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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지금 말하고 있으니 충분해요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09 13:43:08

햇살은 도심 위를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

밤새 쌓인 먼지를 밀어내듯,

거리는 서서히 제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 끝에서 봄의 기척이 아주 미세하게 섞이기 시작했다.

유리는 센터 안에서 창을 열고 있었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그 안에 실려 들어온 냄새는 어디선가 익숙한 감정을 건드렸다.

책상 위에는 전날 상담이 끝난 메모가 정리되어 있었고,

그 옆에 놓인 노트 한 권에는 누군가 남긴 글이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

‘그때,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 문장을 바라보는 유리의 시선이 천천히 어딘가로 꺾여갔다.

기억 저편, 잊은 줄 알았던 장면 한 조각이 물속에서 부유하듯 떠올랐다.

이우는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유리가 먼저 도착했고, 그는 한 발 늦은 출근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유리와 나눌 말보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듣고 있었다.

센터 안으로 들어선 그는 유리의 등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오늘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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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112. 숨겨진 목소리의 전송

    해가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밀려나고,빛이 마지막으로 유리창을 긁듯 스치고 지나가던 저녁이었다.도심 한복판, 높은 빌딩 사이로 흐르던 붉은 기운이 점차 어둠에 삼켜지면서 하루가 조용히 꺾이고 있었다.유리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조유진의 마지막 음성 파일을 다시 듣고 있었다.이미 열 번이 넘는 반복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목소리의 떨림,숨을 고르는 순간, 말 끝에 남는 망설임까지 모두 처음 듣는 것처럼 집중하고 있었다.이건 ‘공개’와 ‘보호’ 사이, 말을 세상에 건네는 일과 말을 지키는 일 사이에 서 있는 마음의 무게였다.해가 완전히 내려앉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무렵,이우는 오래된 재단 사무소 앞에서 차 안에 앉아 있었다.그는 오늘, 익명 경고 메시지의 발신자로 지목된 전직 재단 인사 ‘오재훈’을 만나기로 했다.사람들은 그를 ‘물러난 이사’라고 불렀지만,실상은 여전히 그 조직의 은밀한 손끝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이우는 말보다 기록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본능을 잘 알고 있었다.조유진의 음성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다시 움직일 것이다.그래서 오늘, 그는 유리보다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센터에서는 유리가 녹음파일 공개 여부를 두고 자체 윤리위원회와의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그녀의 손에는 최종 판단 권한이 실린 동의서가 들려 있었고,서명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오직 그녀 자신의 몫이었다.“이걸 세상에 내보내는 순간, 누군가는 침묵을 깨겠지만, 누군가는 날 향해 이를 갈겠죠.”그 말은 어떤 회의나 보도보다 훨씬 날이 선 판단이었다.한편, 이우는 오재훈과 마주 앉아 있었다.어둡고 좁은 응접실, 탁자 위의 찻잔은 식은 지 오래였고,그 둘 사이에는 마치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과거가 깔려 있었다.“당신이 그 파일을 넘기지 않게만 하면, 우린 더는 개입하지 않겠소.”오재훈은 그렇게 말했다. 이우는 웃지 않았다.“당신들은 늘 그래왔죠. 기록이 남는 순간, 말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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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그 친구가 뭘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진실을 접했는지 저희는 불안했어요.제가 그 불안을 어떻게든 누그러뜨리려 했던 것뿐입니다.”말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리는 그 조각난 문장들 속에서 이미 한 가지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누군가가 유진을 무서워했고, 또 누군가는 그 무서움을 조율하는 척하며 결국 등을 돌렸다.그 이름을 불렀던 사람들은 많았지만,그 목소리 속에 진짜 사랑이 담긴 사람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창밖에서 고요하게 흐르던 저녁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남자가 돌아간 뒤, 유리는 녹음기를 켰다.방금 전 대화를 그대로 담아낸 기록. 그 안에서 유진의 이름은 무수히 반복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단 한 번도 진심을 건드리지 못했다.그녀는 녹음기를 껐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이건, 유진의 목소리가 아니야.”이우는 센터 뒷마당에 나와 있었다.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작은 공간에 조용히 서 있던 그에게 유리가 다가왔다.“거짓말은, 시간이 지나도 소리가 안 바뀌네요.”그 말에 이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목소리는… 말 안에 있지 않잖아요. 그 사람의 행동 안에 있죠.”유리는 그 말에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조용히, 자신에게 말하듯 말했다.“언니가 남긴 행동들을 내가 대신 말로 옮길 수 있다면… 그게 아마, 제일 정직한 복수가 되겠죠.”그날 밤, 센터는 조용했고, 유리는 책상 위에 녹취록을 정리하고 있었다.그 옆에, 조유진의 손글씨로 된 오래된 메모 한 장이 있었다.‘나는 사라질 수 있어도, 말은 남는다.’유리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그리고 조용히 한 줄을 덧붙였다.‘그러니 나는, 그 말을 지켜낼 것이다.’해가 떠오르기 전, 도시는 바람으로 먼저 깨어나 있었다.창밖으로 흘러드는 공기는 밤의 끝을 간신히 붙잡은 듯차고 얇았고, 구름은 햇빛이 닿기도 전부터 회색빛 속에서 조용히 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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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108.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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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107. 지금 말하고 있으니 충분해요

    햇살은 도심 위를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밤새 쌓인 먼지를 밀어내듯,거리는 서서히 제 본래의 색을 되찾고 있었고,차가운 공기 끝에서 봄의 기척이 아주 미세하게 섞이기 시작했다.유리는 센터 안에서 창을 열고 있었다.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그 안에 실려 들어온 냄새는 어디선가 익숙한 감정을 건드렸다.책상 위에는 전날 상담이 끝난 메모가 정리되어 있었고,그 옆에 놓인 노트 한 권에는 누군가 남긴 글이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그때,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그 문장을 바라보는 유리의 시선이 천천히 어딘가로 꺾여갔다.기억 저편, 잊은 줄 알았던 장면 한 조각이 물속에서 부유하듯 떠올랐다.이우는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오늘은 유리가 먼저 도착했고, 그는 한 발 늦은 출근길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었다.그는 매일 아침 유리와 나눌 말보다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을 더 많이 듣고 있었다.센터 안으로 들어선 그는 유리의 등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오늘은 어떤 하루입니까.”유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조용한 하루가 될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네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온함과 동요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정오가 가까워지자 센터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오늘의 내담자는 조용히 걸어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예약한 사람입니다.”유리는 그를 안내하며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그의 걸음, 말투, 고개를 숙이는 방식.무언가, 과거의 자신과 겹쳐 보였다.상담실 안, 남자는 조심스레 말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무서워졌어요.”“그 순간, 멈춰 있었던 나 자신이 지금도 싫습니다.”유리는 그 말에 작은 진동처럼 몸을 떨었다.그 말은 예전, 조유진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말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살고 싶었어. 근데 움직이질 못했어.’그녀는 그날, 언니가 아닌 자신을 먼저 용서하지 못했던 그 밤을 고스란히 떠올렸다.상담이 끝난 뒤, 유리는 책상에 혼자 앉아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한 장면을 되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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