폰을 들여다보려 다가왔다.재석은 피할 틈도 없이 화면을 들킨 셈이 됐다. “뭘 감춰. 정은이랑 메시지 주고받는 거잖아. 왜? 뭐가 부끄럽다고.”“됐고.” 재석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실험대에서 내려왔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뭐 먹고 싶어?”진욱은 멍한 표정으로 몇 초 멈췄다. 옆에 있던 미진이랑 태민이 눈을 마주쳤다. “교수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갑자기 점심을요?”재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생각나면 전 교수한테 말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0화

    비행기 이륙 직전, 은혁이 정은에게 제한했다. “정은 씨, 내 마일리지로 좌석 업그레이드해 줄게요.”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은혁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다시 다가와 말했다. “내가 정은 씨 옆자리로 바꿨어요.”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자리를 바꾸다니, 웬만한 사람이면 거절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은혁 씨,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정은은 단호한 어조였다.‘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한 것 같아.’정은은 연애 한 번 안 해본 소녀가 아니었다. 은혁의 눈빛에 담긴 감정이 어떤 건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그동안 굳이 선을 긋지 않은 건, 은혁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몇 번이고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이번 Z시 출장도 은혁의 도움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게다가 은혁이 고백도 안 했고, 정은이 불편할 정도로 다가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은도 자신이 먼저 딱 잘라 말하는 게 오히려 예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때의 정은은 솔로였고, 재석이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자극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정은은 이미 재석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은혁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그녀도 이제 더 늦기 전에 확실히 은혁에게 말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야 서로 상처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은혁은 정은의 말에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난 정은 씨 옆자리에 있는 게 좋아서 그래요.”정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즈니스석 티켓을 사 놓고 누구랑 자리를 바꾸든, 그건 상대방의 자유니까. 굳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지.’그 후, 정은은 노트북을 열고 일에 집중했다. 은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틈틈이 정은을 흘끗거렸다.그러다 손을 들어 승무원을 불렀다. “저기요. 잠깐만요.”“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9화

    결국 재석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정은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열쇠를 건네받아 현관문을 열어주었다.“정은아, 잘 자.”그 한마디.‘정은아’라는 이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수천 번은 불러본 것처럼.그 말에 정은은 순간 멍해졌다.‘왜 내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이렇게 설레지?’“네, 당신도 잘 쉬어요.”둘은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그날 밤. 정은은 평소와 달랐다. 샤워를 마친 뒤 늘 하던 루틴, 논문 체크나 프로젝트 정리는 손도 대지 않았다.대신,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재석의 SNS를 열었다.‘뭐 하는 거야? 나...’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궁금해졌다. ‘이 사람, 평소에 어떤 거 올리지?’재석은 SNS 설정 따위는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맨 아래까지 내리는 데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포스트 총수, 대략 서른 몇 개. 그중 90%는 논문, 연구, 산업 동향 공유.‘진짜 성실한 연구자 모드네...’그나마 정은과 관련 있는 건 얼마 전 실험실이 SCI 논문 게재됐을 때 서비대학교 공식 계정에서 축하 포스팅한 걸 공유한 것뿐이었다.[축하합니다.]짧고 건조한 멘트.그 밑엔 전진욱과 조미진이 ‘좋아요’를 눌러뒀다.‘이게 전부야?’그렇게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알림이 하나 떴다. 재석이 새로운 글을 올렸다.정은은 무심코 눌러봤다. [r = a(1 - sinθ)]‘...어?’정은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수식,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순간 심장이 멈칫했다.댓글 첫 줄엔 진욱이 있었다.[극좌표 함수? 밤에 안 자고 뭐 하세요? 조 교수님?]조미진과 손태민은 말없이 ‘좋아요’만 눌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속으로 ‘다음 연구 주제가 광학 쪽인가?’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했다.아무도 몰랐다. 이 수식의 진짜 의미를.‘r = a(1 - sinθ)’, 하트곡선.‘설마 이게, 그거? 진짜 그거... 맞아?’정은은 손끝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8화

    “그럼... 고백하기 전까지, 혼자서 그렇게 많이 고민한 거예요?”“응.”“어쩐지...”정은이 아주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뭐라고?” 재석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젠 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가요...”둘은 손을 꼭 잡고 복도로 향했다. 조용한 밤, 서로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걷던 중, 재석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정은도 따라 멈춰 서며 돌아봤다.“왜요?”“정은아, 우리 지금... 사귀는 거 맞지?”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두 사람이 꼭 잡은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렇게 생각 안 해요? 조금 전부터 내가 ‘재석 씨’라고 부른 거 못 느꼈어요?”“혹시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정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평소에도 꿈에서 날 자주 본 모양이네요?”재석의 몸이 순간 굳더니, 양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진짜 자주 꿨나 보다?’재석은 눈을 못 마주친 채, 그저 두 사람이 맞잡은 손만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진짜 좋아.”‘정은이도,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구나.’같은 계단, 같은 복도, 수없이 함께 걸어온 길. 그동안은 늘 친구라는 이름으로, 앞서거나 뒤따르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나란히 오르는 계단.정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근데, 왜 나랑 은혁 씨한테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재석은 목소리를 낮추며, 살짝 눈을 피했다.“미안. 계산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거든.”정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그리고 머릿속으로 자신이 통화 중 했던 말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공항에서 보자, 기대된다, Z시 출장... 뭐 이상한 말한 것도 없는데...?’그런데도 재석은 그걸 ‘여행 약속’으로 받아들였고, 그걸로 인해 혼자 삭이다가 결국 아래층에서 고백까지 해버린 거였다.“너희, Z시에 여행 간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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